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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고통 ‘편견’

환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고통 ‘편견’

항문암 등 특정 신체부위·성생활과 관련된 암은 사회적 낙인 때문에 예방과 치료에 진전이 없다
항문암 등 특정 암에 걸린 환자는 터부시되는 신체부위와 문란한 성생활 등 사회적 낙인 때문에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낀다.
폴렛 크라우더는 대장암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필사적인 투병기간 동안 그녀가 걸린 병이 항문암 4기라는 건 자식이나 가장 친한 친구만 알고 있었다. 크라우더의 딸 저스틴 앨머다는 “’항문암’ 얘기는 고사하고 단어 자체가 나오는 것도 싫어했다”며 “대장암이 훨씬 정상적인 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기 결장경 검사로 항문 병변이 발견됐고 병변은 편평상피암으로 판정됐다. 추가 검사를 하니 암세포는 림프계까지 퍼져 있었다. 2010년 최초 암 진단을 받은 지 2년 만에 53세의 크라우더는 가족의 곁을 떠났다.

미국에서 매년 약 8000여 명이 진단 받는 항문암은 흔한 암이 아니다. 그러나 유병률은 지난 30년간 2배로 증가했고 매년 2%씩 늘어난다. 누구나 항문암에 걸릴 수 있지만 다수의 성관계 파트너, 항문 성교, HIV 양성, 혹은 장기 이식술이 위험요소라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크라우더의 항문암 진단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 암 검사가 필요하다고 느낄 만한 징후나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크라우더는 충격보다 당혹감이 더 컸다. “어머니는 너무나 수치스러워 했고 문란한 생활로 암을 자초한 거라는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했다”고 앨머다는 말했다.

휴스턴 텍사스 대학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항문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종양학자 캐시 엥 박사는 크라우더의 반응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항문암에는 다른 암에 없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특정 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게 사회적 낙인이 따라붙는 건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이야 핑크리본으로 요란하게 보호 받지만 유방암 또한 쉬쉬할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1974년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베티 포드가 유방암 진단과 근원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걸 공적인 자리에서 거론하며 인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장암과 고환암 또한 사회적으로 비슷한 수치감을 줬지만 유명 여성앵커 케이티 쿠릭이 아침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대장경 검사를 받고 랜스 암스트롱이 고환암 투병을 공개하면서 누구나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됐다.

항문암은 이중의 편견과 싸워야 한다. “첫째는 터부시되는 신체부위, 둘째는 성생활과 연관해 생각한다”고 엥 박사는 말했다. 질병에 대한 편견은 낮은 유병률과 결합돼 가려움증과 출혈 등 초기 증상이 나타나도 환자가 늦게 반응하게 만든다.

“치질이라고 생각했다. 검사를 받기 위해 딱히 서두르진 않았다”고 2010년 항문암 진단을 받은 미셸 롱거보는 말했다. 롱거보는 항문암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주변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걸 많이 경험했다고 말했다. “유방암이었다면 아낌없는 응원을 받았을 텐데 항문암이라니까 사람들 앞에서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애써 변명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앨머다는 그런 편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가 투병생활 동안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앨머다와 형제자매들은 가족이 겪는 아픔을 이해해줄 다른 환자를 찾기 위해 애썼지만 항문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항문암의 90% 이상은 인간 유두종바이러스 HPV 감염으로 유발된다. HPV는 자궁경관, 음문, 질, 음경, 인두 중앙부암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원인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사람 사이의 친밀한 피부 접촉, 가장 흔하게는 질을 통한 성교와 항문 성교, 구강 성교로 전염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7900만 명(국민 4명 중 1명)이 HPV 바이러스 종류 1개 이상을 보유한다. 따라서 대부분 살면서 한 번쯤은 HPV에 감염된다. 매년 HPV에 새로 감염되는 사람은 1400만 명이나 되지만 대부분 치료 받지 않고 완치된다. HPV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HPV에 감염되면 암으로 이어진다. 매년 2만7000명이 지속적 HPV 감염으로 암 진단을 받고 이 중 5000여 명은 항문암 진단을 받는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 항문종양클리닉 설립자이자 대표인 조엘 팔레프스키 박사는 HPV 백신 접종을 통해 이 수를 거의 ‘제로’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HPV 백신은 10년 전 도입됐고 현재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11~12세의 아동에게 정기 접종을 권한다. “아이들이 성경험을 하기 전 백신을 접종시키면 성인이 된 후 HPV 관련 암에 걸리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팔레프스키 박사는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지나간다. 여아 40%, 남아는 21%만이 HPV 백신 접종을 완료한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소아과 의사나 가정주치의가 HPV 백신 논의를 불편하게 여기는 부모에게 접종을 강력히 권하지 않는 게 주요 원인으로 드러났다. 백신의 안전을 믿지 못하거나 접종이 오히려 문란한 성생활을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은 의사의 소극적 태도를 보며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여러 번 근거 없음이 입증됐다”고 팔레프스키 박사는 말했다.

“아이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걸 걱정해야지 이건 너무 쉬운 결정”이라고 팔레프스키 박사는 말했다. “아이의 HPV 백신 접종을 권하지 않는다면 의사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젊었을 적 매년 받던 자궁경부암 세포진(Pap smear) 검사에서 크라우더는 비정상 소견을 받은 적이 있다. 자궁경부세포 도말검사 결과가 비정상이라는 건 HPV 감염으로 자궁경부 이형상피증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이 증상은 나중에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병변은 액체질소로 암세포를 얼린 후 자연적으로 사멸시키는 극저온요법으로 치료했고 이후 크라우더의 세포진 검사는 계속 정상이었다. 그러나 당시 의료진은 자궁경부 이형상피증이 크라우더의 항문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뒤 그녀는 위험증상에 대해 어떤 검사도 받지 못했다.

항문암 위험군 결정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확실한 의견 일치를 못 봤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세포진 검사로 고위험군을 찾아내자고 주장하는 의사들은 있다. 세포진 검사로 발병 전 세포나 암세포가 발견되면 이들 환자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서 가장 초기 단계에 있는 암세포를 제거해 치료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팔레프스키 박사는 말했다. “HPV로 파괴된 세포 제거가 항문암 예방을 위한 표준 치료법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한 의학적 증거는 아직 정립하지 못했지만 선입견에 얽매여선 안 된다. 자궁경부암도 1960년대 세포진 검사가 보편적으로 통용되기까지 예방 가능한 암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팔레프스키 박사는 말했다.

팔레프스키 박사는 항문암 검진 효과를 알아내기 위한 1상 임상시험 ‘앵커(Anchor)’에서 수석 연구원 역할을 맡고 있다.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투자금 8900만 달러를 지원 받아 8년간 이뤄지는 임상시험은 HPV 연관 병변을 밝혀내고 치료하면 항문암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 알아내는데 목적을 둔다. 15개 병원과 클리닉으로 구성된 전국 의료기관 네트워크에서 HIV 감염 남녀 5000여 명이 참여자로 등록했다. 항문암 발병 가능성이 80배 더 높은 인구군이다.크라우더 가족은 임상시험을 통해 고위험군을 정의하는 기준을 정립하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진을 받고 적절한 관리를 받았다면 어머니는 지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고 앨머다는 말했다. 초기에 발견하면 항문암은 수술로 완치될 수 있다. 진행 상태라면 항암치료와 고선량 방사선치료를 결합해 치료한다. 항문암 생존자 리처드 골드만(26)은 이 과정이 “무자비하게 괴롭다”고 말했다. “아직도 장기 치료 부작용과 싸운다. 결장 경련, 신경 손상…끝이 없다.” 그러나 골드만은 운이 좋은 편이다. 암이 주변 림프절까지 퍼지면 5년 생존율은 60%로 급감하고 완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만약 멀리 떨어진 장기까지 퍼졌다면 5년 이상 생존률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1~12세 아동에게 HPV 백신 정기 접종을 권한다.
방사선 치료의 정확도가 개선된 점을 빼면 항문암 치료는 골드만이 진단을 받았던 1989년 이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앨머다는 치료법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건 “조직적 낙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항문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새로운 치료법뿐만 아니라 진행 중인 임상시험도 없었다. 40년 동안 치료법이 하나도 발전하지 않은 암이 어디 있는가?”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가 사망하고 3개월 뒤 앨머다와 형제자매는 HPV 및 항문암 재단을 세웠다. HPV 바이러스와 항문암과의 연관성, HPV 백신 접종과 암 예방을 위한 검진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항문암의 새로운 치료법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노력의 일환으로 재단은 강력한 면역요법 연구 지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건강한 세포조직을 파괴하지 않고 암세포만 찾아내 파괴하도록 우리 몸의 자체 면역체계를 이용하는 새로운 치료법이다.

엥 박사의 초기 연구도 이들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항문관을 넘어서까지 암세포가 퍼져서 표준치료법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을 때 대안적 치료를 찾기 위한 연구다.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호지킨 림프종과 대세포 폐암 등 진행성 암 치료제로 승인 받은 면역제 ‘니볼루맙(nivolumab)’ 치료가 효과를 보인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 37명 중 2명의 종양이 사라졌고, 7명은 종양의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다른 17명의 환자는 종양의 크기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임상시험은 수개월 만에 본격 진행단계에 돌입됐다. 엥 박사는 임상시험이 항문암 환자의 “충족되지 못했던 니즈”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화학 및 방사선 치료는 1970년대 이후 변한 게 없다.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항문암 치료에서 이제서야 실질적인 첫걸음을 뗐다.”

- 아이미 스와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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