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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어린이의 친구 ‘로봇’

자폐어린이의 친구 ‘로봇’

다른 사람과 소통·교감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단짝 역할하면서 사회적 기술 가르칠 수 있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 회사 로보카인드가 개발한 소셜 로봇 마일로가 사람의 감정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 사진:COURTESY OF ROBOKIND
영국에 사는 두 살짜리 남자아이 레오 브라칼리엘로는 얼마 전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최근 브라칼리엘로는 하얀 카펫 위에서 로봇 ‘카스파(Kaspar)’를 마주 보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아이의 커다른 푸른 눈동자가 로봇의 무표정한 얼굴을 응시했다. 로봇은 단조로운 어조로 노래를 불렀다. “네가 만일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노래가 끝나자 브라칼리엘로가 엄마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한 번 더.” 로봇은 지시에 따라 다시 노래를 불렀다.

카스파는 집 부근에 있는 하트퍼드셔대학에서 임대한 소셜 로봇(social robot)이다. 언어와 몸짓 등 사회적 행동으로 사람과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는 자율 로봇을 말한다. 하트퍼드셔대학이 개발한 카스파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사람처럼 시각과 청각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이 로봇은 자폐아가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카스파는 대화만이 아니라 자폐아의 행동을 흉내 내고 탬버린을 치며 함께 노래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카스파를 개발하기 위해 10년 동안 약 170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리고 2년간 하트퍼드셔의 지역 보건서비스에서 임상시험을 마쳤다. 이 로봇은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도록 터치 센서를 장착해 아이의 성향에 맞춰 반응한다. 예를 들어 거친 성격의 아동이면 그에 맞게 행동한다. 또 로봇의 표정은 아이들이 읽기 쉽도록 설계됐으며 교사와 치료사가 원격제어할 수 있다.

레오는 카스파와 그렇게 몇 차례 만난 뒤 ‘시선 따라가기(gaze following)’가 가능해졌다. 자폐아에게 아주 어려운 사회적 교류 과정의 중요한 첫 단계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레오는 카스파의 제스처와 노래, 말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카스파와 함께하는 게임에 갈수록 재미를 느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어린이 160명 중 약 1명이 자폐아로 추정된다. 자폐증으로 분류되는 행동 양상은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회적 행동과 의사소통·언어 기능이 어느 정도 손상됐고 관심과 활동 범위가 좁은 경향이 특징으로 알려졌다. 치료사 중 다수는 이 모든 증상이 로봇 카스파 덕분에 상당히 완화됐다고 말한다. 카스파가 아이와 세상 사이의 연결을 돕는 ‘사회적 매개체’ 역할을 한 덕분이다. 요즘 부쩍 용도가 많아진 로봇 매개 치료의 일종이다.처음엔 카스파를 보고 섬뜩하게 느낀 부모가 많았다. 표정 없이 밋밋한 얼굴, 머리 크기에 비해 유난히 짧은 팔다리, 촉각센서로 뭔가를 감지했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것 외엔 자동화된 기능도 거의 없는 카스파를 두고 프랑켄슈타인 축소판이라거나 ‘별난 장난감의 섬’에서 탈출한 도망자 같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자폐아들은 이 로봇을 매우 좋아했다. 카스파 프로젝트 책임자인 벤 로빈스 교수에 따르면 그런 아이는 너무 미묘한 사람의 얼굴 표정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자신과 비슷한 로봇을 보고는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 로봇은 자폐아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느끼는 심리적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다. 또 로봇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매우 쉽고 단순하며 직관적인 언어로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영국 하트퍼드셔대학은 자폐아가 사회적 교류 기술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소셜 로봇 카스파를 개발했다. / 사진:UNIVERSITY OF HERTFORDSHIRE
특히 자폐아에겐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보통 쉽게 화를 내고 인내심이 부족해 금방 좌절한다. 반면 로봇은 한결같이 평온한 어조로 무수히 많은 문장을 반복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사람이 당황하거나 화를 내면 학습이 힘들어지지만 로봇은 쉽게 해결해줄 수 있다. 실제로 로봇은 언어치료사나 부모와 달리 무한한 인내심이 있으며 편견이 없고 독자적인 판단도 하지 않는다. 또 예측 가능하며 위협적이지도 않다. 그런 특징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감정 교류가 어려운 자폐아도 카스파를 만나면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한다. 로빈스 교수는 “단순함이 열쇠”라고 설명했다. 자폐아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고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언어, 행동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아이가 쉽게 감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로봇을 설계했다고 로빈스 교수는 밝혔다.

카스파의 문장과 제스처, 노래는 기초적인 수준이다. 그런 것은 자폐아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기술을 익히도록 도움을 주는 기능으로 아이가 실제 상황에서 그런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외에도 카스파는 사회적 상상 기술을 익히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폐아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로빈스 교수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로봇과 상호작용하는 동안 로봇이 ‘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드러내도록 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로봇을 반기는 건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자폐증 퇴치 운동가이자 자폐증 가정을 위한 온라인 잡지 NOS의 편집장인 세라 루터먼은 로봇을 두고 “요란스럽고 비싼 기계로 돈을 낭비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 의료와 주택 등 좀 더 긴급한 문제에 투입해야 할 자원과 관심을 쓸데없이 로봇으로 돌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 런던 교외 억스부리지에 사는 데비앤 로빈슨은 그와 생각이 다르다. 그녀는 자폐아 아들 매튜(5)가 어느 날 밤 TV에서 ‘마일로(Milo)’라는 이름의 소셜 로봇을 보면서 “눈이 빛났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즉시 그 로봇을 제작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 회사 로보카인드에 연락해 5000달러에 마일로를 구입했다. 로빈슨이 자택에서 기자에게 그 얘기를 하는 동안 매튜는 마일로와 게임을 했다. 인사말 ‘헬로’ ‘하이’ ‘헤이’의 차이점을 배우는 게임이었다. 매튜는 마일로의 익살에 웃음을 터뜨렸다.

로빈슨은 자폐아를 위한 유치원을 운영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런 아이들을 두고 “모험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그대로 두기보다 무엇이든 해봐야 한다.”

- 시라 루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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