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가 만난 사람(9) 김장열 전 식약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정권 바뀌었다고 식약처장도 바꿀 필요야”
[이필재가 만난 사람(9) 김장열 전 식약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정권 바뀌었다고 식약처장도 바꿀 필요야”
공무원으로 스카우트된 해외 전문가…미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로 귀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3개월입니다. 수장이 이렇게 자주 바뀌면 조직의 비전을 설정하기도, 정책을 제대로 펴기도 어려워요.” 김장열 전 식약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미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수장은 9~10년씩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일한다”고 말했다.
“국민 건강 문제를 책임지는 전문가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꼭 바꿔야 하나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PR(Public Relations)을 가르치던 김 전 국장은 박근혜 정부 때 민간 스카우트제를 통해 식약처에 임용돼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몸담았다. 지난 2년 간 식품·의약품과 관련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홍보를 총괄하는 한편 식약처의 조직 내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시스템 구축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의 공무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저는 대체로 우수하다고 봅니다. 우수한 반면 커뮤니케이션은 잘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맡은 업무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 흔히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용어로 설명하죠.”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협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요?
“정부는 방향만 제시하고 대부분의 기능을 민간에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기능이 이양됐을 때 정부와 민간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안 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한 기업인이 ‘책임’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뭐가 잘못되거나 사고가 나면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는 거죠?
“잘못됐는데 담당 공무원에게 정부가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게 문제죠. 공무원이 책임을 두려워하는 건 감사를 의식해서입니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권한 위임이 잘 이뤄지지 않는 공직사회의 풍토와도 관계가 있어요. 문화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공무원은 국민을 보고 일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상사의 말이 더 중요한 거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공직사회가 좀 변했나요?
“분위기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변화가 많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바뀌면 새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코드를 맞추려 애씁니다. 감명을 받을 정도에요. 예를 들어 지난 정부 때 창조란 말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혁신이라는 말을 많이 쓰려고 하죠. 관료 조직은 역사가 유구한 조직입니다.”
소통이라는 면에서 달라진 건 없나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흔히 불통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통은 대화를 하려 열심히 노력하지만 대화가 안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는 당시 불통이 아니라 불신이 문제였다고 봐요. 사람들을 믿지 않은 거죠. 저는 한국 사회의 많은 갈등이 이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정부·국회·시민단체·기업이 서로 신뢰하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단적으로 제가 식약처에 있던 지난 6월 궐련형 전자담배의 배출물에서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포름알데히드·벤젠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담배 제조사인 필립모리스의 자체 분석 결과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신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전부 박사인 식약처 연구직 구성원들이 밤을 새워 분석한 결과예요. 반면 미국의 경우 FDA가 무슨 발표를 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을 쌓아야 합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둘러싸고 개혁 조급증, 개혁 피로증 두 시각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영 대립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요?
“적폐청산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됐으면 영·정조 시대처럼 탕평책을 써야 합니다. 코드 인사, 보은 인사가 지속되면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 정부도 결국 인재풀을 넓히지 못해 잘못됐다고 봅니다.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이 정부는 태생적으로 여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여론에 휘둘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대기업 오너가의 ‘갑질’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서는 직원들이 오너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나요?
“그룹 차원에서 위기관리를 잘해야죠. 오너가 전횡을 못하도록 역할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입니다. 직원들도 중요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거리에 나와 ‘오너는 물러나라’고 외치는 건 과해요.”
PR의 요체가 뭔가요?
“사안마다 이해관계자 간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간극을 좁혀나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단적으로 정부는 시민단체의 입장을 알아야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 있죠. 결국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를 해야 합니다. 이해관계자가 소수라 하더라도 이들의 지적이 맞고 해당 부처의 입장이 잘못됐다면 공무원이 바뀌어야죠. 강자가 더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김 전 국장은 7월 하순 출국해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199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PR협회가 인증하는 PR전문가(APR)가 됐고 10년 후 역시 한국인 최초로 ‘컬리지 오브 펠로(College of Fellows)’에 선정됐다. 코오롱 출신으로, 국내 최초의 PR 컨설팅 회사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거쳐 ‘코콤포터노벨리’라는 PR 회사를 창업한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몸담았다. 그는 이런 변신 중 계획된 것은 유학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회가 닥쳤을 때 필요하다, 해보면 좋겠다, 해 볼만 하겠다 싶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2년 전 식약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됐을 때처럼 소명 의식 같은 것을 느꼈을 때도 있었죠.”
그는 재임 중 성과로 물티슈, 나무젓가락, 기저귀, 이쑤시개 등을 통합관리하는 위생용품관리법을 통과시켜 현재 시행 중인 것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식약처의 이미지 개선에 가상 현실(VR) 및 증강현실(AR) 콘텐트, 크라우드 소싱 등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을 꼽았다.
“위생용품관리법은 부처 간 이견 등으로 18년 이상 공전했는데 운 좋게 저의 재임 중 결실을 봤습니다. VR를 활용한 웹드라마는 불량식품 단속 과정을 담았는데 부천국제영화제 뉴미디어 부문에 정식 초청을 받았고 식중독균을 잡는 AR 게임은 포르투갈 식약청이 요청해 포르투갈어 버전을 만들어 줬죠. 크라우드 소싱 프로그램은 대학생 등 약 100명이 식의약 어벤저스로 참여했습니다.” 어벤저스는 일반적인 서포터즈와 달리 좋은 뉴스도 전하지만 비판적인 피드백도 한다. 그는 “식약처 각 사업국이 대변인실 배포 보도자료보다 효과가 더 크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공무원들이 책임 소재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처엔 불리하지만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라면 당연히 벌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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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 문제를 책임지는 전문가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꼭 바꿔야 하나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PR(Public Relations)을 가르치던 김 전 국장은 박근혜 정부 때 민간 스카우트제를 통해 식약처에 임용돼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몸담았다. 지난 2년 간 식품·의약품과 관련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홍보를 총괄하는 한편 식약처의 조직 내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시스템 구축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의 공무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저는 대체로 우수하다고 봅니다. 우수한 반면 커뮤니케이션은 잘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맡은 업무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 흔히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용어로 설명하죠.”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협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요?
“정부는 방향만 제시하고 대부분의 기능을 민간에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기능이 이양됐을 때 정부와 민간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안 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한 기업인이 ‘책임’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뭐가 잘못되거나 사고가 나면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는 거죠?
“잘못됐는데 담당 공무원에게 정부가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게 문제죠. 공무원이 책임을 두려워하는 건 감사를 의식해서입니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권한 위임이 잘 이뤄지지 않는 공직사회의 풍토와도 관계가 있어요. 문화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공무원은 국민을 보고 일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상사의 말이 더 중요한 거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공직사회가 좀 변했나요?
“분위기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변화가 많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바뀌면 새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코드를 맞추려 애씁니다. 감명을 받을 정도에요. 예를 들어 지난 정부 때 창조란 말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혁신이라는 말을 많이 쓰려고 하죠. 관료 조직은 역사가 유구한 조직입니다.”
소통이라는 면에서 달라진 건 없나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흔히 불통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통은 대화를 하려 열심히 노력하지만 대화가 안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는 당시 불통이 아니라 불신이 문제였다고 봐요. 사람들을 믿지 않은 거죠. 저는 한국 사회의 많은 갈등이 이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정부·국회·시민단체·기업이 서로 신뢰하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단적으로 제가 식약처에 있던 지난 6월 궐련형 전자담배의 배출물에서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포름알데히드·벤젠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담배 제조사인 필립모리스의 자체 분석 결과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신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전부 박사인 식약처 연구직 구성원들이 밤을 새워 분석한 결과예요. 반면 미국의 경우 FDA가 무슨 발표를 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을 쌓아야 합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둘러싸고 개혁 조급증, 개혁 피로증 두 시각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영 대립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요?
“적폐청산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됐으면 영·정조 시대처럼 탕평책을 써야 합니다. 코드 인사, 보은 인사가 지속되면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 정부도 결국 인재풀을 넓히지 못해 잘못됐다고 봅니다.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이 정부는 태생적으로 여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여론에 휘둘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대기업 오너가의 ‘갑질’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서는 직원들이 오너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나요?
“그룹 차원에서 위기관리를 잘해야죠. 오너가 전횡을 못하도록 역할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입니다. 직원들도 중요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거리에 나와 ‘오너는 물러나라’고 외치는 건 과해요.”
PR의 요체는 역지사지
PR의 요체가 뭔가요?
“사안마다 이해관계자 간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간극을 좁혀나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단적으로 정부는 시민단체의 입장을 알아야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 있죠. 결국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를 해야 합니다. 이해관계자가 소수라 하더라도 이들의 지적이 맞고 해당 부처의 입장이 잘못됐다면 공무원이 바뀌어야죠. 강자가 더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김 전 국장은 7월 하순 출국해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199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PR협회가 인증하는 PR전문가(APR)가 됐고 10년 후 역시 한국인 최초로 ‘컬리지 오브 펠로(College of Fellows)’에 선정됐다. 코오롱 출신으로, 국내 최초의 PR 컨설팅 회사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거쳐 ‘코콤포터노벨리’라는 PR 회사를 창업한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몸담았다. 그는 이런 변신 중 계획된 것은 유학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회가 닥쳤을 때 필요하다, 해보면 좋겠다, 해 볼만 하겠다 싶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2년 전 식약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됐을 때처럼 소명 의식 같은 것을 느꼈을 때도 있었죠.”
그는 재임 중 성과로 물티슈, 나무젓가락, 기저귀, 이쑤시개 등을 통합관리하는 위생용품관리법을 통과시켜 현재 시행 중인 것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식약처의 이미지 개선에 가상 현실(VR) 및 증강현실(AR) 콘텐트, 크라우드 소싱 등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을 꼽았다.
“위생용품관리법은 부처 간 이견 등으로 18년 이상 공전했는데 운 좋게 저의 재임 중 결실을 봤습니다. VR를 활용한 웹드라마는 불량식품 단속 과정을 담았는데 부천국제영화제 뉴미디어 부문에 정식 초청을 받았고 식중독균을 잡는 AR 게임은 포르투갈 식약청이 요청해 포르투갈어 버전을 만들어 줬죠. 크라우드 소싱 프로그램은 대학생 등 약 100명이 식의약 어벤저스로 참여했습니다.” 어벤저스는 일반적인 서포터즈와 달리 좋은 뉴스도 전하지만 비판적인 피드백도 한다. 그는 “식약처 각 사업국이 대변인실 배포 보도자료보다 효과가 더 크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공무원들이 책임 소재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처엔 불리하지만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라면 당연히 벌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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