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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역사를 만든 부자들(11) 새뮤얼 월턴

채인택의 역사를 만든 부자들(11) 새뮤얼 월턴

새뮤얼 월턴(1918~1992)는 창고형 대형할인점인 월마트와 회원제 대형할인점인 샘스클럽을 창업한 미국 유통혁명의 기수다. 유통혁명으로 미국 유통산업을 혁신했다. 세상을 떠날 당시 46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했다. 그의 재산을 물려받은 자손 중 4명이 현재 미국 15대 부자에 들어있다.
새뮤얼 월턴
월마트는 흔히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새뮤얼 월턴이 창업한 월마트는 연매출이 2016년 4786억 달러로 이중 62.3%가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적인 기업이다. 2015년 매출은 4821억 달러였다. 이해에 세전 이익이 240억 달러, 순이익이 146억 달러에 이르렀다. 총자산이 1995억 달러, 주가총액이 805억 달러의 그야말로 ‘울트라 공룡’ 기업이다.

시장가치로 따져 전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민간기업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만 140만 명, 전세계를 모두 합치면 230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요즘같이 일자리에 목이 마른 시대에 이 정도로 일자리를 고용하고 있으니 국가와 지역사회에 효자일 수밖에 없다.

월마트는 아칸소주 벤턴빌에 있는 본부를 중심으로 하이퍼마켓, 대형할인점, 잡화점 등으로 이뤄진 수많은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 연말 현재 전 세계 28개국에 1만1633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멕시코와 중미 지역에서는 ‘월마트 데 메히코 이 센트로아메리카’라는 상호로, 영국에서는 아스다로, 인도에서는 베스트 프라이스로, 일본에서는 세이유(西友)라는 이름으로 각각 운영 중이다. 영국, 남미, 중국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기존 유통업체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일과 한국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해 철수했다. 안된다 싶으면 깨끗하게 철수할 줄도 아는 기민한 기업이다.
 깡촌 출신의 활달하고 정력적인 젊은이
월마트를 홍보하는 광고. 새뮤얼 월턴이 설립한 독자 브랜드 사업체다. / 중앙포토·채인택
1962년 7월2일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에서 문을 연 이 다국적 유통업체는 올해로 창업 55주년을 맞는다. 1969년 10월 주식회사가 됐으며 1972년에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주식의 51%를 월턴 가문이 보유하고 있다. 1983년에 문을 연 회원제 창고형 대형 할인점 샘스클럽은 계열사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중국 등 해외에 201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 568억 달러의 매출로 창고형 할인점 중 코스트코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이 거대한 유통제국을 세운 월턴은 미국의 깡촌 출신 흙수저다. 미국 중서부 오크라호마주 킹피셔의 농가에서 태어나 5세까지 살았다. 1923년 그의 부모는 가족을 데리고 이 깡촌을 떠났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독한 가난이었다. 월턴의 아버지 토머스는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농장 모기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을 대리해 대공황으로 파산한 농장의 처리를 맡았다. 어린 시절 월턴은 이런 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오클라호마를 떠나 작은 마을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다. 미주리주 셸비나에 거주할 당시 그는 8학년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이글 스카우트’가 됐다. 이글 스카우트는 보이스카우트의 최고 영예 등급으로 전체의 2%만이 진급할 수 있다. 성인이 됐을 때는 미국 보이스카우트에서 주는 ‘뛰어난 이글스카우트상’을 받았다.

여러 군데를 옮기며 살았던 가족은 마침내 미주리주 컬럼비아에 정착했다. 미주리대가 자리잡은 대학도시다. 대공황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10대 때부터 집의 젖소에서 우유를 짜고 이를 병에 담아 고객에게 배달하는 일을 했다. 나중에 그는 우유 배달 경로를 이용해 일간신문인 컬럼비아 데일리 트리뷴을 배달했다. 잡지 정기구독도 유치하러 다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데이비드 히크먼 고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가장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소년’으로 선정됐다.

고교 졸업 뒤 월턴은 자신이 살던 미주리주 컬럼비아에 있는 미주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의 활달한 성격은 대학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ROTC 생도로서 학업에 정진하며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사 제공을 조건으로 식탁을 치우는 보조 웨이터로 일하기도 했다. 대학활동은 대단히 정력적으로 했다. 미주리대의 유명 학생 친목단체인 제타파이(Zeta Phi=ΖΦ)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북미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엘리트 대학생 친목단체인 베타세타파이(Beta Theta Pi ΒΘ Π)의 미주리대 지부로 현재도 1만여 명의 대학생 회원이 활동 중이다. 대학을 마친 종신회원이 30만 명에 이른다.

미주리대에서 학업 성적과 과외활동이 우수한 학생만 회원으로 받는 전통의 비밀동아리인 QEBH에서도 활동했다. 뿐만 아니고 전국 군사 명예학생 단체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월턴이 활달한 성격을 내세워 사람 사귀는 일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미주리대와 인근 스티븐 칼리지 학생으로 구성된 버럴 성경학교의 회장으로 성경 공부와 신앙 생활에 몰두하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에 바쁘면 흔히 학업과 학과 활동에는 소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1940년 미주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월턴은 학과에서 투표 결과 ‘영구 학과대표’로 뽑혔다. 한마디로 정력이 넘쳐흐르는 젊은이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음에도 대공황 시기를 막 지난 시절이라 그리 좋은 직장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월턴은 도전을 즐겼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백화점 영업을 중심으로 하는 유통업체인 J.C. 페니의 아이오와주 디모인 영업장에서 관리직 견습사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J.C. 페니는 1902년 미국 기업인 제임스 캐시 페니가 와이오밍주 케머러에서 창업한 유통업체로 현재 미국 전역에 101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전통의 유통업체다. 요컨대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미리 파악해 회사의 항해 방향을 신속하게 ‘변침’하는 혁신의 DNA가 있는 업체다. 월턴이 훗날 유통업계의 혁신 아이콘이 된 것은 이 첫 직장에서의 경험이 큰 요인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량 구매 적합한 창고형 매장 월마트 창업
월턴의 월마트는 대량구매와 창고형 매장으로 인한 원가절감으로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공급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월턴은 이 회사에 18개월간 일하다가 1942년 군 입대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2차대전에 참전해 대위로 전역한 그는 직장에 복귀하는 대신 창업의 길을 택했다. 26세 때의 일이었다. 군에서 봉급을 저축한 5000달러와 장인으로부터 빌린 2만 달러가 창업의 기반이었다.

월턴은 미국 남부 아칸소주 뉴포트에 있던 벤 프랭클린 잡화점을 인수했다. 미국 중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동구매 연쇄점 형태의 잡화점 체인이다.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월턴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선반에 항상 물건이 가득 차도록 해 손님을 끌었으며 상품의 구색도 끝없이 넓혔다. 월턴은 나중에 월카트를 창업하고 운영하는 데 요긴한 다양한 실험을 이 작은 가게에서 하면서 경험을 축적했다. 소비자와 매장은 그에게 최고의 훈련장이었다. 여기서 모든 돈과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두 번째 점포를 냈다. 이글 백화점이었다. 뉴 포트 중심가에 있는 경쟁업체 바로 옆에 매장을 개설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고, 성공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월턴 유통경영학의 요체였다. 3년 새 연매출이 8만 달러에서 22만5000달러로 늘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건물주인 P.K. 홈스가 매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홈스는 자신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그 매장을 차지해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임대 계약 갱신을 거부했다. 월턴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이 뼈저린 경험을 통해 월턴은 유통사업에서 부동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부동산을 임대할 때 항시 계약 연장 조건을 달도록 했다. 아울러 임대료가 매출의 5%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사업의 철칙으로 삼게 됐다. 실패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월턴은 아칸소주 벤턴빌에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 1950년 5월9일 문을 열었다. 지금 월마트 본부가 위치한 지역이다. 매장은 전후 베이비붐과 호황을 타고 나날이 번창했다. 이 과정에서 월턴의 동생인 버드 월턴이 한몫했다. 2차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던 버드는 작은 비행기를 한 대 구입해 형을 대신해 다음 매장을 설치할 장소를 보러 다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54년 월턴은 동생 버드와 함께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교외에 쇼핑센터를 하나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월턴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본을 조달했다. 새로 문을 연 매장의 매니저들에게 100달러 정도를 회사에 투자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는 매니저들의 회사에 대한 충섬심과 주인의식을 높였다. 사업이 번창할수록 투자한 돈이 더 크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월턴과 그의 동생은 1962년까지 아칸소, 미주리, 캔자스주에 16개의 매장을 열었다. 15개의 벤 프랭클린 매장과 1개의 독자 점포였다. 이를 바탕으로 월턴은 1962년 7월2일 아칸소주 로저스에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 스토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월마트 매장의 문을 열었다. 드디어 독자 브랜드의 유통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월턴의 월마트는 기발한 발상으로 유통혁신을 이끌었다. 대량구매와 창고형 매장으로 인한 원가절감으로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공급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이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뤘다. 1977년 190개였던 매장은 1985년에는 800개를 넘어섰다. 독특한 것이 매장의 입지였다. 당시 미국 할인매장의 대부분은 붐비는 도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이 붐비고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한복판의 번잡한 곳에 점포를 둬야 장사에 유리하다는 고답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월마트는 대형 양판점이라면 고객이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차를 몰고 찾아오기 편한 곳에 위치해도 된다는 것이 월턴의 생각이었다. 젊은 시절 부동산 임대비용과 계약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이 있는 월턴으로서는 교외의 한적하고, 부동산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것에 거대한 매장과 주차장을 갖춘 점포를 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대도시 도심이 아닌 중소도시의 교외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를 위해서는 원활한 물류가 필수적이었다. 월턴이 물류에 중점을 둔 이유다. 대형 창고형 매장은 자사의 지역 물류창고에서 트럭으로 2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세우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배송은 항상 자사 소유의 트럭으로 하도록 했다.

월턴은 다른 체인들의 장점을 연구해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좋은 게 있으면 즉시 흡수한 뒤 더욱 발전시켜 자신의 장점으로 삼았다. 월턴의 대표적 벤치마킹 대상이 미국 유통업체 메이저(Meijer)다. 하나의 거대한 매장에 온갖 종류의 상품을 종류별로 진열해 고객이 통로를 따라 한번 지나기만 하면 다양하게 쇼핑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 센터’가 메이저의 컨셉트에서 따온 것이라고 인정했다. 메이저는 네덜란드 출신의 메이저 가문이 창업해 운영하는 미국의 수퍼마켓 체인이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2015년 미국 민간기업 중 19위의 규모다.
 경쟁업체 벤치마킹해 세계 최대 기업으로
월마트는 대도시 도심이 아닌 중소도시의 교외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성공했다. / 중앙포토·채인택
메이저는 현대 수퍼마켓 개념을 도입한 개척자로 평가된다. 바로 ‘셀프서비스 쇼핑’의 개념이다. 그전까지 쇼핑은 고객이 가게에서 점원과 대화를 나눈 뒤 물건을 추천받는 형식이었다. 고객이 구매를 결정하면 점원은 상품을 포장하고 지불이 끝나면 내주는 방식이었다. 메이저는 이를 바꾸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고객은 진열대에 정리된 상품을 골라 카트에 담은 것으로 쇼핑을 완료했다. 결제는 모든 구매가 끝난 뒤 매장을 떠나면서 한 번만 하도록 했다. 메이저는 이를 위해 최초로 카트를 매장 안에 도입했다. 바로 현재 수퍼마켓의 구조다. 현대 수퍼마켓의 개념은 대성공을 거뒀다. 메이저는 유통업체의 영업시간은 고객의 필요에 맞춰 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24시간 연 364일을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유일하게 노는 날이 성탄절이었다. 월턴은 이러한 메이저의 수퍼마켓을 철저하게 배웠다.

메이저는 하이퍼마켓의 원조이기도 하다. 신선식품을 파는 수퍼마켓에 잡화를 파는 백화점을 결합해 한 매장에서 거의 모든 물건의 쇼핑이 가능하게 한 개념의 유통매장이다. 메이저는 운동장보다 넓은 1만7000평방미터 규모의 초대형 매장에 식료품점과 백화점을 결합한 형태의 거대한 매장을 설치해 ‘거의 모든 상품의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물건에 따라 파는 가게가 서로 달라 고객은 여러 가게를 다니면서 쇼핑을 해야 했지만 메이저의 수퍼마켓에서는 하나의 매장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의 쇼핑이 가능했다. 수퍼마켓 도입에 이은 유통산업의 2차 혁신이었다. 현재 메이저의 하이퍼마켓은 매장 입구에 주유소와 편의점이 자리잡는다. 월마트와 많이 닮은 원조다.

월턴은 식품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1990년대 들어 관련 매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품질 좋은 식료품을 들여와 파는 데 주력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고객들은 메이저의 식료품 품질이 월마트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질 좋은 식료품은 다른 상품을 팔기 위한 좋은 미끼였다. 그 결과 월턴의 월마트는 벤치마킹 대상을 누르고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남의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한 수퍼마켓과 하이퍼마켓을 거치면서 ‘창고형 대형할인매장’이라는 자신만의 창조적 개념을 개발해 성공시킨 것이다. 자존심보다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 경쟁자의 아이디어도 과감하게 받아들여 자신만의 것으로 개발하는 열린 사고가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월턴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사업성공보다 미국인, 나아가 전세계인의 쇼핑과 소비생활에 혁신을 가져온 데 있을 것이다.

채인택 -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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