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에서 태양광으로, 한화의 변신 [이철현의 한국 친환경산업 10대장①]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수소 등 재생에너지 밸류체인 구축 박차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주주 가치보다 고객, 임직원, 협력사, 국가 경제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중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는다. 특히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ESG가 기업경영의 핵심가치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재앙이 빈번해지면서 경영자들은 친환경 산업 위주로 사업 모델을 일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3세 경영자가 최고경영자로 나서거나 친환경 산업 분야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진이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 등을 총괄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친환경 산업구조로 바꾸고 있는 경영자 10명의 비전과 성장전략을 분석한다. 〈편집자〉
햇빛이나 바람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든다. 수소 연료전지 발전을 통해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한다. 날이 흐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발전이 어려운 재생에너지의 한계, 즉 간헐성은 해결된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다.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꿈의 에너지 시스템이다.
한화솔루션이 이 꿈의 에너지 시스템을 구현할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큐셀, 케미칼, 첨단소재사업 부문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친환경 에너지 비즈니스를 완성하고 있다. 큐셀 부문은 태양광 모듈을 판매하고 태양광 발전소를 직접 운영해 전력을 공급한다. 케미칼 부문은 태양광 전지로 만든 전력을 받아 그린수소를 대량 생산한다. 첨단소재 부분은 탄소섬유로 만든 저장 탱크에 수소를 보관·운송한다. 이 가치사슬이 완성되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화석연료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에너지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이 사업 부문 전반의 결합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선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가다 보니 악전고투하고 있다. 기술이나 수익 가치 측면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태양광 모듈사업은 간신히 적자에서 벗어났으나 영업실적이 다시 줄고 있다. 태양광 발전에 상당한 토지가 필요하다 보니 발전 시설을 늘리기도 만만치 않다.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소재와 기술을 추가로 개발해야 한다. 원료 가격 변동에 따라 실적이 들쑥날쑥하는 수익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한화그룹 내에서 이 과제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이가 김동관 사장이다.
업계나 전문가 사이에서 김동관 사장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 우호적이다. 태양광 모듈 등 재생에너지사업을 한화그룹 주력으로 안착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김 사장은 2009년 12월 군 복무를 마치고 이듬해 27세 나이에 한화에 입사하자마자 태양광사업을 맡았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던 태양광 전지 모듈업체 큐셀을 2012년 인수한 후 2014년말 한화솔라원과 합병해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를 만들었다. 한화솔루션은 한화케미칼이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을 다시 합병해 출범했다. 그 후 한화솔루션은 성장을 거듭해 태양광, 수소 등 재생에너지사업을 총괄하는 그룹 핵심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과거 김 사장의 직책을 보면 그가 지금까지 태양광사업에 얼마나 전력투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한화솔라원 기획실장과 영업담당실장, 이후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과 전무를 역임했다. 김 사장은 케미칼사업 부문에서 나온 수익을 고스란히 태양광사업에 쏟아부었다. 6년간 투자 끝에 태양광사업 부문은 2015년 태양광사업을 흑자전환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2년 3월 파산을 선언했던 큐셀이 지난해 매출 3조70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을 거두는 우량 사업체로 변모했다.
김동관 사장은 지난해 9월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대표이사에 오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태양광사업 부문에서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거론하며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폴리실리콘 수입을 중단했다. 폴리실리콘 업체 상당수는 지난 10년간 침체기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한 터였다. 이에 폴리실리콘 가격이 폭등했다. 폴리실리콘을 원료로 하는 웨이퍼 가격도 치솟았다. 생산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니 큐셀 부문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동욱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6월 8일 낸 보고서에서 큐셀의 올해 영업이익을 490억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영업실적이 4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 경쟁 업체들은 태양전지 생산설비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공급이 늘어날수록 수익률이 떨어진다. 반도체나 석유화학 업종에서 볼 수 있듯 증설 경쟁이 장기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정면돌파할 심산이다. 한화솔루션은 미국과 유럽 내 시장 1위 지위를 지키기 위해 모듈 생산능력을 11기가와트(GW)에서 2025년까지 16GW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연구개발센터가 개발하고 있는 N타입 태양광 모듈을 올해부터 생산한다. N타입 태양광 셀은 공정 난이도는 높지만, 기존 P타입보다 햇빛을 전기로 전환하는 효율이 좋아 프리미엄 태양광 모듈에 주로 사용된다. 한화솔루션은 자사 N타입 기술을 ‘퀀텀 네오(Q.ANTUM NEO)’라 명명하고 해당 기술을 활용한 제품 ‘큐트론(Q.TRON)’을 연내 판매할 계획이다.
비장의 카드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전지다.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태양전지지만 햇빛을 전기로 전환하는 효율, 즉 광전환 효율이 높고 제조 단가가 낮아 태양광사업의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한화큐셀은 2019년부터 판교에 차세대 태양광셀 연구센터를 설립해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전지를 연구하고 있다. 당초 2023년 상용화할 방침이었으나 연구 성과가 좋아 양산 시기를 1~2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김 사장은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이라면 국내외 업체를 가리지 않고 사들이거나 지분 투자한다. 지난 2018년 11월 미국 수소트럭업체 니콜라 지분 6.1%를 인수했다. 스페이스X에 수소연료탱크를 공급한 시마론, 인공지능 기반 에너지 솔루션업체 젤리, 수소 혼소발전 업체 PSM·ATH를 잇따라 사들였다. 프랑스 화학업체 토탈과는 미국에서 재생에너지 부문 합작사를 만들었다. 한화에너지 자회사 174파워 글로벌이 토탈과 손잡고 미국 6개주에 태양광발전소 12개를 짓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5년간 태양광 발전소 150GW를 증설할 방침이라 수혜가 기대된다.
재생에너지사업 부문을 그룹 핵심 사업 부문으로 키운 건 김동관 사장의 고집이다. 화약 업체로 시작해 석유화학그룹으로 덩치를 키운 회사의 유전자를 친환경 에너지솔루션 회사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10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금전적 만족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므로 기업이 이타주의를 고취시키고 모두를 더 낫게 하는 사업을 벌일 수 있게 하는 게 리더의 몫”이라고 답변했다. 당시 27세였다. 젊은 경영자의 똘똘한 고집이 미덥다.
※ 필자는 ESG 전문 칼럼니스트다. 시사저널과 조선비즈에서 20여 년간 경제·산업 분야 기자로 일하면서 대기업 집단의 경영지배구조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 글로벌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와 친환경자동차로의 전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지금은 ESG 분야에 특화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sisa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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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나 바람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든다. 수소 연료전지 발전을 통해 필요한 만큼 전기를 생산한다. 날이 흐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발전이 어려운 재생에너지의 한계, 즉 간헐성은 해결된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다.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꿈의 에너지 시스템이다.
한화솔루션이 이 꿈의 에너지 시스템을 구현할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큐셀, 케미칼, 첨단소재사업 부문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친환경 에너지 비즈니스를 완성하고 있다. 큐셀 부문은 태양광 모듈을 판매하고 태양광 발전소를 직접 운영해 전력을 공급한다. 케미칼 부문은 태양광 전지로 만든 전력을 받아 그린수소를 대량 생산한다. 첨단소재 부분은 탄소섬유로 만든 저장 탱크에 수소를 보관·운송한다. 이 가치사슬이 완성되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화석연료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에너지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꿈의 에너지 시스템 구현 나선 김동관 사장
업계나 전문가 사이에서 김동관 사장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 우호적이다. 태양광 모듈 등 재생에너지사업을 한화그룹 주력으로 안착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김 사장은 2009년 12월 군 복무를 마치고 이듬해 27세 나이에 한화에 입사하자마자 태양광사업을 맡았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던 태양광 전지 모듈업체 큐셀을 2012년 인수한 후 2014년말 한화솔라원과 합병해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를 만들었다. 한화솔루션은 한화케미칼이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을 다시 합병해 출범했다. 그 후 한화솔루션은 성장을 거듭해 태양광, 수소 등 재생에너지사업을 총괄하는 그룹 핵심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과거 김 사장의 직책을 보면 그가 지금까지 태양광사업에 얼마나 전력투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한화솔라원 기획실장과 영업담당실장, 이후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과 전무를 역임했다. 김 사장은 케미칼사업 부문에서 나온 수익을 고스란히 태양광사업에 쏟아부었다. 6년간 투자 끝에 태양광사업 부문은 2015년 태양광사업을 흑자전환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2년 3월 파산을 선언했던 큐셀이 지난해 매출 3조70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을 거두는 우량 사업체로 변모했다.
김동관 사장은 지난해 9월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대표이사에 오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태양광사업 부문에서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거론하며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폴리실리콘 수입을 중단했다. 폴리실리콘 업체 상당수는 지난 10년간 침체기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한 터였다. 이에 폴리실리콘 가격이 폭등했다. 폴리실리콘을 원료로 하는 웨이퍼 가격도 치솟았다. 생산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니 큐셀 부문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동욱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6월 8일 낸 보고서에서 큐셀의 올해 영업이익을 490억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영업실적이 4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 경쟁 업체들은 태양전지 생산설비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공급이 늘어날수록 수익률이 떨어진다. 반도체나 석유화학 업종에서 볼 수 있듯 증설 경쟁이 장기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술 개발·지분 투자 확대로 정면돌파 예고
비장의 카드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전지다.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태양전지지만 햇빛을 전기로 전환하는 효율, 즉 광전환 효율이 높고 제조 단가가 낮아 태양광사업의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한화큐셀은 2019년부터 판교에 차세대 태양광셀 연구센터를 설립해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전지를 연구하고 있다. 당초 2023년 상용화할 방침이었으나 연구 성과가 좋아 양산 시기를 1~2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김 사장은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이라면 국내외 업체를 가리지 않고 사들이거나 지분 투자한다. 지난 2018년 11월 미국 수소트럭업체 니콜라 지분 6.1%를 인수했다. 스페이스X에 수소연료탱크를 공급한 시마론, 인공지능 기반 에너지 솔루션업체 젤리, 수소 혼소발전 업체 PSM·ATH를 잇따라 사들였다. 프랑스 화학업체 토탈과는 미국에서 재생에너지 부문 합작사를 만들었다. 한화에너지 자회사 174파워 글로벌이 토탈과 손잡고 미국 6개주에 태양광발전소 12개를 짓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5년간 태양광 발전소 150GW를 증설할 방침이라 수혜가 기대된다.
재생에너지사업 부문을 그룹 핵심 사업 부문으로 키운 건 김동관 사장의 고집이다. 화약 업체로 시작해 석유화학그룹으로 덩치를 키운 회사의 유전자를 친환경 에너지솔루션 회사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10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금전적 만족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므로 기업이 이타주의를 고취시키고 모두를 더 낫게 하는 사업을 벌일 수 있게 하는 게 리더의 몫”이라고 답변했다. 당시 27세였다. 젊은 경영자의 똘똘한 고집이 미덥다.
※ 필자는 ESG 전문 칼럼니스트다. 시사저널과 조선비즈에서 20여 년간 경제·산업 분야 기자로 일하면서 대기업 집단의 경영지배구조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 글로벌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와 친환경자동차로의 전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지금은 ESG 분야에 특화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sisa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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