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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국전쟁에서 배워야 할 5가지

트럼프가 한국전쟁에서 배워야 할 5가지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3년간의 승산 없는 전쟁을 명예롭고 품위 있게 마무리한’ 비결은 무엇일까
아이젠하워는 1952년 “한국으로 건너가” 전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공약으로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 사진:AP-NEWSIS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과 미사일 테스트 중단을 논의하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초대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65년 전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성공에서 배울 수 있는 5가지 교훈이 있다.
 1. 파격적인 해법이 까다로운 문제 해결할 수도 있다
때로는 대담하고 예기치 못한 이니셔티브가 돌파구를 여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전쟁은 1950년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공산주의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적화통일의 야심을 품고 갑자기 남쪽으로 치고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미군은 남침을 규탄하는 유엔결의안에 따라 다른 나라들에서 파견된 소수 병력과 함께 북한을 몰아내고 계속해 북진했다. 그러나 북한과 국경을 마주한 그들의 후원자 중국이 개입하면서 미군이 다시 밀려났다.

1952년 말 양측은 전쟁 시작 전 원래 남북한 간 접경에서 멀지 않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채 일진일퇴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정부에는 마땅한 군사적 옵션이 없었다. 그러나 195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장성 출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10월 24일 유세 중 “한국으로 건너가” 전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극적인 선언을 했다. 그 전격적인 공약에 힘입어 다음달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1952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북간 갈등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수년간의 경제제재와 군사 위협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는 3월 8일의 깜짝 발표는 한층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아이젠하워의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공약에 버금가는 강력한 폭탄발언이었다.
 2. 직접 입수한 정보가 자신 있는 의사결정을 뒷받침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이끌고 독일군을 물리쳤던 아이젠하워는 항상 새롭고 객관적인 정보를 탐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젠하워에게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이다.

대통령 당선인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선거공약을 이행했다. 내켜 하지 않는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1952년 12월 2일 예고 없이 한국을 방문해 전선에서 3일을 보냈다. 지휘관들과 상담하고, 병사들과 식사하고, 쌍안경으로 포격 공방전을 지켜보고, 부상병들이 치료 받는 야전병원을 방문했다. 비행기를 타고 38선 근방의 전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지형을 유심히 살펴봤다. 눈 덮인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산악지대 곳곳에 중공군의 참호와 화포 진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이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튀니지를 연상케 했다.

며칠 뒤 귀국할 무렵 아이젠하워는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아이젠하워, 변화의 사명(Mandate For Change)’에서 한국을 떠날 때 나의 결론은 정체된 전선을 언제까지나 지켜 서서 아무 가시적 결과도 없이 계속 희생을 지켜볼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돌이켰다. ‘작은 언덕에서 소규모의 공격으로는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3. 대통령은 보좌관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의 말을 묵살해야 할 때도 있다
1954년 1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은 한국전쟁에서 수훈을 세운 병사들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 사진:NAVAL HISTORICAL CENTER, ONLINE LIBRARY OF SELECTED IMAGES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13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고했다. 두 사람 사이에 정책적 이견과 사적인 갈등이 있다고 언론에 보도된 뒤였다. 필시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조치를 내린 이유 중 하나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자신의 접근방식에 틸러슨이 동의하지 않은 데 있었던 듯하다. 그것은 아이로니컬한 조치다. 틸러슨이 옹호한다고 조롱하던 외교적 해법을 지금은 트럼프 자신이 약속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는 때때로 보좌관들의 제안을 묵살했지만 의견차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전 당시 사령관 중 한 명인 마크 클라크 장군은 새로 대공세를 전개하자고 아이젠하워를 설득하려 했다.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장군에게 말했다. “군사적으로는 장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오. 하지만 나는 국민으로부터 이 싸움을 끝내라는 명령을 받았소. 그것이 내 결정이요.”

1953년 1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국무장관에 임명된 존 포스터 덜레스는 미국이 세계의 신뢰를 얻으려면 중공군을 격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젠하워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덜레스와 그의 보좌관들이 모두 진심으로 진지하게 평화를 논할 수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 측근에게 말했다. 덜레스는 협상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4. 우리 편과 적을 설득하는 데는 외교적 수완과 단호함이 필요하다
북한이 위협을 중단하고 협상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내든 남한·일본·중국이 따르도록 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다른 협상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 그의 요구사항 중 일부를 물려 평화협상에 박차를 가했다. 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비치자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제공하던 연료와 보급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섰다.

아이젠하워는 북한과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휴전에 합의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주한미군 증강에 착수하고, 다수의 공세 조치를 지시하고, 클라크 장군에게 휴전을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인 포로교환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아이젠하워의 조치는 그가 뜻을 굽히고 철수할 생각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줬다.

적군은 지쳐가고 있었다. 북한군과 중공군에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중공은 한국전에 더 휘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북한 접경으로부터 미군을 멀리 밀어냈으니 이젠 철수하기를 원했다. 김일성을 후원했던 소련군은 북한에 무기와 화약을 공급하는 데 갈수록 회의가 커져갔다. 오랜 소련 지도자 조지프 스탈린이 1953년 3월 5일 사망하면서 새 지도자들은 발을 빼고 다른 데 집중하고 싶어 했다.

짐 뉴튼 같은 아이젠하워 자서전 작가는 저서 ‘아이젠하워, 백악관 시절(Eisenhower: The White House Years)’에서 미국 정부는 전쟁 종식을 위해 필요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용의가 있음을 중국에 넌지시 비쳤다고 주장한다. 아이젠하워는 내각과 국가안보회의 미팅에서 그런 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러나 윌리엄 I. 히치콕은 신저 ‘아이젠하워 시대, 1950년대 미국과 세계(The Age of Eisenhower: America and the World in the 1950s)’에서 실제로 핵위협은 없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중국·북한·러시아는 그저 전쟁에 지쳐 있었고 아이젠하워가 보여준 미국의 단호함을 감안할 때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5. 국민에게 현안의 설명은 필수
1953년 7월 26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한반도에서 충돌은 그치지 않았다. 한반도는 대략 38선과 겹치는 기존 전선을 따라 분단됐다. 그 경계선은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확고한 승리를 원했던 당내 보수파들과의 끈기 있는 토론을 포함해 그 길을 닦아 놓았다. 그는 북한군을 남한에서 몰아내는 것도 일종의 승리라고 공개 성명을 통해 설명했다. 이는 침공에 반대하는 미국의 단호한 입장을 보여줬다.

아이젠하워는 7월 26일 탁월한 대 국민 라디오·TV 연설을 통해 휴전에 관해 설명했다. 전쟁이 끝난 데 감사를 표하고 군인들을 칭송하고 “‘헤아릴 수 없는” 인명피해를 개탄했다. 미망인과 부상병들을 국가가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한 앞날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온 국민이 단호한 자세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국민에게 상기시켰다. “우리는 하나의 전쟁터에서 휴전을 이뤘을 뿐 세계 평화를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경계심을 풀거나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남북전쟁 종식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문을 인용해 미국 역사와 자긍심에 호소하며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갖지 않고 모두에게 너그러움을 갖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단단히 가슴에 새겨 우리가 맡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우리들끼리 그리고 모든 나라와 정당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고 소중히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입시다.”

진 에드워드 스미스가 저서 ‘전쟁과 평화 속 아이젠하워(Eisenhower in War and Peace)’에서 평하듯이 아이젠하워는 ‘한반도에서 3년간의 승산 없는 전쟁을 명예롭고 품위 있게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력에서 아이젠하워의 기준에 못 미치는 듯하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도통한 협상 해결사라는 그의 주장이 힘을 받을 것이다.

- 브루스 디어스타인



※ [필자는 뉴욕주 올배니의 역사가다. 최근 ‘뉴욕의 정신(The Spirit of New York: Defining Events in the Empire State’s History)’을 펴냈다. 이 글은 조지워싱턴대학 역사가 평론 플랫폼 ‘히스토리 뉴스 네트워크’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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