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텃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패배…위기의 바이든 [채인택 글로벌인사이트]
정치력 부족에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 등 지지파들도 비난
트럼프 파상 공세에 재선 가능성 희박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늦가을을 상큼하게 출발했지만, 그에게 이 계절은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1월 10일 취임한 뒤 처음으로 대규모 다자간 정상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 정상들을 줄줄이 만나고 글로벌 사회의 최대 문제인 기후변화 등을 협의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10월 30~31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개막한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함께했다. 글로벌 지도자로서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장악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였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인 그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그런 뒤 워싱턴 근방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거쳐 11월 3일 오전 전용 헬기인 마리1을 타고 백악관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웠다. 오랜 비행과 해외 출장에 따른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령에 따른 기력부족도 아니었다. 3일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악몽의 날이었다고 CNN은 지적했다.
美 민주당, 텃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서 공화당에 패배
버지니아주는 민주당의 오랜 정치적 텃밭이었다. 1873년 주자지 선거 이후 1969년 선거까지 100년 가까이 민주당 주지사만 뽑았다. 1969년 당선한 린우드 홀튼이 버지니아주의 20세기 첫 공화당 주지사의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공화당은 1970~82년과 1994~2002년, 그리고 2010~2014년에만 버지니아주 주지사를 차지했을 뿐이다. 21세기 들어 지난번까지 치러진 다섯 차례의 주지사 선거에서도 단 한 차례만 공화당에 자리를 넘겨줬을 뿐이다.
대통령 선거도 2018년과 2012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으며,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했던 2016년에도 힐러리 클린턴을 밀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에게 아낌없이 표를 몰아줬다. 바이든은 버지니아에서 54.1%를 득표해 44.0%를 얻은 트럼프에 8%P 이상의 차이로 느긋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이 그런 버지니아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민주당의 대선 득표율과 주지사 득표율을 비교하면 5.5%가 떨어진 셈이다.
같은 날 치른 뉴저지주 선거도 민주당엔 마찬가지로 충격적이다. 뉴저지주는 원래 민주-공화가 번갈아가며 주지사를 맡아온 지역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2001년과 2005년 선거에선 민주당이, 2009년과 2013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각각 주지사를 차지했다. 그러다 2017년 민주당의 필 머피가 주지사직을 찾아왔으며 이번에 재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박빙이었다. 현역 주지사인 민주당 필 머피 후보가 공화당의 잭 시아타렐리 후보를 박빙의 승부 끝에 간신히 승리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민주당의 머피 지사는 50.1%를 득표해 49.1%를 확보한 시아타렐리 후보에게 신승을 거뒀다.
뉴저지는 대선에선 확실하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1992년 이후 지난 대선까지 한 차례도 빠짐없이 민주당 후보를 밀어줬다. 지난해 대선에선 뉴저지에서 바이든이 57.3%, 트럼프가 41.4%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바이든은 뉴저지에서 15%P가 넘는 큰 표차로 낙승을 거둔 셈이다.
게다가 이번 주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머피 후보는 10% 안팎의 우세로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민주당은 피를 말리는 박빙의 승부로 가까스로 승리했다. 이에 따라 개표와 승리 선언과 연설도 늦어졌다.
더욱 문제는 이번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패배와 뉴저지주 박빙 승부가 바이든의 인기 하락과 궤를 함께했다는 점이다. 바이든 지지율은 취임 이래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취임 당시 지지율 55%, 반대 32%였지만 8월 19일엔 지지 46%, 반대 49%로 뒤집어지더니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를 코앞에 둔 10월 28일에는 지지 44%, 반대 51%로 취임 뒤 가장 낮은 지지율과 가장 높은 반대율을 보인 것이다.
바이든은 올해 들어 아프가니스탄 철수 혼란, 대규모 경기부양 예산안 통과에서 보여준 정치력의 부족,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 멕시코 국경에서 아이티 이민자를 말과 채찍으로 내쫓고 강제 추방한 사건 등으로 반대파는 물론 지지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이를 통해 상원 외교 위원장이라는 관록으로 오바마가 부통령으로 모셨던 ‘외교 전문가’라는 명성이 바랬다. 정치력, 협상력, 리더십,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돌아왔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국제무대서 뚜렷한 존재감 없어
그 뒤 남은 미국의 국력을 중국 견제에 쓴다고 했지만, 정작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고 나서자 말싸움 외에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유가가 폭등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백신 접종률도 목표인 70%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 국민에게 접종을 제대로 설득하지도 못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나가고 ‘위드 코로나’ 정책을 펴면서 경제가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상황에서 항구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대규모 물류 대란을 막지 못했다. 급기야 일부 지역에선 화장지까지 부족한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됐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에서 열린 G20과 COP26에서도 바이든은 환경 아젠다를 주도하거나 에너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탄소를 줄일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원전이 꼽히지만,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 기술과 시공 능력, 그리고 관련 산업에 대한 업데이트가 오랫동안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은 원전을 개발하고 전 세계에 확대한 원조 국가지만 오랜 산업 마비 상태에 계속 길을 잃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수출을 거의 하지 않아서 글로벌 변화를 견인할 당근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자로인 APR-1400을 개발하고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안전 인증까지 마친 한국과 손잡고 전 세계를 상대로 원전 건설을 이끄는 정도의 국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통해 미국과 서방이 탄소 배출 감소와 궁극적인 탈탄소 시대 개막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탈탄소 시기를 미국과 서방이 제시한 2050년이 아닌 2060년으로 잡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2070년으로 잡은 인도와 협력해 시기를 앞당기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G20과 COP26에서 바이든은 원론적인 입장 제시에 그쳤다. G20의 올해 의장국인 이탈리아나 COP26의 주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처럼 인류를 위한 경고를 하지도 못했다. 바이든은 회의장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슬리피 조’라는 대선 당시 트럼프가 했던 비아냥거림을 다시 들어야 했다.
지난해 당선 뒤 1년간, 취임 뒤 10개월간 바이든은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유약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바이든은 이번 주지사 선거는 자신과는 관련이 적은 개별 주의 선거일뿐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이번 주지사 선거는 그런 바이든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로 볼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선을 그은 것 자체가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사전이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민주당 버지니아주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테리 매콜리프 후보가 선거전 초반에는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앞서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동반하락 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버지니아주 주지사 패배의 주요 요인이 바이든의 실정과 인기 하락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저지에서도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75.3%와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얻은 50.1%를 비교하면 15.4%나 득표율이 떨어진 셈이다. 뉴저지에서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연임한 것은 1977년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지만, 이를 축하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물론 득표율에는 정당 선호와 함께 후보 개인의 인기 등이 다양한 요소가 작동하지만,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건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으로선 당장 상원의원의 3분의 1과 임기 년의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뽑는 내년 중간 선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회에서 민주당의 우위가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100명 정원에 부통령이 당연직으로 의장을 맡는 연방상원에선 민주당 소속 의원 48명과 친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 두 명을 합쳐야 겨우 절반을 차지한다. 거기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야 50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에 맞설 수 있다. 435명 정원의 연방 하원에서 민주당은 221명을 차지해 213명의 공화당과 불과 8석 차이다. 과반수인 218석보다 불과 3석이 많다. 의회에서 이런 상황도 내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에 밀리면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만일 내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의회의 견제와 비협조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바이든은 재선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난 트럼프처럼 바이든도 정치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나이도 부담이지만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지지도의 하락이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계속 파상 공세다. 지난 1월 의회 난입 선동과 대선 불복 시도 등으로 트럼프는 공화당에서도 사실상 기피 인물로 통한다. 하지만 바이든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실망이 커지면서 공화당 일부가 트럼프를 소환하고 있다. 각종 정치 행사에 트럼프가 나타나면 인파가 몰린다. 물론 트럼프 지지세력이 요란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과대 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공화당에서 바이든에 맞서는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패배와 뉴저지주 주지사 선거 신승으로 바이든의 정치력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개혁 요구하는 민주당 좌파와 부활하는 트럼프를 앞세운 공화당 우파 사이에서 국정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 재선 가도도 흔들리는 상황이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국내외에서 지치고 유약한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게 이미지 관리부터 해야 한다. 78세의 고령이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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