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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지도자 야망 키우는 푸틴] 고유가 덕에 경제력 급속 회복

[G2 지도자 야망 키우는 푸틴] 고유가 덕에 경제력 급속 회복

GDP 순위 11위로 복귀… 시리아 내전 지렛대로 중동에서 영향력 극대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요 2개국(G2) 지도자에 오르려는 야망을 키우고 있다. 통상 G2는 미국과 중국을 가르켜왔다. 하지만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이 미국의 무역 규제와 경제 보복으로 어려움에 처한 반면 러시아는 주요 수출품인 유가 상승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첨단 무기 경쟁에서 미국과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초보 단계인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탄(SLBM)을 다량 장착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제5세대 전투기 개발 등에서 러시아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사일을 요격하는 미사일인 S-400시스템은 중국은 물론 미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시스템)에도 필적하는 수준이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은 경제와 국방 양쪽에서 명실상부한 G2 국가와 지도자의 야망을 키워가고 있다.
 동방경제포럼에서 각국 지도자 불러모아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에서 9월 11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동방경제포럼’이다.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 정부가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와 주변국과의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 201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국제회의다. 올해 ‘극동: 가능성의 경계를 확대하며’라는 거창한 주제로 열린 이 포럼에는 국가 정상을 포함한 정부 인사와 기업인, 전문가 등 6000명 이상이 자리를 함께 했다. 주빈인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 등 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이 총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초 포럼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남·북 정상회담 준비 때문에 가지 못하고 대신 이낙연 총리가 날아가 연설했다. 한국과는 지난 6월 열렸던 한·러 정상회담의 후속 상황 점검과 극동·유라시아 지역 개발을 위한 실질 협력 강화 방안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협력방안이 추가됐다. 이를 위해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했으나 무산되고 결국 김영재 대외경제상 등 대표단 7명이 참석했다. 포럼에선 ‘남·북·러 3각 협력 세션’도 마련됐다. 최근 남·북과 북·미 간 대화 분위기를 감안한 발빠른 대응이다. 누가 봐도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겠다는 신호다. 동북아시아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 개막 직전인 9월 10일 아베 총리와, 11일에는 시 주석과 각각 정상회담을 했다. 푸틴이 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부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러시아와 푸틴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경제가 나아진 것이 배경으로 보인다. 그 핵심은 고유가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올해 초 이후 지속적으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중동산 두바이유의 경우 1월 평균 배럴당 66.2달러였던 것이 5월에는 74.2달러로 정점을 찍었다가 7월 평균 배럴당 73.1달러를 유지했다. 북해산 브렌트유의 경우 1월 평균치가 배러당 69.1달러였으며 5월에 77달러를 찍었다가 7월에는 74.9달러를 유지 중이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의 경우 1월 평균 배럴당 63달러였으나 5월 77달러까지 올라갔다가 7월 평균 배럴당 70.5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는 방대한 국토에 세계 천연자원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러시아 천연자원의 가치가 75조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희귀 금속을 중심으로 한 천연자원의 채취와 수출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왔다. 러시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6%가 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천연자원에서 나온다. 천연자원은 전체 수출의 70%와 연방 예산의 52%를 차지한다. 특히 에너지는 러시아 경제의 핵심이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퍼파워’로 불릴 정도로 에너지를 경제 운용은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주요 수출원인 서유럽에 가스 등을 끊겠다고 위협을 수시로 해왔다. 2017년 기준 러시아는 5289억 달러를 수출했는데 최대 수출원은 유럽연합(EU) 국가들로 전체의 45.8%를 차지한다. 중국이 9.8%, 이웃한 벨라루스가 4.9%, 터키가 4.8%, 한국이 3.5%를 차지한다. 수출의 경우 유럽 의존도가 큰 편이며 중국에 대한 비중은 비교적 작은 편이다. 중국 변수에 따른 피해를 피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1823억 달러에 이르는 수입도 EU에 전체의 38.2%를 의존한다. 중국이 20.9%, 미국이 6.1%, 벨라루스가 5.2%, 일본이 3.7%를 차지한다. 무역수지 흑자는 러시아 경제를 살리는 핵심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적 부상을 보여주는 것이 GDP 순위다. 러시아는 세계은행(WB)이 최근 집계한 2017년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을 제치고 11위에 올랐다. 러시아의 GDP는 1조5775억 달러로 1조5308억 달러로 기록한 한국을 눌렀다. 러시아는 2015년과 2016년은 한국에 밀려 12위에 머물렀지만 이번에 11위에 복귀했다. 러시아는 미국(19조3906억 달러)·중국(12조2377억 달러)·일본(4조8721억 달러)·독일(3조6774억 달러)·영국(2조6224억 달러)·인도(2조5975억 달러)·프랑스(2조5825억 달러)·브라질(2조555억달러)·이탈리아(1조9348억 달러)·캐나다(1조6530억 달러)의 다음에 자리매김했다.
 첨단 정밀무기 수출량도 상당해
지난해 11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 사태 중재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부터). / 사진:연합뉴스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과 함께 정밀 무기 분야에서 상당한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옛 소련 시절부터 비축해온 무기 개발과 설계, 생산 능력은 여전히 세계 수준이다. 러시아는 스텔스 기능을 갖춰 미국의 F-22에 필적하는 성능을 지닌 제5세대 초음속 첨단 전투기 수호이-57, 은밀한 대륙간 탄도 핵미사일 능력이 향상된 최신형 핵잠수함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수호이 57은 2010년 첫 비행을 했으며 내년에 러시아 공군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물론 극동의 한국와 일본, 그리고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이 바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S-400의 경우 중국이 도입해 실전배치에 들어갔다. 특이한 것은 나토 회원국으로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멘의 후티 반군과 전쟁 중인 사우디도 미국의 동맹국임에도 살만 국왕이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해 S-400을 도입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푸틴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요인이 시리아 내전이다. 러시아는 내전 이전은 물론 내전 중에도 시리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1년 시리아 내란 발발 이후 해외를 두 차례 방문했는데 모두 러시아였다. 알아사드는 2015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뜨거운 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2016년 11월에는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러시아 흑해 연안 도시 소치를 찾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다. 소치는 옛 소련 시절 휴양 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옛 소련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휴가를 보내거나 정치적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지도자들이 모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로 횔용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휴양지 마라라고에 해당하는 장소다. 트럼프는 자신이 소유한 이 휴양지에서 중국의 시 주석이나 일본의 아베 총리를 만났다.

푸틴은 모스크바가 아닌 소치에서 알아사드와 만남으로써 그 정도로 친밀하고 협력적인 관계임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 푸틴은 알아사드를 이용해 중동에서 과거 소련 시절의 위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알아사드는 그런 푸틴의 비호 속에 7년 내전을 치르면서도 정권과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고 조만간 내전의 최종 승자가 될 전망이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었다.

그동안 러시아는 중장거리 미사일과 기갑무기, 로봇 무기, 폭격기, 특수부대 등 다양한 군사력을 시리아에 직접 투입해왔다. 이를 통해 러시아산 무기의 성능을 실험하고 그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흑해에서 발사해 시리아의 목표물에 정확하게 타격했다. 게다가 기관포를 장착한 ‘우란 기갑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로봇 무기를 실전에 투입해 이 분야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로선 시리아 사태가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옛 소련 수준으로 올려준 계기인 셈이다. 푸틴이 알아사드를 철저하게 비호하는 전략적 셈법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푸틴은 이를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맞서는 지정학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시리아 사태에서 러시아가 최종 승자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나토 핵심국가는 상당히 동요하고 있다. 사실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외교적·경제적으로 중동 지역과 오랫동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패전국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완전히 해체하고 오스만 영토이던 중동 지역에 새로운 국경선을 그은 장본인이다. 이라크의 경우 서로 함께 살기 쉽지 않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인, 그리고 서로 언어와 정체성이 다른 북부 쿠르드족을 묶어 이라크라는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다. 이라크는 미국이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민주화는커녕 대대적인 종파·종족 분쟁에 휘말려있다. 그 틈을 노려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준동했다. 그 배경에는 따지고 보면 이런 역사적인 연유가 자리 잡고 있다. 이라크에서 선거 결과는 ‘인구조사’와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수니파는 수니파를, 시아파는 시아파를, 쿠르드인은 쿠르드 정치인만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시리아·터키와 손 잡아
특히 프랑스는 오스만 영토이던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1차 대전 후 위임 통치하며 이 두 나라를 독립시킨 뒤 오랫동안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이 지역 주민 중 프랑스에 이민온 사람도 적지 않고 현지에 살면서도 프랑스 이중국적을 보유한 사람도 상당수다. 프랑스로선 이런 지역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과 함께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군을 대상으로 하는 폭격에 수시로 가담하는 이유다. 그나마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을 뿐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시리아 사태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러시아와 푸틴은 서방 세계가 ‘악마’로 여겨왔던 알아사드를 지원해 중동에 결정적인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한반도 문제와 중동 사태 모두에서 러시아는 이제 국제 외교의 운전석에 올라앉은 셈이다. 러시아를 빼놓고 국제 정세를 논할 수 없는 세상이 왔다. 러시아는 새롭게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에 대항하는 핵심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엄청난 에너지, 그리고 강력한 첨단 무기에 기대야 글로벌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셈이다. 푸틴이 러시아를 21세기 글로벌 강국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영향력과 국제적인 발언권에선 중국을 누르고 실질적인 G2로 떠오르고 있다. 21세기는 러시아의 시대가 될 것인가.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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