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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600억원 벌금 물린다

가짜뉴스에 600억원 벌금 물린다

독일, 총선 앞두고 투표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정치적 편견·난민 관련 허위 보도를 근절하기 위해 초강수 대책 마련에 나서
2015년 말 독일 쾰른에서 수많은 여성이 난민으로 보이는 남성들로부터 성폭력당한 후 지난 새해 전야엔 경계가 크게 강화됐다. / 사진 : LUO HUANHUAN-XINHUA-NEWSIS
문제의 기사는 독일인들 사이의 가장 큰 두려움을 파고들며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막 새해로 넘어간 지난 1월 1일 새벽 1시 직후, 프랑크푸르트의 한 붐비는 술집에 ‘아랍’ 남자 약 50명이 떼지어 들이닥쳤다. 술집주인 얀 마이의 진술에 따르면 술에 취한 듯한 그들은 들어와서 곧바로 춤을 추더니 여자손님들을 밀치며 그들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몇 명은 여자손님들의 스커트 속으로 손을 넣었다.

독일의 타블로이드판 가십신문 빌트는 마이와 인터뷰한 뒤 ‘난민 집단의 성추행’이라고 보도했다. 그 기사는 미국의 브레이트바트 뉴스 같은 극우매체에 실린 뒤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빌트지 기사에서 술집주인 마이를 제외하면 ‘이리나 A’가 유일한 목격자로 인용됐다. 20대 여성인 이리나는 성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이 성추행당한 사실을 ‘생생하게’ 돌이켰다. “팬티스타킹을 신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그녀는 빌트지 기사에서 말했다. “그들은 내 스커트 아래로 손을 넣어 다리 사이와 가슴 등 내 몸의 모든 곳을 움켜쥐고 더듬었다.”

그 기사는 치안 당국의 허를 찔렀다. 프랑크푸르트 경찰의 대변인 앤드루 매코맥은 그날 밤 그 지역에서 들어온 성추행 신고가 1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빌트지 기사를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술집 주변의 가게 주인들은 그날 밤 ‘폭도’를 본 적이 없다고 경찰에 말했다. 곧 경찰은 이리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새해 전야에 그녀가 프랑크푸르트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글을 찾아냈다. 매코맥 대변인은 빌트지가 주장하는 범죄의 다른 목격자를 경찰이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마이에게 술집의 CCTV 녹화테이프를 요구했지만 그는 보안카메라가 고장났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4일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기자회견을 통해 빌트지 기사가 주장하는 범죄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매코맥 대변인에 따르면 현재 마이와 이리나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조사 받고 있다. 마이는 사실대로 말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리나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한 뉴스위크의 진술 확인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한편 빌트지 온라인판 편집장 줄리안 라이헬트는 허위보도를 공식 사과했다.

물론 허위보도가 최근에 새로 생긴 현상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오늘날의 당파적인 정치풍토의 속성이 허위 보도의 비옥한 온상을 만들어냈다. 그런 허위기사는 SNS의 ‘좋아요’ ‘하트’ ‘리트윗’으로 전 세계의 대중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짜뉴스(fake news)’는 여러 형태를 띤다. 정체불명의 매체가 이익을 노리고 실제 언론사의 흉내를 내며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허위 기사도 있고, 합법적인 매체가 온라인 트래픽을 늘리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사실검증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내보내는 오보도 있다.

이런 허위 보도는 최근 유럽과 미국의 선거 기간에 널리 확산됐다.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와 러시아 정보기관의 선전 공세가 그런 추세를 부추겼다. 가장 터무니없는 사례가 소위 ‘피자게이트’였다. 지난해 미국 대선 동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존 포데스타 민주당 선대 본부장이 아동성착취 조직에 연루됐으며, 워싱턴 D.C. 북서쪽의 피자가게 ‘카밋 핑퐁’의 지하실이 그 근거지’라는 내용의 가짜뉴스를 가리킨다.

미국 주류언론은 그 기사의 모든 내용이 이미 거짓으로 판명됐고 문제의 피자가게에는 지하실이 없었지만, 여전히 그 기사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피자가게에서 ‘비밀 지하실’을 찾겠다며 소동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가짜뉴스를 둘러싼 그 다음의 전쟁터는 올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의원들은 특정 후보의 광적인 지지자나 이익을 노리는 사기꾼, 또는 러시아 정보기관이 만들어내는 가짜뉴스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월 “여론이 형성되는 방식이 25년 전과 완전히 딴판”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가짜뉴스, SNS에서 사용자가 팔로어 숫자를 부풀리기 위한 봇,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트롤이 성행한다. 특정 알고리즘으로 허위나 편견을 진실로 포장하는 가짜뉴스가 자가발전하며 끝없이 퍼져나간다. 이제 우리 모두 가짜뉴스에 속지 않고 허위 보도를 근절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독일은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느 나라보다 먼저 가짜뉴스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지난 4월 독일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기업의 게시글 감시의무를 강화한 새 입법안을 공개했다. 법안에 따르면 가짜뉴스나 혐오 발언, 범죄 모의, 아동 포르노 등 유해 콘텐트를 기업이 발견하고도 24시간 내 삭제하거나 차단하지 않으면 최고 5000만 유로(약 600억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해당 기업의 대표도 최고 5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 대표가 앞장서서 철저히 관리하라는 뜻이다.

또 법원이 위법한 글을 올린 게시자의 신원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 정부가 승인한 이 법안은 곧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 마련을 주도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의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은 “노상에서처럼 SNS상에서 각종 범죄 논의가 활발한 것에 대해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며 “유럽연합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뿐 아니라 일부 학계와 시민도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페이스북은 “유해정보 여부에 대한 판단을 법원이 아닌 기업이 하라고 강요하는 식”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독일정보통신협회도 “삭제 여부를 판단할 시간은 짧고, 처벌은 강력하니 기업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글을 모두 삭제하는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정부가 별도의 전문 모니터링팀을 꾸려 가짜뉴스를 감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한편 페이스북은 독일의 콘텐트를 검토하는 자체 팀을 연말까지 700명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현지의 비영리탐사보도업체 콜레티브와 팩트체킹 제휴를 맺었다. 전직 기자출신이 운영하는 이 업체는 독일 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내용의 진위 여부를 파악해 페이스북에 알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페이스북은 팩트체커들의 알림에 따라 해당 기사를 읽은 독자에게 그 기사가 가짜뉴스임을 공지하고 해당 뉴스를 뜨지 않게 조치한다.

시스템도 바꿨다. 가짜뉴스에 사람들이 깃발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추가했고, SNS를 통해 가짜뉴스를 확산시킨 수백만 개의 스팸 계정도 차단했다. 최근엔 새로운 조치도 개발 중이다. ‘관련 기사’ 섹션에 제3자 사실확인 슬롯을 추가하는 것으로 현재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전당대회장 앞에서 ‘난민 환영’이라는 배너를 흔드는 시민단체 시위대. / 사진 : MARTIN MEISSNER-AP-NEWSIS
그렇다면 독일에서 가짜뉴스는 어떤 형태를 띨까? 대부분은 정치적인 편견을 담은 기사다. 자신의 신조와 이념을 확인해주는 기사를 원하는 독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형태다. 난민과 관련된 가짜뉴스도 많다. 독일은 2015년 이래 난민 약 200만 명을 받아들였다. 독일인 다수가 그런 문호개방 정책을 지지하지만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도부는 외국인 혐오증을 최대한 부추긴다(한 간부는 국경을 넘어오는 난민을 향해 경찰이 발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fD는 최근 지지도 상승세가 주춤해졌지만 9월 총선에서 의석을 몇 자리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극우정당이 연방의회에 진출하게 된다.

난민 관련 가짜뉴스의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는 독일의 웹사이트 혹스맵(HoaxMap)은 온라인 지도에 범죄가 발생한 곳에 ‘점’을 찍어 주는 시스템을 활용한다. ‘범죄지도’로 불리는 혹스맵은 현지 경찰이 발표한 공식 성명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난민 범죄와 관련해 확대재생산되는 가짜뉴스를 바로잡아준다. 혹스맵은 지난해 난민 관련 가짜뉴스를 최소 250건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난민의 강도나 절도, 성폭행에 관한 기사였다. 난민이 백조를 잡아먹고 묘지를 훼손하며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가짜뉴스도 있었다.

난민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독일 비영리 단체 ‘이주 유권자’의 미리암 아세드와 크리스티나 리는 2015년 새해 전야 독일 쾰른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1000여 명의 여성이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으로 보이는 남성들로부터 강간·폭행·강도를 당했다)에 관한 보도(가짜뉴스가 아니다) 이래 ‘불길한 패턴’을 발견했다.

빌트지의 집단 성추행에 관한 보도 같은 가짜뉴스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었다. 리는 “프랑크푸르트 사건에 관한 보도는 쾰른 사건 1년 뒤 발생했다는 점을 자주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독자들에게 쾰른 사건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싶어 하는 듯했다.”

쾰른 사건이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월 베를린에서 13세의 러시아 소녀가 아랍 이민자 무리에 납치돼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인기 방송사 채널 원은 그 소녀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베를린 경찰이 그녀의 주장을 무시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라 베를린에서 당국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 기사는 완전히 가짜였다. 그에 따라 오는 9월의 독일 총선에서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에 관한 우려가 커졌다. 독일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약 300만 명을 겨냥한 사이버공격과 가짜뉴스, 유언비어를 이용하면 선거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 유권자’의 리와 아세드는 가짜뉴스가 이번 총선에 어떤 영향를 미칠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독일인의 언론 신뢰도에 관한 여러 조사가 엇갈린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짜뉴스가 부추기는 반이민 정서 탓에 메르켈 총리가 이민 문제에 관해 더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착용 금지를 지지했다(이슬람 여성의 전통 복장인 부르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고 눈 부위까지 망사를 덮는 것이고, 니캅은 눈 부위만 노출한 것이다). “독일의 규칙은 ‘얼굴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전신을 가리는 복식은 독일에서 적절하지 않다.” AfD가 처음부터 내놓은 입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시 말해 메르켈 총리가 총선을 의식해 그런 노선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술집 주인 마이는 난민 폭도에 관한 자신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고집한다. 그는 지난 3월 어느 비오는 토요일 저녁 거의 텅 빈 술집의 구석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그런 사건을 밝히면 영업에 지장이 있을 게 뻔한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그 기사 때문에 손님도 줄고 내 평판도 깎였다. 사람들이 찾아와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욕한다. 그들은 이곳이 신문에서 읽은 ‘나치 술집’인지 묻는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경찰의 매코맥 대변인은 마이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1월 도르트문트의 경찰도 폭도가 교회에 불을 지르며 “알라후 아크바르!”(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뜻의 이슬람 찬미 구호)를 외쳤다는 브레이트바트 뉴스 기사가 거짓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그날 밤은 평소와 다름없었고 대부분 조용했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매코맥 대변인은 강조했다. “그 내용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술집주인 마이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많은 독일인은 가짜뉴스를 진짜라고 믿는다.

- 로절린 워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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