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실리콘밸리의 지배구조 핫 이슈] 주주 행동주의 공격에 차등의결권 도입↑
[주목할 만한 실리콘밸리의 지배구조 핫 이슈] 주주 행동주의 공격에 차등의결권 도입↑
‘원할한 경영’ vs ‘재벌 특혜’ 논쟁 지속 … “여성 이사 늘려라” 압박 커져 4차 산업혁명의 조류 속에서 앞으로 기업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핵심 이슈는 무엇일까.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150개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첨단 IT기업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에서 떠오르는 지배구조 이슈를 살펴봤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주목할 만한 지배구조 이슈로 차등의결권, 이사 시차임기제, 이사 과반수 투표제, 주식보유 가이드라인,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주주 행동주의 증가를 꼽았다. 보고서는 이 가운데 “차등의결권,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주주행동주의 증가가 국내 혁신기업들에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실리콘밸리 150대 기업에 대한 주주 행동주의 공격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 150대 기업 중 톱 15 기업에 대한 주주 행동주의 비율(최소 1회 이상 공격)은 2016년 73.3%로 조사됐다. 주주 행동주의의 증가는 주로 대기업을 대상으로 행해져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실리콘밸리 기업 대상의 공격도 늘어나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투자한 기업의 수익이나 경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아버리는 소극적인 투자가 아니라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가치 제고 등의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자사주·배당 등 주주 환원책을 기업에 요구하거나 재무구조 개선, 이사회 구성 등을 요구해 회사 가치를 끌어올린다. 대규모 자본을 활용해 이런 전략을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의 목표 역시 주주이익 극대화다. 이들은 흔히 투자한 기업에 자사주 매입(바이백)과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하거나 구조조정·인수합병(M&A) 등에 간섭해 주가를 띄운 후 차익을 챙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 목표 달성을 위해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때로 회사의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측면 때문에 ‘기업사냥꾼’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기업의 허점을 파고들어 투자수익을 올리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두고 시장에서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주주들의 구세주’라는 평가와 단기 시세차익만 노리는 ‘탐욕의 약탈자’라는 시각이 엇갈린다. 기업에 절실한 견제자 역할을 하면서 기업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입장과, 경영진을 윽박질러 적기에 필요한 현명한 결정을 막고 단기적 이익의 추구로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선 ‘먹튀’라는 인식 강해국내에서는 특히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 KT&G를 압박한 칼 아이컨 등 외국계 펀드가 대기업의 지분을 매집해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히다가 막대한 차익을 챙겨 떠난 사례가 있어 행동주의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이다. 2015년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한국 대기업 사이에서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당시 국민연금이 이 합병을 찬성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두고도 ‘주주 행동주의’가 관심사로 떠오른 바 있다. 최근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긍정적인 면을 앞세운 토종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속속 등장하면서 향후 행보와 확산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도 마련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 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2016년 말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위원회는 7개 원칙과 안내 지침 등을 담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 ‘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기관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쓸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국내 시장이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이미 진입해 있고 자기자본이익률(ROE)와 같은 수익성 지표가 현저히 낮아지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사내유보금도 쌓여 있다. 그만큼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실리콘밸리 지배구조 트렌드는 차등 의결권 도입의 증가다. 한경연 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150대 기업의 차등의결권 도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실리콘밸리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2004년 5% 정도에 불과했지만 2016년 11.3%로 늘었다. 대표적으로 구글과 페이스북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IT기업만 두고 본다면 차등의결권 채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상장기업의 차등의결권제 도입 사례는 많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원래 주식회사에는 ‘주주평등의 원칙’이 적용된다. 1주당 1의결권을 주고, 투자한 만큼만 의결권을 갖는다는 원칙이다. 차등의결권은 이 원칙에서 벗어나, 같은 돈을 내더라도 특정 주식에는 주식 1주당 의결권 10개, 혹은 100개를 주는 제도다. 일부 주주가 상대적으로 돈은 조금만 내고,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몇 표의 의결권을 갖는지는 회사 정관에 규정돼 있다. 이 제도는 대다수 유럽 국가과 미국 등에서 허용되고 있다. 역사가 오래 된 유럽 상당수의 기업은 창업자 가문이 이 제도를 이용해 지분율이 낮아도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자인 포드 가문이 약 7% 주식을 보유하는데 의결권 기준으로는 40%를 차지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도 발렌베리 집안이 동일한 방법으로 20%의 지분을 보유하며 40%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프랑스는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면 1주당 2표를 부여하는, 보유기간에 따라 투표권이 늘어나는 형식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증가하는 IT기업의 차등의결권 도입은 주주 행동주의 트렌드의 연장선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혁신기업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 성장한 혁신기업들은 창업주의 지분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에 차등의결권으로 창업주에게 안정적인 경영권을 부여해 기업이 창업정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장기적인 발전계획에 따라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차등의결권 도입하면 ‘오너이익≠주주이익이처럼 대주주가 경영권에 대해 위협을 덜 받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은 차등의결권의 장점으로 꼽힌다. 회사 성장을 위해 필요한 투자 자금이 모자랄 때 상대적으로 경영권 상실에 대한 우려 없이 증자를 통해 필요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경영권 상실의 우려가 클 때는 대주주가 투자할 일이 있어도 증자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면 필요 자금을 부채를 통해 조달해야 하는데 부채 조달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큰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가 늘면 기업 성장이 촉진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단점도 존재한다. 유능하지 못한 대주주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으면 주식시장에서 다른 주주들이 연합해 경영권을 인수하기 어렵다. 대주주가 소액주주들을 보호하지 않고 전횡할 가능성도 있다. ‘지분율 괴리도’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대주주의 지분은 20%인데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은 60%다. 대주주는 회사가 번 돈으로 배당을 결정할 수 있지만, 그중 불과 20%밖에 받지 못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주주는 배당금을 지급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으려 할 수 있다. 본인이나 친인척 등을 채용해 고액 연봉을 주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외부 회사와 거래를 만들어서 사실상 수익을 다른 회사로 돌리는 방식이다. 외부 회사가 가족 소유일 경우 편법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런 대주주가 회사를 장악하고 있으면 다른 주주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배당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회사 발전이 저해되고 기업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본다.
장단점이 명확하다 보니 차등의결권에 대한 찬반 논쟁도 치열하다. 국내에서는 특히 2014년 말 홍콩에서 도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제적 흐름에 맞춰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재계 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나 정치권이 이런 의견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히면서 찬반 논쟁이 치열해졌다. 2015년 6월 삼성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경영권 공격이 시작됐을 때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서 경영권 보호수단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실효성 없이 재벌 특혜로만 이어질 거라는 반대 의견이 부딪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박 연구원은 “최근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에서 도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트렌드를 보인다”며 “기업의 장기 비전을 설립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 혁신기업에 한해 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은 미국과 국내 환경은 전혀 다르다”며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나 편법 세습에 악용되기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부작용 자체는 인정하되 어떤 방법을 이용해 부정적인 효과를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올바르다”며 “예컨대 우수한 인력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이사회가 존재한다면 이런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연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이사회 구성에서 여성 비율이 증가하는 등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점으로 꼽았다. 실리콘밸리 150대 기업의 경우 여성 이사 비율이 1996년 2.1%에서 2016년 14.1%로 꾸준히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사회의 다양성은 중요한 화두다. 노르웨이·독일·프랑스·벨기에·아이슬란드·이탈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가 최대 40%까지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사들이 장기간 자리를 차지하며 비슷한 배경의 경영진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경영 활동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에 기업에 위기를 불러왔다는 반성에서다. 또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진에 여성 이사 선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기업의 경우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낮다. ‘2017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 이사회 임원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이사회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아·태지역 20개국 중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2017년 11월 6일 낸 통계집 ‘2017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서는 2016년 우리나라 여성 이사회 임원비율이 2.4%로 조사 대상 46개국 가운데 45위를 기록했다. 여성 이사회 임원비율은 2011년 1.9%에 비해 증가했다. 그러나 순위는 5년 전 40위보다 5계단 떨어졌다. 다른 나라에서 여성 이사회 임원이 늘어나는 속도를 우리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이사회 다양성 확보할 것”2016년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우리 기업에 이사회의 다양성을 요구한 적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엘리엇 사례다. 당시 엘리엇은 주주 이익 확대를 요구하면서 이사회 다양성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공개 서신을 통해 삼성전자의 다국적 경험과 성별 다양성이 애플 등 경쟁사보다 뒤떨어져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사외이사를 추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각 계열사에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전문성을 가진 인사뿐 아니라 여성 인력까지 영역을 넓혀서 예비 명단을 갖출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7명의 여성인력을 임원으로 승진시컸다.
이 같은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 참여 확대 요구는 이사회를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만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남성 관리자·임원 집단의 지나친 동질성이 부패와 비리,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등 폐해를 낳으며, 여성 임원 확대가 이를 완화하고 해소하는 구실을 할 것이란 주장이다. 여성이기 때문이 선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보완적 시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회계법인 PwC가 올해 미국 대기업 이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91%의 이사가 여성 이사가 이사회를 효율적으로 만든다고 응답했다. 또 84%가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회사의 실적 향상으로 연결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여성 이사 확대는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재풀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할당제는 자칫 ‘거수기’만 양산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사 후보가 될 수 있는 여성 임원 등이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특정 비율을 강제화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이사회 여성 할당제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논란이 되기도 한다. 법률로 여성 비율을 강제한 노르웨이의 경우 소수 여성 이사가 복수 이사회에 취임하거나 회사들이 이사회의 규모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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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세지는 주주 행동주의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투자한 기업의 수익이나 경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아버리는 소극적인 투자가 아니라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가치 제고 등의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자사주·배당 등 주주 환원책을 기업에 요구하거나 재무구조 개선, 이사회 구성 등을 요구해 회사 가치를 끌어올린다. 대규모 자본을 활용해 이런 전략을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의 목표 역시 주주이익 극대화다. 이들은 흔히 투자한 기업에 자사주 매입(바이백)과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하거나 구조조정·인수합병(M&A) 등에 간섭해 주가를 띄운 후 차익을 챙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 목표 달성을 위해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때로 회사의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측면 때문에 ‘기업사냥꾼’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기업의 허점을 파고들어 투자수익을 올리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두고 시장에서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주주들의 구세주’라는 평가와 단기 시세차익만 노리는 ‘탐욕의 약탈자’라는 시각이 엇갈린다. 기업에 절실한 견제자 역할을 하면서 기업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입장과, 경영진을 윽박질러 적기에 필요한 현명한 결정을 막고 단기적 이익의 추구로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선 ‘먹튀’라는 인식 강해국내에서는 특히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 KT&G를 압박한 칼 아이컨 등 외국계 펀드가 대기업의 지분을 매집해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히다가 막대한 차익을 챙겨 떠난 사례가 있어 행동주의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이다. 2015년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한국 대기업 사이에서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당시 국민연금이 이 합병을 찬성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두고도 ‘주주 행동주의’가 관심사로 떠오른 바 있다. 최근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긍정적인 면을 앞세운 토종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속속 등장하면서 향후 행보와 확산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도 마련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 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2016년 말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위원회는 7개 원칙과 안내 지침 등을 담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 ‘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기관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쓸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국내 시장이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이미 진입해 있고 자기자본이익률(ROE)와 같은 수익성 지표가 현저히 낮아지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사내유보금도 쌓여 있다. 그만큼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2. 평행선 긋는 차등의결권 도입 논쟁
원래 주식회사에는 ‘주주평등의 원칙’이 적용된다. 1주당 1의결권을 주고, 투자한 만큼만 의결권을 갖는다는 원칙이다. 차등의결권은 이 원칙에서 벗어나, 같은 돈을 내더라도 특정 주식에는 주식 1주당 의결권 10개, 혹은 100개를 주는 제도다. 일부 주주가 상대적으로 돈은 조금만 내고,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몇 표의 의결권을 갖는지는 회사 정관에 규정돼 있다. 이 제도는 대다수 유럽 국가과 미국 등에서 허용되고 있다. 역사가 오래 된 유럽 상당수의 기업은 창업자 가문이 이 제도를 이용해 지분율이 낮아도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자인 포드 가문이 약 7% 주식을 보유하는데 의결권 기준으로는 40%를 차지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도 발렌베리 집안이 동일한 방법으로 20%의 지분을 보유하며 40%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프랑스는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면 1주당 2표를 부여하는, 보유기간에 따라 투표권이 늘어나는 형식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증가하는 IT기업의 차등의결권 도입은 주주 행동주의 트렌드의 연장선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혁신기업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 성장한 혁신기업들은 창업주의 지분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에 차등의결권으로 창업주에게 안정적인 경영권을 부여해 기업이 창업정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장기적인 발전계획에 따라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차등의결권 도입하면 ‘오너이익≠주주이익이처럼 대주주가 경영권에 대해 위협을 덜 받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은 차등의결권의 장점으로 꼽힌다. 회사 성장을 위해 필요한 투자 자금이 모자랄 때 상대적으로 경영권 상실에 대한 우려 없이 증자를 통해 필요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경영권 상실의 우려가 클 때는 대주주가 투자할 일이 있어도 증자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면 필요 자금을 부채를 통해 조달해야 하는데 부채 조달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큰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가 늘면 기업 성장이 촉진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단점도 존재한다. 유능하지 못한 대주주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으면 주식시장에서 다른 주주들이 연합해 경영권을 인수하기 어렵다. 대주주가 소액주주들을 보호하지 않고 전횡할 가능성도 있다. ‘지분율 괴리도’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대주주의 지분은 20%인데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은 60%다. 대주주는 회사가 번 돈으로 배당을 결정할 수 있지만, 그중 불과 20%밖에 받지 못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주주는 배당금을 지급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으려 할 수 있다. 본인이나 친인척 등을 채용해 고액 연봉을 주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외부 회사와 거래를 만들어서 사실상 수익을 다른 회사로 돌리는 방식이다. 외부 회사가 가족 소유일 경우 편법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런 대주주가 회사를 장악하고 있으면 다른 주주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배당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회사 발전이 저해되고 기업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본다.
장단점이 명확하다 보니 차등의결권에 대한 찬반 논쟁도 치열하다. 국내에서는 특히 2014년 말 홍콩에서 도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제적 흐름에 맞춰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재계 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나 정치권이 이런 의견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히면서 찬반 논쟁이 치열해졌다. 2015년 6월 삼성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경영권 공격이 시작됐을 때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서 경영권 보호수단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실효성 없이 재벌 특혜로만 이어질 거라는 반대 의견이 부딪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박 연구원은 “최근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에서 도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트렌드를 보인다”며 “기업의 장기 비전을 설립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 혁신기업에 한해 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은 미국과 국내 환경은 전혀 다르다”며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나 편법 세습에 악용되기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부작용 자체는 인정하되 어떤 방법을 이용해 부정적인 효과를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올바르다”며 “예컨대 우수한 인력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이사회가 존재한다면 이런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3. 갈 길 먼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세계적으로 이사회의 다양성은 중요한 화두다. 노르웨이·독일·프랑스·벨기에·아이슬란드·이탈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가 최대 40%까지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사들이 장기간 자리를 차지하며 비슷한 배경의 경영진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경영 활동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에 기업에 위기를 불러왔다는 반성에서다. 또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진에 여성 이사 선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기업의 경우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낮다. ‘2017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 이사회 임원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이사회 여성 임원 비율은 2.4%로 아·태지역 20개국 중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2017년 11월 6일 낸 통계집 ‘2017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서는 2016년 우리나라 여성 이사회 임원비율이 2.4%로 조사 대상 46개국 가운데 45위를 기록했다. 여성 이사회 임원비율은 2011년 1.9%에 비해 증가했다. 그러나 순위는 5년 전 40위보다 5계단 떨어졌다. 다른 나라에서 여성 이사회 임원이 늘어나는 속도를 우리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이사회 다양성 확보할 것”2016년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우리 기업에 이사회의 다양성을 요구한 적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엘리엇 사례다. 당시 엘리엇은 주주 이익 확대를 요구하면서 이사회 다양성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공개 서신을 통해 삼성전자의 다국적 경험과 성별 다양성이 애플 등 경쟁사보다 뒤떨어져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사외이사를 추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각 계열사에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전문성을 가진 인사뿐 아니라 여성 인력까지 영역을 넓혀서 예비 명단을 갖출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7명의 여성인력을 임원으로 승진시컸다.
이 같은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 참여 확대 요구는 이사회를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만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남성 관리자·임원 집단의 지나친 동질성이 부패와 비리,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등 폐해를 낳으며, 여성 임원 확대가 이를 완화하고 해소하는 구실을 할 것이란 주장이다. 여성이기 때문이 선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보완적 시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회계법인 PwC가 올해 미국 대기업 이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91%의 이사가 여성 이사가 이사회를 효율적으로 만든다고 응답했다. 또 84%가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회사의 실적 향상으로 연결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여성 이사 확대는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재풀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할당제는 자칫 ‘거수기’만 양산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사 후보가 될 수 있는 여성 임원 등이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특정 비율을 강제화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이사회 여성 할당제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논란이 되기도 한다. 법률로 여성 비율을 강제한 노르웨이의 경우 소수 여성 이사가 복수 이사회에 취임하거나 회사들이 이사회의 규모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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