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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학습법에서 배우는 인공지능

아기의 학습법에서 배우는 인공지능

기본 정보 없이 확률을 바탕으로 현 상황 파악해 적절하게 반응하는 신비로운 능력 모방해야
마크 사가르 박사가 개발한 베이비X는 연구자가 제공하는 자극에 진짜 아기처럼 반응한다.
요즘은 기계가 언어를 이해하고 음성과 얼굴을 인식하며 스스로 차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최근의 기술 발달이 너무나 대단해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분야가 사람과 비슷한 기계를 만들 정도로 혁신적으로 발전하려면 먼저 아기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의 발달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 교수는 “비교적 최근 들어서야 AI 분야에서 그 방법론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바로 성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이젠 유연하게 사고하고 능력 있으며 성인이 하는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아기나 어린이의 학습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세다. 물론 지금의 컴퓨터 능력은 10년 전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네 살짜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비교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아기와 어린이가 주변 세계에 관한 이론을 세우는 방식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접근법과 똑같다. 환경과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체계적이고 실험적으로 탐구하고 테스트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그런 노력이 학습에 필수적이다.

고프닉 교수가 이끄는 팀은 최근 통계 데이터를 사용해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익히는 데 생후 15개월된 아이가 더 나이 많은 아이보다 월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기와 어린이가 더 나은 학습자인 것은 그들의 뇌가 더 유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뇌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화하며 스스로 판단하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기본 메커니즘인 ‘신경 가소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배울 때마다 달라진다. 특히 아기와 어린이는 기존 지식에 오염이 덜 돼 더 열린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더 잘 받아들인다.

우리는 발달심리학과 전산과학의 전문지식을 통합함으로써 학습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의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내 그 연산 능력을 기계에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현재 AI는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패턴과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세계에 관해 데이터가 거의 없는 아기는 베이지안 학습(Bayesian learning)이라는 통계적 추론을 사용한다. 확률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는 학습 방법이다.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결과의 빈도를 바탕으로 주어진 현상을 해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기에겐 그런 정보가 없다. 대신 새 정보를 접하면서 계속 조정되는 현재의 지식에 근거해 확률을 추론한다.

고프닉 교수는 “아기가 놀라운 점은 처음 새 단어를 들으면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이미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아기나 어린 아이들이 데이터가 많이 없어도 학습에 뛰어난 이유를 설명하는 데 그런 베이지안 접근법이 유용하다.”

아기는 베이지안 학습법에 따라 확률 모델을 바탕으로 확률과 가능성을 혼합해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뇌는 성숙하면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더욱 전문화되며 그 결과 민첩성이 떨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가소성이 떨어진다. 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학습자는 편향된 관점을 갖게 된다. 세계에 관해 더 많이 배우면서 특정 신경 연결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거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가설과 추상적인 이론을 형성할 능력이 억제된다. 그런 능력은 아기와 5세 이하의 어린이가 더 잘 발휘한다.

고프닉 교수는 “많이 알수록 새로운 가능성을 고려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더 많이 알수록 새로운 것을 배척하고 자신이 아는 것에 더 많이 기댄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아기는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더 잘 배운다.”

생의 첫 몇 년 동안 뇌에선 매초 700개의 새로운 신경회로가 형성된다. 환경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얻는 정보의 급속한 축적을 처리하는 데 필수적인 뇌로 만들기 위해서다. 성인의 뇌는 신경회로를 재구성하기가 어렵지만 아기의 뇌는 신경 가소성 때문에 뇌의 구조를 새로 만들기가 더 쉽다. 베이지안 학습이 그처럼 어린이 발육에 매우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컴퓨터 과학자들은 지능적인 학습 기계를 설계하는 데 그 모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뇌·인지과학과의 연산인지과학자 조슈아 테넨바움 교수는 “우리의 베이지안 연산은 아기의 학습 방법을 모방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프닉 교수와 함께 컴퓨터와 심리학의 융합 분야에서 연구를 한다. “아기는 기초적인 구성요소만 갖고 태어나지만 그것만으로 가장 복잡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초기의 구성 요소를 사용해 빈약한 데이터에서 추론하고 인과관계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학습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테넨바움 교수와 뉴욕대학·토론토대학 연구팀은 새로운 지식을 더 효과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익힐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설계했다. 그들은 지난해 12월 학술지 사이언스에서 인간과 유사하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에 필요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선보였다. 이 새로운 AI 프로그램은 손으로 적은 철자를 한 가지 예만 본 뒤 인간처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 소프트웨어는 베이지안 프로그램 학습틀을 사용해 이전에 한 번 이상 본 모든 필기 철자 하나하나를 인식하는 각각의 프로그램을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알고리즘의 탁월한 능력은 기계가 한번도 보지 못한 철자를 만났을 때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새 철자를 만나면 일치하는 것을 찾으려고 데이터를 검색하지 않고 이미 아는 철자의 각 부분을 조합해 새 철자의 형태를 만든 뒤 그 가설을 테스트하는 확률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아기가 이전에 본 적 없는 글자나 물체를 봤을 때 제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과 똑같다.

그러나 이 소프트웨어는 아직 실제 아이처럼 독창적인 가설을 형성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을 따라갈 수 없다. AI의 잠재력에서 획기적인 변화는 과학자들이 독창적인 가설과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계할 수 있을 때 일어날 것이다. 연구자의 지시를 따르는 대신 스스로 필기 철자를 인식하려는 욕구까지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독자적으로 추진되는 목표가 없으면 AI 시스템은 독자적으로 기능할 잠재력을 잃게 된다.

테넨바움 교수는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을 계속하는 것이 AI 시스템이 원하는 바”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자적인 학습은 그보다 훨씬 까다롭다. 기존의 AI 시스템엔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주느냐 등 모든 것을 정하는 사람이 늘 있다. 반면 아기는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현재 AI가 극복해야 할 큰 도전은 고유한 학습 과정을 만드는 데 훨씬 더 독자적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독자적인 목표가 전혀 없다. 실질적인 목표가 없다면 스스로 학습에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로봇에게 박스를 집어 올리라고 명령했을 때 그 로봇이 명령을 잘 수행하면 우리는 인간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은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로봇이 아이들과 달리 복잡한 차원의 사고를 할 수 없다.

2013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MIT에 ‘뇌, 정신, 기계 센터(Center for Brains, Minds and Machines)’를 설립하도록 5년에 걸쳐 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곳에서 전공 분야가 서로 다른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합동으로 뇌가 복잡한 연산을 어떻게 하는지 연구한다. 인간의 지능을 빼닮은 지능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전 정보가 적은 아기들은 새 정보를 접하면서 조정되는 지식에 근거해 확률을 추론함으로써 학습한다.
테넨바움 교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연산 모델을 만든 건 아주 최근”이라고 설명했다. “더 많은 자금과 인재, 기업의 관심, 노하우, 그리고 더 빠른 컴퓨터가 필요하다. 아주 어린 아이의 지능이라도 아직은 따라잡을 수 없다. 좀 더 기다리거나 다른 공학적인 발전에 의지해야할 듯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의 생명공학연구소는 현재 뇌와 기계 사이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 연구소의 애니메이션 기술 실험실을 이끌며 영화 ‘아바타’와 ‘킹콩’에서 각각 애니메이션으로 특수효과 부문 아카데이상을 받은 마크 사가르 박사는 베이비X로 불리는 금발의 아기를 3D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까꿍놀이를 하느라 바쁘다.

컴퓨터 디스플레이 속에 밝은 미소를 띤 아기가 있다. 시가르 박사가 책에 있는 영단어를 화면을 향해 읽어주면 아기는 이를 듣고 다시 큰 소리로 따라한다. 누군가 자신을 칭찬하면 베이비X는 이를 인식하는 동시에 가상 도파민 호르몬의 영향으로 웃음을 짓거나 킥킥 소리를 낸다. 만일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상 코티솔 호르몬이 상승해 짜증을 내기도 한다. 연구진의 목적은 베이비X를 진짜 인간 아기처럼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성해 성인 수준의 프로그램으로 자체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사람의 학습·추론·지각·언어이해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이 실현해내도록 하는 AI 시스템 개발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다.

사가르 박사가 딸 프란체스카에게서 외형 모델링을 따온 베이비X는 실제 유아의 두뇌 신경 활동을 모방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졌으며 얼굴 움직임과 표정 역시 실제 아기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고안됐다. 베이비X는 컴퓨터 내장 카메라를 통해 밖을 볼 수 있으며 상대방을 인식할 수 있다. 가상으로 구성된 뇌 내부의 시뮬레이션은 사람과 유사한 신경 화학적 반응을 나타내도록 프로그래밍됐는데 이것이 베이비X를 실제 아기처럼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사가르 박사는 원래 MIT에서 신체 부위의 의학적 시뮬레이션을 연구했다. 쉽게 말하자면 디지털 얼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그는 그 기술을 이용해 베이비X를 개발했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이 AI는 사가르 박사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하고 간단한 단어를 크게 읽으며 물체를 인식하고 고전 비디오게임 ‘퐁’을 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똑똑해져간다.

그는 베이비X를 만들기 위해 딸아이가 6개월, 18개월, 24개월이 됐을 때의 얼굴을 각각 스캔해 시스템에 입력했다. 그는 AI의 유아기를 구현하려고 딸의 행동과 얼굴 표정, 목소리를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해 복제했다. 뇌에 연결된 척수와 같은 광섬유 케이블을 사용해 신경 활동 시뮬레이션으로 작동한다. AI를 가진 대화형 아바타인 베이비X는 이전 시스템과 달리 정보를 학습하고 보유할 수 있다.

사가르 박사는 “우린 대다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AI를 개발한다”고 말했다. “신경과학과 인지과학 분야에선 여러 가지 이론이 서로 경쟁한다. 현재의 지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생물학적인 접근법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는 과정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인지가 발생하는 과정이다.”

사가르 박사가 이끄는 팀은 베이비X를 인간의 상호작용과 비교했다. 베이비X는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인간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며 사가르 박사와의 상호작용에서 배운 것에 따라 반응할 수 있다. 베이비X의 화면 얼굴 뒤에는 살아 있는 뇌의 시뮬레이션이 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눈을 깜빡이고 미소로 화답하는 얼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능력을 준다. 사가르 박사는 효과적인 대화형 AI를 개발하려면 얼굴이 열쇠라고 믿는다.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뇌의 반응을 그대로 반영하며 의식의 내부 작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간단한 미소도 뇌 속의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신경회로망이 작동한 결과다. 사가르 박사는 “베이비X는 사용자의 행동과 아기의 행동 사이에 나타나는 연관성을 통해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학습의 한 가지 형태로 사용자가 아기의 옹알이 같은 소리를 내면 베이비X는 얼굴이나 팔을 움직여 운동 공간을 탐구한다. 사용자가 따라 움직이면 베이비X의 행동을 일으키는 신경세포가 사용자의 행동에 반응하는 신경세포와 연동하기 시작한다. ‘헵의 학습 법칙(Hebbian learning)’이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과정이 방복되면 새로운 신경 연결이 베이비X의 시뮬레이션된 뇌 내부에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과 사용자의 행동을 일치시키는 지도다. 더 높은 형태의 모방을 위한 기초가 마련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도 그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하나의 행동을 완료함으로써 뇌는 새로운 신경연결망을 형성하고 그런 과정의 반복에 의해 그 연결망이 강화된다. 궁극적으로 시뮬레이션된 아기는 자신의 뇌가 환경에서 수집해 처리한 정보를 사용해 독자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처럼 베이비X는 끊임없이 개선되는 코드를 통해 배우는 AI다.

얼굴이 소통의 주된 수단이기 때문에 사가르 박사는 베이비X가 앞으로 건강과 교육에 적용될 기술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자폐증 등의 사회적 기능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상호작용하는 프로그램이 좋은 예다.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처리하며 인간이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는 시스템이 AI 연구의 목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곧바로 그랬듯이 말이다.

- 사만사 올슨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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