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당신이 믿는 확률과 미신
[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당신이 믿는 확률과 미신
원인 알면 결과 예측 가능하다는 과학적 논리… 현실의 일부만 설명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스키너(B.F. Skinner)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미국 현대 심리학의 기틀을 만들었다. 당시 심리학자들은 파블로프(Pavlov)에서 이어져 온, 동물의 행동을 변화시켜봄으로써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단초를 찾아내려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들 중에서 스키너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동물이 학습행동을 할 때마다 보상(먹이)을 주지 않고 띄엄띄엄 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실험 대상 동물이 배불러서 학습해야 할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고, 짧은 시간에 같은 숫자의 동물들을 가지고도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매번 칭찬해주다가 한번 한 쓴소리의 효과가 더 오래 가고, 평소에 무뚝뚝하다가 툭 던진 한 번의 칭찬이 큰 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항간의 믿음과 통하는 설정이다. 이에 흥미가 생긴 스키너는 이 설정을 더 키워봤다. 보상을 아주 드물게, 그것도 행동과 무관하게 줘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무조건 15초 간격으로 먹이가 나오도록 설정된 상자 안에 배고픈 비둘기를 집어넣었다. 이 상자 속에서 며칠을 보내자, 비둘기들은 평소에는 하지 않던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비둘기는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상자 안을 돌아다녔고, 다른 비둘기는 우리 안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날개를 펄럭이는 비둘기도 있었다. 스키너가 보기엔 비둘기들은 먹이가 나오기 직전에 우연히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먹이가 나오는 시간 간격을 1분으로 늘리자, 이런 행동은 더 격렬해졌다. 스키너는 이 실험 결과에 대해 자신이 비둘기의 미신을 발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가끔 ‘내 안의 괴물(Monsters inside me)’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곤 한다. 희귀한 감염병이나 기생충으로 인한 질환을 겪은 사람들의 실제 체험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봤을 때부터 매번 교훈을 얻었다. ‘아, 저래서 동물 사체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구나’, ‘야생동물의 고기나 피를 충분히 익히지 않고 먹으면 큰일 나는구나’ 같은 의미 있는 교훈들이었다. 하지만 시청 회차가 늘어나면서 교훈은 희미해졌다. 어떤 아이는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코를 통해 아메바에 감염됐다. 그 호수에서는 매년 수천 명이 수영을 한다. 그렇다면 아메바 감염은 아이의 행동 탓일까? 어떤 사람은 남미를 여행한 이후 두피에 파리의 유충을 키우게 되었다. 남미를 여행한 수 백만 명 중에 그런 경우는 몇십 명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가을철 풀밭에 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지만 유행성출혈열에 걸리는 이들은 그 중 극히 일부다. 물론 감염의 원인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감염의 기회에 노출된 모두가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중 극히 일부만이 감염된다는 사실이다.
원인을 알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논리는 어쩌면 우리 현실의 일부만을 설명하는 것일지 모른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확률이 끼어 있는 경우, 그리고 그 확률이 수천 수만분의 일 이하로 낮은 경우엔 과학적 인과론은 비합리적인 운명론과 뒤섞이게 된다. 그 일이 벌어진 당사자의 입장에서 과학적인 설명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내가 하필이면 왜 수 만분의 일 확률에 걸려들었는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운명이나 종교와 같은 ‘비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젊을 적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온갖 물질을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무시하던 사람들이 중년 이후가 되면서 은근슬쩍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비둘기는 인간보다 훨씬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도 비둘기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신의 행동과 무관하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을 때 우리도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에 쉽게 흔들린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일이 되고, 예측대로 사건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합리성을 믿는다. 하지만 앞일을 알 수가 없고, 좋은 일이 잘 안 일어나는 세상에선 비합리와 미신의 설득력이 커진다. 미신이란 결국 가짜 통제감을 느끼게 해주는 신념이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내가 현실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사실이면 더 좋겠지만,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별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문제 해결과는 아무 관계가 없거나 비현실적인 믿음이 퍼져있거나, 혹은 업무효율이 저하되는 불필요한 절차나 의식이 관행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 경우 관리자는 구성원들의 비합리성을 탓하기 전에 먼저 질문해야 한다. 그동안 그들에게 일어났던 긍정적인 사건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상급 관리자들에게 좋았던 일이 과연 하위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는지. 구성원들의 행동을 보면 그 조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코로나19를 이야기하면서 확률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코로나 무증상 감염자의 밀도가 현저히 낮은 나라다. 마스크를 쓰지 않더라도 코로나에 감염되거나 전파자가 될 확률이 상당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어딘가에선 뜻밖의 감염자, 생각지도 못한 전파자가 계속 등장한다. 대부분은 트럼프처럼 마스크를 무시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평소에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던 사람들도 있다. 음식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잠깐 마스크를 벗은 순간 감염될 수도, 전파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일이 가능성이 있지만, 그 확률은 매우 낮다. 예측할 수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이 수개월간 혹은 1년 이상 계속될 때 사람들이 비과학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 시국에 의사와 과학자들의 역할만큼이나 종교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비대면 예배나 일부 종교인들의 비합리적인 돌출행동으로 인해 종교가 큰 위기에 처했다지만, 오히려 지금이 종교 확장의 큰 기회일지 모른다. 사람들의 종교적인 욕구 자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믿음을 설파하느냐에 따라 종교가 사람들을 어루만져줄 수도, 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부추길 수도 있다. 미신이 아닌, 진짜 종교의 힘이 필요한 시기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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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칭찬해주다가 한번 한 쓴소리의 효과가 더 오래 가고, 평소에 무뚝뚝하다가 툭 던진 한 번의 칭찬이 큰 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항간의 믿음과 통하는 설정이다. 이에 흥미가 생긴 스키너는 이 설정을 더 키워봤다. 보상을 아주 드물게, 그것도 행동과 무관하게 줘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무조건 15초 간격으로 먹이가 나오도록 설정된 상자 안에 배고픈 비둘기를 집어넣었다. 이 상자 속에서 며칠을 보내자, 비둘기들은 평소에는 하지 않던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비둘기는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상자 안을 돌아다녔고, 다른 비둘기는 우리 안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날개를 펄럭이는 비둘기도 있었다. 스키너가 보기엔 비둘기들은 먹이가 나오기 직전에 우연히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먹이가 나오는 시간 간격을 1분으로 늘리자, 이런 행동은 더 격렬해졌다. 스키너는 이 실험 결과에 대해 자신이 비둘기의 미신을 발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가끔 ‘내 안의 괴물(Monsters inside me)’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곤 한다. 희귀한 감염병이나 기생충으로 인한 질환을 겪은 사람들의 실제 체험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봤을 때부터 매번 교훈을 얻었다. ‘아, 저래서 동물 사체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구나’, ‘야생동물의 고기나 피를 충분히 익히지 않고 먹으면 큰일 나는구나’ 같은 의미 있는 교훈들이었다.
미신은 가짜 통제감을 느끼게 하는 신념
원인을 알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논리는 어쩌면 우리 현실의 일부만을 설명하는 것일지 모른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확률이 끼어 있는 경우, 그리고 그 확률이 수천 수만분의 일 이하로 낮은 경우엔 과학적 인과론은 비합리적인 운명론과 뒤섞이게 된다. 그 일이 벌어진 당사자의 입장에서 과학적인 설명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내가 하필이면 왜 수 만분의 일 확률에 걸려들었는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운명이나 종교와 같은 ‘비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젊을 적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온갖 물질을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무시하던 사람들이 중년 이후가 되면서 은근슬쩍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비둘기는 인간보다 훨씬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도 비둘기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신의 행동과 무관하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을 때 우리도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에 쉽게 흔들린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일이 되고, 예측대로 사건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합리성을 믿는다. 하지만 앞일을 알 수가 없고, 좋은 일이 잘 안 일어나는 세상에선 비합리와 미신의 설득력이 커진다. 미신이란 결국 가짜 통제감을 느끼게 해주는 신념이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내가 현실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사실이면 더 좋겠지만,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별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문제 해결과는 아무 관계가 없거나 비현실적인 믿음이 퍼져있거나, 혹은 업무효율이 저하되는 불필요한 절차나 의식이 관행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 경우 관리자는 구성원들의 비합리성을 탓하기 전에 먼저 질문해야 한다. 그동안 그들에게 일어났던 긍정적인 사건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상급 관리자들에게 좋았던 일이 과연 하위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는지. 구성원들의 행동을 보면 그 조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미신 아닌, 진짜 종교의 힘 필요한 시기
즉, 모든 일이 가능성이 있지만, 그 확률은 매우 낮다. 예측할 수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이 수개월간 혹은 1년 이상 계속될 때 사람들이 비과학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 시국에 의사와 과학자들의 역할만큼이나 종교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비대면 예배나 일부 종교인들의 비합리적인 돌출행동으로 인해 종교가 큰 위기에 처했다지만, 오히려 지금이 종교 확장의 큰 기회일지 모른다. 사람들의 종교적인 욕구 자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믿음을 설파하느냐에 따라 종교가 사람들을 어루만져줄 수도, 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부추길 수도 있다. 미신이 아닌, 진짜 종교의 힘이 필요한 시기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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