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달리는 인공지능 규제 논란] 비대면 원격진료-데이터 확보 요구 커져
[평행선 달리는 인공지능 규제 논란] 비대면 원격진료-데이터 확보 요구 커져
현행법이 의료용 신기술 발전에 걸림돌… 개인정보 보호냐 활용이냐 놓고 갑론을박 다방면에서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줄 인공지능(AI)이지만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찮다. 까다로운 규제 문제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현재 의료 분야에서는 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난치병도 극복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미국 기업 IBM이 만든 의료용 AI ‘왓슨’ 등이 전 세계 진료 현장에서 구성원의 하나로 활약하는 일도 낯설지 않게 됐다. 의료용 AI 도입에 적극적인 나라 중 하나가 중국이다. 중국의 일부 병원 무인 진료실에서는 환자가 혈압과 체온을 재고 AI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면 이를 토대로 멀리 떨어진 곳 의사가 약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AI를 통한 이런 원격진료 서비스는 땅덩이가 넓은 중국 각 지역의 소규모 병원과 환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기차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멀리 대도시에 있는 유명 병원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해 이 같은 AI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는 크지 않게 느껴지는 한국이지만, 그보다 AI 원격진료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왓슨 같은 의료용 AI의 도입이 가능하고 의료인 간 협진 때 원격진료 역시 가능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도 AI나 의료 통신망을 이용해 진료 받을 수 있는 비(非)대면 원격진료만큼은 금지돼서다(환자 옆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어야 가능).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기약이 없다. 국내 의료계가 일부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과 이에 따른 의료 서비스 품질 하락 가능성 등을 이유로 비대면 원격진료를 계속 반대하고 있다. 국회도 눈치를 보느라 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1997년부터 원격진료 전면 시행에 나서면서 신기술 활용에 적극적일 수 있었다. 일본도 2015년부터 의사와 환자 간의 비대면 원격진료를 허용하면서 분위기 개선에 나선 바 있다. 이에 최근 국내 의료계 일각에서도 AI 기술 발전 등 의미 있는 동향을 계기로 원격진료 관련법 개정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전문가 포럼에 참석한 한현욱 차의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계가 우려하는 환자 쏠림 현상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만들면 원격진료에 대한 반대가 찬성 분위기로 바뀔 수 있다”며 “원격진료 부분 허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를 통한 의료 선진화 추구에 있어 비대면 원격진료 금지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AI 기술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 수집에서도 법적 규제가 큰 걸림돌이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에서 발행하는 정보는 의료인과 의료기관만 수집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법상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민감한 자료를 제3자에게 제출할 수도 없어서다. 개인 동의와 비식별화 과정이 필요하지만 수많은 환자의 데이터를 이런 식으로 일일이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역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는 환자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축적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의료용 AI 기술력을 키우는 데 저해 요인이 된다는 비판론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의 경우 의료 발전을 위해 익명 가공의 의료 정보에 관한 개별법을 제정, AI 용 데이터 확보의 법적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준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국내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결국 의료용 AI의 성패는 현장에 적용하는 시스템에 달렸다”며 “규제 개선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뛰어난 기술도 사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의료용 AI 기술력이 뛰어난 인력들의 노력으로 일정 수준엔 도달했으며, 의료 서비스 개선과 산업적 성장이 기대되지만 규제와 복잡한 이해관계로 현장에 더디게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학회장은 “한국은 공학도와 의료인 수준이 높고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는 기반이 잘 닦여 있지만, 법적인 제약 탓에 현장 적용에선 괴리가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료 영상 기반 AI 판독 지원 솔루션이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허가 이후에도 현장에서 괴리가 발생했다. 병원들은 단일 보험 체제로 국가에서 책정하는 수가(보수로 주는 대가)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비용 부담이 클 수 있어 도입하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상 수가 책정에만 1년 가까이 걸린다. AI 신기술이 나왔어도 조기 적용이 어려운 셈이다. 이런 솔루션은 개발 자체도 국내에서 쉽지 않다. 엑스레이 영상 활용 판독 지원 솔루션이라면 약 10만장의 영상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데, 현행법상 10만 명 모두에게 정보 이용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의료용 AI만의 얘기가 아니다. 핀테크처럼 방대한 금융 정보 활용이 필수적인 분야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은 난관으로 작용 중이다. 이 같은 어려움에 국내 AI 기술 전반이 선진국보다 뒤처질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대중은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악용과 같은 부작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순 없지만, AI 시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데이터 확보 없이는 기술 발전이 어렵다”면서 “제도 개선의 문제인 만큼 정부가 대중의 불안감을 일정 부분 해소하면서도 기술 발전엔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묘책을 마련하고 국회도 여기에 부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거꾸로 AI에 대한 전에 없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종종 나오고 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반대급부로 확산되는, AI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다. 예를 들어 AI 기반 자율주행자동차를 누군가가 해킹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낼 수 있다. AI를 보이스 피싱 범죄에 악용할 수도 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자및전기공학과 교수는 “지금의 AI 기술도 뇌파를 분석해 인간의 뇌를 해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AI가 숫자를 본 뇌의 반응을 분석해 은행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실험 결과가 나왔고 음파를 분석해 다른 이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따라하는 보이스 피싱에도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아직 먼 미래의 일로 생각되지만, 언젠가는 인간의 지능 수준에 근접하거나 더 우월해진 AI가 나타나 인류를 제압하려 할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머리를 맞대어 이런 위험성들을 고려한 선행 규제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AI 규제에 대한 담론은 AI가 인간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를 논하는 분분한 의견들만큼이나 다양한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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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해 이 같은 AI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는 크지 않게 느껴지는 한국이지만, 그보다 AI 원격진료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왓슨 같은 의료용 AI의 도입이 가능하고 의료인 간 협진 때 원격진료 역시 가능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도 AI나 의료 통신망을 이용해 진료 받을 수 있는 비(非)대면 원격진료만큼은 금지돼서다(환자 옆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어야 가능).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기약이 없다. 국내 의료계가 일부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과 이에 따른 의료 서비스 품질 하락 가능성 등을 이유로 비대면 원격진료를 계속 반대하고 있다. 국회도 눈치를 보느라 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2015년부터 비대면 원격진료 허용
AI를 통한 의료 선진화 추구에 있어 비대면 원격진료 금지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AI 기술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 수집에서도 법적 규제가 큰 걸림돌이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에서 발행하는 정보는 의료인과 의료기관만 수집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법상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민감한 자료를 제3자에게 제출할 수도 없어서다. 개인 동의와 비식별화 과정이 필요하지만 수많은 환자의 데이터를 이런 식으로 일일이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역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는 환자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축적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의료용 AI 기술력을 키우는 데 저해 요인이 된다는 비판론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의 경우 의료 발전을 위해 익명 가공의 의료 정보에 관한 개별법을 제정, AI 용 데이터 확보의 법적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준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국내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결국 의료용 AI의 성패는 현장에 적용하는 시스템에 달렸다”며 “규제 개선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뛰어난 기술도 사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의료용 AI 기술력이 뛰어난 인력들의 노력으로 일정 수준엔 도달했으며, 의료 서비스 개선과 산업적 성장이 기대되지만 규제와 복잡한 이해관계로 현장에 더디게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학회장은 “한국은 공학도와 의료인 수준이 높고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는 기반이 잘 닦여 있지만, 법적인 제약 탓에 현장 적용에선 괴리가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료 영상 기반 AI 판독 지원 솔루션이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허가 이후에도 현장에서 괴리가 발생했다. 병원들은 단일 보험 체제로 국가에서 책정하는 수가(보수로 주는 대가)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비용 부담이 클 수 있어 도입하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상 수가 책정에만 1년 가까이 걸린다. AI 신기술이 나왔어도 조기 적용이 어려운 셈이다. 이런 솔루션은 개발 자체도 국내에서 쉽지 않다. 엑스레이 영상 활용 판독 지원 솔루션이라면 약 10만장의 영상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데, 현행법상 10만 명 모두에게 정보 이용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의료용 AI만의 얘기가 아니다. 핀테크처럼 방대한 금융 정보 활용이 필수적인 분야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은 난관으로 작용 중이다. 이 같은 어려움에 국내 AI 기술 전반이 선진국보다 뒤처질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대중은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악용과 같은 부작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순 없지만, AI 시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데이터 확보 없이는 기술 발전이 어렵다”면서 “제도 개선의 문제인 만큼 정부가 대중의 불안감을 일정 부분 해소하면서도 기술 발전엔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묘책을 마련하고 국회도 여기에 부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위험성 최소화 위한 규제 필요성도 제기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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