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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10) |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빅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이필재가 만난 사람(10) |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빅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드립 기구 겸용 텀블러 ‘샤블리에’로 1회용 커피 문화 바꾸기에 도전장
사진:전민규 기자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커피의 문화가 바뀝니다. 문화가 바뀌어야 세계가 바뀌죠. 세계적으로 해마다 버려지는 종이컵이 연간 600억개라고 합니다. 이 많은 종이컵을 만드느라 해마다 멀쩡한 나무 2000만 그루를 잘라야 한대요.”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은 “핸드 드립 기구 겸용의 텀블러 ‘샤블리에’로 모래시계 뒤집듯 지구적인 1회용 커피 문화를 ‘전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뒤집는다는 건 바꾸는 것이다. 그는 연간 지구적으로 버려지는 종이컵을 쌓으면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사이즈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된 나무를 자르는 시간은 1분도 안 걸린다. 다시 심고 기르기도 어렵지만 복원에 다시 100년이 걸린다. “디자이너는 사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경험과 습관, 생활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커피 문화를 바꾸는 데 디자이너 김영세가 그동안 축적한 역량의 총화를 쏟아 부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은 어쩌면 이 일을 하기 위한 코스워크였다고도 할 수 있어요.”
 휴대 간편하고 경제적·친환경적
드립 기구 겸용 텀블러 ‘샤블리에’. / 사진:이노디자인 제공
샤블리에는 불어로 모래시계다. 모래시계처럼 생겼다. 아니 모래시계처럼 손에 잡히도록 그가 디자인했다. 모래시계처럼 뒤집어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샤블리에 윗덮개를 열어 드립 기구에 커피를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고서 3~5분 후 모래시계처럼 뒤집으면 텀블러가 된다. 이때 위를 향한 밑덮개를 열고 드립 커피를 마시면 된다. 세상에 없던 제품 샤블리에는 경제적이다. 샤블리에의 가격은 6만원이지만 샤블리에 전용 커피백은 500원이다. 커피값이 프랜차이즈 커피점 커피 가격의 10분의 1 안팎이다.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다. 전기 등 어떤 에너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텀블러인 만큼 당연히 휴대가 간편하다.

샤블리에는 제조원도, 판매원도 샤블리에다. 김 회장이 종이컵이든, 플라스틱 컵이든 1회용 용기에 담아 마신 후 용기를 버리는 오래된 커피 문화를 바꾸려 이노디자인의 자회사로 샤블리에라는 이름의 별도 회사를 차렸다. 디자이너 출신의 기업인이 친환경적 커피 비즈니스를 디자인한 셈이다.



어떻게 뒤집어 사용하는 텀블러를 만들 생각을 했나요?


“커피를 좋아합니다. 2년 전 어느 주말에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다가 문득 드립 기구를 통으로 디자인해 드립부터 마시는 것까지 전 과정을 통 하나로 해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드립 기구 겸용 텀블러죠. 이 아이디어를 바로 종이에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어요. 통을 뒤집을 생각을 하니 모래시계가 연상됐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곧바로 그림으로 옮겨봐야 직성이 풀리죠.”

인터뷰 전날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샤블리에를 미국에서도 론칭했고 아마존에도 1주일 전 올라갔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국민은 다 잠재적 고객이죠. 샤블리에 몸체에 ‘커피 앤 티 텀블러’라고 프린트돼 있습니다.” 샤블리에가 출생한 스토리는 2000년 대 초 김영세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MP3 플레이어 N10을 그가 디자인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이노디자인 USA의 거점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일이다. 서울에 출장 와 스타벅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지나는 젊은 여성이 목에 건 MP3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검정색의 무거워 보이는 투박한 것을 목에 걸고 있었다. ‘목걸이형으로 디자인해 거기에 이어폰 줄을 집어넣으면 어떨까?’ 그는 냅킨을 펼쳐 스케치를 시작했다. 세계 첫 목걸이형 MP3 플레이어인 아이리버의 N10은 이렇게 세상에 들어왔다. N10 이후 ‘소리 나는 목걸이’는 대세가 됐다. 사람들이 음악 듣는 습관을 바꿔놓은 그가 이제 커피 마시는 문화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려 하는 것이다.



점심 때 자장면을 먹어도 플라스틱 컵에 든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손에 드는 게 직장인 문화로 굳어졌습니다. 샤블리에를 통해 과연 텀블러 사용 문화가 널리 확산될까요?


“젊은 세대가 주도해 낙후된 커피 문화를 친환경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5000원짜리 커피를 1회용 플라스틱 컵에 마시면 플라스틱 처리 비용이 플러스 알파로 드는 거예요. 지구적인 골칫거리인 1회용품 쓰레기를 커피 소비로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죠. 이를 위해 굿바이 페이퍼 컵스-종이컵 안녕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샤블리에가 올린 수익의 일부를 환경단체에 기부합니다. 식수 오염지역을 살리려는 비영리사단법인 오픈 핸즈 등이죠. 이노디자인으로서는 디자인으로 지구를 구하고 살리는 시도예요.” 플라스틱이 자연 분해되는 데는 약 500년이 걸릴 것으로 학자들은 추산한다.



어쨌거나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나요?


“커피 애호가로서 물에 타서 마시는 믹스커피는 음료수이지 커피가 아니라고 봅니다. 모름지기 커피는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마셔야죠. 내리는 과정이 커피를 즐기는 문화의 일부입니다. 드립 커피는 3~5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일종의 슬로우 푸드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 40년 간 스타벅스가 주도한 1회용 컵 커피 문화를 샤블리에를 통해 바꿔 보려 합니다.”

세계환경의 날이었던 지난 6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오늘 하루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하루를 보냈는데 참 좋더라’라는 경험이 우리에게 남았으면 좋겠다”며 플라스틱 없는 하루를 제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텀블러와 에코백을 나줘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공해는 죽음으로 가는 완행열차”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샤블리에를 창안한 디자이너이자 샤블리에라는 기업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샤블리에는 미국의 킥스타터를 통해 아마존에 진입했다. 국내에선 이노디자인의 자회사인 DXL(Design Accelerator Lab)이 주선해 와디즈를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다. 올린 후 1시간 반 만에 목표액 1000만원을 달성했다.
 껍데기로서의 디자인 시대 지나
그는 디자이너 출신 기업가로서 샤블리에를 통해 일종의 공유경제를 실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껍데기로서의 디자인은 가라’죠.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 이상 상품의 포장이 아닙니다. 샤블리에의 유저가 누리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샤블리에를 만드는 생산자 및 판매자, 커피·차 재배 농가 모두 우리의 파트너입니다. 샤블리에용 커피는 한국·미국 등 현지에서 생산합니다. 샤블리에를 사용하는 나라들에서 커피를 조달하고 이들 나라에 영업 기회도 제공하겠다는 거죠. 이런 콜라보가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은 제3세계 커피 농가에 제값을 지불하는 공정무역 커피에 관심들이 많습니다.


“그런 윤리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의 재능과 재산을 쏟아 부어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창조하는 사람이 기업가입니다. 오랫동안 디자인이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비즈니스야말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타인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 같은 타자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친환경 비즈니스를 해 보려는 거예요. 기업가는 이해관계자와의 콜라보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으로써 돈도 벌고 갈채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착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저는 샤블리에도 사회적 기업이라고 봅니다.”

그는 샤블리에를 론칭하며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30년 전 모교인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생활을 접고 맨땅에 헤딩 하듯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을 설립했습니다. 그 시절 나를 움직인 건 어떤 예감이었어요. 그 예감이 다시 작동하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이노디자인을, 회사를 디자인하는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어요. 샤블리에는 직접 창업했지만, DXL을 통해 국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디자인과 펀딩을 지원하고 있죠. 지난 1년 간 10개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창업자들은 30대 중후반으로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아이리버 세대라고 주장합니다. 고교·대학 시절 아이리버를 통해 김영세를 알게 됐다고 하더군요. N10을 지금도 애용하는 친구도 있어요. 이들 젊은이는 아이리버 제품 디자인을 접하고 그 제품들을 애용하면서 나중에 아이리버 같은 회사를 만드는 꿈을 키웠습니다. 내일도 그런 젊은이들이 투자를 받으려 몇 십 명 옵니다. 샤블리에가 친자식이라면 이들 스타트업은 입양자라고 할 수 있죠.”



그 젊은이들을 김영세 키즈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펀딩할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뭔가요?


“나의 경험과 능력이 그 회사에 플러스 알파가 돼야 합니다. 주관적인 기준이죠.”



그동안 디자인과 펀딩을 지원한 회사의 주요 제품은 어떤 건가요?


“전기 자전거, 라스베가스서 열린 CES에서 인기를 끈 디지털 저울, 곧 생산에 들어가는 전동 보드 등이죠. 매년 10개사씩 지원하고, 앞으로 더 늘리려 합니다. 장차 이렇게 키운 회사를 실리콘밸리에 진출시키는 꿈을 꿉니다. 이노디자인은 본사가 실리콘밸리에 있어, 실리콘밸리 현장에 미국 진출의 기반을 갖고 있는 회사예요.”

그는 10년 전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슬라이딩 컴팩트를 디자인했다. 세계 최초이자 지금도 유일한, 한 손으로 밀어서 여는 컴팩트이다. 뚜껑에 거울이 달려 거울을 보기 위해 뚜껑을 열 필요도 없다. 의뢰를 받은 게 아니라 그가 제안해 탄생한 디자인이다. 매출에 대한 기여는 물론 아모레의 위상을 높인 이 디자인에 대해 그는 ‘빅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제품이 디자이너의 상상에 의해 창출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디자이너의 창조 덕에 사용자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 전기에 ‘디자이너로 하여금 디자인하게 하고 그 물건을 엔지니어가 만들게 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빅 디자인적 발상이죠. 이런 발상의 가치를 부동의 1위 기업 애플이 성과로 입증했고요. 이 시대 디자인은 모든 상품 개발의 첫 장입니다. 빅 데이터와 만나 빅 데이터 가공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죠. 앞으로 기업인은 빅 디자인 개념으로 회사를 경영해야 합니다.”

김 회장은 평창올림픽의 성화대와 성화봉을 디자인했다. 그 성화봉을 들고 네 번째 주자로 성화 봉송도 했다. “가문의 영광이죠. 상업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5년 전 디자인한 국립중앙관 나들길과 더불어 30년 만에 우리나라서 열린 올림픽의 성화대를 디자인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는 디지털 시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밀레니엄 세대가 디지털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보면 디지털 제국의 이민자입니다. 그런데 의사결정권을 손에 쥐고 있죠. 신구 세대가 융합해야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일거리가 늘어야 일자리도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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