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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주 믿어도 될까] 굳이 불필요한 리스크 떠안지 말라

[남북 경협주 믿어도 될까] 굳이 불필요한 리스크 떠안지 말라

철도·SOC 관련주 주목…실적 반영 미지수인데 기대감에 주가만 급등
판문점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처음 열린 4월 30일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가 22.98포인트 오른 2515.38을 기록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 앞에서 한 딜러가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4월 30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22.98포인트(0.92%) 오른 2515.38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 지수가 2500을 넘은 건 2월 2일(2525.39) 이후 처음이다. 이날 2500 선 돌파를 이끈 건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였다. ‘팔자’를 이어가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4월 26일부터 3거래일 간 2752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특히 관심을 끄는 건 이들이 사들인 종목이다. ‘쇼핑 목록’이 지난해와는 많이 다르다. 정보통신(IT) 주를 편식하던 데서 건설·철강 등으로 이동한 것이다. 4월 30일 유가증권시장에서는 GS건설(8.22%)·대림산업(3.86%)·대우건설(6.72%)·두산건설(10.69%) 등 건설주가 일제히 상승했다. 건설업종지수도 10.19% 올랐다. 포스코도 6.13% 상승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치고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5위를 회복했다. 현대로템(29.93%)·대호에이엘(29.85%) 등 철도주와 현대엘리베이터(10.76%)·현대건설(26.19%) 등 현대그룹주도 급등했다. 이와 달리 SK하이닉스(-2.99%)와 반도체 장비주인 솔브레인(-3.91%), 테스(-3.99%)를 비롯한 IT주는 전반적으로 조정을 받았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외국인에게도 남북 경제협력(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 확 줄어든 데다 철도 등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프라 건설 사업은 대북제재와 별개
남북 경협이 본격화하면 가장 먼저 수혜가 예상되는 업종은 철도·건설·도로·철강 등 사회간접자본(SOC) 업종이다. 특히 북한 육상 수송망의 특징은 주철종도(主鐵從道·철도가 중심이고 도로가 보조)여서 철도 관련 업종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은 화물 수송의 90%, 여객 수송의 62%를 철도가 책임지고 있다. 시멘트도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시멘트의 경우 북한에는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이 많이 매장돼 있지만 시멘트 제조방식이 달라 우리 기업이 북한에서 공사할 때는 남한 시멘트 업체의 제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쌍용양회·한일시멘트 등이 수혜주로 꼽힌다. 또 남북 합의에 따라 철도공사가 진행되면 현대제철 등 철강업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관리사업을 하는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주목받고 있다. KT를 비롯한 통신 업체와 대아티아이 등 시스템 업체도 남북 경협 확대의 수혜주로 꼽힌다. 남북 간 다른 전력방식에 따른 계전반·변압기 제조, 운영 업종도 수혜가 예상된다. 항만공사 역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한라 등 항만 전문 건설사도 주목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북한과의 경협이 가시화하면 그동안 동맥경화 상태였던 전통 산업에 자금이 돌 것”이라며 “도로 등의 인프라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유통과 식음료 사업도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시장에선 남북 관계가 본격적인 개선 움직임을 나타나면 경협주에 투자자들이 더 몰릴 것으로 내다본다. 남북 경협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도 대체로 우호적이다. 구체적인 성과가 가시화하기 전까지는 경협주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주가 상승 모멘텀의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도 최근 “코스피 지수는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며 건설·비료주 등을 추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평가는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당시 관련주의 주가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수혜 예상주의 주가는 정상회담 이전 한 달 동안 상승세를 보이다가 회담 직후 단기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낸 후 다시 반등했다. 경협주는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유사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정상회담 개최 직전 한 달 동안 관련주들이 상승 추세를 나타냈다. 두 번째 정상회담 직후에는 2주 간 상승 랠리가 이어지다가 조정기를 거쳤다. 국내 증시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여겨지는 남북의 긴장 상태가 정상회담을 통해 해소되면서 관련주의 주가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두 차례 모두 정상회담 이후 수개월에서 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그런데 하락의 배경은 남북 정상회담과는 무관하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이른바 ‘닷컴버블’이 붕괴하고 있었고, 뒤이어 국내에서는 카드 사태가 터졌다. 2007년 정상회담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조짐이 시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북 정상회담의 긍정적 분위기가 세계적 규모의 부정적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에 압도당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세계 경제가 일제히 상승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의 3.6%보다 높은 3.7%로 전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은 모두 자국의 경제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연준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을 2.1%에서 2.5%로 상향 조정했고, ECB도 유럽연합(EU)의 GDP 성장 전망을 1.8%에서 2.3%로 올렸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올해 초 “세계 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며 “세계 경제는 ‘동시다발적 팽창(synchronized expansion)’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 이행 가능성 커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이 동해북부선을 연결하고 경의선은 현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힘에 따라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협력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사진은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이 성사됐던 2007년 5월 경의선 열차가 남측 통문을 통과해 북으로 향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정상회담 자체가 갖는 의미도 1차나 2차 때와는 다르다는 평가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5월 2일 기자들과 만나 “남북과 미국 등 관련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과거와 다르다”며 “가장 큰 특징은 과거 합의들보다 (이번 판문점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 가능성이 대단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협주의 실적 개선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이 구체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4·27 판문점 선언에도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1차적으로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나간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가입 준비와 노무현 정부 시절 완성한 용역보고서를 검토하며 남북철도연결사업 준비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남북 철도를 통해 조성될 북한 산업단지와 그를 중심으로 이뤄질 경협에 대한 계획수립 절차에 들어갔으며, 외교부는 OSJD 가입 지원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조선중앙통신은 5월 1일 경제건설에 집중하자는 노동당의 새로운 전략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당·국가·경제·무력기관 간부 연석회의를 4월 30일 평양에서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철도 등 인프라 건설 사업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2375호는 대북 투자 및 합작 사업을 금지하면서도 예외를 뒀다. 18항에서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 인프라 사업’에는 제재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과 북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망이 밝지만 경협주의 급등에 ‘경고’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이 남아있는 데다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 비핵화 구체화 등 변수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종목의 경우 실적 대비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는 분석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경협주가 ‘과속 상태’에 있다며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40여 개의 남북 경협 관련주의 주가가 코스피 대비 초과 수익률이 100%포인트에 육박하는 등 유례없는 과속 상태라는 것이다. 정훈석 연구원은 “남북 해빙 무드로 인한 경제협력 기대감으로 급등세를 보인 종목들은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격언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언제든지 차익 매물이 대거 출회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5월 2일 일부 종목은 차익 매물이 쏟아지면서 급락하기도 했다. 수출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달보다 1.8%포인트 하락한 70.3%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69.9% 이후 9년 만의 최저다. 증권가에선 당초 올 하반기로 예상했던 경기 둔화 시점이 빨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협주 옥석 가려 투자해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남북 경협주 테마에 무조건 휩쓸려서 뇌동매매(雷同賣買)하기보다는 기업 실적을 확인해가면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모멘텀 투자는 삼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팀장은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외교 일정에서 지금의 상황을 뒤집는 반전이 나오면 남북 경협주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남북 경협주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추구하는 투자 전략”라며 “경협주에 투자하더라도 향후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과를 지켜보면서 포트폴리오 비중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경협의 방향에 따라 상승 재료가 있는 업종을 차별화해 투자하라는 얘기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는 “남북 경제 협력을 염두에 두고 섣불리 테마 종목을 찾아봐야 의미 있는 수익률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남들보다 늦게 투자해도 시간은 충분하니 앞다퉈 불필요한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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