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3)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장 겸 술빚는전가네 대표] 어떻게 살 것인지부터 구상하라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3)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장 겸 술빚는전가네 대표] 어떻게 살 것인지부터 구상하라
“2막 무대에서 필요한 건 자신감”… 비재무적 설계에 맞게 재무적 설계해야 “한우물을 20년 이상 팠다면 나름 성공한 겁니다. 더욱이 특정 분야에 종사, 거기서 정년퇴직했다면 객관적으로도 성공한 거예요. 인생 2막을 잘 개척할 수 있는 성공 DNA가 이미 몸에 내장됐다고 할 수 있죠.”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장 겸 술빚는전가네 대표는 “세컨드 라이프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그중에서 한두 가지 내가 잘할 만한 일감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2막 무대에서 정작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신감입니다. 퇴직을 하면 사람들이 갑작스레 풀이 죽고 너무 소극적이 돼 버려요.”
그는 시니어들이 제 역할을 못 찾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저평가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2막 인생도 저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인공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눈높이를 조절해서라도 찾아내고 만들어 내야죠.” 지난해 60줄에 들어선 전 소장은 5년 전 양조장 ‘술빚는전가네’를 경기도 포천의 산정호수 자락에 차렸다. 자신이 빚은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를 팔기 위해 길 건너에 주막을 함께 열었다.
그가 빚은 술은 지난해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탁주부문 대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와 ‘배꽃 담은 연’ 두 종을 출품했는데 각각 1, 3등을 차지한 것이다. 1만5000원, 2만원짜리 프리미엄 탁주다. 그는 술 재료로 명성산에서 발원한 산정호수 물, 멥쌀을 찐 고두밥으로 만든 구멍떡의 가루, 토종 앉은뱅이밀가루에 밥알을 코팅해 발효시킨 자연 상태의 누룩을 쓴다. 자연산 누룩은 당화력(糖化力)이 일정치 않다. 와인에 비유하면 빚을 때마다 빈티지가 달라진다. 물은 일반 술에 비해 4분의 1만 쓴다. 그가 빚은 술 3종은 불가리아로 수출된다. “양조장 면허 받은 것부터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 발효주는 사케나 서양술에 뒤지지 않는 좋은 술입니다.”
스스로 빚은 술의 판로를 개척하느라 양조장과 주막을 함께 차린 그는 과거 라면 밖에 끓일 줄 몰랐지만 8개월 만에 한식·일식에 사찰음식 만드는 법까지 배웠다. “남자가 은퇴 후 ‘3식이’ 소리를 듣는 건 음식을 직접 만들 줄 몰라서입니다.”
그는 지금 아이슬란드를 여행 중이다. 세 번째 아이슬란드 출사 여행이다. 이번엔 부인과 드론이 동행했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동안 차마고도, 마추픽추, 갈라파고스 등의 오지로 출사를 다녔다. 오지 풍경과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꽃 사진으로 아홉 차례의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49세에 국제경영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도 땄다. 그 무렵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기조연설자가 “언젠가 신발을 신은 채로 죽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후에 대비해 재무설계를 잘하라는 이야기를 할 거로 예상했던 그는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흔히 투병을 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상상을 합니다. 눈을 감는 장소로는 대개 양로원·병원·고향집 같은 곳을 떠올리죠. 그날 이후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원한 현역으로 현장에서 최후를 맞는 한 누구나 로드 무비의 주인공이다. 길 위에서는 다들 신발을 신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의 자산관리 전문가로 인생 1막을 산 그는 귀국 후 비재무적 은퇴 설계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인생 2막은 먼저 비재무적 설계를 한 후 그에 맞춰 재무적 설계를 해야 합니다. 노후 자금이 5억이니, 10억이니 하는 이야기에 현혹되지 말고 우선 장차 어떤 삶을 살 건지 선택한 후 그에 맞춰 필요한 만큼 벌라는 거죠. 그러자면 나는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세컨드 라이프를 살 건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가는 데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죠. 저는 오지 여행을 다니면서 좋아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평소에 강의를 하고 술도 빚어요. 행복하게 많이 쓰다 가는 거보다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더 행복한 법이죠.”
그는 첫 직장인 교보생명에서 상무로 퇴직했다. 동기 320명 중 1호로 별을 달았다. 24년 근속 후 타의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을 땐 좌절감이 밀려왔다. 돌이켜 보니 조직생활을 잘 못한 거 같았다. 사내 정치에 어두웠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동업으로 강남에서 재무설계 회사를 창업했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비슷한 시기 문 연 1인 연구소 행복한은퇴연구소는 당시 살던 아파트에 법인 사무실을 냈는데 12년째 그의 주요 수입원이다. “아파트를 법인 사무실로 허가받은 첫 케이스였습니다. 원고 쓰고 강의의 섭외 및 준비에 필요한 전화 및 팩스, 인터넷 망을 갖췄지만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등기소서 한번 반려를 당했었죠.”
그 후 열린사이버대학 금융자산관리학과 강사를 거쳐 전임 교수가 됐지만 학과장을 맡고 있던 시절 양조장을 차리기 위해 그만뒀다. 그는 인생 2막엔 동업과 폼 나는 사무실 유지에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동업은 1인이 하듯이 해야 하는데 공동대표이다 보니 권한은 2가 되고 책임은 1이 안 됩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분담을 해도 책임 소재가 모호한 역할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동업의 일종인 협동조합도 이와 비슷한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2막에 할 만한 일로 프리랜서를 권했다. 일과 삶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워라밸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도 일감을 맡으려면 경쟁력 있는 프로가 돼야 합니다. 인생 2막엔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성급하게 포기하는 것도 금기지만 과욕을 부려서도 안 됩니다. 평생 못 번 돈을 2막에 벌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은 착각이에요. 공연히 헛발질하지 말라는 거죠.” 그의 별명은 ‘레드 전’이다. 빨간 구두에 아들이 사준 빨간색 시계를 차고, 부인이 사준 빨간 지프를 몰고 다닌다. 젊었을 때부터 빨강에 꽂힌 건 아니다. 친구의 농장에 놀러갔다 신어 본 빨간 구두가 발에 꼭 맞아 얻어 신은 게 계기였다. 방송인 이금희 씨는 빨간 구두의 출연자로 그를 기억한다. “사진은 사물을 아름답게 표현하고픈 욕구와 노력의 결실입니다. 뷰파인더에 보이는 사물을 더 아름답게 찍으려 오지에서 새벽을 기다리고 악천후에도 눈보라를 뚫고 나아가죠. 저의 빨간색 아이템들도 일종의 자기 표현이에요.”
그는 인생 2막은 성공을 위해 치달은 1막의 부록이 아닐 뿐더러 막간도 막후의 별 볼일 없는 무대도 아니라고 말했다. 1막 무대만큼이나 중요하고 좋은 시절이라는 것이다. “1막은 누구나 가족 등을 위한 자기 희생의 시간입니다. 반면 2막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죠. 이 시간을 잘 쓰려면 자기 계발도 하고, 제대로 활용하려면 나름의 가용 자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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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니어들이 제 역할을 못 찾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저평가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2막 인생도 저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인공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눈높이를 조절해서라도 찾아내고 만들어 내야죠.”
한식·일식에 사찰음식 만드는 법까지 배워
그가 빚은 술은 지난해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탁주부문 대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와 ‘배꽃 담은 연’ 두 종을 출품했는데 각각 1, 3등을 차지한 것이다. 1만5000원, 2만원짜리 프리미엄 탁주다. 그는 술 재료로 명성산에서 발원한 산정호수 물, 멥쌀을 찐 고두밥으로 만든 구멍떡의 가루, 토종 앉은뱅이밀가루에 밥알을 코팅해 발효시킨 자연 상태의 누룩을 쓴다. 자연산 누룩은 당화력(糖化力)이 일정치 않다. 와인에 비유하면 빚을 때마다 빈티지가 달라진다. 물은 일반 술에 비해 4분의 1만 쓴다. 그가 빚은 술 3종은 불가리아로 수출된다. “양조장 면허 받은 것부터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 발효주는 사케나 서양술에 뒤지지 않는 좋은 술입니다.”
스스로 빚은 술의 판로를 개척하느라 양조장과 주막을 함께 차린 그는 과거 라면 밖에 끓일 줄 몰랐지만 8개월 만에 한식·일식에 사찰음식 만드는 법까지 배웠다. “남자가 은퇴 후 ‘3식이’ 소리를 듣는 건 음식을 직접 만들 줄 몰라서입니다.”
그는 지금 아이슬란드를 여행 중이다. 세 번째 아이슬란드 출사 여행이다. 이번엔 부인과 드론이 동행했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동안 차마고도, 마추픽추, 갈라파고스 등의 오지로 출사를 다녔다. 오지 풍경과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꽃 사진으로 아홉 차례의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49세에 국제경영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도 땄다. 그 무렵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기조연설자가 “언젠가 신발을 신은 채로 죽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후에 대비해 재무설계를 잘하라는 이야기를 할 거로 예상했던 그는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흔히 투병을 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상상을 합니다. 눈을 감는 장소로는 대개 양로원·병원·고향집 같은 곳을 떠올리죠. 그날 이후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원한 현역으로 현장에서 최후를 맞는 한 누구나 로드 무비의 주인공이다. 길 위에서는 다들 신발을 신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의 자산관리 전문가로 인생 1막을 산 그는 귀국 후 비재무적 은퇴 설계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인생 2막은 먼저 비재무적 설계를 한 후 그에 맞춰 재무적 설계를 해야 합니다. 노후 자금이 5억이니, 10억이니 하는 이야기에 현혹되지 말고 우선 장차 어떤 삶을 살 건지 선택한 후 그에 맞춰 필요한 만큼 벌라는 거죠. 그러자면 나는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세컨드 라이프를 살 건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가는 데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죠. 저는 오지 여행을 다니면서 좋아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평소에 강의를 하고 술도 빚어요. 행복하게 많이 쓰다 가는 거보다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더 행복한 법이죠.”
그는 첫 직장인 교보생명에서 상무로 퇴직했다. 동기 320명 중 1호로 별을 달았다. 24년 근속 후 타의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을 땐 좌절감이 밀려왔다. 돌이켜 보니 조직생활을 잘 못한 거 같았다. 사내 정치에 어두웠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동업으로 강남에서 재무설계 회사를 창업했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비슷한 시기 문 연 1인 연구소 행복한은퇴연구소는 당시 살던 아파트에 법인 사무실을 냈는데 12년째 그의 주요 수입원이다. “아파트를 법인 사무실로 허가받은 첫 케이스였습니다. 원고 쓰고 강의의 섭외 및 준비에 필요한 전화 및 팩스, 인터넷 망을 갖췄지만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등기소서 한번 반려를 당했었죠.”
그 후 열린사이버대학 금융자산관리학과 강사를 거쳐 전임 교수가 됐지만 학과장을 맡고 있던 시절 양조장을 차리기 위해 그만뒀다. 그는 인생 2막엔 동업과 폼 나는 사무실 유지에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동업은 1인이 하듯이 해야 하는데 공동대표이다 보니 권한은 2가 되고 책임은 1이 안 됩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분담을 해도 책임 소재가 모호한 역할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동업의 일종인 협동조합도 이와 비슷한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2막에 할 만한 일로 프리랜서를 권했다. 일과 삶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워라밸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도 일감을 맡으려면 경쟁력 있는 프로가 돼야 합니다. 인생 2막엔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성급하게 포기하는 것도 금기지만 과욕을 부려서도 안 됩니다. 평생 못 번 돈을 2막에 벌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은 착각이에요. 공연히 헛발질하지 말라는 거죠.”
워라밸 추구하려면 프리랜서가 적합
그는 인생 2막은 성공을 위해 치달은 1막의 부록이 아닐 뿐더러 막간도 막후의 별 볼일 없는 무대도 아니라고 말했다. 1막 무대만큼이나 중요하고 좋은 시절이라는 것이다. “1막은 누구나 가족 등을 위한 자기 희생의 시간입니다. 반면 2막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죠. 이 시간을 잘 쓰려면 자기 계발도 하고, 제대로 활용하려면 나름의 가용 자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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