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의 종언, 한국 경제 어디로] 미국發 금리 인상 한국경제 발등의 불
[초저금리 시대의 종언, 한국 경제 어디로] 미국發 금리 인상 한국경제 발등의 불
가계부채·부동산 시장 직격탄 우려... 통화·금융 정책보다 재정 풀어 대응해야
지난 1년 내내 ‘늑대(금리 인상)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말이 현실이 됐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연준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연준이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는 곧 초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3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부채의 뇌관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주택시장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외 불확실성 속에 정치 리스크와 수출·내수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경제의 체력으로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까. 미국발 금리 인상이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과 대응 방안을 알아봤다. 저금리에 기댄 글로벌 ‘돈 잔치’가 끝날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9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제로(0) 금리’ 시대를 끝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년만인 지난 14일(현지시간) 다시 정책금리인 연방기금(FF) 금리를 기존 0.25~0.5%에서 0.5~0.75%로 올렸다. 예고된 이벤트였지만, 연준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초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경제 전문가 6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내년 12월 미국의 기준금리 전망치는 1.26%, 2018년 말에는 2.07%에 모인다. 한 번에 0.25%포인트씩 올린다고 가정하면 내년에만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연준 위원들 역시 내년 기준금리 인상 횟수 전망을 기존 2회에서 3회로 상향 조정했다. 또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세 차례 인상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 마지막으로 14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지난 3분기 3.2%(연율 기준) 성장하는 등 강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가 승리한 뒤 성장 기대감에 금융시장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인 기업의 법인세율 인하와 인프라 투자 등을 이행할 경우 미국 경기 호조가 이어지고 물가 상승세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극적인 감산 합의 등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선을 넘겼다. 금리 추가 인상을 위한 대내외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숀 스네이스 센트럴 플로리다대 이코노미스트는 “높아진 성장률과 물가성장률이 연준의 행보를 재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리를 올린다는 건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간 마구 풀어왔던 돈을 회수한다는 예기다. 연준은 2008년 12월 금리를 제로 수준인 0∼0.25%로 내리고 3000억 달러 상당의 국채, 2000억 달러 규모의 공공기관채, 총 1조2500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증권(MBS)을 사들이며 시장에 돈을 대거 공급했다. 또 2010년 2차 양적완화를 통해 매달 750억 달러씩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2012년 3차 양적완화에서는 매달 400억 달러의 MBS를 샀다.
이후 2013년 12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100억 달러씩 서서히 축소했고 2014년 10월 완전히 종료했다. 이제는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서 초저금리 시대와 이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과거 연준은 한번 금리를 올리면 2~3년간 계속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때마다 ‘미국이 기침하면 신흥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실현됐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대내외 금리차와 환율 등을 통해 외환건전성이 취약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파급력을 발휘한다. 돈의 값인 금리가 상승하면 해당 화폐의 가치도 오른다. 그러면 돈이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신흥국에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다. 또 대내외 금리차가 축소되면 차익거래 유인이 낮아져 신흥국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투자금 규모도 감소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경제 위기로 번진 적도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94년 1월부터 이듬해인 95년 2월까지 약 1년에 걸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올렸다. 이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 94년 당시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채권값 폭락 여파로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미국으로부터 저리로 단기 자금을 빌려 고금리 장기로 기업에 대출해줬던 한국 종합금융회사(종금사)들이 줄도산을 하는 등 위기는 아시아로 확대됐다. 당시 아시아 5개국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ㆍ태국ㆍ한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2004년 5월에서 2006년 7월까지는 2년에 걸쳐 1%에서 5.25%로 4.25%포인트가 상향조정됐다. 2003년 6월 미국의 기준금리는 4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1%까지 낮아지는 등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금리 상황에서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면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수요가 급증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도 팽창했다. 차주(대출자)의 상환능력에 대한 심사 없이 ‘묻지마 대출’이 이뤄지면서 모기지 대출은 유례없는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자 모기지 이자율도 함께 상승했고 모기지 사업에서 기록적인 수익을 창출하던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다. 서브프라임사태는 유럽으로도 번져, 유럽의 금융사들이 구제금융을 받거나 파산위험에 직면했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도 서브프라임 사태를 비켜가지 못했다. 일례로 2008년 추석 연휴 기간에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연휴 직후인 9월16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6.1%, 8.1% 폭락했다. 일본 닛케이(-4.95%), 중국 상하이종합지수(-4.47%)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번에도 신흥국 중심의 자금 이탈이 우려된다. 특히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글로벌 시장의 ‘연쇄 돈줄 조이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브렉시트 충격에서 벗어난 영국이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내년 4월부터 자산매입 규모를 기존 800억 유로에서 600억 유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적어도 경기 부양을 위한 돈 풀기는 멈춰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의 ‘돈 풀기’ 과정에서 글로벌 경제에 낀 ‘거품’도 곧 터지고 이것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찰스 달라라 전 국제금융협회(IIF) 총재는 지난 10월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만기를 연장하면서 부동산 등에 거품이 생겼다”며 “자산 가격은 되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전 세계 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이뤄졌던 94년, 99년, 2004년에 모두 국제금융시장이 자본유출 등으로 요동을 쳤다”며 “특히 유럽과 일본이 마이너스금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은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의 대분기(大分岐)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욱 큰 혼란을 맞이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껴있는 한국 경제 역시 자금 유출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난해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오히려 돈을 풀었던 일본, 유럽처럼 한국이 대응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줄면 자연히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자본 입장에서는 빠져 나가는 유인이 된다. 실제 지난해 12월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직후 3개월간 6조334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지난해보다는 영향이 덜 할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관측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미 예견된 수순으로 시장에 반영됐고 글로벌 경제도 지난해보다는 좀 더 준비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전반적인 금융상황과 신흥국의 대내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 정도가 지난해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며 “미 연준 정책금리 인상이 글로벌 금융ㆍ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해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자금이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대비가 필요하다. 유출을 막으려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최근 한국 경제는 금리를 올릴만한 ‘체력’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다. 5월에 내놓았던 기존 전망치(2.7%)보다도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마저도 최순실 사태에 따른 경제적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불확실성이 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치면 성장률이 2~2.3%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KDI의 관측이다. 여기에 해외 불확실성이 가중될 경우 1%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KDI는 경고했다.
경제의 양축인 수출과 내수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 우선 수출 환경이 여전히 나쁘다. 세계 경제가 부진을 이어가면서 교역량은 정체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4%로 전망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가 당선되며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세진 것도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 중국은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노골적인 통상보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금지령)을 내리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 중국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중국 당국은 ‘사드 보복’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향후에도 이런 중국의 한국에 대한 통상 규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올해 수출 부진을 다소나마 보완했던 내수 전망도 흐릿하다. KDI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올해 2.4%에서 내년 2%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소득이 늘지 않는데다 지난해 정부가 시행한 개별소비세 인하 등 소비확대 정책 효과도 종료돼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가능성도 소비에 악재다. KDI는 내년 원유 도입단가를 올해보다 17% 오른 배럴당 48달러로 예상했다. KDI는 “국제유가 상승은 실질소득 개선 효과를 축소시켜 소비에 악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소비와 더불어 내수를 구성하는 투자도 크게 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KDI는 건설투자 증가율이 올해 10.1%에서 내년 4.4%로 급락할 것으로 봤다.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책이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크다. 또한 올해 줄었던 설비투자는 ‘플러스(+)’로 돌아서지만 수출 부진에 따른 제조업 가동률 위축이 이어지며 내년 증가율이 전년 대비 2.9%에 머물 것으로 KDI는 예상했다. 더구나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서민과 한계기업의 빚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투자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현재 1.25%인 기준 금리를 오히려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성태 KDI 거시ㆍ금융경제연구부장은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전환되더라도 국내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와 물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경우에도 국내 물가 상승세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정체돼 있다면 금리 인하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의 장단기 실질금리 차(스프레드)를 볼 때도 아직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여유가 충분히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금리차가 좁혀지는 데 따른 자금 유출 우려 등으로 한은은 최대한 금리 인하를 자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업계의 진단이다. 이에 따라 한은이 당분간은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대신 금융시장의 불안감과 변동성이 커지면 기준금리 조정 외에 공개시장운영 등의 정책수단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은은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채권시장에서 국고채를 중심으로 금리가 급등하자 국고채 6종목 1조5000억원 어치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단순매입하기로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금리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금리 정책은 가계부채를 포함한 금융안정뿐 아니라 거시경제도 봐야 한다”면서 “지금 완화 정책을 유지하지만 금융안정에도 각별히 유의하겠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동결한 12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직후에는 “기준금리 결정은 자본 유출입과 성장·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투자은행(IB)도 향후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해 당분간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씨티그룹과 JP모건은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한차례 내릴 걸로 전망했다. 노무라는 4분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과거에도 한은이 미국의 통화 방향을 바로 쫓지는 않았다. 99~2000년 미국이 금리를 1.75%포인트 인상했던 7개월과 2004~2006년 4.25%포인트 올렸던 1년7개월간 한은은 기준금리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기초체력을 다지면서 통화스와프와 같은 자본 유출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빈 교수는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금리를 인하해야 하지만 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본유출을 걱정한다면 금리는 인상돼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며 “이런 딜레마를 해소하려면 경기 침체는 금융 정책보다 재정 정책 또는 규제 혁파 등으로 대처하고 자본유출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금리 인상과 트럼프 후보 당선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의 정치적 혼란마저 가중되며 급격한 경제 위축이 현실화할 수 있다”며 “경제 콘트롤타워를 빨리 복구해 정책 동력을 살려내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내가 부총리직에 있는 한 경제 콘트롤타워로서 중심을 잡고할 것”이라며 “미국 금리 인상 이후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해 일관된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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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내내 ‘늑대(금리 인상)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말이 현실이 됐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연준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연준이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는 곧 초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3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부채의 뇌관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주택시장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외 불확실성 속에 정치 리스크와 수출·내수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경제의 체력으로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까. 미국발 금리 인상이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과 대응 방안을 알아봤다. 저금리에 기댄 글로벌 ‘돈 잔치’가 끝날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9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제로(0) 금리’ 시대를 끝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년만인 지난 14일(현지시간) 다시 정책금리인 연방기금(FF) 금리를 기존 0.25~0.5%에서 0.5~0.75%로 올렸다. 예고된 이벤트였지만, 연준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초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경제 전문가 6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내년 12월 미국의 기준금리 전망치는 1.26%, 2018년 말에는 2.07%에 모인다. 한 번에 0.25%포인트씩 올린다고 가정하면 내년에만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연준 위원들 역시 내년 기준금리 인상 횟수 전망을 기존 2회에서 3회로 상향 조정했다. 또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세 차례 인상 전망을 내놓았다.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 자신감의 표시”
금리를 올린다는 건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간 마구 풀어왔던 돈을 회수한다는 예기다. 연준은 2008년 12월 금리를 제로 수준인 0∼0.25%로 내리고 3000억 달러 상당의 국채, 2000억 달러 규모의 공공기관채, 총 1조2500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증권(MBS)을 사들이며 시장에 돈을 대거 공급했다. 또 2010년 2차 양적완화를 통해 매달 750억 달러씩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2012년 3차 양적완화에서는 매달 400억 달러의 MBS를 샀다.
이후 2013년 12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100억 달러씩 서서히 축소했고 2014년 10월 완전히 종료했다. 이제는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서 초저금리 시대와 이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과거 연준은 한번 금리를 올리면 2~3년간 계속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때마다 ‘미국이 기침하면 신흥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실현됐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대내외 금리차와 환율 등을 통해 외환건전성이 취약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파급력을 발휘한다. 돈의 값인 금리가 상승하면 해당 화폐의 가치도 오른다. 그러면 돈이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신흥국에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다. 또 대내외 금리차가 축소되면 차익거래 유인이 낮아져 신흥국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투자금 규모도 감소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경제 위기로 번진 적도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94년 1월부터 이듬해인 95년 2월까지 약 1년에 걸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올렸다. 이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 94년 당시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채권값 폭락 여파로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미국으로부터 저리로 단기 자금을 빌려 고금리 장기로 기업에 대출해줬던 한국 종합금융회사(종금사)들이 줄도산을 하는 등 위기는 아시아로 확대됐다. 당시 아시아 5개국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ㆍ태국ㆍ한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2004년 5월에서 2006년 7월까지는 2년에 걸쳐 1%에서 5.25%로 4.25%포인트가 상향조정됐다. 2003년 6월 미국의 기준금리는 4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1%까지 낮아지는 등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금리 상황에서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면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수요가 급증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도 팽창했다. 차주(대출자)의 상환능력에 대한 심사 없이 ‘묻지마 대출’이 이뤄지면서 모기지 대출은 유례없는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자 모기지 이자율도 함께 상승했고 모기지 사업에서 기록적인 수익을 창출하던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다. 서브프라임사태는 유럽으로도 번져, 유럽의 금융사들이 구제금융을 받거나 파산위험에 직면했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도 서브프라임 사태를 비켜가지 못했다. 일례로 2008년 추석 연휴 기간에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연휴 직후인 9월16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6.1%, 8.1% 폭락했다. 일본 닛케이(-4.95%), 중국 상하이종합지수(-4.47%)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번에도 신흥국 중심의 자금 이탈이 우려된다. 특히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글로벌 시장의 ‘연쇄 돈줄 조이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브렉시트 충격에서 벗어난 영국이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내년 4월부터 자산매입 규모를 기존 800억 유로에서 600억 유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적어도 경기 부양을 위한 돈 풀기는 멈춰선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 인상으로 자산 가격 직격탄 맞을 것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껴있는 한국 경제 역시 자금 유출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난해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오히려 돈을 풀었던 일본, 유럽처럼 한국이 대응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줄면 자연히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자본 입장에서는 빠져 나가는 유인이 된다. 실제 지난해 12월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직후 3개월간 6조334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지난해보다는 영향이 덜 할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관측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미 예견된 수순으로 시장에 반영됐고 글로벌 경제도 지난해보다는 좀 더 준비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전반적인 금융상황과 신흥국의 대내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 정도가 지난해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며 “미 연준 정책금리 인상이 글로벌 금융ㆍ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해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내년 경제 성장률 2% 중반 달성도 미지수
경제의 양축인 수출과 내수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 우선 수출 환경이 여전히 나쁘다. 세계 경제가 부진을 이어가면서 교역량은 정체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4%로 전망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가 당선되며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세진 것도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 중국은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노골적인 통상보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금지령)을 내리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 중국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중국 당국은 ‘사드 보복’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향후에도 이런 중국의 한국에 대한 통상 규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올해 수출 부진을 다소나마 보완했던 내수 전망도 흐릿하다. KDI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올해 2.4%에서 내년 2%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소득이 늘지 않는데다 지난해 정부가 시행한 개별소비세 인하 등 소비확대 정책 효과도 종료돼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가능성도 소비에 악재다. KDI는 내년 원유 도입단가를 올해보다 17% 오른 배럴당 48달러로 예상했다. KDI는 “국제유가 상승은 실질소득 개선 효과를 축소시켜 소비에 악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소비와 더불어 내수를 구성하는 투자도 크게 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KDI는 건설투자 증가율이 올해 10.1%에서 내년 4.4%로 급락할 것으로 봤다.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책이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크다. 또한 올해 줄었던 설비투자는 ‘플러스(+)’로 돌아서지만 수출 부진에 따른 제조업 가동률 위축이 이어지며 내년 증가율이 전년 대비 2.9%에 머물 것으로 KDI는 예상했다. 더구나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서민과 한계기업의 빚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투자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한국 금리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처지
해외 투자은행(IB)도 향후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해 당분간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씨티그룹과 JP모건은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한차례 내릴 걸로 전망했다. 노무라는 4분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과거에도 한은이 미국의 통화 방향을 바로 쫓지는 않았다. 99~2000년 미국이 금리를 1.75%포인트 인상했던 7개월과 2004~2006년 4.25%포인트 올렸던 1년7개월간 한은은 기준금리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기초체력을 다지면서 통화스와프와 같은 자본 유출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빈 교수는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금리를 인하해야 하지만 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본유출을 걱정한다면 금리는 인상돼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며 “이런 딜레마를 해소하려면 경기 침체는 금융 정책보다 재정 정책 또는 규제 혁파 등으로 대처하고 자본유출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금리 인상과 트럼프 후보 당선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의 정치적 혼란마저 가중되며 급격한 경제 위축이 현실화할 수 있다”며 “경제 콘트롤타워를 빨리 복구해 정책 동력을 살려내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내가 부총리직에 있는 한 경제 콘트롤타워로서 중심을 잡고할 것”이라며 “미국 금리 인상 이후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해 일관된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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