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에 압박받는 이스라엘 경제] 가나안의 기적 이뤘지만 팔레스타인과 잦은 무력충돌
[안보에 압박받는 이스라엘 경제] 가나안의 기적 이뤘지만 팔레스타인과 잦은 무력충돌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 이전 후 군사적 충돌 … 팔레스타인과 평화 이뤄야 경제 번영도 가능 지난 5월 14일로 건국 70주년을 맞았던 이스라엘은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이스라엘은 한반도의 약 10분의 1 정도인 2만770㎢(점령지 제외)의 땅에 884만2000명(이스라엘 통계청 2018년 4월 기준)의 인구가 사는 작은 나라다. 유대국가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인 인구 구성에선 658만9000명의 유대인(74.5%)과 184만8000명의 아랍인(20.9%), 그리고 비아랍인 기독교도와 바하이교도 등 기타 인구(4.6%)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이들은 법적으로 모두 이스라엘 국민이다. 이스라엘 통계청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구는 해외 유대인 이주 등으로 30년 후인 2048년엔 152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스라엘 영어신문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는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계 인구는 세계 유대인의 43%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국민은 아니지만 25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 근무자와 아프리카계 이민자도 이스라엘에서 일하고 생활한다. 1948년 건국 당시 인구가 80만6000여 명이었으므로 그동안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1949년에 100만 명을, 58년에 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임에도 경제적으론 선진국이다. 국내 총생산(GDP)이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2018년 전망치로 3737억 달러다. 인구는 세계 96위에 불과하지만 GDP는 세계 33위에 해당한다. 1인당 GDP는 4만2115달러로 세계 20위의 부자 나라다. ‘가나안의 기적’이라고 불려도 충분한 경제적 성과를 거둔 강소국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초엔 사회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공동 생산·분배·생활을 지향하는 집단농장 키부츠는 그 상징이었다. 여기에 더해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해 하이테크 산업도 키워왔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화학상이 6명, 평화상이 3명, 경제학상이 2명, 문학상이 1명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고용인력 1만 명 당 과학기술자 숫자가 140명으로 85명인 미국이나 83명인 일본보다 크게 앞선다.
이스라엘은 창의국가로도 이름 높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해 세계가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상품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방울토마토와 USB 플래시 메모리는 이스라엘에서 처음 나왔다. IBM PC에 사용된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레이저 키보드, 바이러스와 암 억제 효과가 있는 인터페론 단백질, 인터넷 전화 바이버, 전자사전 및 통역도구인 바빌론 등도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농업에서 정보통신(IT), 인공지능(AI)까지 이스라엘은 세계의 창의산업을 이끌고 있다.
GDP를 비롯한 이런 통계와 스토리가 이스라엘의 현재 경제 수준을 말한다면 5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은 미래 경제를 밝히는 횃불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창업국가 반열에 올랐다. 매년 문을 여는 스타트업이 1500개에 이른다. 8시간에 하나씩 창업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2000명 당 1명이 창업에 뛰어들어 인구 대비 창업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특히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사이버 보안·바이오·드론·과학영농 등 첨단기술 분야에선 세계적 수준의 독자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과 수익모델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해외에 인수되면서 이스라엘로 유입되는 외화가 매년 100억 달러가 넘는다. 미국이 국가 안보와 첨단기술 유출 문제로 자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을 막자 중국이 매년 150억 달러 이상을 이스라엘에 투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스타트업 자금을 끌어들이는 ‘투자 진공소제기’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경제는 번성하지만 경계를 맞댄 팔레스타인 국가는 가난을 면치 못한다. 팔레스타인은 1947년 유엔으로부터 건국을 약속받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방랑해왔다. 팔레스타인은 1964년 팔레스타인 해방을 목표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조직해 대이스라엘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으로 이 땅은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됐다.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 재임 1969~2004)가 의장을 맡은 PLO는 여객기 납치와 1972년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기습과 선수 학살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PLO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1991년 11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협상을 위한 마드리드 컨퍼런스 이후 이스라엘과 서방 진영은 테러조직 지정을 해제했다. 1993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 242호에 따라 PLO는 이스라엘의 존립권을 인정했으며, 이스라엘은 결의 338호에 따라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기구로 받아들였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는 1988년 11월 15일 팔레스타인 독립을 선포해 100여개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1994년 9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PLO는 미국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협상해 ‘2국가 공존’을 골자로 한 오슬로합의를 이뤘다. 그 결과 그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고 이는 2013년 정부 전환으로 이뤄졌다. 2012년에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받아들이는 내용의 결의안이 찬성 130표, 반대 9표, 기권 41표, 무효 5표로 통과됐다. 팔레스타인은 현재까지 세계 165개국의 승인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과 서방국가의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미 승인국이지만 팔레스타인 임시수도인 라말라에 연락사무소는 두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영역으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6020㎢의 면적에 455만의 인구가 거주한다. 마땅한 산업이 없어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2900달러 수준인 가난한 나라다. 세계 최빈국에 해당한다. 팔레스타인을 경제적으로 번영시킬 수 있다면 이스라엘은 안보비용을 줄이고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5월 14일이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이라면 이스라엘이 들어선 지역의 아랍인(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하기 시작한 5월 15일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나크바(대재앙의 날)이다 나크바는 해결 조짐을 보이다 말다를 반복하며 주민들을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얽히고설킨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과 중동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스라엘의 경제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화 없이는 추가 번영은 보장하지 못한다. 평화와 번영이 오래 가려면 함께 누려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 상호 발전을 위해선 우선 정치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하는 아라파트 계열의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주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대립하고 있다. 현대 요르단강 서안은 파타가,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분리 통치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미국이 텔아비브에 있던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5월 14일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대규모 시위로 사상자가 줄줄이 발생한 곳도 가자지구와의 경계지역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헌법에 모두 수도로 지정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사실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옮긴 날은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이 70년 전 독립선언을 한 5월 14일이다. 1948년 이날 다비드 벤구리온 당시 세계 시온주의자 협회 의장이 독립선언을 하고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날은 헤브루어로 ‘욤 하츠마우드’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국경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날을 유대인 고유의 헤브루 달력(여덟째 달인 이야르의 제5일)으로 쇠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론 매년 이스라엘에 건국 기념 행사를 여는 날과 날짜가 다르다. 헤브루 달력에 따르면 올해의 이야르 5일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지난 4월 19일이었다. 하루 전날은 ‘욤 하치카론’이라는 이름의 현충일이다. 초기에는 건국기념일엔 독립전쟁 희생자도 기렸는데 축제 분위기 속 추념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분리해 하루 전날로 옮겼다. 이스라엘의 건국기념 행사는 그레고리력으로 이미 4월에 치렀는데 미국은 서구 달력에 맞춰 뒷북을 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스라엘의 일부 유대계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영역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권에 따라 이를 묵인하거나 오히려 지원해왔다. 이는 명백한 영역 침범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의 안정과 상호 공존을 해치는 조치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빙둘러 ‘현대판 게토(과거 유럽의 유대인 격리 지구)’로 비난받는 ‘분리장벽’을 설치했다. 이스라엘 측은 자폭 테러를 막기 위한 보안 장벽으로 부르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인종분리 장벽이라고 비난한다. 발단은 1989년 팔레스타인의 지하드 단체를 비롯한 일부 과격 조직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자폭 테러에 나서면서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2000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2차 인티파다(봉기)를 벌이는 동안 요르단강 서안지구 분리장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일부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이 그린라인으로 부르는 경계선을 넘어와 이스라엘 영내에서 자폭 테러를 벌이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아예 주민들의 이동을 막는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완공된 장벽의 길이는 700㎞가 넘는다.
이는 국제적으로 인권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를 보안 장벽이라고 부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인종분리 장벽, 또는 아파르트헤이트 장벽이라고 비난한다. 팔레스타인 정부와 아랍국가들, 서구의 인권단체 등은 이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이나 요르단강 서안의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거나 이동하는 자유를 제한받는다고 비난한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 장벽이 야생 짐승들의 습격을 막아줄 것”이라는 막말을 하며 장벽을 옹호했다. 하지만 장벽은 갈수록 이스라엘을 다른 세계와 스스로 격리하는 역할을 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더구나 장벽 전체의 15%만 그린라인 위나 이스라엘 영내에 위치하며 85%는 팔레스타인 지역 안에 설치됐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스라엘은 장벽 건설로 자폭 공격이 2000~2003년 7월 73건에서 2003년 8월~2006년 12건으로 줄었다며 장벽을 해체하지도, 추가 건설을 멈추지도 않았다. 장벽과는 별개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는 자폭 공격은 1989년 처음 벌어진 이래 2002년 47건을 정점으로 점차 줄다가 2006년 이후 한해 1~3건으로 거의 사라졌다. 2003년 유엔총회는 분리장벽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44, 반대 4, 기권 12로 통과했다. 국제사법재판소도 분리장벽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이스라엘은 마이동풍이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과잉 진압도 비난을 받는다. 특히 5월 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촉발된 대규모 시위에서 이스라엘 측이 실탄 발사로 맞선 것은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설사 진압 병력이 고무총알을 사용한다고 해도 몸통이나 머리에 맞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때로는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이 시위대와 진압 병력 사이에 끼었다가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해 세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강화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가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군은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현재 이틀째 충돌했다. 이스라엘군은 30일 지난밤 사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로켓탄과 포탄을 이스라엘 남부지역으로 발사했고 이스라엘군은 전투기로 가자지구를 공습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팔레스타인이 발사한 로켓탄과 포탄은 40발 이상이고 상당수는 이스라엘군의 아이언돔 방공시스템에 의해 차단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도 전투기를 동원해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시설 등 25곳을 공습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의 군사적 충돌은 2014년 이른바 ‘50일 전쟁’ 이후 4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의 경제적 번영은 계속 안보 요인에 의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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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GDP 세계 20위의 강소국
이스라엘은 건국 초엔 사회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공동 생산·분배·생활을 지향하는 집단농장 키부츠는 그 상징이었다. 여기에 더해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해 하이테크 산업도 키워왔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화학상이 6명, 평화상이 3명, 경제학상이 2명, 문학상이 1명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고용인력 1만 명 당 과학기술자 숫자가 140명으로 85명인 미국이나 83명인 일본보다 크게 앞선다.
이스라엘은 창의국가로도 이름 높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해 세계가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상품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방울토마토와 USB 플래시 메모리는 이스라엘에서 처음 나왔다. IBM PC에 사용된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레이저 키보드, 바이러스와 암 억제 효과가 있는 인터페론 단백질, 인터넷 전화 바이버, 전자사전 및 통역도구인 바빌론 등도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농업에서 정보통신(IT), 인공지능(AI)까지 이스라엘은 세계의 창의산업을 이끌고 있다.
GDP를 비롯한 이런 통계와 스토리가 이스라엘의 현재 경제 수준을 말한다면 5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은 미래 경제를 밝히는 횃불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창업국가 반열에 올랐다. 매년 문을 여는 스타트업이 1500개에 이른다. 8시간에 하나씩 창업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2000명 당 1명이 창업에 뛰어들어 인구 대비 창업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인구 대비 창업기업 가장 많은 중동의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경제는 번성하지만 경계를 맞댄 팔레스타인 국가는 가난을 면치 못한다. 팔레스타인은 1947년 유엔으로부터 건국을 약속받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방랑해왔다. 팔레스타인은 1964년 팔레스타인 해방을 목표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조직해 대이스라엘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으로 이 땅은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됐다.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 재임 1969~2004)가 의장을 맡은 PLO는 여객기 납치와 1972년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기습과 선수 학살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PLO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1991년 11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협상을 위한 마드리드 컨퍼런스 이후 이스라엘과 서방 진영은 테러조직 지정을 해제했다. 1993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 242호에 따라 PLO는 이스라엘의 존립권을 인정했으며, 이스라엘은 결의 338호에 따라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기구로 받아들였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는 1988년 11월 15일 팔레스타인 독립을 선포해 100여개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1994년 9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PLO는 미국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협상해 ‘2국가 공존’을 골자로 한 오슬로합의를 이뤘다. 그 결과 그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고 이는 2013년 정부 전환으로 이뤄졌다. 2012년에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받아들이는 내용의 결의안이 찬성 130표, 반대 9표, 기권 41표, 무효 5표로 통과됐다. 팔레스타인은 현재까지 세계 165개국의 승인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과 서방국가의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미 승인국이지만 팔레스타인 임시수도인 라말라에 연락사무소는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세계 최빈국 수준
5월 14일이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이라면 이스라엘이 들어선 지역의 아랍인(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하기 시작한 5월 15일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나크바(대재앙의 날)이다 나크바는 해결 조짐을 보이다 말다를 반복하며 주민들을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얽히고설킨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과 중동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스라엘의 경제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화 없이는 추가 번영은 보장하지 못한다. 평화와 번영이 오래 가려면 함께 누려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 상호 발전을 위해선 우선 정치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과 공존을 추구하는 아라파트 계열의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주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대립하고 있다. 현대 요르단강 서안은 파타가,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분리 통치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미국이 텔아비브에 있던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5월 14일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대규모 시위로 사상자가 줄줄이 발생한 곳도 가자지구와의 경계지역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헌법에 모두 수도로 지정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사실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옮긴 날은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이 70년 전 독립선언을 한 5월 14일이다. 1948년 이날 다비드 벤구리온 당시 세계 시온주의자 협회 의장이 독립선언을 하고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날은 헤브루어로 ‘욤 하츠마우드’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국경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날을 유대인 고유의 헤브루 달력(여덟째 달인 이야르의 제5일)으로 쇠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론 매년 이스라엘에 건국 기념 행사를 여는 날과 날짜가 다르다. 헤브루 달력에 따르면 올해의 이야르 5일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지난 4월 19일이었다. 하루 전날은 ‘욤 하치카론’이라는 이름의 현충일이다. 초기에는 건국기념일엔 독립전쟁 희생자도 기렸는데 축제 분위기 속 추념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분리해 하루 전날로 옮겼다. 이스라엘의 건국기념 행사는 그레고리력으로 이미 4월에 치렀는데 미국은 서구 달력에 맞춰 뒷북을 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스라엘의 일부 유대계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영역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권에 따라 이를 묵인하거나 오히려 지원해왔다. 이는 명백한 영역 침범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의 안정과 상호 공존을 해치는 조치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빙둘러 ‘현대판 게토(과거 유럽의 유대인 격리 지구)’로 비난받는 ‘분리장벽’을 설치했다. 이스라엘 측은 자폭 테러를 막기 위한 보안 장벽으로 부르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인종분리 장벽이라고 비난한다. 발단은 1989년 팔레스타인의 지하드 단체를 비롯한 일부 과격 조직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자폭 테러에 나서면서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2000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2차 인티파다(봉기)를 벌이는 동안 요르단강 서안지구 분리장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일부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이 그린라인으로 부르는 경계선을 넘어와 이스라엘 영내에서 자폭 테러를 벌이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아예 주민들의 이동을 막는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완공된 장벽의 길이는 700㎞가 넘는다.
이는 국제적으로 인권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를 보안 장벽이라고 부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인종분리 장벽, 또는 아파르트헤이트 장벽이라고 비난한다. 팔레스타인 정부와 아랍국가들, 서구의 인권단체 등은 이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이나 요르단강 서안의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거나 이동하는 자유를 제한받는다고 비난한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 장벽이 야생 짐승들의 습격을 막아줄 것”이라는 막말을 하며 장벽을 옹호했다. 하지만 장벽은 갈수록 이스라엘을 다른 세계와 스스로 격리하는 역할을 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더구나 장벽 전체의 15%만 그린라인 위나 이스라엘 영내에 위치하며 85%는 팔레스타인 지역 안에 설치됐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스라엘은 장벽 건설로 자폭 공격이 2000~2003년 7월 73건에서 2003년 8월~2006년 12건으로 줄었다며 장벽을 해체하지도, 추가 건설을 멈추지도 않았다. 장벽과는 별개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는 자폭 공격은 1989년 처음 벌어진 이래 2002년 47건을 정점으로 점차 줄다가 2006년 이후 한해 1~3건으로 거의 사라졌다. 2003년 유엔총회는 분리장벽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44, 반대 4, 기권 12로 통과했다. 국제사법재판소도 분리장벽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이스라엘은 마이동풍이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과잉 진압도 비난을 받는다. 특히 5월 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촉발된 대규모 시위에서 이스라엘 측이 실탄 발사로 맞선 것은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설사 진압 병력이 고무총알을 사용한다고 해도 몸통이나 머리에 맞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때로는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이 시위대와 진압 병력 사이에 끼었다가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해 세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강화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가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과 잦은 충돌로 국가 이미지 나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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