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우려 교차하는 첨생법] 난치병 치료 기회 확대 VS 국민의 안전 위협 우려
[희망과 우려 교차하는 첨생법] 난치병 치료 기회 확대 VS 국민의 안전 위협 우려
‘신속처리대상 지정’ 지적 많아… 강력한 보안책 강화 필요성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이 될까, 아니면 부작용 우려가 더 커질까’
최근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 시행을 앞두고 의료·제약·바이오 업계와 시민단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첨생법은 줄기세포치료제나 유전자 치료에 심사와 관리 규제 등을 완화하는 법률이다. 2019년 8월 제정돼 오는 8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 세포를 채취하고 관리할 수 있게 허가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윤리적인 문제로 실험을 제한했던 줄기세포 실험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가능하게 됐다. 암이나 희귀 질병 등에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품의 유익성이 자료에 의해 증명되면 임상2상 후 조기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법 시행을 앞두고 고무적인 분위기다. 효과가 완벽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보통 신약 개발 기간을 10~15년으로 잡는다.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신약 개발 단계 중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임상3상을 생략하면 많은 시간이 절약된다. 제약업계는 첨생법 시행으로 의약품 개발에서 시판까지 걸리는 시간을 평균 3~4년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전화 통화에서 “희귀난치성 환자들에게 치료의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법이 통과되고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과거 우려됐던 부분을 잘 해소하고 부작용 등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지난해 법안이 통과되자 “투명하고 안전한 절차에 기반한 국민건강을 위한 양법(良法)”이라며 “국내 바이오 산업계는 재생의료와 바이오의약품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세포 채취부터 장기추적조사까지 첨단 바이오 의약품 전주기에 걸쳐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했다”며 “여러 가지 제도와 보완책을 통해 환자 안전에 관한 문제를 최소화하는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첨생법에 따르면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를 하려는 의료기관은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으로 지정받아야 한다.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를 하기 전 연구대상자의 동의를 받는 것도 필수다. 또 첨단재생의료 연구계획을 제출하고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했다.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누구나 마음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환자의 안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게 식약처 측 설명이다. 연구개발 목적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대한 치료 목적이 일치하는 때에만 재생의료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상 연구 역시 의사의 책임과 환자의 동의를 전제로 시급성, 안전성, 유효성 등에 대해 국가 소속 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첨생법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쪽에서는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만들고 제약사들의 돈벌이를 강화하는 법이라고 비판한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 성명서를 통해 “첨생법은 임상시험이 다 끝나지 않은 약을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게 하는 ‘조건부허가’를 손쉽게 하는 악법”이라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할 법안”이라고 밝혔다.
첨생법 논란 때문에 인보사 사태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제2, 제3의 인보사 사태는 물론 이보다 더 큰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 주사액으로 ‘알려졌던’ 물질이다. 2017년 국내 첫 유전자 치료제로 식약처 허가도 받았다. 그런데 2019년 코오롱생명과학의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이 미국에서 ‘인보사’의 임상3상과 상업 생산을 위한 세포은행을 설립하려다 문제가 터졌다. 치료제의 주성분 중 하나가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지난해 5월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미국 임상3상(환자투약) 보류를 결정했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올해 4월 미국이 임상3상에 대한 보류를 해제하고 3상 시험 재개를 허용했지만, 인보사와 이를 개발한 회사의 신뢰에 금이 갔다는 평가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지난해 7월 기자회견을 열고 “세포의 유래를 착오했고, 그 사실을 불찰로 인해 인지하지 못한 채 허가를 신청해 승인받았다”며 “17년 전 당시로써는 최선을 다한 세포 확인 기법이 현재의 발달한 첨단기법 기준으로는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7년 동안 주요 성분이 바뀐 것을 몰랐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지난해 4월 열린 ‘유전자세포치료제 인보사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도 첨생법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토론회에서 전진한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보사 사태 이후 관리제도를 강화하겠다면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언급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며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등장한 기업 규제 완화법이고 이번 사태를 일으킨 부실한 품목허가를 더 간소하게 만드는 내용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찬성하는 ‘신속처리대상 지정’ 부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첨생법은 희귀난치병 치료제에 대해 임상2상을 마치면 신속처리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고, 이 경우 시판 후 3상 시험을 수행하는 조건으로 ‘조건부 허가’를 얻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임상 3상을 통과하지도 않은 물질을 판매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임상2상에서 수 백명 환자들을 시험에 참여 시키지만, 약의 효능을 완전히 증명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약물을 투여한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데 짧은 기간에 이런 문제를 모두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9년 9월 ‘재생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주제로 진행된 헬스케어 미래포럼에서 김병수 고려대 의과대 교수(혈액종양내과)는 “재생의료를 위한 규제 완화도 필요한 일이지만 인보사 사태처럼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생의료를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품질관리를 담보한 뒤에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 시행을 앞두고 의료·제약·바이오 업계와 시민단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첨생법은 줄기세포치료제나 유전자 치료에 심사와 관리 규제 등을 완화하는 법률이다. 2019년 8월 제정돼 오는 8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 세포를 채취하고 관리할 수 있게 허가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윤리적인 문제로 실험을 제한했던 줄기세포 실험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가능하게 됐다. 암이나 희귀 질병 등에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품의 유익성이 자료에 의해 증명되면 임상2상 후 조기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희귀난치병 환자와 업계, 정부는 환영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전화 통화에서 “희귀난치성 환자들에게 치료의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법이 통과되고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과거 우려됐던 부분을 잘 해소하고 부작용 등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지난해 법안이 통과되자 “투명하고 안전한 절차에 기반한 국민건강을 위한 양법(良法)”이라며 “국내 바이오 산업계는 재생의료와 바이오의약품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세포 채취부터 장기추적조사까지 첨단 바이오 의약품 전주기에 걸쳐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했다”며 “여러 가지 제도와 보완책을 통해 환자 안전에 관한 문제를 최소화하는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첨생법에 따르면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를 하려는 의료기관은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으로 지정받아야 한다.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를 하기 전 연구대상자의 동의를 받는 것도 필수다. 또 첨단재생의료 연구계획을 제출하고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했다.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누구나 마음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환자의 안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게 식약처 측 설명이다. 연구개발 목적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대한 치료 목적이 일치하는 때에만 재생의료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상 연구 역시 의사의 책임과 환자의 동의를 전제로 시급성, 안전성, 유효성 등에 대해 국가 소속 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민안전 위협 우려, ‘인보사 사태’ 재거론도
첨생법 논란 때문에 인보사 사태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제2, 제3의 인보사 사태는 물론 이보다 더 큰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 주사액으로 ‘알려졌던’ 물질이다. 2017년 국내 첫 유전자 치료제로 식약처 허가도 받았다. 그런데 2019년 코오롱생명과학의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이 미국에서 ‘인보사’의 임상3상과 상업 생산을 위한 세포은행을 설립하려다 문제가 터졌다. 치료제의 주성분 중 하나가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지난해 5월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미국 임상3상(환자투약) 보류를 결정했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올해 4월 미국이 임상3상에 대한 보류를 해제하고 3상 시험 재개를 허용했지만, 인보사와 이를 개발한 회사의 신뢰에 금이 갔다는 평가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지난해 7월 기자회견을 열고 “세포의 유래를 착오했고, 그 사실을 불찰로 인해 인지하지 못한 채 허가를 신청해 승인받았다”며 “17년 전 당시로써는 최선을 다한 세포 확인 기법이 현재의 발달한 첨단기법 기준으로는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7년 동안 주요 성분이 바뀐 것을 몰랐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지난해 4월 열린 ‘유전자세포치료제 인보사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도 첨생법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토론회에서 전진한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보사 사태 이후 관리제도를 강화하겠다면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언급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며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등장한 기업 규제 완화법이고 이번 사태를 일으킨 부실한 품목허가를 더 간소하게 만드는 내용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찬성하는 ‘신속처리대상 지정’ 부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첨생법은 희귀난치병 치료제에 대해 임상2상을 마치면 신속처리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고, 이 경우 시판 후 3상 시험을 수행하는 조건으로 ‘조건부 허가’를 얻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임상 3상을 통과하지도 않은 물질을 판매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임상2상에서 수 백명 환자들을 시험에 참여 시키지만, 약의 효능을 완전히 증명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약물을 투여한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데 짧은 기간에 이런 문제를 모두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9년 9월 ‘재생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주제로 진행된 헬스케어 미래포럼에서 김병수 고려대 의과대 교수(혈액종양내과)는 “재생의료를 위한 규제 완화도 필요한 일이지만 인보사 사태처럼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생의료를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품질관리를 담보한 뒤에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인 가구 월평균 소득 315만원…생활비로 40% 쓴다
2‘원화 약세’에 거주자 외화예금 5개월 만에 줄어
3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9개월 만에 하락
4국제 금값 3년 만에 최대 하락…트럼프 복귀에 골드랠리 끝?
5봉화군,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청년 농업인 유입 기대"
6영주시, 고향사랑기부 1+1 이벤트..."연말정산 혜택까지 잡으세요"
7영천시 "스마트팜으로 농업 패러다임 전환한다"
8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9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