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미국 대선에 담긴 ‘달러화 불확실성’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미국 대선에 담긴 ‘달러화 불확실성’
미·중 대립에 민감한 원화…美의 중국 봉쇄 전략은 초당적 상수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19세기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를 열어젖힌 이 명구는 현재 미국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미국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리더가 없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겠다는 우두머리는 미국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 우두머리는 설마 했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꿰찼고, 다들 진다고 했던 대통령 선거까지 이겨 버렸다. 그렇게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가 열린 것이 4년 전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존중했던 불문율(不文律)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불문율(不問律)이 되어 버렸다. 워싱턴 정가의 전통, 외교 관례, 동맹 관계, 중앙은행의 독립성 등 모든 것이 최강국의 제왕적 대통령 직(職)을 차지한 그에게는 성가신 것들이었고 거래 가능한 대상이었다. 그는 수시로 날리는 트윗에 언론이 야단법석하고 금융시장이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며, 짜릿함을 즐겼을 것이다. 취임 전후 달러화가 너무 강하다며 수시로 외환시장을 흔들었다. 2018년 4분기에는 주식을 살 엄청난 기회라며 주식 매입을 독려했다. 또, 자신이 지명한 연준 의장에게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기도 했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대통령 직이 걸린 선거의 시간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미국 역사에서는 대통령 직이 걸린 문제로 연방 대법원까지 가서 법의 판단을 구한 사례들이 있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도 그 중 하나다. 그 조사 과정에서 닉슨 행정부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될 녹음테이프의 존재 사실이 알려졌다. 닉슨 대통령이 집무실에 녹음 장치를 갖추고 보좌진이나 기타 요인과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해 왔던 것이다.
닉슨은 녹음테이프 제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대통령이 법 위에 있지는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하급 법원의 녹음테이프 제출 명령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결국 닉슨은 탄핵이 눈앞에 다가오자 1974년 8월 스스로 사임했다.
2000년에는 박빙의 대통령 선거 결과로, 재검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결국 연방 대법원의 판단이 승패를 갈랐다. 사실상의 대선인 선거인단 확보 대결에서 조지 W. 부시 후보가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267명을 확보한 앨 고어 후보를 가까스로 이겼는데, 25명이 걸린 플로리다 주(州)의 표 차이는 더 극적이었다. 재검표시 앨 고어 후보의 승리로 결과가 뒤집힐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재검표의 공정성을 기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연방 대법원은 재검표가 현실적으로 헌법의 동등한 보호와 적법한 절차의 원칙에 따라 수행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만장일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연방 대법원의 판단도 5대 4로 갈렸다. 그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고배를 마시게 된 당사자 앨 고어는 깨끗이 승복하면서 자신의 품격은 물론 미국의 국격(國格)을 높였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4년 후 재선에 성공할 때까지 정통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11월 3일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도 투표 결과에 논란이 생겨 미국이 분열하고 극심한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특히 우편투표가 논란이다. 코로나19 창궐로 우편 투표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트럼프 지지자들은 현장 투표를 선호하고, 바이든 지지자들은 우편 투표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다.
우편 투표에서의 열세를 인지한 트럼프 진영은 적극적으로 우편 서비스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우편 투표를 문제 삼으며 불복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사기”라며 패배 시 불복할 것을 시사했다. 트럼프의 측근인 연방 우체국장이 아예 우편서비스 역량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키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평소 며칠이면 도착하던 우편물이 최근에는 몇 주씩 소요된다고 한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기록적인 숫자의 표가 무효 처리될 수 있고 각 주마다 유효한 우편 투표로 인정하는 기준도 달라 논란거리는 많다. 또 다시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대선 승자가 가려질지 모른다. 11월 3일이 지나도 상당기간 대선의 승자가 드러나지 않으며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번 대선은 한판 진검 승부가 아니라 대선 이후까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 승자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금융시장에 악재가 될 것이다. 나중에 승자가 가려진 후에도 트럼프와 바이든의 색깔과 정책이 대조적이다 보니, 승자에 따라 시장 반응은 차별화될 것이다. 바이든이 추진하려는 규제 증가와 증세는 주식시장에 부담이다. 다만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니,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반면 주식시장을 자신의 업적과 동일시하며 주가 부양에 치중했던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당장은 주식시장이 반색할 수 있다. 따라서 단기적 시장 반응은 차별화될 수 있다.
달러화는 어떨까. 최근 미국 연준이 평균 물가목표제(AIT : Average Inflation Target)를 공식화하면서 향후 금리 인상의 문턱을 높이고 장기간 경기 부양에 방점을 찍었다. 달러화 가치의 힘이 빠지는 조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하락이 현실화되려면 달러화를 팔며 매수할 통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유럽이나 중국 등 미국 외 글로벌 경제에 투자할 호재가 추가로 생기거나 코로나19를 떨치고 회복세를 보여야 하는데 아직 쉽지 않아 보인다.
원론적으로는 대선 승자가 누군지 보다는 세계 경제 변수가 향후 달러화에 더욱 중요하다. 더구나 바이든이 ‘Buy American’의 기치를 들었고 트럼프가 ‘America First’를 주창하고 있다. 다만 동맹을 불문하고 무역 분쟁을 일삼고 미국의 배타적 성장을 지향하는 트럼프의 집권 연장이 바이든에 비해 달러 강세에 우호적일 것으로 점쳐진다. 원화는 미·중간 대립 수위에 민감하게 반응할 텐데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은 초당적이기에 당선자를 불문한 상수로 봐야 할 것이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세기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를 열어젖힌 이 명구는 현재 미국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미국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리더가 없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겠다는 우두머리는 미국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 우두머리는 설마 했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꿰찼고, 다들 진다고 했던 대통령 선거까지 이겨 버렸다. 그렇게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가 열린 것이 4년 전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존중했던 불문율(不文律)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불문율(不問律)이 되어 버렸다. 워싱턴 정가의 전통, 외교 관례, 동맹 관계, 중앙은행의 독립성 등 모든 것이 최강국의 제왕적 대통령 직(職)을 차지한 그에게는 성가신 것들이었고 거래 가능한 대상이었다.
파격의 연속이었던 트럼프 행정부
미국 역사에서는 대통령 직이 걸린 문제로 연방 대법원까지 가서 법의 판단을 구한 사례들이 있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도 그 중 하나다. 그 조사 과정에서 닉슨 행정부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될 녹음테이프의 존재 사실이 알려졌다. 닉슨 대통령이 집무실에 녹음 장치를 갖추고 보좌진이나 기타 요인과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해 왔던 것이다.
닉슨은 녹음테이프 제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대통령이 법 위에 있지는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하급 법원의 녹음테이프 제출 명령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결국 닉슨은 탄핵이 눈앞에 다가오자 1974년 8월 스스로 사임했다.
2000년에는 박빙의 대통령 선거 결과로, 재검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결국 연방 대법원의 판단이 승패를 갈랐다. 사실상의 대선인 선거인단 확보 대결에서 조지 W. 부시 후보가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267명을 확보한 앨 고어 후보를 가까스로 이겼는데, 25명이 걸린 플로리다 주(州)의 표 차이는 더 극적이었다. 재검표시 앨 고어 후보의 승리로 결과가 뒤집힐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재검표의 공정성을 기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연방 대법원은 재검표가 현실적으로 헌법의 동등한 보호와 적법한 절차의 원칙에 따라 수행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만장일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연방 대법원의 판단도 5대 4로 갈렸다. 그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고배를 마시게 된 당사자 앨 고어는 깨끗이 승복하면서 자신의 품격은 물론 미국의 국격(國格)을 높였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4년 후 재선에 성공할 때까지 정통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11월 3일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도 투표 결과에 논란이 생겨 미국이 분열하고 극심한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특히 우편투표가 논란이다. 코로나19 창궐로 우편 투표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트럼프 지지자들은 현장 투표를 선호하고, 바이든 지지자들은 우편 투표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다.
우편 투표에서의 열세를 인지한 트럼프 진영은 적극적으로 우편 서비스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우편 투표를 문제 삼으며 불복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사기”라며 패배 시 불복할 것을 시사했다. 트럼프의 측근인 연방 우체국장이 아예 우편서비스 역량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키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평소 며칠이면 도착하던 우편물이 최근에는 몇 주씩 소요된다고 한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기록적인 숫자의 표가 무효 처리될 수 있고 각 주마다 유효한 우편 투표로 인정하는 기준도 달라 논란거리는 많다. 또 다시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대선 승자가 가려질지 모른다. 11월 3일이 지나도 상당기간 대선의 승자가 드러나지 않으며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번 대선은 한판 진검 승부가 아니라 대선 이후까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 승자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금융시장에 악재가 될 것이다.
대선 이후 진흙탕 싸움은 악재
달러화는 어떨까. 최근 미국 연준이 평균 물가목표제(AIT : Average Inflation Target)를 공식화하면서 향후 금리 인상의 문턱을 높이고 장기간 경기 부양에 방점을 찍었다. 달러화 가치의 힘이 빠지는 조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하락이 현실화되려면 달러화를 팔며 매수할 통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유럽이나 중국 등 미국 외 글로벌 경제에 투자할 호재가 추가로 생기거나 코로나19를 떨치고 회복세를 보여야 하는데 아직 쉽지 않아 보인다.
원론적으로는 대선 승자가 누군지 보다는 세계 경제 변수가 향후 달러화에 더욱 중요하다. 더구나 바이든이 ‘Buy American’의 기치를 들었고 트럼프가 ‘America First’를 주창하고 있다. 다만 동맹을 불문하고 무역 분쟁을 일삼고 미국의 배타적 성장을 지향하는 트럼프의 집권 연장이 바이든에 비해 달러 강세에 우호적일 것으로 점쳐진다. 원화는 미·중간 대립 수위에 민감하게 반응할 텐데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은 초당적이기에 당선자를 불문한 상수로 봐야 할 것이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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