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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빠진 쌀로 인생을 바꾼 '절충장군' 김세만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⑮]

제 값 받고 팔기 힘든 쌀 100석 기부로 명성 얻어
항해기술자 대거 영입, 안정성과 수송 속도 높여
초대형 여객주인으로 사업 다각화

 
마포옹기하치장의 경강상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숙종 45년 7월 11일, 실록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경강의 백성 김세만(金世萬)에게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주었다.” 김세만은 조선 후기 한강을 근거지로 나라의 세곡 운송을 담당했던 경강상인(京江商人)이다. 쌀로 공납을 대신하는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쌀 수송 수요가 대폭 증가하자, 여기에 적극 참여하였고, 미곡 운반 및 판매로 큰돈을 벌었다. 그런데 이때 장사를 위해 쌀 100석을 해상으로 운반하다가 황해도 용매진이란 곳에서 배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이를 본 진영(鎭營) 병사들의 신속한 구조로 목숨을 건졌고 쌀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김세만은 배에 실었던 쌀을 전부 기부하기로 결단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만약 물에 빠져 죽었다면 어차피 이 쌀은 모두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 살아났으니, 이 쌀로 진졸(鎭卒, 진영에 복무하는 병사)을 구제하여 목숨을 구해주신 호생지덕(好生之德,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은덕)을 갚고자 합니다.” 아무리 고마워서라지만, 100석을 사기 위해 쓴 돈과 100석을 팔아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을 모두 포기한 것이니 보통 결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세만의 행동이 오로지 순수한 의도에서였을까? 물론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제일 먼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치밀한 계산도 작용했다. 우선 황해도에 기근이 닥쳐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곡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음으로 해상 운송을 하려면 관(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용매진은 한양에서 평양, 의주로 이어지는 수로(水路)의 요충지여서 이래저래 부탁할 일이 많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바닷물에 젖은 쌀은 제값을 받고 팔기가 힘들다.  
 

제 값 받고 팔기 힘든 '쌀' 100석, '통큰 기부'

두서없이 나열했는데 정리하면 이렇다. 어차피 제 가격을 받지 못할 거, 용매진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쌀을 쾌척함으로써 관의 환심을 사고 민심을 얻은 것이다. 큰 비용이 들긴 했지만 ‘김세만’이라는 브랜드의 파워를 높였으니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 사실이 중앙 정부에까지 알려져 비록 명예직이긴 하지만, 정 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에 봉해졌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였는지도 모른다. 주요 지방관인 절도사, 부사, 첨사, 군수, 현감 등이 모두 그보다 품계가 낮았으니 말이다. 관과 양반으로부터 예우를 받았을 뿐 아니라 나라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수주하기에도 유리했다. 큰 선행으로 벼슬을 제수받았다는 명성은 덤이고 말이다.
 
또한 김세만은 이 사건을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삼는다. 우선 그는 항해기술자를 우대하여 우수한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당시 조선은 도로가 잘 닦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로를 통해 대량 운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가의 세곡 운송을 대행했던 경강상인이 이를 주도하였는데, 튼튼한 배와 정밀한 항해술이 필수적이었다. 세곡을 실은 배는 반드시 육지에서 지켜볼 수 있는 수로로만 운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곡선이 난파하면 신속하게 인명과 곡식을 구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세곡을 실은 채 도망가거나 도중에 곡식을 빼돌릴까 봐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얕은 바다를 운항해야 하다 보니 암초에 걸리기 쉬웠고 자연스레 선박 건조기술과 항해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한데 김세만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실력자들을 스카우트함으로써 안정성뿐 아니라 수송 속도까지 크게 높였다. 김세만의 상선으로 고객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배가 침몰하면 사업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김세만은 사업 다변화를 꾀했다. ‘여객주인(旅客主人)’업에 뛰어든 것이다. ‘여객주인’이란 한양에 올라오는 지방 상인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물건을 보관해 주는 사람이다(조선 후기에 가면 ‘객주’라고 불렀다). 지방 상인과 한양의 상인을 중개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여객주인’업 자체는 본래 큰 이익을 보기 힘든 사업이다. 숙박비나 보관료, 중개 수수료를 받는 것이 전부고, 금액 역시 많지 않았다. ‘여객주인’의 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지방 상인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초대형 여객주인으로 사업 다각화…충청도 물류 지배 

그러나 가격 경쟁력을 갖춘 초대형 여객주인이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관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방 상인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반드시 자기에게만 상품을 맡기도록 계약한다면? 나아가 해당 지방 상인 모두와 계약을 맺는다면? 당연히 독점이 가능해질 것이다. 공급량을 조절하여 차익을 실현하고, 지역 상품에 직접 투자하여 추가 이익도 거둘 수가 있다. 바로 김세만이 그랬다. 김세만은 충청도 태안, 서산, 보령, 홍주(洪州, 홍성), 결성(結城, 홍성) 지역의 상인들과 주인권 계약을 체결하고 이 지역 상품의 독점 거래권을 갖게 되었다. 이 다섯 고을은 충청도 해안지역 전체로, 사실상 김세만이 충청도 물류를 지배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김세만은 충청도 외에 황해도 신천 등지에도 진출하였는데, 경강상인은 배를 타고 단시일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기 때문에, 정보 수집이 용이하다. 각 지역의 상황, 물가 변화도 신속히 파악할 수 있다. 김세만은 이러한 정보를 활용하여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 것이다. 이러한 사업 전략을 통해 김세만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요컨대 김세만은 목숨을 잃을 뻔한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다. 만약 그가 바닷물에 빠진 쌀이라도 팔아서 손해를 메꿔야겠다고 생각했더라면, 인사치레로 조금 기부하고 말았더라면, 그에게 절충장군이라는 벼슬이 내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민관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김세만’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높아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세만은 단기적인 손해를 감내하고 통 큰 결단을 내림으로써 장기적인 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또한 김세만은 위기를 전환점으로 활용했다. 운 좋게도 위기가 금방 해소되고 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달라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별 탈 없이 위기가 끝났으니 굳이 변화를 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김세만은 자신의 배가 침몰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언제 또 같은 위기가 닥칠지 모르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수한 항해사를 영입하여 운항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했고, 이는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울러 모든 역량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으면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사업을 분산했다. 그는 ‘여객주인’업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는데, 기존의 해상운송업과 시너지를 가져와 막대한 이윤을 거두게 된다. 위기를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리드(lead)함으로써 부자가 된 케이스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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