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은 그의 양극성 장애에서 비롯된 증상이 기행 아닌 보수 우익 지지라고 믿는 듯” 중간선거를 앞둔 지난 10월 11일 카니예 웨스트(오른쪽)는 백악관을 방문해 기자들 앞에서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카니예 웨스트는 미국의 유명한 래퍼이자 작곡가이자 녹음 프로듀서인 동시에 패션 디자이너 겸 사업가다. 스타 방송인 킴 카다시안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미디어계는 이제야 발견했다.
사실 웨스트는 기이한 언행으로 숱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2005년 뉴올리언스를 쑥대밭으로 만든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 방송에 출연해 뜬금없이 “부시 대통령은 미국 흑인에게 관심 없다”고 비난했고, 2009년 MTV 시상식에서 뮤직비디오 상을 받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무대에 술에 취한 채 난입해 “비욘세 뮤직비디오가 역대 최고”라고 외쳤다. 또 지난 5월엔 가십 웹사이트 대담 프로그램 ‘TMZ 라이브’에 출연해 “우리는 노예제도가 400년 동안 지속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400년 동안이라고? 그렇다면 그건 마치 ‘선택’인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수백 년간 노예제도가 이어진 것은 흑인이 스스로 노예이길 택했기 때문이라는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런 좌충우돌하는 기행에도 미디어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천재 아티스트의 일탈로 받아들이며 재미있다는 식으로 넘겼다. 사실 웨스트는 자신이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린다는 점을 줄곧 시사했다. 지난 6월 발표한 앨범 ‘Ye’(‘예’는 그의 별명이다)에서 그는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있어서 자신은 ‘슈퍼파워’라고 자랑했다. 실제로 그는 앨범 재킷에 ‘난 양극성 장애를 혐오한다. 근데 난 그게 너무 좋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실제로 양극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미디어는 우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코미디언이자 TV 토크쇼 진행자인 지미 키멜은 그를 높이 샀다. 그는 웨스트에게 “난 당신을 이렇게 생각하는데 틀렸는지 맞는지 말해달라. 당신은 자신이 양극성 장애 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머리가 비상하고, 당신을 지금의 당신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그 장애를 포용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벌어졌다. 중간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지난 10월 11일 웨스트는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를 상징하는 표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모자를 쓰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신은 수면부족으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고, 여성의 힘이 강한 집안 분위기 덕분에 킴 카다시안과 결혼할 수 있었다는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놨다. 흑인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흑인이라면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생각이 오히려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기리키며 “진보주의자들은 발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좋게 비춰지지 않으면 우리(미국)도 좋아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드디어 미디어계에서 그의 정신 상태를 두고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 배우 제니퍼 루이스는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너무 안타깝다. 선거를 앞두고 백악관에 가서 그런 절제되지 않은 언행을 하도록 그를 유도하다니 너무했다. 트럼프 정부에 너무 질려 이젠 별로 충격 받을 일도 없지만 이번 일은 진짜 잔인했다.” 만약 웨스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치켜세웠다면 루이스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듯하다. CNN 방송의 토크쇼 진행자 S.E. 컵도 “정말 서글픈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한 사람을 대통령이 이용하려 하다니. 오늘 일은 모두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었다. 정상궤도를 이탈한 일이었다.” 키멜도 “정신병 환자들 사이에서나 오가는 대화이지 백악관에서 기자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제 진지하게 따져보자. 우리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문제에서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망상에 맞장구를 치는 식의 반응은 위험하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정신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행동을 부추기는 것 역시 위험천만한 일이다. 나의 조부도 양극성 장애 아니면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그 두 가지를 구분해서 진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무튼 그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기분 안정제인 리튬을 복용했다. 라디오가 계속 자신에게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사회가 그냥 재미있다는 식으로 받아넘기기보다 리튬을 처방하는 게 훨씬 나은 해결책이었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정신병을 대할 때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요즘 보면 좌익의 다수는 웨스트를 대하는 태도에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웨스트의 정신병이 나타내는 주된 증상이 그의 기행이 아니라 그의 보수 우익 지지라고 믿는 듯하다.
역사를 보면 자주 그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좌익 철학자들은 보수주의 자체가 병적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둔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시장과 개인주의에 매몰되면 ‘권위주의(독재) 특성’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의 동료인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도 미국 우익이 ‘독재적 성향’에 젖었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심지어 아도르노는 파시스트 성향을 측정하는 ‘F 스케일’을 개발했다. 사회규범 인식, 규정과 가치 순응, 종교에 대한 믿음 등의 요인을 측정하는 성격 테스트였다. 그러나 이 척도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좌익주의에서 출발한 이론이기 때문에 임상에 사용되기보다는 이념적인 도구가 됐다. 또 학술지 ‘정치심리학’에 최근 발표된 논문은 우익 권위주의만큼이나 좌익 권위주의도 위험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좌익의 다수는 우익을 비이성적이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진단한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우익의 일부도 그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좌익이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지배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신념 차이를 심리적인 진단과 하나로 엮는 것은 정치와 심리학 둘 다를 왜곡하는 것이다. 웨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우리는 웨스트의 정치관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그 자체의 장단점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 또 우리는 웨스트를 인간으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그를 자칭 양극성 장애 환자지만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가 받을 만한 염려와 존중으로 그를 대해야 한다. 염려와 존중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하지만 극도로 양극화된 우리 세계에서 특정인의 견해를 개인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구닥다리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