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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와 부재(no와 ~less)의 시대 [김국현 IT 사회학]

규모가 커질수록 유리한 게 네트워크의 특성
아마존 웹서비스 데이터웨어하우스의‘서버리스' 버전 공개

 
 
강원도 춘천 구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의 서버룸. [사진 네이버]
 
기술에는 작아지려는 성향이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같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는 줄어들고 또 작아진다. 많은 공산품은 그 사용자 체험을 해치지 않는 크기까지 가능하면 작아지려 하는 것만 같다. 
 
지난 12월 초 프린스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연구진들은 소금 알갱이 크기의 카메라 모듈을 선보였다. 50만 배 더 큰 카메라 렌즈와 동급의 화질을 뽑아내는 이 모듈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일도 해낼 것이다. 작아진 기술은 다양한 일용품에 통합되어 일상에 흡수된다. 카메라의 크기가 작아져 전화 안에 들어 온 것처럼, 소금 알갱이 카메라는 다른 무엇 안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가능성을 펼칠 것이다.
 
기술이 축소 지향이 되는 이유는 설계자와 이용자의 취향이 작용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 작게 만드는 일에는 이점이 있다.
 
크기가 작을수록 열과 에너지 소비 면에서 득이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경우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따라서 단위 면적 당 더 많은 회로가 들어가고 있다. 몇 나노미터의 미세 공정을 향해 도전하는 이유는 더 작은 세계를 정해진 공간 안에 욱여넣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작아지기만 해도 그 효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칩 생산이 삼성의 5나노 공정 대신 4나노 공정으로 옮겨가면 전력 소모는 16%나 줄어든다.
 
거대한 건 값비싼 일이다. 영화에서는 빌딩만큼 거대한 로봇이나 괴수가 등장하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키가 10배 커진다면 그 몸을 감싸기 위한 면적은 그 제곱으로 커질 텐데, 부피는 세제곱으로 커지니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10배 큰 키의 무게는 1,000배나 되지만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구조는 그렇게 급격히 커질 수 없는 일이라서다. 어려서 상상했던 미래에는 거대한 과학기술이 있었지만, 현실이 된 21세기에는 모두 작게 만드는 기술에 매진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규모의 경제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규모가 커질수록 유리한 경우가 있다. 바로 네트워크다. 생물의 몸도 신진대사의 네트워크가 모인 집약체다. 같은 포유류라고 치면 몸의 크기가 크든 작든 대동소이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쥐의 신경, 소화, 호흡 기관은 코끼리의 그것과 본질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그 네트워크의 구조가 같더라도 크기가 커진다면 그 네트워크를 한 바퀴 돌리기 위해 걸리는 시간도 더 걸린다. 그래서 쥐는 분당 수백 번이나 맥박이 뛰지만, 코끼리는 30번밖에 뛰지 않고 고래는 20번 아래로 내려간다. 크기가 커질수록 각 개체에 주어진 삶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하지만 같은 구조의 네트워크가 더 많은 공간을 채우며 서비스하고 있는 셈이기에 속도는 비록 느리지만 일을 덜 한다. 부하가 천천히 걸리니 세포가 혹사당하지 않는다. 그 덕에 코끼리는 70년도 넘게 살지만 쥐는 2년 남짓 살다가 간다. 이들의 심장 박동 수는 평생 약 15억 회로 비슷하다.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가동되는 셈인데, 실제로 무게가 2배 늘어나도 필요 에너지양은 2배가 아닌 75%면 되기에 커질수록 점점 유리해진다. 클라이버의 법칙이라는 이 수학적 규칙성의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다른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도시 크기가 2배 늘어나도 필요 인프라는 수치만 약간 달라 85%만 늘어나면 된다. 15%의 보너스가 있는 셈인데, 도시의 부나 임금 등도 15%씩 늘어났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의 후임이 된 엔디 제시 전 아마존 웹서비스 CEO. 사진은 2019년 12월 행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규모가 만들어주는 새로운 클라우드

컴퓨터도 서로 이어지며 공통의 네트워크,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생체나 도시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뭉칠수록 유리했는데, 클라우드는 그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특히 통신 기술이 모세혈관처럼 세상 구석구석을 이어갈 수 있게 되면서, 쥐와 같은 네트워크를 스스로 관리하는 번잡함보다는 코끼리처럼 큰 네트워크에 묻어가는 일이 합리적이었다.
 
이달 클라우드 업계의 최대 사업자 아마존 웹서비스는 데이터웨어하우스의 ‘서버리스' 버전을 공개했다. 서버리스(server·less)라고 하면 말 그대로 서버가 없다는 뜻이다. 정말 서버라는 기계가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그 서비스에 있어서 만큼은 서버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가 쓰는 서비스는 거대한 서버 (또는 작은 서버들이 서로 엮여 거대하게 보이는 서버) 안에서 가상화(기계 안에서 또 다른 기계를 꿈꾸듯 흉내 내는 일)되어 돌고 있는 실체 없는 가상서버 안에서 또다시 추상화된 형태로 구동되는 컨테이너(코드와 그 코드가 도는데 필요한 라이브러리 등 필요한 항목을 함께 패키징한 표준적 구조) 안에서 돌고 있을 터다.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겹겹의 껍질을 벗기고 나와야 진짜 서버를 만날 수 있기에 정말 서버란 없다고 느껴도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전통적으로 서버란 것은 전산실을 구축하거나 임대한 데이터센터의 상면(床面) 위에 직접 사서 설치해 왔다. 클라우드의 등장과 함께 서버를 육안으로 볼 일 없이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서버의 존재조차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트렌드를 FaaS(Function as a service), 그러니까 '서비스로서의 기능(함수)’이라고 하는데, 그간 서비스로서의 플랫폼, 인프라, 소프트웨어(각각 PaaS, IaaS, SaaS)를 팔던 클라우드는 어느새 규모의 경제를 이룩 후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변하고 있었다.
 
데이터웨어하우스라고 하면 데이터의 창고니까 기업마다 마련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마치 쿠팡의 거대 물류창고에 다 밀어 넣어 두듯 기업 데이터도 규모의 경제하에 통합해 온디맨드화하는 일이 벌어져 버린다. 서버리스는 서버를 빌린 적이 없으니 기능을 쓸 때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만 돈을 내면 과금 구조다.
 
데이터뿐만 아니라 코드의 경우에도 규모의 경제가 이야기된다. 세상 어딘가에서 한 번쯤 짜였던 코드라면 그 코드는 재활용될 수 있다. 노 코드(No Code)라는 트렌드는 그렇게 코드를 직접 짜지 않고도, 드래그 앤 드롭으로 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온 세상의 오픈소스 코드를 학습한 기계 학습 인공 지능인 깃헙 코파일럿은 프로그래머가 타이핑을 칠 때 옆에서 막 나대면서 새로운 코드를 제안하기도 한다. 모두 거대한 네트워크의 말단에 연결된 세포가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진화의 새로운 국면으로 모두 넘어가고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국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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