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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중독증 이참에 끊어내자

추경 중독증 이참에 끊어내자

정부가 4월 5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 편성을 의결했다. 이제 막 1분기가 지난 시점, 올해 429조원 규모 수퍼 예산이 아직 본격적으로 쓰이기도 전이다.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다. 지난 3월부터 정부가 추경을 거론하자 야당들이 ‘6월 지방선거용’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 일자리 추경이다. 지난해 7월 편성한 11조원 규모 추경도 공무원 증원 등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가 목적이었다. 올해 예산 중 일자리 예산이 19조2000억원인데, 이번에 또 3조9000억원 규모 일자리 추경이다.

정부는 지난해 추경은 공공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중물’, 올해 추경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으로 성격이 다름을 강조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체감실업률 기준으로 청년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 상태로, 2021년까지 유입되는 에코세대 39만 명을 방치할 경우 재난 수준의 고용위기 상황이 예견된다”고 추경 편성 배경을 설명했다. 청년실업을 방치하면 재앙 수준이 된다며 애써 추경 요건에 부합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추경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방향이 어긋났거나 정부가 일자리 수요 자체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에코세대란 베이비붐세대(1955~63년생)의 자녀들로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취업시장에 진입하는 시기는 이미 예견됐다. 이를 두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추경을 거론하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런 식의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말인가.

추경은 이미 연례화됐다. 국가재정법은 예상하지 못한 비상시에만 추경 편성을 하도록 규정했지만 보수 정부나 진보 정부나 이를 무력화시켰다. 이번 추경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2015년 이후 매년 추경이 편성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2012년과 2014년 등 4년만 추경 없이 지나갔다. 최근 10년 동안 6번이나 추경을 편성하는 것이다. 그만큼 재앙 수준의 일이 많았음인가? 예산을 편성한 정부도, 이를 심의해 통과시킨 국회도 무능했음인가? 어느 쪽이든 예산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린 비정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정상 상황에서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놀부 심보다.

툭 하면 추경을 편성하는 사이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재작년보다 122조원 늘어난 1555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500조원을 넘어섰다. 공무원과 군인의 연금 지급에 대비한 충당 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연례행사화한 추경 편성 등 재정을 떠받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린 결과다. 특히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845조원으로 국가부채의 절반을 넘었다. 연간 증가폭이 93조원에 이르렀다. 가파른 부채 증가 속도를 제어하지 않으면 재정이 파탄나거나 연금 지급이 중단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나랏빚이 불어나는데 연금개혁은커녕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문재인 정부 공약대로라면 5년 동안 증원 대상은 17만4000명. 소방관처럼 증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분야라면 몰라도 단순히 청년실업난을 완화할 목적으로 공무원을 무턱대고 늘리는 것은 다음 세대에 빚 폭탄을 안기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은 판박이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자며 건설경기, 특히 주택경기 부양을 들고 나온다. 내수를 진작시키자며 자동차나 대형 가전제품 등에 대한 개별소비세의 한시적 인하를 꺼내든다. 하지만 이제 이런 수준의 정책은 어지간한 국민이면 어느 정도 예상한다. 내성이 생겨 효과가 의문시되고 되레 부작용을 초래한다. 박근혜 정부 때 최경환 경제팀이 ‘빚 내 집 사라’며 부동산 경기를 띄운 후유증을 지금 우리가 앓고 있지 않은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며 내놓는 것이 고작 추경을 편성해 거둬들인 국민 세금인 재정을 투입하는 한편 거둬야 할 세금을 감면해주는 식이다. 청년들을 중소기업 취업으로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라며 중소기업 신규 취업자에게 5년 동안 근로소득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아울러 목돈 마련을 도와주고, 주거비를 싼 이자로 빌려준다. 중소기업에는 청년을 추가 고용할 때 지원하는 장려금을 늘려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21차례 일자리 대책이 나왔다. 그 대부분이 재정·세제 지원 일색이었다. 막대한 나랏돈을 쏟아 부었지만 일자리 사정은 개선되지 않았고 청년 실업은 되레 악화됐다. 그런데 이번에도 청년과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 규모만 늘릴 뿐 실패한 정책을 답습했다. 지난해 혁신성장 전략회의와 올 초 부처 업무보고에서 ‘캥거루 자세’로 출발하고, ‘하얀 스케이트’를 신고 피겨 스케이팅을 선보여 앞서 나가자고 강조하더니만 정작 내놓는 대책은 천편일률적이다.

연간 1000만원, 그것도 2021년까지 한시적으로 더 준다고 과연 청년들이 선뜻 중소기업을 선택할까.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는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더 벌어지는 구조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판에 채용 여력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다. 더구나 신규 취업자에게만 혜택을 주면 선배 직원들과 소득 역전 현상이 벌어져 중소기업의 조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기존 재직자에게도 지원 폭을 늘리는 쪽으로 급히 땜질 처방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민간기업의 근로자 임금을 정부 재정으로 대줄 텐가.

김동연 부총리는 이번 추경이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지난해 결산 순잉여금과 기금의 여유자금을 사용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국채를 발행해 외상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 돈 3조9000억원도 피 같은 국민 세금이다. 보다 긴요한 데 쓰인다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게다. 이른바 기회비용의 손실이다.

재정으로 일자리 늘리기는 바람직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일자리는 정부가 세금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과 시장에 맡기는 게 정석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규제 완화와 산업 혁신, 노동개혁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급하다고 공무원 증원이나 중소기업 취업자 임금 지원과 같은 ‘세금 쓰는 일자리’를 늘리는 게 아닌, 시간이 걸려도 ‘세금 내는 일자리’를 창출해야 개인도 국가도 지속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대로 ‘일자리 정부’로 성공하려면 일자리 정책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추경을 의결한 4월 5일은 식목일. 추경 편성 대신 국가와 청년의 미래를 위해 더욱 값있게 쓰일 나무를 심을 수는 없었을까. 정부는 ‘추경 몇 조 편성하지’ 하는 식으로 손쉽게 재정에 기대는 ‘추경 중독증’은 이참에 끊어내야 마땅하다. 보다 창의적이고 실효성 있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치열하게 고민하라. 정 아이디어가 없으면 국민에게 공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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