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9) 안영, 말로 상대를 이기는 법] 공자도 존경한 춘추시대 대표적 명재상
[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9) 안영, 말로 상대를 이기는 법] 공자도 존경한 춘추시대 대표적 명재상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깨우치게 만들어… 외교에서도 탁월한 말솜씨 발휘 제나라 임금 경공(景公)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믿고 의지하던 재상이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놀란 경공은 직접 수레를 몰고 재상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재상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선생께서 밤낮으로 과인을 꾸짖어 주셨는데 과인이 부족한 탓에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그 죄를 물어 과인 곁에서 선생을 데려가시는군요. 이제 이 나라는 어찌합니까? 우리 백성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옆에 있던 신하가 예에 벗어난다며 만류하자 경공은 말했다. “예는 무슨 예를 따지는가? 선생께서는 하루에 몇 번이라도 과인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셨다. 앞으로 누가 있어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는가? 내가 선생을 잃었으니 나 또한 곧 망할 것인데, 이런 마당에 무슨 예를 따진단 말인가?” 이처럼 경공이 사별을 애통해마지 않은 사람은 안영(晏嬰), 역사에서 안자(晏子)라고 불린다. 지난 번에 다룬 정나라 자산(子産)과 더불어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이며 공자로부터도 깊은 존경을 받았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오늘날 안자가 살아계신다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그 분을 흠모한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인품과 명망, 업적은 탁월했다.
더욱이 안영은 말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촌철살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고, 단번에 핵심을 짚어내며 상황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유려한 말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어 주었고, 스스로 깨우치고 움직이도록 했다. 이번 회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그의 ‘말’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먼저 제나라 영공(靈公) 때의 일이다. 영공은 궁녀에게 남자 옷을 입혀 놓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이 소문이 퍼져 민간에서도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이 유행이 되자 영공은 이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영공의 지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영공이 짜증을 내자 안영은 이렇게 답했다. “임금께서는 궁궐 안 여인들에게는 여전히 남장을 시키시면서 궁궐 밖 백성들에게만 금하고 계십니다. 이는 마치 밖에는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속임수입니다. 민간의 남장을 금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선 궐 안 여인들의 남장부터 금지하십시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안영은 경공이 그를 재상에 임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약한다. 본래 경공은 술과 음악, 사냥을 좋아했고 나태해 방종한 일도 잦았다. 만약 안영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으리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경공은 최소한 안영이 직언을 올리면 반성할 줄 알았다. 당장은 기분 나빠하더라도 이내 고치곤 했다. 경공에게 정치를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안영이 현명하게 그를 보좌했기 때문이다.
안영은 경공이 과오를 범하더라도 곧바로 질책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한번은 경공이 7일 밤낮을 그치지 않고 술을 마시자 현장이라는 신하가 바른 말을 올렸다. “어찌 이레 밤낮이나 그렇게 마구 술을 드신단 말입니까? 임금께서는 술을 그만 드시던지 아니면 신에게 죽음을 내려주옵소서.” 이 말을 들은 경공은 안영에게 상의했다. “과인이 현장의 말을 들어주면 이는 신하에게 제압당하는 꼴이고, 그렇다고 들어주지 않으면 현장을 죽여야 하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안영이 답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현장이 이렇듯 어지신 임금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걸이나 주(폭군의 대명사) 같은 군주를 만났더라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 아닙니까?” 경공은 그 자리에서 술자리를 폐하고 현장을 방면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경공이 궁궐 밖으로 사냥을 가서 18일이나 돌아오지 않자 안영이 임금을 찾아 나섰다. 돌아가자고 청하는 안영에게 경공은 말한다. “나라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과인은 선생을 비롯하여 다섯 신하에게 각각의 소임을 맡겼습니다. 과인이 심장이라면 이들은 나의 팔다리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팔다리가 모두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인이 안심하고 편안함을 좀 즐긴들 이게 뭐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안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팔다리 보고 심장 없이 열여드레나 떨어져 있으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긴 시간이 아닙니까?” 경공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환궁했다. 경공이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병들어 죽게 했다며 관리자를 처형하려 들었을 때에도 안영이 나섰다. “저 자는 자신이 무거운 죄를 지었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전하를 위해 저 자의 죄를 분명히 밝히겠습니다.” 경공은 좋다며 허락했다. 안영은 관리자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그까짓 말 한 마리 때문에 임금이 사람을 죽이려 들게 만들었다. 백성이 이를 듣는다면 임금을 원망할 것이며, 제후들이 듣는다면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이것이 너의 죄다.” 그러자 경공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고 한다. “풀어주시오! 저 자를 풀어주시오! 제발 나의 인(仁)을 손상시키지 마시오.”
이 밖에도 안영은 경공이 우연히 만난 굶주린 노인을 불쌍해하고, 또 어린 새를 잡았다가 가련하다면서 놓아주자 성군(聖君)의 도를 알고 계시다며 칭찬했다. 경공이 우쭐해하자 안영은 “임금께서 저렇게 한 사람의 노약(老弱)한 자도 불쌍히 여기시니 어렵고 힘든 모든 백성들을 가련히 여기시지 않겠습니까?” “임금의 은혜가 작은 새에게도 미쳤는데 하물며 백성에게야 오죽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경공은 멋쩍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신하들을 소집해 백성을 보살필 세세한 대책을 마련하게 했다.
요컨대 안영은 경공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부드러운 말로 그를 일깨워줌으로써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만약 그가 경공의 잘못을 엄하게 비판하고 책망했더라면 경공은 분명히 그를 어려워하고 멀리했을 것이다. 실수를 바로잡고 더 나아지려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영 또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안영의 말솜씨는 외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는 제나라의 기를 꺾고자 안영을 조그만 쪽문으로 지나가게 했다. 그러자 안영은 거부하며 말한다. “내가 개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면 당연히 개구멍으로 들어갈 터이지만 나는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니 이런 문으로 들어갈 수 없소.” 안영을 강제로 그 문으로 들였다가는 초나라가 개나라임을 자인하는 꼴이 된 것이다. 초나라 왕이 안영을 보고 “제나라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소? 어찌 그대와 같은 자를 사신으로 보내는가?”라고 하였을 때도 안영은 “저희 제나라는 사신을 임명할 때 상대 나라의 임금에 맞추어 정합니다. 상대 임금이 어질 때는 어진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고 상대 임금이 불초할 때는 불초한 사람을 사신으로 보냅니다. 저는 초나라 사신으로 가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초나라 왕은 말문이 막혔다. 안영을 비하했다가는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되니 말이다. 초나라에서의 일화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지난번에 당한 것이 못내 분했던 초나라 왕은 안영을 골탕 먹이기 위해 꾀를 꾸몄다. 안영을 위해 베푼 연회에 죄인을 끌고 오게 한 초나라 왕은 짐짓 모르는 일이라는 듯 묻는다. “저 자는 무슨 일로 잡아왔는가?” 신하가 답했다. “제나라에서 온 자인데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초나라 왕은 안영을 보며 말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나 보오?” 안영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제가 듣기로 귤나무가 회수(淮水) 남쪽에 가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 가면 탱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잎만 비슷할 뿐 열매 맛은 다르지요. 물과 토양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백성이 제나라에서 사는 한 그는 도둑질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했다니, 궁금하군요. 이 나라의 풍토가 사람을 도둑질하게 바꾸는 것은 아닌지요?” 얼굴이 붉어진 초나라 왕은 안영에게 사과했다고 한다(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안영은 말로써 상대의 승복을 이끌어냈다. 그가 현란한 말솜씨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단지 적절한 비유를 통해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하고, 말의 빈틈을 이용해 역공하여 상대가 할 말이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말로 상대를 이기려면 목소리를 높여 싸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epilogue
경공에게는 총애하던 양구거(梁丘據)라는 신하가 있었다. 경공이 “이 두 사람(재상 안영과 총사령관 사마양저)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으며, 이 한 사람(양구거)이 없었다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즐길 수 있으리오?”라고 말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양구거는 경공의 비위를 잘 맞춰주며 임금의 유흥과 오락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안영은 이런 양구거를 내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경공 같은 임금은 어느 정도 일탈을 허용해줘야 삐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구거가 못마땅하기는 했던 것 같다. 머리가 똑똑하고 나름 능력도 괜찮은 인물이 임금을 노는 데로만 이끌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는 양구거가 “저는 죽을 때까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안영은 이렇게 답한다. “행동하는 자는 언제나 성취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끝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항상 움직이며 포기하지 않고, 항상 실천하며 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께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어찌 저 따위에게 미치지 못한단 말입니까?” 행동하는 자는 성취하게 마련이고 걷는 자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한다. 안영의 좌우명이자 당부를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 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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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마부라도 좋을 만큼 안영 흠모”
더욱이 안영은 말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촌철살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고, 단번에 핵심을 짚어내며 상황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유려한 말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어 주었고, 스스로 깨우치고 움직이도록 했다. 이번 회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그의 ‘말’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먼저 제나라 영공(靈公) 때의 일이다. 영공은 궁녀에게 남자 옷을 입혀 놓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이 소문이 퍼져 민간에서도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이 유행이 되자 영공은 이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영공의 지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영공이 짜증을 내자 안영은 이렇게 답했다. “임금께서는 궁궐 안 여인들에게는 여전히 남장을 시키시면서 궁궐 밖 백성들에게만 금하고 계십니다. 이는 마치 밖에는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속임수입니다. 민간의 남장을 금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선 궐 안 여인들의 남장부터 금지하십시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안영은 경공이 그를 재상에 임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약한다. 본래 경공은 술과 음악, 사냥을 좋아했고 나태해 방종한 일도 잦았다. 만약 안영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으리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경공은 최소한 안영이 직언을 올리면 반성할 줄 알았다. 당장은 기분 나빠하더라도 이내 고치곤 했다. 경공에게 정치를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안영이 현명하게 그를 보좌했기 때문이다.
안영은 경공이 과오를 범하더라도 곧바로 질책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한번은 경공이 7일 밤낮을 그치지 않고 술을 마시자 현장이라는 신하가 바른 말을 올렸다. “어찌 이레 밤낮이나 그렇게 마구 술을 드신단 말입니까? 임금께서는 술을 그만 드시던지 아니면 신에게 죽음을 내려주옵소서.” 이 말을 들은 경공은 안영에게 상의했다. “과인이 현장의 말을 들어주면 이는 신하에게 제압당하는 꼴이고, 그렇다고 들어주지 않으면 현장을 죽여야 하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안영이 답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현장이 이렇듯 어지신 임금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걸이나 주(폭군의 대명사) 같은 군주를 만났더라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 아닙니까?” 경공은 그 자리에서 술자리를 폐하고 현장을 방면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경공이 궁궐 밖으로 사냥을 가서 18일이나 돌아오지 않자 안영이 임금을 찾아 나섰다. 돌아가자고 청하는 안영에게 경공은 말한다. “나라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과인은 선생을 비롯하여 다섯 신하에게 각각의 소임을 맡겼습니다. 과인이 심장이라면 이들은 나의 팔다리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팔다리가 모두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인이 안심하고 편안함을 좀 즐긴들 이게 뭐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안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팔다리 보고 심장 없이 열여드레나 떨어져 있으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긴 시간이 아닙니까?” 경공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환궁했다.
경공의 특성 잘 파악해 진언
이 밖에도 안영은 경공이 우연히 만난 굶주린 노인을 불쌍해하고, 또 어린 새를 잡았다가 가련하다면서 놓아주자 성군(聖君)의 도를 알고 계시다며 칭찬했다. 경공이 우쭐해하자 안영은 “임금께서 저렇게 한 사람의 노약(老弱)한 자도 불쌍히 여기시니 어렵고 힘든 모든 백성들을 가련히 여기시지 않겠습니까?” “임금의 은혜가 작은 새에게도 미쳤는데 하물며 백성에게야 오죽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경공은 멋쩍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신하들을 소집해 백성을 보살필 세세한 대책을 마련하게 했다.
요컨대 안영은 경공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부드러운 말로 그를 일깨워줌으로써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만약 그가 경공의 잘못을 엄하게 비판하고 책망했더라면 경공은 분명히 그를 어려워하고 멀리했을 것이다. 실수를 바로잡고 더 나아지려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영 또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안영의 말솜씨는 외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는 제나라의 기를 꺾고자 안영을 조그만 쪽문으로 지나가게 했다. 그러자 안영은 거부하며 말한다. “내가 개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면 당연히 개구멍으로 들어갈 터이지만 나는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니 이런 문으로 들어갈 수 없소.” 안영을 강제로 그 문으로 들였다가는 초나라가 개나라임을 자인하는 꼴이 된 것이다. 초나라 왕이 안영을 보고 “제나라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소? 어찌 그대와 같은 자를 사신으로 보내는가?”라고 하였을 때도 안영은 “저희 제나라는 사신을 임명할 때 상대 나라의 임금에 맞추어 정합니다. 상대 임금이 어질 때는 어진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고 상대 임금이 불초할 때는 불초한 사람을 사신으로 보냅니다. 저는 초나라 사신으로 가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초나라 왕은 말문이 막혔다. 안영을 비하했다가는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되니 말이다.
적절한 비유, 빈틈 활용해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안영은 말로써 상대의 승복을 이끌어냈다. 그가 현란한 말솜씨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단지 적절한 비유를 통해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하고, 말의 빈틈을 이용해 역공하여 상대가 할 말이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말로 상대를 이기려면 목소리를 높여 싸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epilogue
경공에게는 총애하던 양구거(梁丘據)라는 신하가 있었다. 경공이 “이 두 사람(재상 안영과 총사령관 사마양저)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으며, 이 한 사람(양구거)이 없었다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즐길 수 있으리오?”라고 말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양구거는 경공의 비위를 잘 맞춰주며 임금의 유흥과 오락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안영은 이런 양구거를 내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경공 같은 임금은 어느 정도 일탈을 허용해줘야 삐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구거가 못마땅하기는 했던 것 같다. 머리가 똑똑하고 나름 능력도 괜찮은 인물이 임금을 노는 데로만 이끌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는 양구거가 “저는 죽을 때까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안영은 이렇게 답한다. “행동하는 자는 언제나 성취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끝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항상 움직이며 포기하지 않고, 항상 실천하며 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께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어찌 저 따위에게 미치지 못한단 말입니까?” 행동하는 자는 성취하게 마련이고 걷는 자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한다. 안영의 좌우명이자 당부를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 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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