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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속에 묻힌 보물을 찾아서

모래 속에 묻힌 보물을 찾아서

외지인 발길 거의 닿지 않은 사우디의 마다인 살레 지역 … 100여 개의 고대 건축물과 아크란 산, 그리고 도기 조각 등 볼거리 많아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관광산업에 초점을 맞춰 경제를 다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사우디 왕립관광위원회는 유적지를 개발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프로젝트의 자문을 위해 프리미엄 여행사 인다가레(Indagare, 회원으로 가입해야 이용할 수 있고 맞춤형 여행 계획과 단체 여행을 제공한다)의 창업자이자 CEO인 멜리사 빅스 브래들리를 초청했다. 지난해 1월 브래들리 CEO와 인디가레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엘리자 해리스는 리아드로 날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알울라·마다인 살레 지역을 방문했다. 그녀는 그 특이한 여행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마다인 살레의 나바테아 왕국 유적 / 사진:COURTESY OF INDAGARE
마다인 살레 지역은 어떻게 보면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약간 평평하게 눌러 놓은 듯한 모습이다. 깎아지른 거대한 바위와 절벽, 사막, 수많은 야자수가 우거진 오아시스 등 자연의 경이로 감동을 준다. 이제 막 발굴이 시작된 2000년 이상된 고고학 유적지도 있다. 그곳에서 여러 다른 문명의 흔적이 발견됐다. 가장 큰 유적지는 기원전 2세기 전반 향신료 무역으로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제2의 도시로 확인됐다(나바테아 왕국의 최대 도시는 현재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였다).

이 지역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고고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요르단의 페트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또는 페루의 마추픽추 등 세계의 경이로운 유적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이곳 역시 고대 건축과 유물만이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그런 곳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숨어 있는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이 촬영된 것으로 유명한 페트라 덕분에 나바테아 건축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마다인 살레를 방문했거나 그곳의 사진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해 이전엔 사우디가 관광비자를 발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비즈니스나 메카 순례 목적으로만 사우디 방문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사우디는 관광 산업에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특히 서방인 중에 마다인 살레를 방문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마다인 살레는 경탄을 자아내는 경관을 배경으로 페트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흡사한 100여 개의 고대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그리스-로마 건축의 영향이 뚜렷이 엿보인다. 데단·리흐얀 왕국 등 다른 문명의 흔적도 있다. 이 지역은 기원 전 수 세기 동안 중요한 무역로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메디나 거리를 산책하는 인다가레 CEO 멜리사 빅스 브래들리와 그녀의 친구. / 사진:COURTESY OF INDAGARE
우리는 유적지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지역 전체를 공중에서 둘러본 뒤 몇 곳을 선별적으로 방문했다. 그중 하나가 아크라 산이었다. 그곳에는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의 사후 얼마 안 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 이슬람 글귀가 불그스레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메카로 가려면 이 사막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하지 순례자들이 남긴 그 글과 함께 고대의 여러 문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또 15세기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글도 있다. ‘알라여, 나의 여행을 축복해주소서!’ ‘물 없이 이곳에 오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을 탓해야 한다’ 등. 이곳이 그때나 지금이나 삭막한 사막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내용이다.

걷다보면 모래 속에 묻힌 도기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데단 왕국, 나바테아 왕국, 또는 초기 이슬람 시대의 유물이다. 고고학자들은 이제야 이 지역의 유물을 공식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성읍 마다인 살레 내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지역 전체에 약 6만5000명이 거주한다. 그들은 마다인 살레 성곽 주변에 형성된 거주지에 모여 산다. 이 지역 어디를 가나 여성들은 리야드에서처럼 아바야와 히잡 또는 부르카로 몸을 완전히 가리고 다닌다. 우리도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바야와 히잡을 착용했다. 사우디 정부는 전통을 엄격하게 지키며 술을 마시거나 전통 복장을 따르지 않는 여행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사우디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적절한 복장을 갖춰야 한다. 히잡과 아바야를 말한다. 또 새로운 비자 발급 규정에 따르면 25세 미만의 여성이 사우디를 여행할 때는 가족 보호자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리야드에서는 아바야와 히잡을 첨단 유행 패션으로 해석한 차림의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알울라 지역에 가보니 모든 여성이 검은 아바야 차림이었다.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도 상당수였다(부르카는 눈만 겨우 볼 수 있을 뿐 몸을 완전히 가리는 복장이다).

마다인 살레의 고대 문명 유적. / 사진:COURTESY OF INDAGARE
그러나 우리는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현지인으로부터 대우를 잘 받았다. 사우디의 관광 문화를 개발하는 작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안내했다. 리야드에는 세련된 현대식 쇼핑 구역이 있다. 그곳에는 티파니와 빅토리아스 시크릿 매장도 있다. 그러나 알울라 지역에선 국제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다. 그곳 여성들은 리야드에서보다 더 보수적인 차림이었지만 마음은 매우 따뜻했다. 알울라에서 우리는 20대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여행가이드가 꿈이며 운전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아주 개방적인 그녀는 관광산업이 본격화되면 여성에게도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우리는 그곳에 있는 동안 늘 안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현지 관습을 존중하고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우디 정부는 관광산업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 중이다.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신중하다. 사우디의 전통 문화가 훼손되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사회를 외국인에게 개방하면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안다. 음주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사우디는 제2의 두바이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현재 그들은 고고학 유적지 부근에 그곳의 유산을 존중하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한다.

마다인 살레의 야자수 오아시스. / 사진:COURTESY OF INDAGARE
방문하면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 중 하나를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25년 동안 여행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이 지역에 관해 거의 듣지 못했다. 세계의 위대한 경이 중 하나인 이곳을 방문한 첫 서방인에 속한다는 것은 1960년대 우리 할머니가 앙코르와트를 여행한 일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난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다른 모든 곳이 발견됐고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우디 방문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나는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 아니라 사우디가 매우 사려 깊게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한다. 코스타리카, 보츠와나, 부탄 같은 나라를 보라. 그들은 공들여 관광지를 개발해 장기적으로 충분히 보상 받고 있다. 그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지역은 과도한 관광과 탐욕이 지배하면서 책임의식과 문화 보존이 실종되고 있다.

브래들리 CEO의 사우디 여행 후 10개월이 지났을 때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대사관 안에서 살해됐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그녀에게 사우디를 다시 방문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점 알울라 지역의 사막 / 사진:COURTESY OF INDAGARE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일은 정말 끔찍하다. 언론인으로서 나는 카슈끄지에게 일어난 일이 끔찍한 비극이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믿는 모두에게 큰 좌절을 안겨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 전문가로서 해당 국가의 지도자와 정치 또는 정책을 근거로 그곳을 방문할지 말지의 문제에 부닥칠 때 나로선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립에서 벗어나 문화를 교류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정권이 통치하는 나라의 여행을 보이콧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나는 존중하고 이해한다. 또 그런 보이콧으로 경제적 압력이 가해져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짐바브웨에서 무가베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있었을 때나 미얀마에서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그곳 방문을 거부한 여행자들이 그런 전술을 사용했다. 지금도 쿠바 정부의 국민 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쿠바를 방문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런 정권 아래 사는 사람들이 “보이콧은 이론상 훌륭한 전술이지만 우린 지금 외국인 투자와 방문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해진다”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그들은 외국인이 찾아와서 현지 상황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소통이 이뤄지기를 원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런 미묘한 지역을 선택하는 여행자는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세계시민으로서 갖는 책임이다. 예를 들어 미얀마가 군사정권의 통치를 받았을 때 잘 준비된 여행자는 일반 시민이 운영하는 업체를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관광 비용이 지배계층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 직접 흘러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사전 조사가 필요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또 편의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의식 있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여행할 수 있다.

마다인 살레에서 해가 진 뒤 촛불이 길을 밝힌다. / 사진:COURTESY OF INDAGARE
나는 사우디가 관광 문호를 더 넓게 개방해 여성의 권리를 포함한 사회적 자유에서 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우디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사우디 사람들을 만나보기 바란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걸러진 이야기만 듣기보다는 현지인을 통해 그 나라를 목격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화교류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관점을 알 수 있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다.

나는 여행자이자 세계시민으로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 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대화를 통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고립된 상태에 머물면 서로에게서 배울 수 없다. 내가 계속 여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 폴라 프롤리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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