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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과 경제 사이에 선 미국의 딜레마] 미국은 코로나19 당파 싸움 중

[방역과 경제 사이에 선 미국의 딜레마] 미국은 코로나19 당파 싸움 중

민주당 “봉쇄” 공화당 “완화”… 트럼프 시위 부추기며 정쟁화
한 여성 시위자가 4월 22일 미국 뉴욕 의사당 건물 앞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뉴욕을 다시 열어라’는 글을 붙인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에서 벗어나 경제활동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방역도 문제지만 봉쇄로 인해 사람들의 정상 활동이 상당 기간 중단되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적인 부담까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CNN 등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봉쇄에 반발해 이를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는 주민 시위가 줄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여러 주는 경제활동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19의 확산을 제대로 막지도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하면 감염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지적도 적지 않다.

4월 23일 0시 현재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265만6000명 이상, 사망자가 18만5000명 이상 발생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84만9000여 명의 확진자와 4만70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특히 뉴욕 주에서 26만2000여 명의 확진자와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가장 많은 피해를 봤다. 뉴욕 주는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가 1만3300여 명에 사망자가 1030여 명으로 미국의 어떤 주보다 많다. 검사도 미국 전역에서 이뤄진 4326만여 건 가운데 66만9000여 건이 뉴욕 주에서 이뤄졌다. 인구 100만 명당 검사자 비율도 뉴욕 주는 3만4000여 명으로 미국의 어떤 지역보다 높다. 뉴욕은 그야말로 미국 코로나19의 중심지다.
 뉴욕·버지니아 코로나 검사 앞세우며 정부와 대립각
문제는 그런 뉴욕 주가 미국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뉴욕 주의 인구는 2019년 7월 추산치로 1945만 명으로 미국 전체에서 캘리포니아(3951만)·텍사스(2899만)·플로리다(2147만) 다음 가는 4위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지난 2월 19일 공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뉴욕주의 지역총생산(GDP)은 2019년 추산치는 1조7516억 달러로 미국 내 다른 주와 비교해서 캘리포니아(3조1832억 달러)와 텍사스(1조9180억 달러) 다음의 3위다.

뉴욕 주의 GDP는 캐나다(1조7309억 달러)·러시아(1조6378억 달러)·한국(1조6295억 달러)보다 많다. 국가로 치면 미국(21조 4394억 달러)·중국(14조1401억 달러)·일본(5조1544억 달러)·독일(3조8633억 달러)·인도(2조9355억 달러)·영국(2조7435억 달러)·프랑스(2조7070억달러)·이탈리아(1조9886억 달러)·브라질(1조8470억 달러) 다음으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해당한다.

뉴욕 주의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9만43달러로 미국의 주 가운데 1위다. 국가로 치면 룩셈부르크(11만3196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의 부자나라에 해당한다. 스위스(8만3716달러)나 노르웨이(7만7975달러)보다 많다. 뉴욕 주에는 뉴욕시 맨해튼의 금융가인 월가는 물론 정보기술(IT), 제조업 중심지가 수두룩하다.

이처럼 세계의 경제 센터인 뉴욕이 최악의 코로나19 감염시가 되고 경제활동이 중지됐으니 그 답답함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뉴욕 주는 미국의 어떤 지역보다 이른 시일 안에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싶을 것이다.

민주당 소속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4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그런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쿠오모 주지사는 “우리 주의 감염 확산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경향이 지속하면 감염의 최고점을 넘어서게 된다”라고 밝혔다. 확산세가 둔화하기를 기다려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가 밝힌 출구 전략의 하나가 항체 검사다. 뉴욕 주는 4월 20일 항체검사를 시작해 하루 2000명 규모로 실시 중이다. 항체 검사를 통해 전체 인구에서 어느 정도가 집단 면역을 확보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축적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활동 재개시기를 정밀하게 살필 예정이다.

쿠오모 주지사가 밝힌 또 다른 출구 전략은 광범위한 코로나19 검사다. 쿠오모는 주 전역에 걸쳐 ‘가장 공격적인’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활동 재개를 위해선 충분한 코로나19 검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설정이다. 이처럼 미국에선 각 주의 코로나19 확진 검사 능력 확대도 출구 전략의 핵심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추적할 수 있는 역량이 그만큼 따라줘야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쿠오모의 검사 확대 전략 앞에 다른 주지사들도 호응하면서 충분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백악관의 자랑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랠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는 17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단계 경제 재개를 위한 충분한 코로나19 검사가 이뤄졌다고 언급하자 “망상”이라고 비난했다. 노덤 주지사는 “버지니아주는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면봉조차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주지사에 책임 넘기며 경제활동 정상화 발표
마이클 블룸버그(왼쪽) 미국 뉴욕시장과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코로나19 대응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는 미국의 현 상황과 출구를 위한 조건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NYT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결과를 인용해 “경제 활동 재개가 가능 하려면 현재 하루 14만6000명 선인 코로나19 검사능력이 적어도 50만~70만 명 수준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3~5배 더 많은 검사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NYT는 “현재 미국의 50개 주와 워싱턴DC를 포함한 51개 지역 중 이런 능력을 갖춘 곳은 로드아일랜드 주뿐”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주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방역을 제대로 하면서 안전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출구 전략의 조건을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곡선이 정점을 지나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검사 능력이나 항체 보유자 비율이 어느 정도로 확보돼야만 경제활동 재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과학적이고 단호한 쿠오모와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행동이 굼뜨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16일 백악관은 확진자가 많지 않은 주를 대상으로 직장 복귀와 자가격리 해제 등 봉쇄를 3단계에 걸쳐 완화하면서 경제활동을 정상화하는 재개 지침을 마련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재개 시기나 시행 방법 등에 대한 권한을 각 주지사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연방제라는 미국의 체제에 비춰 경제활동 재개는 주지사가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밀려서다. 트럼프는 단계별 정상화 지침을 제시하면서도 50개 주에 대한 일률적·강제적 적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국 최종 판단은 개별 주지사가 결정할 몫이라며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주지사들에게 넘겼다.

그러자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주지사는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플로리다, 텍사스 등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봉쇄 완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20일부터 쇼핑이나 하이킹, 일반 의료기관 영업 등을 허용한다고 선언했다. 남부 공화당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등 6개주의 주지사들은 조만간 정상화 일정을 공동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보조를 맞추겠다는 이야기다. 이들 지역은 감염자가 비교적 적다.

반면 민주당은 감염자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동부와 서부 해안 지역의 주지사를 주로 맡고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시위대의 압력에도 쉽게 봉쇄를 풀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다. 민주당 소속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내 호텔방 1만1000개를 노숙인들에게 제공한다고 밝히면서 “검사 능력을 대폭 확대하기 전에는 제한을 풀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쿠오모 지사와 일맥상통하는 과학적인 기준이자 지침이다. 동부 7개주 주지사들도 5월 15일까지 자택 대피 명령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주지사 당 소속에 따라 코로나 대응 정책도 대조
시위대가 미국 뉴욕 의사당 건물 인근에서 거리를 행진하며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봉쇄한 뉴욕의 개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있는 다른 주들은 이런 조건과 무관하게 조금씩 봉쇄의 빗장을 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0개 주 가운데 29개 주에서 조기에 경제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 주는 17일부터 그동안 폐쇄했던 해변을 제한시간에 개방했다. 이날 공화당 소속인 론 데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폐쇄했던 해변 재개방 여부를 지역 자치장의 재량에 맡기겠다고 밝힌 것이 계기였다.

그러자 같은 날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래니 커리 시장이 지정된 시간에, 수건이나 의자 지참을 금지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등 조건으로 듀발 카운티의 해변을 재개방했다. CNN은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조깅·수영·서핑·산책·선탠 등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주지사는 2m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을 당부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CNN의 보도다. CBS도 “마스크 없이 해변 산책에 나선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SNS에는 이를 두고 ‘플로리다 멍청이들’(#FloridaMorons)‘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쏟아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플로리다 주 당국은 듀발 카운티 외에도 잭슨빌·넵튠·애틀랜틱의 해변을 매일 오전 6~11시, 오후 5~8시에 개방하기로 했다. ‘시민에게 숨통을 열 여유를 제공했다’는 평가와 ‘방역 라인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교차할 수밖에 없는 조치다. 텍사스 주는 20일부터 주립공원을 개장하고 24일부터는 소매점의 배달 및 테이크아웃 영업을 허가한 데 이어 상당수 소매점의 재개장도 허용했다. 중서부 오하이오 주와 미시건 주는 5월 1일 경제활동을 재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버몬트 주는 5월 1일부터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재개장하기로 했다. 미네소타 주는 18일부터 2m 거리 두기를 조건으로 골프장, 공원, 요트 정박장 등을 열었다.

미국에선 외출 제한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시위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 곳곳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자택대피령’을 해제하고 경제활동 재개를 요구하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먼저 시위가 시작된 곳이 미시간주의 주도 랜싱으로 15일 수천 명이 거리에 나와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에게 경제활동 재개를 촉구했다. 토요일인 18일에는 텍사스, 오하이오, 메릴랜드, 뉴저지, 유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워싱턴, 콜로라도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일요일인 19일에는 콜로라도주, 몬타나주 등으로 시위가 확산했다.
 재선 다급해진 트럼프 항의 트윗 날리며 갈등 선동
시위대는 개인의 일생활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보수파 또는 공화당 지지파가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전역의 풀뿌리 보수단체들이 힘을 합쳐 ‘우리나라를 구하자(Save Our Country)’라는 이름의 반대 운동을 공동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주지사들에게 안전하고 신속한 경제활동 재개를 촉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연이어 시위가 발생하자 트럼프는 묘한 행동을 했다. 트럼프는 보수파의 행동을 지지하면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해방하라(Liberate)라는 말과 항의 시위가 벌어진 주의 이름을 나란히 붙인 트윗을 날렸다. 자신의 트위터에 “미시간을 해방하라” “미네소타를 해방하라” “버지니아를 해방하라” 등의 내용을 연속으로 올렸다. 공교롭게도 이 3개 주의 주지사는 모두 트럼프와 다른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신속한 경제활동 재개보다 방역에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해방하라”라는 트윗을 날린 것은 주민들의 시위를 부추기고 자신이 주장하는 경제활동 재개를 압박한 것이나 진배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주지사들에 대항하는 시위를 선동하고 나선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와 경제활동 재개라는 과제 앞에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를 한 셈이다. 그만큼 트럼프가 다급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의 경제 점수도 낙제점에 다가서고 있다. 역시 결정타는 고용에서 나왔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이 지난 4주간 2200만 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4월 둘째 주에만 524만5000명이 새로 신청했다. 이에 따라 4월 실업률은 2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보수적으로 봐도 15%는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경제 웹사이트인 마켓워치는 이런 실업률은 대공황 당시인 1932년의 25% 이후 최악이라고 전했다.

더욱 문제는 코로나19에 확산 초기에는 식당·호텔·바 등 대면접촉이 필요한 서비스업에서 시작해 영화관·옷가게·미용실 등으로 확산했던 감원이 이제는 프로그래머와 법률·의료 분야 종사자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자가 늘면서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푸드뱅크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서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11월 재선을 위한 대선을 앞둔 트럼프로서는 방역은 물론 경제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조치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경제활동 재개와 봉쇄 해제를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은 아무래도 방역을 앞세우고 경제 활동 재개를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코로나19 방역은 갈수록 정치적인 색채를 더하고 있다.

적절한 정치는 정치인의 분발을 자극하지만, 지나친 정치화는 포퓰리즘적인 행보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과정에서 자칫 과학적인 방역이 밀려나고 정치 논리에 따른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판을 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는 미국이 우려되는 이유다.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기 때문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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