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로가 만난 사람(8) 가토 다카토시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 “한·일 기업 컨소시엄 구성해 해외 공략할 만”
[윤용로가 만난 사람(8) 가토 다카토시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 “한·일 기업 컨소시엄 구성해 해외 공략할 만”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지원은 한국이 배워야 지난 1970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금융 자유화(금융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금융 결정 등에 있어서 시장원리를 존중)가 시작됐다.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사이 주식이나 부동산에서 한몫 노리는 투기적 투자가 늘었다. 금융회사도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대출을 늘렸다. 금융 자유화가 저축의 증대와 자금 배분의 효율화를 이뤄 경제 성장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금융 부문의 취약성을 증가시켰다. 투자 거품은 곧 자산 가치의 붕괴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 아르헨티나·멕시코 등 중남미의 많은 나라에서 대출 채권이 부실해져 은행이 파산했고 금융공황으로 이어졌다. 당시 금융의 국제화를 추진했던 일본도 태풍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은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제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금융정보센터(JCIF)를 설립했다. 지난 1983년 설립된 국제금융정보센터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 기구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각종 연구기관 등과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또 컨트리리스크(투자나 융자시 손해 발생 가능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국가별 신용도)를 점검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으로는 전통적으로 일본 재무성 출신을 임명한다. 지난 2010년 이사장 자리에 오른 가토 다카토시(76)는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국제금융국장, 재무관(국제담당 사무차관) 등을 지냈다.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과 IMF 부총재를 역임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각국도 금리 인상검토에 나서고 있다. 침체에 빠졌던 세계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국제금융시장도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서는 국제금융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 현황은 어떤지 등을 가토 다카토시 이사장을 만나 들었다. 대담은 비가 내리던 지난 6월 21일 일본 도쿄의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 집무실에서 진행했다.
이날 진행과 통역은 국제금융정보센터에서 특임연구위원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윤민호 박사가 맡았다. 윤 박사는 1990년 동서증권 동경지점장, 1998년 국제금융정보센터 특별연구원, 2007년 동경 미주개발은행(IDB) 아시아사무소 대외총괄관을 역임했다. 올해 초부터 국제금융정보센터에서 국제금융 연구와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하 윤용로):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소개를 잠깐 할게요. 저는 지난 30년간 국가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IBK기업은행장과 외환은행장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한 로펌인 세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중앙일보가 만드는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경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저는 한 기관을 책임지는 CEO의 고민과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요청을 받아들였어요. 3월부터 ‘윤용로가 만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어요. 해외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는 이사장님이 처음입니다.
가토 다카토시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이하 가토): 그러시군요. 정말 영광입니다.
윤용로: 한국에도 국제금융센터(KCIF)가 있지만 국제금융정보의 취합과 전달의 역할이 다소 미흡한 것 같습니다(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를 벤치마킹해 1999년 4월 국제금융센터를 설립했다). 저는 이 인터뷰를 통해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의 최근 동향을 전달하고 한국 국제금융센터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습니다. 일본의 금융회사나 민간기관들은 국제금융정보센터가 수집한 정보와 데이터로 국제금융 동향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가토: 일본은 1990년 이후 두 번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년 금융산업 위기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일본 은행 통폐합이에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은행 수익의 대부분은 국내 업무에서 올렸죠.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경제 성장률은 1%에 불과했고요. 그렇다 보니 금융회사나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죠. 이때 국제금융정보센터가 많은 도움이 됐죠.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데 국제화 전략을 펼치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니까요.
윤용로: 얼마 전 미국이 금리를 인상(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6월 14일(현지시간) 금리를 1∼1.25%로 0.25%포인트 올렸다)했고,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 엔화는 국제화된 통화인 만큼 신흥국보다는 영향을 덜 받지 않나요?
가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금융회사나 민간 기업들은 엔화보다 달러나 유로를 조달해 사용합니다. 때문에 미국 금리가 오르면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죠. 예컨대 일본의 모회사와 자회사는 서로 엔화로 결제할 수 있죠.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엔화보다 달러로 결제해야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어요. 아시아 시장에서도 결제통화는 대부분 달러입니다. 예전에 방콕에 출장을 간 적이 있어요. 들어보니까 달러 결제가 많다고 해서 제가 일본 금융회사 담당자에게 달러를 줄이고 현지 화폐인 바트와 엔을 늘리자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이들이 오랫동안 달러로 결제해왔기 때문에 바꾸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아시아 시장에서도 달러 유통이 많아서 엔화 결제가 많지 않아요.
윤용로: 아시아 시장에선 엔화 결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군요. 이번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수준이 비슷해져서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요. 국내외 금리차가 생기면 주식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신흥국 주식시장은 어떻게 보세요?
가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말부터 단계적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밝혀왔잖아요. 올해 금리 인상은 시장에서 예상했던 만큼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글로벌 자금이 다소 빠져나가겠지만 생각만큼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윤용로: 미국이 9월 이후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양적완화의 종료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신흥국들은 걱정이 많아요.
가토: 일본도 미국의 정책을 주시하고 있어요. 저희처럼 제로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정책은 국제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현 상황에서 일본도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일본도 한국처럼 외국인의 주식투자 비율이 높은 편이거든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면 일본 증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이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베 신조 총리가 해외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서 최근 증시는 상승세입니다(지난 6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일본 니케이 지수는 2만220.30포인트로 최근 1년간 30% 넘게 올랐다).
윤용로: 일본은 제로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데 금융회사가 어떻게 수익을 올리는지 궁금해요.
가토: 일본의 4대 메가뱅크(미즈호,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쓰이스미토모트러스트)는 예대마진이 줄면서 수익을 얻기 위해 2000년 초 이후 해외 비중을 높이고 있어요. 메가뱅크 이외의 금융회사들은 활동 영역을 넓히기 어려워 대출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이들이 지역 은행을 인수합병(M&A)하는 전략을 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용로: 지난 2008년 미국 투자은행(IB)인 리만브라더스 파산 후 일본 노무라증권이 리만브라더스 아시아·유럽(EU)·중동 법인을 인수했습니다. 최근 유럽 부문을 축소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는 핵심 인력도 많이 빠져나갔다고 들었는데 평가를 해주신다면요?
가토: IB는 사람이 중요한 사업이에요. 능력있는 사람이 일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늘 과제입니다. 일본도 아직까지 IB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앞으로 IB가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윤용로: 한국의 금융시장도 포화상태라서 은행과 보험사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어요. 한국보다 먼저 해외로 나간 일본 금융회사가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토: 일본 은행의 해외 진출은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2000년대 이후에 일본 금융회사가 해외 진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일본의 국제협력은행(수출입은행)과 무역 보험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때 드는 비용이나 리스크를 분담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봐요. 지금도 이런 지원은 이어지고 있어요.
윤용로: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대규모 양적완화, 적극적 재정정책,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전략)를 기반으로 경제의 활력이 살아나고 있습니다(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5% 증가해 5분기 연속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가토: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사람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수출 호조와 재정지출 증가로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가계의 소비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일할 사람이 더 줄게 되면 가계 소비는 더 줄겠죠. 일본 정부는 고령자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인구 1억명을 지키기 위해 2015년 10월 ‘1억총활약 사회’ 플랜을 발표하고, 개각을 통해 ‘1억총활약 담당상(장관)’ 직을 신설했어요.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도 늘리려고 합니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 가장 필요한 노동력은 개호서비스, 조선업, 건설업인 것 같아요. 앞으로 일본은 육체 노동자가 부족해서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 할 겁니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가 늘고 있는 한국이나 대만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1억총활약 사회 플랜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정규직의 80% 수준), 최저임금 인상, 내년까지 50만 명 규모의 보육시설 확보 등을 통해 누구나 원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합계출산율을 1.8명으로 높여 50년 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인구는 지난 2008년 정점을 찍은 이래 감소세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1억2700만명이던 일본 인구는 2030년 1억1662만명, 2060년에는 8674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윤용로: 한국도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경제활동인구)가 지난해를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어요. 오는 2031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줄어드는 속도가 일본보다 빨라서 걱정이 많습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어요.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긴장관계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협력하면서 발전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선 많은 협력이 필요하고요. 저도 정부에 있을 때 국제금융 관련 회의에 가면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곳은 일본 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여러 일로 어려운데 이사장께서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조언자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토: 저도 말씀에 동감합니다. 제가 재무성에 있을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 많이 참석했어요. 당시엔 아시아에서 일본만 OECD에 가입한 상황이어서 유럽과 미국하고만 얘기하다 보니 외로웠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한 후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어요. 최근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민간 분야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일 컨소시엄을 꾸려서 함께 사업에 참여하고 양국 금융회사가 같이 지원하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정책 키워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라고 봐요. 한국 정부도 미국·중국과 여러 문제가 얽혀있지요. 일본의 입장도 한국·미국·중국이 서로 원활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라고 있어요.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 1977년 행정고시 21회에 합격해 관직을 시작했다. 그 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은행제도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현금융위원회) 공보관·감독정책2국장·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까지 지낸 후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2007~10년)을 거쳐 시중은행인 외환은행장(2012~14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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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은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제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금융정보센터(JCIF)를 설립했다. 지난 1983년 설립된 국제금융정보센터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 기구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각종 연구기관 등과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또 컨트리리스크(투자나 융자시 손해 발생 가능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국가별 신용도)를 점검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으로는 전통적으로 일본 재무성 출신을 임명한다. 지난 2010년 이사장 자리에 오른 가토 다카토시(76)는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국제금융국장, 재무관(국제담당 사무차관) 등을 지냈다.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과 IMF 부총재를 역임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각국도 금리 인상검토에 나서고 있다. 침체에 빠졌던 세계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국제금융시장도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서는 국제금융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 현황은 어떤지 등을 가토 다카토시 이사장을 만나 들었다. 대담은 비가 내리던 지난 6월 21일 일본 도쿄의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 집무실에서 진행했다.
이날 진행과 통역은 국제금융정보센터에서 특임연구위원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윤민호 박사가 맡았다. 윤 박사는 1990년 동서증권 동경지점장, 1998년 국제금융정보센터 특별연구원, 2007년 동경 미주개발은행(IDB) 아시아사무소 대외총괄관을 역임했다. 올해 초부터 국제금융정보센터에서 국제금융 연구와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하 윤용로):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소개를 잠깐 할게요. 저는 지난 30년간 국가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IBK기업은행장과 외환은행장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한 로펌인 세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중앙일보가 만드는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경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저는 한 기관을 책임지는 CEO의 고민과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요청을 받아들였어요. 3월부터 ‘윤용로가 만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어요. 해외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는 이사장님이 처음입니다.
가토 다카토시 국제금융정보센터 이사장(이하 가토): 그러시군요. 정말 영광입니다.
윤용로: 한국에도 국제금융센터(KCIF)가 있지만 국제금융정보의 취합과 전달의 역할이 다소 미흡한 것 같습니다(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를 벤치마킹해 1999년 4월 국제금융센터를 설립했다). 저는 이 인터뷰를 통해 일본 국제금융정보센터의 최근 동향을 전달하고 한국 국제금융센터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습니다. 일본의 금융회사나 민간기관들은 국제금융정보센터가 수집한 정보와 데이터로 국제금융 동향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가토: 일본은 1990년 이후 두 번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년 금융산업 위기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일본 은행 통폐합이에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은행 수익의 대부분은 국내 업무에서 올렸죠.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경제 성장률은 1%에 불과했고요. 그렇다 보니 금융회사나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죠. 이때 국제금융정보센터가 많은 도움이 됐죠.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데 국제화 전략을 펼치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니까요.
윤용로: 얼마 전 미국이 금리를 인상(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6월 14일(현지시간) 금리를 1∼1.25%로 0.25%포인트 올렸다)했고,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 엔화는 국제화된 통화인 만큼 신흥국보다는 영향을 덜 받지 않나요?
가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금융회사나 민간 기업들은 엔화보다 달러나 유로를 조달해 사용합니다. 때문에 미국 금리가 오르면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죠. 예컨대 일본의 모회사와 자회사는 서로 엔화로 결제할 수 있죠.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엔화보다 달러로 결제해야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어요. 아시아 시장에서도 결제통화는 대부분 달러입니다. 예전에 방콕에 출장을 간 적이 있어요. 들어보니까 달러 결제가 많다고 해서 제가 일본 금융회사 담당자에게 달러를 줄이고 현지 화폐인 바트와 엔을 늘리자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이들이 오랫동안 달러로 결제해왔기 때문에 바꾸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아시아 시장에서도 달러 유통이 많아서 엔화 결제가 많지 않아요.
윤용로: 아시아 시장에선 엔화 결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군요. 이번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수준이 비슷해져서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요. 국내외 금리차가 생기면 주식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신흥국 주식시장은 어떻게 보세요?
가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말부터 단계적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밝혀왔잖아요. 올해 금리 인상은 시장에서 예상했던 만큼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글로벌 자금이 다소 빠져나가겠지만 생각만큼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윤용로: 미국이 9월 이후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양적완화의 종료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신흥국들은 걱정이 많아요.
가토: 일본도 미국의 정책을 주시하고 있어요. 저희처럼 제로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정책은 국제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현 상황에서 일본도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일본도 한국처럼 외국인의 주식투자 비율이 높은 편이거든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면 일본 증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이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베 신조 총리가 해외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서 최근 증시는 상승세입니다(지난 6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일본 니케이 지수는 2만220.30포인트로 최근 1년간 30% 넘게 올랐다).
윤용로: 일본은 제로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데 금융회사가 어떻게 수익을 올리는지 궁금해요.
가토: 일본의 4대 메가뱅크(미즈호,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쓰이스미토모트러스트)는 예대마진이 줄면서 수익을 얻기 위해 2000년 초 이후 해외 비중을 높이고 있어요. 메가뱅크 이외의 금융회사들은 활동 영역을 넓히기 어려워 대출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이들이 지역 은행을 인수합병(M&A)하는 전략을 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용로: 지난 2008년 미국 투자은행(IB)인 리만브라더스 파산 후 일본 노무라증권이 리만브라더스 아시아·유럽(EU)·중동 법인을 인수했습니다. 최근 유럽 부문을 축소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는 핵심 인력도 많이 빠져나갔다고 들었는데 평가를 해주신다면요?
가토: IB는 사람이 중요한 사업이에요. 능력있는 사람이 일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늘 과제입니다. 일본도 아직까지 IB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앞으로 IB가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윤용로: 한국의 금융시장도 포화상태라서 은행과 보험사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어요. 한국보다 먼저 해외로 나간 일본 금융회사가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토: 일본 은행의 해외 진출은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2000년대 이후에 일본 금융회사가 해외 진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일본의 국제협력은행(수출입은행)과 무역 보험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때 드는 비용이나 리스크를 분담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봐요. 지금도 이런 지원은 이어지고 있어요.
윤용로: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대규모 양적완화, 적극적 재정정책,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전략)를 기반으로 경제의 활력이 살아나고 있습니다(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5% 증가해 5분기 연속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가토: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사람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수출 호조와 재정지출 증가로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가계의 소비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일할 사람이 더 줄게 되면 가계 소비는 더 줄겠죠. 일본 정부는 고령자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인구 1억명을 지키기 위해 2015년 10월 ‘1억총활약 사회’ 플랜을 발표하고, 개각을 통해 ‘1억총활약 담당상(장관)’ 직을 신설했어요.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도 늘리려고 합니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 가장 필요한 노동력은 개호서비스, 조선업, 건설업인 것 같아요. 앞으로 일본은 육체 노동자가 부족해서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 할 겁니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가 늘고 있는 한국이나 대만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1억총활약 사회 플랜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정규직의 80% 수준), 최저임금 인상, 내년까지 50만 명 규모의 보육시설 확보 등을 통해 누구나 원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합계출산율을 1.8명으로 높여 50년 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인구는 지난 2008년 정점을 찍은 이래 감소세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1억2700만명이던 일본 인구는 2030년 1억1662만명, 2060년에는 8674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윤용로: 한국도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경제활동인구)가 지난해를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어요. 오는 2031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줄어드는 속도가 일본보다 빨라서 걱정이 많습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어요.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긴장관계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협력하면서 발전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선 많은 협력이 필요하고요. 저도 정부에 있을 때 국제금융 관련 회의에 가면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곳은 일본 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여러 일로 어려운데 이사장께서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조언자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토: 저도 말씀에 동감합니다. 제가 재무성에 있을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 많이 참석했어요. 당시엔 아시아에서 일본만 OECD에 가입한 상황이어서 유럽과 미국하고만 얘기하다 보니 외로웠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한 후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어요. 최근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민간 분야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일 컨소시엄을 꾸려서 함께 사업에 참여하고 양국 금융회사가 같이 지원하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정책 키워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라고 봐요. 한국 정부도 미국·중국과 여러 문제가 얽혀있지요. 일본의 입장도 한국·미국·중국이 서로 원활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라고 있어요.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 1977년 행정고시 21회에 합격해 관직을 시작했다. 그 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은행제도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현금융위원회) 공보관·감독정책2국장·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까지 지낸 후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2007~10년)을 거쳐 시중은행인 외환은행장(2012~14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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