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가 만난 사람(49) 박은관 시몬느 회장] 글로벌 명품 백 브랜드에 플랫폼 제공
[이필재가 만난 사람(49) 박은관 시몬느 회장] 글로벌 명품 백 브랜드에 플랫폼 제공
세계 최대의 규모의 명품 백 메이커... 핸드백 팔아 ‘1조원 클럽’ 가입 6100년. 세계 최대의 명품 백 메이커 시몬느의 ‘연륜’이다. 시몬느 본사 직원 약 400명의 경력을 합친 햇수다. 이 회사를 창업한 박은관 회장의 경력 41년에, 업계 최장수 종사 장인의 경력 55년, 신참들의 6개월 경력까지 더하면 총 6100년이 된다. 시몬느엔 환갑을 넘긴 장인만 11명이 근무한다.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도 이만한 현장 실무 경험을 내장한 명품 메이커는 없다고 한다.
약 20만 종. 시몬느 설립 후 지난 33년 간 개발한 핸드백 스타일의 가짓수이다. 연간 7000개의 스타일이 고안된다. 거래처인 명품 백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100장의 핸드백 스케치를 보내오면 그 중 95장은 이미 자체적으로 시도해 본 스타일이거나 그 변형이라고 시몬느 측은 귀띔했다. 박은관 회장은 “6100년의 종사 연륜과 20만 종의 백 스타일 아카이브가 시몬느의 재산목록 1, 2호”라고 말했다.
시몬느의 글로벌 명품 핸드백 시장 점유율은 10%에 육박한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30% 선에 이른다. 고객사는 코치,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도나카란뉴욕(DKNY), 케이트 스페이드, 로렌 랄프 로렌 등 쟁쟁한 브랜드들이다. DKNY와는 32년째, 코치와는 22년째 거래한다. 시몬느는 19개 명품 브랜드에 자사가 생산한 핸드백을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한다. 고객사의 디자인 및 소재 개발에도 참여하는 ODM의 비중이 70% 선이다. 풀 서비스를 하는 ODM 쪽이 마진과 고객사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더 유리함은 물론이다. 시몬느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127억원이다. 영업이익은 1431억원, 순익은 1074억원을 기록했다. 제조한 백은 전량 수출한다. 핸드백 수출만으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셈이다. 지난 3월 12일 경기도 의왕의 시몬느 본사에서 6년 만에 박 회장과 마주앉았다. 오피스 캠퍼스로 지어진 본사 사옥의 설계자 안길원은 이 설계로 200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장기 고객사가 많은 시몬느의 핵심역량이 뭡니까?
“고객사의 서플라이 체인을 대체한 시몬느의 부가가치 창출 플랫폼, 산업화된 장인정신, 고객사와의 협업 파트너십 등입니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을 제외하면 90% 이상의 명품 백 브랜드, 특히 미국 브랜드들은 자체 서플라이 체인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전문성·효율성을 갖춘 시몬느의 플랫폼이 고객을 대신해 핸드백 소재와 제품 개발, 품질 관리 등을 맡습니다. 또 명품 백은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 기계화·자동화가 쉽지 않은데 시몬느의 장인들이 손기술을 표준화·산업화했습니다. 모두 시몬느의 지적재산들이죠. 고객사와 협업할 땐 서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각자 잘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갑을 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반자 관계죠.”
시몬느의 영업이익율이 14~15%에 이르는 건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ODM 협업이 주이기 때문이다. 마진율이 높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고객사는 시몬느와 함께 개발한 제품을 다시 다른 협력사에 OEM으로 맡겨 전체 생산 물량의 원가를 낮춘다. 이런 협업 덕에 4조 달러어치의 핸드백을 파는 마이클 코어스의 핸드백 사업 부문은 32명이 근무한다.
가죽을 자른 자리에 작업하는 에지 페인팅은 자연 건조에 72시간이 걸린다. 시몬느의 장인들은 반년 간 고생해 열과 바람으로 말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이를 3분의 1로 단축시켰다. 이렇게 시간을 단축한 덕에 시몬느는 연간 7000개의 핸드백 샘플을 만들 수 있다. 세계적인 명품 백 브랜드들은 왜 시몬느와 협업할까? DKNY는 시몬느와 거래한 지난 32년 간 오너가 두 번 바뀌었다. 이 기간 동안 역대 핸드백 사업 사장은 6명, 디자이너는 총 150명이었다고 한다. 3년 전 창립 서른 돌을 맞아 고객사 CEO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박 회장이 이들에게 시몬느와 거래하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회사와 거래하는 데도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안정된 품질, 납기 준수 등의 일관성이 시몬느에 대한 신뢰를 낳은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왜 문제가 없었겠어요? 헌데 문제가 생겨도 그동안 경험에 비추어 시몬느가 상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거로 예상하더군요. 고객 입장에서 시몬느의 독보적 가치는 ‘예측 가능성’이라는 거죠.”
품질·납기 준수는 거래의 기본 아닌가요?
“고객사가 많이 어려울 땐 우리가 납품 가격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단기 거래라면 우리 회사도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지난 40여 년 간 줄잡아 3000번의 비즈니스 상담을 했습니다. 젊었을 땐 잘 몰랐는데 좋은 상담이란 내가 만족하는 게 아니라 거래 상대방이 잘됐다고 느끼는 상담입니다. 우리는 지난 33년 간 고객사와 계약서를 써 본 일이 없습니다. 고객의 비밀을 준수하겠다는 서류야 물론 작성했죠.”
시몬느가 다른 브랜드들과 거래하는 것이 고객 입장에서는 리스크인데요?
“시몬느 사례처럼, 경쟁관계에 있는 메이저 업체 대여섯 곳이 한 공장과 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보안을 지키기 때문이죠. 일례로 특정 고객사를 위해 개발한 소재는 다른 회사에 노출하지 않습니다. 시몬느가 자기들 경쟁사와도 거래하지만 시스템적으로 방화벽이 잘 쳐져 있어 자사 이익을 침해당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이를 위해 상설 쇼룸을 아예 만들지 않았고, 고객사와 상담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밀봉해 따로 보관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어떤가요?
“후유증이 큽니다. 원자재는 아니지만, 시몬느의 일부 부자재는 중국 업체 의존도가 95%나 됩니다. 우리 회사 생산량의 60%를 커버하고 R&D센터가 있는 베트남엔 2주째 출장을 못 가고 있어요. 서울·뉴욕의 예정된 상담도 다 취소됐죠. 우리 회사를 떠나 전체 럭셔리 시장이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일례로 거래사인 코치의 매출은 중국 내수 시장, 구미 중국 관광객 구매 비중이 전체의 25%입니다. 럭셔리 백은 사람들이 좀처럼 온라인 구매를 하지 않아요. 만일 이 사태가 6개월 이상 가면 모든 명품 브랜드가 큰 타격을 입을 거예요.”
전량 수출하는 시몬느엔 환율 등 유리한 면도 있겠죠?
“단기적으로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럭셔리 시장이라는 파이 자체가 쪼그라들 우려가 커요. IMF 체제, 금융위기 때처럼 유동성 공급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실물경제가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뀔 겁니다.”
AI 활용 등 4차 산업혁명 파고에 대한 대응은요?
“기본적으로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 AI 등의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핸드백 디자인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고, 이후 일부 디자인 영역이 AI에 넘어갈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박 회장은 중국 광저우시 명예시민이다. 시몬느가 중국서 만든 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격을 높이는 데 기여해 받은 타이틀이다. 광저우엔 ‘세문로(世門路·시몬느 거리)’가 있다. 시몬느가 2만 평의 부지에 조성해 기부한 공원 ‘세문원’도 있다. 세문로 1번지에 있던 시몬느 공장이 철수할 때 중국 당국자가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중국을 떠난 건 인건비 상승과 미·중 무역 갈등 때문이었다.
현재 시몬느의 핵심 생산거점은 베트남이다. 미 수입관세가 없는 인도네시아·캄보디아에도 생산 공장이 있다. 이 3개국, 7개 공장에서 모두 3만3000명이 일한다. 견본품을 만드는 인력만 1700명이나 된다. 4개 공장이 있는 베트남엔 서울과 더불어 R&D센터도 있다. 북핵 리스크가 있는 한국 이외 지역에 R&D 거점을 마련해 달라는 고객사의 요구로 4년 전 개설했다.
박 회장은 핸드백 OEM 업체 청산의 수출부장으로 있다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청산의 기존 바이어와의 거래를 피하려고 미국의 명품 백 시장을 뚫었다. 기존 중저가 제품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미국 현지 백화점에서 구한 DKNY 제품을 국내서 재현한 핸드백 6개를 앞세워 “싸게 잘 만들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라 곤란하다”던 미국 시장에 입성했다. 당시 박 회장은 “3대째 핸드백을 만드는 이탈리아 업체도 처음 시작할 땐 나처럼 맨땅에 헤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데는 정보 못지않게 배짱(gut)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9년 명품의 고향인 유럽에 진출할 땐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프랑스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 사장단 앞에서 이탈리아 명품과 시몬느 제품 각각 다섯 개씩 총 10개를 섞어놓고 LVMH 내부자들이 이탈리아 명품을 골랐다. 그들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고른 다섯 개 중 세 개가 시몬느 제품이었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땐 고객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안 된다고 반대해 1년이 걸렸습니다. 이 역시 제조국(country of origin) 장벽이죠. 그때 중국으로 옮긴 건 인건비도 쌌지만, 서울 근교 공장 부지와 수공업에 종사할 5000명의 인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시몬느는 핸드백을 만들어 수출하는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과 시몬느홀딩스로 구성돼 있다. 시몬느홀딩스는 시몬느자산운용 등 금융 자회사 넷을 포함해 6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박 회장 및 관계인의 시몬느 지분율은 62%이다.
창업 CEO로서 시몬느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까?
“기업은 시장, 커뮤니티, 구성원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좋은 기업이죠. 이 3자 관계는 때론 상충하기도 합니다. 시몬느의 시장 및 커뮤니티와의 관계는 B학점은 된다고 봐요. 구성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들의 지갑과 머리, 가슴을 채워 주려 노력합니다. 지갑 채우기는 급여 수준이 대기업과 비슷하니 70점, 머리 채우기는 60점, 가슴 채우기는 아직 50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시몬느의 기업문화가 뭔가요?
“도전정신, 캐주얼, 리버럴입니다. 우리는 무에서 시작해 제조에 이어 판매까지 아시아에 없던 럭셔리 시장을 창출했죠. 사훈은 없지만 구성원들에게 자유로운 생각, 열린 감성, 새로운 것에 대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강조합니다. 시몬느의 인재관이기도 하죠.”
경영 승계 문제는 어떻게 풀 건가요?
“임원들 중 후보군을 만들어 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 가족 승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두 딸에게 경영자로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창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뭐라고 보나요?
“멀리 내다보는 긴 호흡, 배움의 자세, 성장을 넘어 나눔까지 염두에 두는 성숙함입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머리로 배우지만 가슴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원양어업을 하신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때부터 해마다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때 가슴으로, 바다로부터 성실과 겸손을 배웠어요. 시몬느의 나눔은 현재진행형이자 과제입니다.” 시몬느는 미국 미네소타주 콩코르디아 언어마을에 한국어마을 ‘숲속의 호수’를 조성 중이다. 1차 건설비용 500만 달러 중 절반은 박 회장이 사재로 출연했다. 2012년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를 열었다. 2017년엔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과 손잡고 영어·중국어·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로도 뜻풀이가 제시된 핸드백용어사전도 펴냈다. 10여 년 전 베트남 출장길에 본사 직원이 현지 직원들에게 일본식 용어로 기술 지도 하는 모습을 보고 결심했다고 한다.
시몬느는 다음 먹을거리 말고는 이렇다 할 리스크가 없어 보입니다? 현재를 뛰어넘는 외형 성장은 가능하다고 보나요?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업종 특성상 매출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5~10년 후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요. 2012년 론칭한 자체 브랜드 0914를 통한 B2C 시장 진출도 어쩌면 해답이 아닐 수 있어요. 어쨌거나 열심히 노력해 성장의 모멘텀을 찾아야죠.”
0914는 1984년 9월 14일에서 비롯된 브랜드다. 부인 오인실씨와 11년 간 사귄 끝에 결혼한 박 회장은 그에 앞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와 헤어졌었다. 연애하던 시절 둘이 드나들던 카페에서 3년 만에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 날이 그날이었다. 이상형이라는 뜻의 ‘시몬느’는 결혼 전부터 그가 부르던 그녀의 애칭이다.
0914에 본격적으로 힘을 실을 때 아닌가요?
“40여 년 핸드백을 만든 나의 재킷에서는 여전히 기름 냄새가 납니다. 샤넬 넘버 파이브의 향이 아니라. 그토록 오래 백을 만들었지만 브랜딩 전문가는 아니라는 거죠. 나의 역할은 마중물입니다. 내가 맨발로 열심히 뛰면 다음 경영자는 나이키를 신고 뛰게 될지 모르죠. 10년 전부터 고객사들도 이제 당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약해요.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은 갖췄지만 스토리와 판타지가 부족해요. 꽃을 피우기까지 15~20년은 걸릴 것으로 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약 20만 종. 시몬느 설립 후 지난 33년 간 개발한 핸드백 스타일의 가짓수이다. 연간 7000개의 스타일이 고안된다. 거래처인 명품 백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100장의 핸드백 스케치를 보내오면 그 중 95장은 이미 자체적으로 시도해 본 스타일이거나 그 변형이라고 시몬느 측은 귀띔했다. 박은관 회장은 “6100년의 종사 연륜과 20만 종의 백 스타일 아카이브가 시몬느의 재산목록 1, 2호”라고 말했다.
시몬느의 글로벌 명품 핸드백 시장 점유율은 10%에 육박한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30% 선에 이른다. 고객사는 코치,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도나카란뉴욕(DKNY), 케이트 스페이드, 로렌 랄프 로렌 등 쟁쟁한 브랜드들이다. DKNY와는 32년째, 코치와는 22년째 거래한다. 시몬느는 19개 명품 브랜드에 자사가 생산한 핸드백을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한다. 고객사의 디자인 및 소재 개발에도 참여하는 ODM의 비중이 70% 선이다. 풀 서비스를 하는 ODM 쪽이 마진과 고객사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더 유리함은 물론이다.
70%를 ODM으로 공급, 영업이익 14%
장기 고객사가 많은 시몬느의 핵심역량이 뭡니까?
“고객사의 서플라이 체인을 대체한 시몬느의 부가가치 창출 플랫폼, 산업화된 장인정신, 고객사와의 협업 파트너십 등입니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을 제외하면 90% 이상의 명품 백 브랜드, 특히 미국 브랜드들은 자체 서플라이 체인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전문성·효율성을 갖춘 시몬느의 플랫폼이 고객을 대신해 핸드백 소재와 제품 개발, 품질 관리 등을 맡습니다. 또 명품 백은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 기계화·자동화가 쉽지 않은데 시몬느의 장인들이 손기술을 표준화·산업화했습니다. 모두 시몬느의 지적재산들이죠. 고객사와 협업할 땐 서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각자 잘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갑을 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반자 관계죠.”
시몬느의 영업이익율이 14~15%에 이르는 건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ODM 협업이 주이기 때문이다. 마진율이 높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고객사는 시몬느와 함께 개발한 제품을 다시 다른 협력사에 OEM으로 맡겨 전체 생산 물량의 원가를 낮춘다. 이런 협업 덕에 4조 달러어치의 핸드백을 파는 마이클 코어스의 핸드백 사업 부문은 32명이 근무한다.
가죽을 자른 자리에 작업하는 에지 페인팅은 자연 건조에 72시간이 걸린다. 시몬느의 장인들은 반년 간 고생해 열과 바람으로 말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이를 3분의 1로 단축시켰다. 이렇게 시간을 단축한 덕에 시몬느는 연간 7000개의 핸드백 샘플을 만들 수 있다.
고객사간 철저한 방화벽으로 신뢰 쌓아
“그 긴 세월 동안 왜 문제가 없었겠어요? 헌데 문제가 생겨도 그동안 경험에 비추어 시몬느가 상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거로 예상하더군요. 고객 입장에서 시몬느의 독보적 가치는 ‘예측 가능성’이라는 거죠.”
품질·납기 준수는 거래의 기본 아닌가요?
“고객사가 많이 어려울 땐 우리가 납품 가격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단기 거래라면 우리 회사도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지난 40여 년 간 줄잡아 3000번의 비즈니스 상담을 했습니다. 젊었을 땐 잘 몰랐는데 좋은 상담이란 내가 만족하는 게 아니라 거래 상대방이 잘됐다고 느끼는 상담입니다. 우리는 지난 33년 간 고객사와 계약서를 써 본 일이 없습니다. 고객의 비밀을 준수하겠다는 서류야 물론 작성했죠.”
시몬느가 다른 브랜드들과 거래하는 것이 고객 입장에서는 리스크인데요?
“시몬느 사례처럼, 경쟁관계에 있는 메이저 업체 대여섯 곳이 한 공장과 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보안을 지키기 때문이죠. 일례로 특정 고객사를 위해 개발한 소재는 다른 회사에 노출하지 않습니다. 시몬느가 자기들 경쟁사와도 거래하지만 시스템적으로 방화벽이 잘 쳐져 있어 자사 이익을 침해당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이를 위해 상설 쇼룸을 아예 만들지 않았고, 고객사와 상담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밀봉해 따로 보관합니다.”
코로나19 사태 6개월 이상 가면 치명적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어떤가요?
“후유증이 큽니다. 원자재는 아니지만, 시몬느의 일부 부자재는 중국 업체 의존도가 95%나 됩니다. 우리 회사 생산량의 60%를 커버하고 R&D센터가 있는 베트남엔 2주째 출장을 못 가고 있어요. 서울·뉴욕의 예정된 상담도 다 취소됐죠. 우리 회사를 떠나 전체 럭셔리 시장이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일례로 거래사인 코치의 매출은 중국 내수 시장, 구미 중국 관광객 구매 비중이 전체의 25%입니다. 럭셔리 백은 사람들이 좀처럼 온라인 구매를 하지 않아요. 만일 이 사태가 6개월 이상 가면 모든 명품 브랜드가 큰 타격을 입을 거예요.”
전량 수출하는 시몬느엔 환율 등 유리한 면도 있겠죠?
“단기적으로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럭셔리 시장이라는 파이 자체가 쪼그라들 우려가 커요. IMF 체제, 금융위기 때처럼 유동성 공급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실물경제가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뀔 겁니다.”
AI 활용 등 4차 산업혁명 파고에 대한 대응은요?
“기본적으로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 AI 등의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핸드백 디자인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고, 이후 일부 디자인 영역이 AI에 넘어갈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박 회장은 중국 광저우시 명예시민이다. 시몬느가 중국서 만든 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격을 높이는 데 기여해 받은 타이틀이다. 광저우엔 ‘세문로(世門路·시몬느 거리)’가 있다. 시몬느가 2만 평의 부지에 조성해 기부한 공원 ‘세문원’도 있다. 세문로 1번지에 있던 시몬느 공장이 철수할 때 중국 당국자가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중국을 떠난 건 인건비 상승과 미·중 무역 갈등 때문이었다.
현재 시몬느의 핵심 생산거점은 베트남이다. 미 수입관세가 없는 인도네시아·캄보디아에도 생산 공장이 있다. 이 3개국, 7개 공장에서 모두 3만3000명이 일한다. 견본품을 만드는 인력만 1700명이나 된다. 4개 공장이 있는 베트남엔 서울과 더불어 R&D센터도 있다. 북핵 리스크가 있는 한국 이외 지역에 R&D 거점을 마련해 달라는 고객사의 요구로 4년 전 개설했다.
박 회장은 핸드백 OEM 업체 청산의 수출부장으로 있다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청산의 기존 바이어와의 거래를 피하려고 미국의 명품 백 시장을 뚫었다. 기존 중저가 제품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미국 현지 백화점에서 구한 DKNY 제품을 국내서 재현한 핸드백 6개를 앞세워 “싸게 잘 만들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라 곤란하다”던 미국 시장에 입성했다. 당시 박 회장은 “3대째 핸드백을 만드는 이탈리아 업체도 처음 시작할 땐 나처럼 맨땅에 헤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데는 정보 못지않게 배짱(gut)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9년 명품의 고향인 유럽에 진출할 땐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프랑스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 사장단 앞에서 이탈리아 명품과 시몬느 제품 각각 다섯 개씩 총 10개를 섞어놓고 LVMH 내부자들이 이탈리아 명품을 골랐다. 그들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고른 다섯 개 중 세 개가 시몬느 제품이었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땐 고객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안 된다고 반대해 1년이 걸렸습니다. 이 역시 제조국(country of origin) 장벽이죠. 그때 중국으로 옮긴 건 인건비도 쌌지만, 서울 근교 공장 부지와 수공업에 종사할 5000명의 인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시몬느는 핸드백을 만들어 수출하는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과 시몬느홀딩스로 구성돼 있다. 시몬느홀딩스는 시몬느자산운용 등 금융 자회사 넷을 포함해 6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박 회장 및 관계인의 시몬느 지분율은 62%이다.
창업 CEO로서 시몬느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까?
“기업은 시장, 커뮤니티, 구성원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좋은 기업이죠. 이 3자 관계는 때론 상충하기도 합니다. 시몬느의 시장 및 커뮤니티와의 관계는 B학점은 된다고 봐요. 구성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들의 지갑과 머리, 가슴을 채워 주려 노력합니다. 지갑 채우기는 급여 수준이 대기업과 비슷하니 70점, 머리 채우기는 60점, 가슴 채우기는 아직 50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시몬느의 기업문화가 뭔가요?
“도전정신, 캐주얼, 리버럴입니다. 우리는 무에서 시작해 제조에 이어 판매까지 아시아에 없던 럭셔리 시장을 창출했죠. 사훈은 없지만 구성원들에게 자유로운 생각, 열린 감성, 새로운 것에 대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강조합니다. 시몬느의 인재관이기도 하죠.”
경영 승계 문제는 어떻게 풀 건가요?
“임원들 중 후보군을 만들어 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 가족 승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두 딸에게 경영자로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창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뭐라고 보나요?
“멀리 내다보는 긴 호흡, 배움의 자세, 성장을 넘어 나눔까지 염두에 두는 성숙함입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머리로 배우지만 가슴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원양어업을 하신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때부터 해마다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때 가슴으로, 바다로부터 성실과 겸손을 배웠어요. 시몬느의 나눔은 현재진행형이자 과제입니다.”
내 역할은 브랜드 헤리티지 만드는 마중물
시몬느는 다음 먹을거리 말고는 이렇다 할 리스크가 없어 보입니다? 현재를 뛰어넘는 외형 성장은 가능하다고 보나요?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업종 특성상 매출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5~10년 후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요. 2012년 론칭한 자체 브랜드 0914를 통한 B2C 시장 진출도 어쩌면 해답이 아닐 수 있어요. 어쨌거나 열심히 노력해 성장의 모멘텀을 찾아야죠.”
0914는 1984년 9월 14일에서 비롯된 브랜드다. 부인 오인실씨와 11년 간 사귄 끝에 결혼한 박 회장은 그에 앞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와 헤어졌었다. 연애하던 시절 둘이 드나들던 카페에서 3년 만에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 날이 그날이었다. 이상형이라는 뜻의 ‘시몬느’는 결혼 전부터 그가 부르던 그녀의 애칭이다.
0914에 본격적으로 힘을 실을 때 아닌가요?
“40여 년 핸드백을 만든 나의 재킷에서는 여전히 기름 냄새가 납니다. 샤넬 넘버 파이브의 향이 아니라. 그토록 오래 백을 만들었지만 브랜딩 전문가는 아니라는 거죠. 나의 역할은 마중물입니다. 내가 맨발로 열심히 뛰면 다음 경영자는 나이키를 신고 뛰게 될지 모르죠. 10년 전부터 고객사들도 이제 당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약해요.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은 갖췄지만 스토리와 판타지가 부족해요. 꽃을 피우기까지 15~20년은 걸릴 것으로 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킨텍스 게임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에...관람객 대피소동
2美항모 조지워싱턴함 日 재배치...한반도·中 경계
3공항철도, 시속 150km 전동차 도입...오는 2025년 영업 운행
4두산 사업구조 재편안, 금융당국 승인...주총 표결은 내달 12일
5‘EV9’ 매력 모두 품은 ‘EV9 GT’...기아, 美서 최초 공개
6민희진, 빌리프랩 대표 등 무더기 고소...50억원 손배소도 제기
7中, ‘무비자 입국 기간’ 늘린다...韓 등 15일→30일 확대
8빙그레, 내년 5월 인적분할...지주사 체제 전환
9한화오션, HD현대重 고발 취소...“국익을 위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