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해법의 불편한 진실
일자리 해법의 불편한 진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넘게 지났다. 조만간 각료 인선인 마무리 되는 대로 새 정부는 국정과제 추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 것이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고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를 만든 것에서 보듯이 경제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는 질 좋은 일자리 만들기로 집약된다. 과거 박정희 시대에 수출진흥확대회의와 월간경제동향회의를 대통령이 매달 주재하면서 경제를 챙겼던 일이 연상될 만큼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책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일자리는 세계 공통의 화두다. 구글·페이스북·우버·테슬라 등 글로벌 혁신 기업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미국에서조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영토 안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게 작년 말이었다. 그만큼 2008년 여름에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거의 모든 나라가 일자리 부족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일자리는 생존의 수단이자, 인간다운 삶의 토대다. 그러니 방법은 뭐가 됐든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정치공약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게 국민 일반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일자리 문제에서 우리만의 심각한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참여율은 약 66%로 선진국보다 낮다. 이는 대부분의 가정이 가장의 외벌이에 의존한다는 뜻이고, 실업과 임금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또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탓에 중소기업 종사자의 임금이 대기업 종사자 임금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결과적 평등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기에 청년실업률이 11.2%에 이르고, 경제활동인구에 산입되지 않는 청년 ‘니트 (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족’ 인구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 그 결과 청년층 스스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자칭하는가 하면 이번 생애는 망했다는 뜻의 ‘이생망’이라는 신조어도 회자된다. 이에 따라 청년실업은 개인과 가족의 고통을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양과 질에서 일자리 문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관건은 정책 메뉴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추진될 듯하다. 하나는 소방, 안전 관련 공무원을 증원하는 등으로 공공부문 주도로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일자리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 메뉴는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살려 나라 경제의 성장동력을 높인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이러한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려되는 대목은 결국은 세금으로 공공부문 중심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과연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하겠는가의 문제다. 시급한 문제 해결은 좋지만 그렇다고 언발에 오줌 누고, 갈증에 바닷물을 마시는 식의 처방은 나중에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시장 수요와 공급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수준 이상으로 정부의 명령으로 임금을 올리면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수용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노동 수요량을 줄이는 경영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민간 부문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이 더 많아지는 정책의 역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산업의 평균 이자보상비율이 2.8인데, 공기업은 0.8에 불과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서 공공 부문을 팽창시키면 결국 재정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과 닮은 측면이 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의 대폭락과 함께 대공황이 본격화되자,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농산물에 대해서는 최저가격정책을, 그리고 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임금을 인상하고 가계의 소득을 높이는 한편 상품의 가격을 낮추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결과는 기대와 딴판이었다. 실업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이에 미국 정부는 후버댐 건설과 같은 공공투자를 늘렸지만 대공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와 달리 뉴딜정책은 대공황을 종식시킨 특효처방이 아니라 더 일찍 끝날 수 있었던 대공황을 연장시킨 주범이었다는 것이 경제사학계의 평가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run we all die).’ 이 말은 반짝하는 단기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는 정책메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정부의 적극 개입을 선호하는 케인지언(Keynesian)이 자주 쓰는 말이다. 일견 수긍되는 면이 있다. 경영전략이든 정부 정책이든 경우에 따라서는 나중에 부작용이 있더라도 우선은 처방전을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해도 문제의 원인을 올바로 진단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단기 효과를 겨냥한 정책 메뉴는 임시변통의 수단이다. 내 임기 내에 효과를 볼 수 없을 만큼 시간이 걸려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 메뉴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 문제가 그렇다. 일자리는 근본적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기업의 생산과 수출의 증가에 따라 일자리와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낙수효과는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낮아져도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인 일자리는 민간 부문에서 비롯되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공공 부문은 민간 부문에서 창출하는 부에 얹혀서 사는 것이다. 이는 1976년에 외환위기를 겪을 정도로 병증이 심각하던 영국을 혁신해 다시 일등국가로 끌어올린 마가렛 대처의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보수당 정권에 뒤이어 좌파로 분류되는 토니 블레어 정권에서도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창출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라는 대처 행정부의 정책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민간의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이다. 2010년대 와서 최근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2.9%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불행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이자율이 낮아도 투자가 늘지 않고, 물가가 낮아도 소비가 늘지 않으며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것이 일본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 생각에 한국 경제의 병인은 영국을 몰락의 위기까지 몰고 갔던 원인에 더 가깝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였지만 그 이후 산업사회에 대한 낭만적 반동(romantic reaction to industrial society) 속에 교육 현장에서부터의 자본주의 원리에 대한 오해와 무지, 기업과 부의 창출 활동에 대한 반감, 독점과 경쟁제한정책, 강성 노조, 정부 의존성향의 확산 등 이른바 ‘영국병’으로 불리는 요인이 팽배했다. 혹시라도 우리가 이렇지 않은지 반면교사 사례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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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세계 공통의 화두다. 구글·페이스북·우버·테슬라 등 글로벌 혁신 기업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미국에서조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영토 안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게 작년 말이었다. 그만큼 2008년 여름에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거의 모든 나라가 일자리 부족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일자리는 생존의 수단이자, 인간다운 삶의 토대다. 그러니 방법은 뭐가 됐든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정치공약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게 국민 일반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일자리 문제에서 우리만의 심각한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참여율은 약 66%로 선진국보다 낮다. 이는 대부분의 가정이 가장의 외벌이에 의존한다는 뜻이고, 실업과 임금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또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탓에 중소기업 종사자의 임금이 대기업 종사자 임금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결과적 평등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기에 청년실업률이 11.2%에 이르고, 경제활동인구에 산입되지 않는 청년 ‘니트 (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족’ 인구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 그 결과 청년층 스스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자칭하는가 하면 이번 생애는 망했다는 뜻의 ‘이생망’이라는 신조어도 회자된다. 이에 따라 청년실업은 개인과 가족의 고통을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양과 질에서 일자리 문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관건은 정책 메뉴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추진될 듯하다. 하나는 소방, 안전 관련 공무원을 증원하는 등으로 공공부문 주도로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일자리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 메뉴는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살려 나라 경제의 성장동력을 높인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이러한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려되는 대목은 결국은 세금으로 공공부문 중심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과연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하겠는가의 문제다. 시급한 문제 해결은 좋지만 그렇다고 언발에 오줌 누고, 갈증에 바닷물을 마시는 식의 처방은 나중에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시장 수요와 공급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수준 이상으로 정부의 명령으로 임금을 올리면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수용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노동 수요량을 줄이는 경영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민간 부문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이 더 많아지는 정책의 역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산업의 평균 이자보상비율이 2.8인데, 공기업은 0.8에 불과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서 공공 부문을 팽창시키면 결국 재정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과 닮은 측면이 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의 대폭락과 함께 대공황이 본격화되자,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농산물에 대해서는 최저가격정책을, 그리고 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임금을 인상하고 가계의 소득을 높이는 한편 상품의 가격을 낮추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결과는 기대와 딴판이었다. 실업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이에 미국 정부는 후버댐 건설과 같은 공공투자를 늘렸지만 대공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와 달리 뉴딜정책은 대공황을 종식시킨 특효처방이 아니라 더 일찍 끝날 수 있었던 대공황을 연장시킨 주범이었다는 것이 경제사학계의 평가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run we all die).’ 이 말은 반짝하는 단기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는 정책메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정부의 적극 개입을 선호하는 케인지언(Keynesian)이 자주 쓰는 말이다. 일견 수긍되는 면이 있다. 경영전략이든 정부 정책이든 경우에 따라서는 나중에 부작용이 있더라도 우선은 처방전을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해도 문제의 원인을 올바로 진단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단기 효과를 겨냥한 정책 메뉴는 임시변통의 수단이다. 내 임기 내에 효과를 볼 수 없을 만큼 시간이 걸려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 메뉴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 문제가 그렇다. 일자리는 근본적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기업의 생산과 수출의 증가에 따라 일자리와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낙수효과는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낮아져도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인 일자리는 민간 부문에서 비롯되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공공 부문은 민간 부문에서 창출하는 부에 얹혀서 사는 것이다. 이는 1976년에 외환위기를 겪을 정도로 병증이 심각하던 영국을 혁신해 다시 일등국가로 끌어올린 마가렛 대처의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보수당 정권에 뒤이어 좌파로 분류되는 토니 블레어 정권에서도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창출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라는 대처 행정부의 정책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민간의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이다. 2010년대 와서 최근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2.9%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불행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이자율이 낮아도 투자가 늘지 않고, 물가가 낮아도 소비가 늘지 않으며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것이 일본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 생각에 한국 경제의 병인은 영국을 몰락의 위기까지 몰고 갔던 원인에 더 가깝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였지만 그 이후 산업사회에 대한 낭만적 반동(romantic reaction to industrial society) 속에 교육 현장에서부터의 자본주의 원리에 대한 오해와 무지, 기업과 부의 창출 활동에 대한 반감, 독점과 경쟁제한정책, 강성 노조, 정부 의존성향의 확산 등 이른바 ‘영국병’으로 불리는 요인이 팽배했다. 혹시라도 우리가 이렇지 않은지 반면교사 사례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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