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현의 바둑경영] 상극인 천적을 늘 경계하라
[정수현의 바둑경영] 상극인 천적을 늘 경계하라
정상에 오르기보다 지키기 어려워 … 약점 보완하며 경쟁자 동향 살펴야 승부의 세계에는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천하무적 같은 강자라고 해도 언젠가는 정상에서 추락한다 것이다. 복싱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포먼이나 타이슨 같은 절대강자도 결국에는 왕좌에서 밀려 내려왔다.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업계 최고로 이름을 떨치던 기업이 정상에서 밀려난 경우가 적지 않다. 밀려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퇴출된 경우도 적지 않다.
바둑의 패권 교체: 바둑계를 보면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 응씨배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한국을 바둑 최강국으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그의 아성은 제자인 이창호 소년이 무너뜨렸다. 그 후 이창호 9단은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며 오랫동안 명성을 떨쳤다. 그랬던 이창호도 지금은 흘러간 스타가 됐다. 얼마 전 이창호 9단은 지지옥션배에 시니어 대표로 나왔다가 여류 고수 조혜연 9단에게 반집을 패해 우승컵을 여성팀에 넘기고 말았다. 왕년에 뛰어난 계산능력으로 전관왕을 차지했던 세계 챔피언 이창호였지만 이제는 다른 기사들이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창호의 뒤를 이어 세계 정상에 섰던 이세돌도 지금은 최강자가 아니다. 현재 국내 랭킹 1위는 박정환 9단이며 그 다음은 17세의 신진서 8단이다. 그 다음에 이세돌 9단이 3위로 랭크돼 있다. 이세돌은 30대 초반인데 벌써 최정상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렇게 정상에서 추락하는 것은 승부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강자에 의해 기존의 실력자는 무너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도전해 오는 신진 세력은 최강자의 천적인 경우가 많다. 즉 상대하기 어려운 바둑스타일이나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천적의 등장: 과거에 바둑계의 태양이었던 일본 바둑계도 최고봉이 천적의 등장에 의해 교체돼 왔다. 사카다와 린하이펑을 예로 들어보자. 수법이 워낙 날카로워 ‘면도날’로 불리었던 사카다 에이오 9단은 전관왕에 오르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그러나 특별히 뛰어난 기술이 없던 린하이펑 9단을 만나면 이상하게 역전패를 많이 당했다. 사카다 특유의 기법으로 우세를 확립했다가도 꾸준히 집을 차지하며 추격해 오는 린하이펑의 끈기에 무너지곤 한 것이다. 린하이펑은 끈기의 화신이라는 뜻에서 ‘이중허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도]는 일본 전통의 혼인보 타이틀전에서 사카다와 린하이 펑이 둔 바둑이다. 실리, 즉 현찰 위주의 전략을 택한 사카다는 흑1에 껴붙여 하변 백진을 깨뜨리러 갔다. 백2로 받을 때 흑11까지 백진 속에서 안방을 차지하며 오른쪽 백대마를 내몰았다. [2도]에서 린하이펑은 백1에 뛰고 3으로 좌상귀 실리를 차지한다. 상대에게 당하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실리를 벌어들이며 국면을 꾸려 나가는 것이 린하이펑의 특기다. 비유하자면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해도 끊임없이 수익을 창출하며 버텨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펀치를 맞고 금방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다. 사카다도 흑4와 8로 부지런히 벌어들인다. 현재의 형세를 대충 계산해 보면 흑 50집, 백40집으로 흑이 우세하다. [3도]에서 사카다는 계속 흑2·4로 백대마를 노리며 실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흑4는 상변 흑돌을 보강해 두는 것이 정수였다. 린하이펑은 백5에 뛰어 백집을 늘리며 흑에 대한 공격을 본다. 이렇게 집으로 따라붙으며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 린하이펑의 스타일이다. 사카다는 흑8·10으로 오른쪽 백의 허를 노린다. 하지만 백11에서 19로 공격을 하니 흐름이 백의 페이스로 바뀐 느낌이다. 이 바둑은 결국 백의 2집 반 승리로 끝났다. 이 바둑에서 보듯이 사카다 9단은 면도날 같은 수법으로 우세를 확립했지만, 당하면서도 꾸준히 추격해 오는 린하이펑 9단의 끈기에 무너졌다. 사카다에겐 린하이펑이 천적이었던 셈이다.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제비류 조훈현 9단도 돌부처 이창호 9단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줬다. 정확한 계산력을 바탕으로 따라오는 이창호의 끈기에 반집으로 역전당하는 일이 많았다.
천적에 대비하라: 영원한 강자가 없는 바둑계의 현상은 비즈니스 등 다른 분야에도 시사점을 준다. 글로벌 최고 기업이라고 해도 영원히 그 지위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도 더 뛰어난 후진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이처럼 언젠가를 자리를 내 줘야 하는 것이 모두의 숙명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오래 권좌에 앉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또한 일정한 위치에 오르면 어느 정도 장수할 필요가 있다. 반짝하며 정상에 올랐다가 1, 2년 만에 추락해 버린다면 사람들은 기억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런 반짝 스타들이 바둑계나 골프계 등에는 제법 있다. 이들은 대개 특별한 기회를 잡아 정상에 올랐다가 그 자리를 지킬 내공이 부족해 금방 밀려나 버린다. 계속 몰려오는 도전자들을 막아낼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다.
바둑이든 기업이든 정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도전자들을 막아내기 위해 계속 칼을 갈아야 한다. 정상에 올랐다고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거나 자만해서 대비하지 않는다면 추락하는 것은 순간이다. 그래서 정상에 선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더 많이 훈련한다. 프로 바둑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정상급 기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급, 즉 마켓 리더는 천적의 출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고봉의 자리가 자신과는 상극인 천적에 의해 무너지기 쉬우므로 그런 강적이 등장했는지를 모니터할 필요가 있다. 회사라면 경쟁자의 동향을 살펴 자사에 타격을 줄 강적이 누구인가를 관찰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천적은 대개 자신의 약점이나 허점을 찔러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멸의 승부사 조치훈 9단은 천적인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타이틀을 빼앗겨 무관의 제왕이 된 후 상당 기간 칼을 갈아 고바야시를 꺾고 정상에 복귀한 적이 있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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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패권 교체: 바둑계를 보면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 응씨배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한국을 바둑 최강국으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그의 아성은 제자인 이창호 소년이 무너뜨렸다. 그 후 이창호 9단은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며 오랫동안 명성을 떨쳤다. 그랬던 이창호도 지금은 흘러간 스타가 됐다. 얼마 전 이창호 9단은 지지옥션배에 시니어 대표로 나왔다가 여류 고수 조혜연 9단에게 반집을 패해 우승컵을 여성팀에 넘기고 말았다. 왕년에 뛰어난 계산능력으로 전관왕을 차지했던 세계 챔피언 이창호였지만 이제는 다른 기사들이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창호의 뒤를 이어 세계 정상에 섰던 이세돌도 지금은 최강자가 아니다. 현재 국내 랭킹 1위는 박정환 9단이며 그 다음은 17세의 신진서 8단이다. 그 다음에 이세돌 9단이 3위로 랭크돼 있다. 이세돌은 30대 초반인데 벌써 최정상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렇게 정상에서 추락하는 것은 승부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강자에 의해 기존의 실력자는 무너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도전해 오는 신진 세력은 최강자의 천적인 경우가 많다. 즉 상대하기 어려운 바둑스타일이나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천적의 등장: 과거에 바둑계의 태양이었던 일본 바둑계도 최고봉이 천적의 등장에 의해 교체돼 왔다. 사카다와 린하이펑을 예로 들어보자. 수법이 워낙 날카로워 ‘면도날’로 불리었던 사카다 에이오 9단은 전관왕에 오르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그러나 특별히 뛰어난 기술이 없던 린하이펑 9단을 만나면 이상하게 역전패를 많이 당했다. 사카다 특유의 기법으로 우세를 확립했다가도 꾸준히 집을 차지하며 추격해 오는 린하이펑의 끈기에 무너지곤 한 것이다. 린하이펑은 끈기의 화신이라는 뜻에서 ‘이중허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도]는 일본 전통의 혼인보 타이틀전에서 사카다와 린하이 펑이 둔 바둑이다. 실리, 즉 현찰 위주의 전략을 택한 사카다는 흑1에 껴붙여 하변 백진을 깨뜨리러 갔다. 백2로 받을 때 흑11까지 백진 속에서 안방을 차지하며 오른쪽 백대마를 내몰았다. [2도]에서 린하이펑은 백1에 뛰고 3으로 좌상귀 실리를 차지한다. 상대에게 당하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실리를 벌어들이며 국면을 꾸려 나가는 것이 린하이펑의 특기다. 비유하자면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해도 끊임없이 수익을 창출하며 버텨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펀치를 맞고 금방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다. 사카다도 흑4와 8로 부지런히 벌어들인다. 현재의 형세를 대충 계산해 보면 흑 50집, 백40집으로 흑이 우세하다. [3도]에서 사카다는 계속 흑2·4로 백대마를 노리며 실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흑4는 상변 흑돌을 보강해 두는 것이 정수였다. 린하이펑은 백5에 뛰어 백집을 늘리며 흑에 대한 공격을 본다. 이렇게 집으로 따라붙으며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 린하이펑의 스타일이다. 사카다는 흑8·10으로 오른쪽 백의 허를 노린다. 하지만 백11에서 19로 공격을 하니 흐름이 백의 페이스로 바뀐 느낌이다. 이 바둑은 결국 백의 2집 반 승리로 끝났다. 이 바둑에서 보듯이 사카다 9단은 면도날 같은 수법으로 우세를 확립했지만, 당하면서도 꾸준히 추격해 오는 린하이펑 9단의 끈기에 무너졌다. 사카다에겐 린하이펑이 천적이었던 셈이다.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제비류 조훈현 9단도 돌부처 이창호 9단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줬다. 정확한 계산력을 바탕으로 따라오는 이창호의 끈기에 반집으로 역전당하는 일이 많았다.
천적에 대비하라: 영원한 강자가 없는 바둑계의 현상은 비즈니스 등 다른 분야에도 시사점을 준다. 글로벌 최고 기업이라고 해도 영원히 그 지위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도 더 뛰어난 후진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이처럼 언젠가를 자리를 내 줘야 하는 것이 모두의 숙명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오래 권좌에 앉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또한 일정한 위치에 오르면 어느 정도 장수할 필요가 있다. 반짝하며 정상에 올랐다가 1, 2년 만에 추락해 버린다면 사람들은 기억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런 반짝 스타들이 바둑계나 골프계 등에는 제법 있다. 이들은 대개 특별한 기회를 잡아 정상에 올랐다가 그 자리를 지킬 내공이 부족해 금방 밀려나 버린다. 계속 몰려오는 도전자들을 막아낼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다.
바둑이든 기업이든 정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도전자들을 막아내기 위해 계속 칼을 갈아야 한다. 정상에 올랐다고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거나 자만해서 대비하지 않는다면 추락하는 것은 순간이다. 그래서 정상에 선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더 많이 훈련한다. 프로 바둑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정상급 기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급, 즉 마켓 리더는 천적의 출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고봉의 자리가 자신과는 상극인 천적에 의해 무너지기 쉬우므로 그런 강적이 등장했는지를 모니터할 필요가 있다. 회사라면 경쟁자의 동향을 살펴 자사에 타격을 줄 강적이 누구인가를 관찰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천적은 대개 자신의 약점이나 허점을 찔러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멸의 승부사 조치훈 9단은 천적인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타이틀을 빼앗겨 무관의 제왕이 된 후 상당 기간 칼을 갈아 고바야시를 꺾고 정상에 복귀한 적이 있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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