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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의 부상과 몰락의 19년] 경영 영웅에서 비리 경영자로

[카를로스 곤의 부상과 몰락의 19년] 경영 영웅에서 비리 경영자로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닛산 개혁해 르노·닛산·미쓰비시 이끌어…회사돈 유용 등 혐의로 日 검찰에 체포돼
11월 22일 닛산 이사회에서 해임된 카를로스 곤 회장. / 사진:연합뉴스
‘재건의 카리스마가 추락했다’(요미우리 신문 11월 20일자).

‘변절한 카리스마-장기 군림 사내에 불만’(니혼게이자이 신문 11월 20일자).

일본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일본 닛산자동차와 프랑스 르노자동차, 일본 미쓰비시자동차 회장을 동시에 맡고 있던 카를로스 곤(64)이 11월 19일 도쿄지검 특수부에 구속된 사건의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곤은 2010년 이후 급여 중 총 50억엔을 과소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0년 8억9100만엔을 시작으로 매년 9억~10억엔을 적게 신고했다. 올해도 7억3500억엔을 과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검찰의 꽃’ 도쿄지검 특수부 나서
눈여겨볼 점은 ‘일본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도쿄지검 특수부가 나섰다는 사실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7월 미국 항공기 제작 업체 록히드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1918~1993년, 재임 1972~1974년) 전 총리를 자택에서 체포했다. 16선 의원이자 집권 자민당에서 계파의원을 80명이나 둔 전직 총리를 잡아넣은 이 조직의 기개는 지금도 회자된다. 다나카 전 총리는 기소돼 1983년 10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다나카는 항소했지만 1985년 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며, 대법원 상고 중 1993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사건 관련자 11명은 전원 뇌물판결을 받았다. 도쿄지겁 특수부의 철저한 수수와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잡범이나 잡아들이는 조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조직이 곤을 체포했다는 것은 사건이 쉽게 마무리 될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곤의 탐욕이 부른 개인 비리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보다 큰 그림이 배후에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주목할 점은 곤 회장이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되자 닛산 CEO인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닛산 사장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사이카와 사장은 곤 체포 당일인 11월 19일에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단호한 대응 의지를 밝혔다. 그는 “회장인 곤 용의자가 보수를 적게 신고하고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복수의 부정을 저지른 것을 발견했다”며 “회사는 이러한 내용의 내부 제보를 받은 후 수개월간 조사해 이를 확인하는 한편, 그레그 켈리 대표이사가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도쿄지검 특수부의 인지수사가 아니라 닛산 측의 고발에서 시작된 것임을 밝힌 셈이다. 사이카와는 “이는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곤은 물론 함께 체포된 켈리에 대한 해임을 11월 22일 이사회에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11월 22일 열린 이사회는 사이카와의 제안을 받아 들여 만장일치로 두 사람을 해임했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이다.
 장기 집권에 거버넌스 무너져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자동차 사장이 지난 1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날 카를로스 곤 회장은 자신의 보수(2011~2015년)를 실제보다 적게 기재한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됐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이번 사건으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닛산을 이른 시일 안에 정상화하기 위해 제3자 위원회를 설치해 부정의 배경을 조사하고 거버넌스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곤이 닛산과 르노의 CEO와 회장을 오랫동안 겸임하면서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거버넌스가 무너졌다고 지적하고 장기간에 걸친 곤의 통치가 기업에 부담이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이카와 사장은 곤 회장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피해보상을 청구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회사 차원에서 체포된 회장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의 주체가 회사가 아니라 곤임을 강조한 셈이다. 그런 자리에서 곤의 장기 재임에 따른 문제까지 거론했으니 곤의 등을 찔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이카와는 물러나지 않고 곤을 비난했다. 사이카와는 2016년 11월 곤과 함께 공동 CEO를 맡았으며 곤이 지난해 4월 1일자로 닛산 대표이사 직은 내놓고 회장만 유지하자 대표이사 사장 겸 단독 CEO가 됐다. 닛산 이사회에는 이번에 체포된 곤과 그레그 켈리 대표이사 외에도 르노가 파견한 외국인 이사와 사외이사가 각각 한 명씩 있다.

카를로스 곤은 체포 직전까지 일본 닛산자동차의 회장과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회장 겸 CEO,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3개 자동차 업체의 회장을 동시에 맡은 것은 유례가 드물다. 지난해 4월까지는 닛산 CEO도 맡았다. 눈여겨볼 점은 이들 3개사 간의 출자 관계다. 르노자동차는 닛산의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고, 닛산은 르노 지분의 15%를 소유해 이런 자본 제휴를 통해 상호 지배를 하고 있다. 르노는 프랑스 정부가 지분의 15%를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 34%를 보유하며 휘하에 두고 있다.

미묘한 것은 11월 20일 열린 르노 이사회에서는 곤을 회장 겸 CEO에서 해임하지 않고 일단 사건을 지켜보기로 했다는 점이다. 일본과 프랑스의 대응방식 차이를 넘어서서 뭔가 알력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곤이 르노를 중심으로 3사를 아예 합병하려고 추진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단 이번 사건이 어디로 흘러가든 곤의 명예는 치명상을 입게 됐다. 한때 일본에서 구조조정 신화의 역사를 썼던 곤은 탐욕의 인물, 비리 인물, 거버넌스 혼란의 주범으로 몰리게 됐다. 그런 곤과 닛산과의 인연은 1999년 시작한다. 그해 3월 닛산은 프랑스의 르노자동차와 자본 제휴를 맺는 데 합의했다. 닛산·르노 연합의 탄생이다. 당시 르노는 닛산 지분 36.8%(현재는 43.4%)를 확보했다. 이렇게 닛산과 르노의 자본 제휴가 시작되면서 ‘외국인’ 곤은 일본에 둥지를 틀 수 있게 됐다. 르노의 수석 부사장이던 곤은 그해 6월 닛산 대표이사 겸 최고집행책임자(COO)로 선출되면서 닛산에 부임했다.

일본에 도착한 곤은 ‘칼잡이 본능’을 보여줬다. 닛산에서의 첫 작품부터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곤은 향후 3년에 걸쳐 닛산을 뿌리째 개혁해 경영을 재건한다는 내용의 ‘닛산 자동차 리바이벌 플랜(NRP)’을 그해 10월 발표했다. 연간 비용을 1조원 줄이고 2000년 연결재무제표를 흑자로 전환하며 2002년까지 영업이익률 4.5%로 높이는 내용이 골자다. 곤은 이런 재생계획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다. 계획을 실천하거나 집행했다기보다 밀어붙였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과감했다. 일본 고유의 기업 문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무라야마(村山) 공장과 닛산차체교토공장, 아이키(愛知) 기계공업 공장 등 관계회사를 포함한 3곳의 완성차 조립공장과 2곳의 트레인 생산공장을 폐쇄했다. 아케보노 브레이크를 비롯한 자회사 15개도 매각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부품 구입사를 기존의 절반 수준인 600군데로 줄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직원 1만4000명을 해고했다. 일본 초유의 대량 해고다. 직원과 부품 공급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이다. 협력사와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직원의 고용을 우선시하는 일본 기업 문화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거센 반발이 닥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인지 1999년 277억엔의 적자를 냈던 닛산은 2000년 결산에서 3310엔의 흑자로 돌아섰다. 2001년 5월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닛산 부활’을 선언했다. 곤 회장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곤 회장은 2000년 닛산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 올랐으며 2001년에는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차지했다. 2002년에는 닛산 재생계획을 애초 계획보다 1년 먼저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자산 매각과 직원 해고, 신규 채용 중지 등 인력 감축이 가장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2년 닛산의 르노 지분 보유율을 15%로 올렸으며 2003년에는 중국에 합작사인 둥펑(東風)자동차를 설립하며 중국 진출을 가속화하는 등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했다.

2005년 곤은 르노자동차 사장 겸 CEO로 취임했다. 일본의 닛산과 프랑스의 르노의 사장 겸 CEO를 함께 맡게 된 것이다. 이어 2008년에는 닛산자동차의 대표이사 회장 겸 CEO에 올랐다. 닛산과 르노가 모두 곤의 천하가 된 것이다. 2010년 닛산과 르노는 독일 다임러와 3각 자본 제휴에 들어가 소형차 개발과 지구환경 대책 강화 등에서 공동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2년 닛산과 르노는 러시아 최대 자동차 업체인 아브토바즈의 지분 25%를 공동 매수했다. 아브토바즈는 러시아 최대 자동차 브랜드인 라다를 보유하고 있다. 2014년 닛산과 르노와 생산·개발을 비롯한 4개 부문의 기능을 통합했다. 곤은 2016년 다시 한번 ‘확장 본능’을 발휘했다. 그해 10월 연비 과장이 발각돼 경영난에 빠진 미쓰비시(三菱)자동차를 닛산이 인수하면서 곤은 마쓰비시자동차 회장에도 올랐다. 자동차 3사의 경영권을 움켜쥔 것이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원래 미쓰비시중공업의 일원이었으나 미국 크라이슬러가 지분 15%를 인수하면서 독립시키고 1993년까지 OEM 생산기지로 활용했다. 이후 2000년 독일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합병해 다임러클라슬러가 된 후 미쓰비시와 제휴했으나 제품 결함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곤경에 처했다. 결국 2005년 다임러클라이슬러는 미쓰비사 자동차와 결별했다. 2016년에는 연비 부정 사실마저 공개돼 위기에 처했다.
 세계 판매 1위 눈앞에 뒀던 닛산·르노·미쓰비시 연합
이를 구한 것이 곤이 이끄는 닛산·르노 연합이었다. 미쓰비시자동차의 소형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관련 기술력을 탐낸 조치로도 평가된다. 그 결과 닛산·르노 연합은 미쓰비시자동차의 지분 34%를 확보하고 3사가 연합에 들어갔다. 2016년 10월 닛산·르노·미쓰비시 얼라이언스(연합)의 출범이다. 3사 연합은 2016년 996만대를 판매해 폴크스바겐, 도요타, GM에 이어 세계 4위의 자동차 기업에 올랐다. 2017년에는 닛산 581만대, 르노 376만대, 미쓰비시 103만대를 각각 판매해 연합 전체로는 1060만대를 판매해 세계 2위의 완성차 메이커로 떠올랐다.

닛산·르노·미쓰비시의 3사 연합을 이룬 곤은 지난해 4월 닛산 대표이사 CEO에서 물러나 회장을 맡았다. 2선 후퇴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더욱 강한 카리스마를 앞세웠다 2017년 8월 ‘얼라이언스 2022’라는 그랜드 플랜을 발표했다. 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여 2022년까지 연간 1400만대 이상의 판매와 2400억 달러의 매출을 목표로 잡았다. 세계 1위 자리를 넘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번에 날개가 꺾이면서 추락했다. 높이 비상한 만큼 추락에 따른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닛산·르노·미쓰비시의 3사 연합은 세계 자동차 1위 등극의 꿈은커녕 연합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일본과 프랑스 이사진은 사건에 대한 태도부터 다르다. 더구나 르노는 프랑스 정부가 지분 15%를 가지고 있다. 개인 비리, 또는 민간 기업의 문제가 자칫 프랑스와 일본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경제계가 외국인 CEO를 대하는 일본 기업과 국민, 정부의 차가운 태도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곤은 프랑스나 일본을 넘어 글로벌 경영인으로 통한다. 성장 배경부터가 글로벌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브라질로 이민 간 마론파 기독교도다. 현재 시리아와 이스라엘에 둘러싸인 근동 국가 레바논은 중세 이래 무슬림이 지배한 이 지역에서 드물게 마론파 기독교도가 다수를 차지했던 곳이다. 1516~1918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영토였으나 19세기 이래 프랑스의 영향이 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서 1923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됐다. 레바논은 1944년 독립을 이뤘지만 적지 않은 레바논인이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이 때문에 독립 후에도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곤은 이런 레바논 배경을 지니고 1954년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비위생적인 물을 마시고 병이 든 그는 6살 때 어머니, 여동생들과 함께 할머니가 살던 레바논으로 이주했다. 레바논에서 가톨릭 예수회가 운영하는 고교 과정을 다닌 그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파리의 명문 생루이 고교를 마쳤다. 프랑스의 엘리트 대학인 그랑제콜을 목표로 하는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 예비학교다. 그는 그랑제콜인 에콜폴리테크를 1974년에 마치고 또 다른 그랑제콜인 파리광산학교를 1978년 졸업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견주는 프랑스 최고의 공대를 다닌 셈이다.

국립광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슐린에 입사했다. 미주 담당으로 일하면서 능력을 발휘한 그는 1996년 르노자동차로 옮겼다. 운명의 전직이었다. 그는 그해 12월에 수석 부사장에 올랐다. 1999년 닛산이 르노자동차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자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으면서 본거지를 일본으로 옮겨 지금까지 화려한 ‘경영 신화’를 쌓았다.
 도쿄지검 특수부장 출신 변호인 선임
현재 곤은 전 도쿄지검 특수부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추가 수사와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곤이 프랑스 정부와 르노 본사의 지원과 변호인의 선방으로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에 세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한때 경영 영웅이었던 인물의 추락을 보는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비용 절감으로 일어선 인물이 회사 돈을 유용한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는 사실, 장기 집권과 경영 전횡에 회사 직원들이 염증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든, 기업이든 권력 집중과 장기 집권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곤이 지닌 품성의 한계일까. 이번 사건을 보면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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