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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 에르메스급”…‘VVIP’ 찐부자들이 ‘샤넬백’ 거르는 까닭

[샤넬의 굴욕②] 떨어지는 품격에…VIP도 외면
희소성‧공급제한‧가격인상…공략 포인트 놓쳐
가격만 5년 새 2배↑…VIP서비스, 곳곳서 불만

 
 
샤넬 부띠끄 전경. 샤넬 디자인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샤넬 오픈런을 대기하는 시민들 모습. [중앙포토, 연합뉴스]
 
명품 중의 명품. 하이엔드 브랜드로 꼽히던 프랑스 브랜드 ‘샤넬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 오픈런(매장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것)에 이어 노숙런까지 빈번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있는 탓이다. 주 고객인 리셀러(재판매업자)들을 통해 물건이 리셀 시장에 대량 풀리게 된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희소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명품과 달리 샤넬은 점점 대중화 되면서 ‘보여주기 식’ 브랜드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백화점 매출 80%를 좌우한다는 상위 20% VIP 고객들, 이른바 찐부자들 사이에선 ‘샤넬은 거르고 본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샤넬은 왜 외면 받는 브랜드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명품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브랜드 희소성 잃고…가격 올리기만 ‘급급’  

업계에 따르면 샤넬과 같은 콧대 높은 명품사들이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를 공략하는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브랜드가 주는 희소한 가치, 공급제한, 가격인상. 즉,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그것이 소비욕과 소유욕 단계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샤넬 등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이미지를 위해 아울렛 매장에 입점하지 않고, ‘NO세일, NO이벤트’ 전략을 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당 브랜드들은 판매되지 않은 재고를 모아 모두 소각하는 방식을 쓰고 있기도 하다. 재고품 몸값을 낮추면서 여러 유통 채널을 돌리는 것보다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는 것이 결국 브랜드에 더 이득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샤넬의 이미지 실추는 이 세 가지 포인트를 놓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랜드 고유의 희소성을 잃고 가격만 하이엔드 급으로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 명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남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을 중시한다. 하지만 최근 샤넬 제품을 구매하면서 친절한 설명과 서비스,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  
 
샤넬 부티끄 매장 대기번호. [중앙포토]
서울 강남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명품관 입장을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중앙포토]
 
예물 가방을 보기 위해 샤넬 매장에 방문한 소비자 최모씨는 “2시간 대기 후 방문한 매장 내부는 돗대기 시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면서 “800만~1000만원대 제품을 구매하면서 동네 옷가게보다 못한 정신없는 상황과 서비스를 받으면서 구매하고 싶진 않단 생각이 들어 나왔다”고 털어놨다.  
 
롯데백화점 MVG 회원인 김모씨는 “샤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오픈런 시작 이후 많이 바뀐 게 사실”이라며 “집에 예전에 사 둔 샤넬백이 여러 개 있지만 최근엔 들고 외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무나 드는 흔한 브랜드라고 생각하니 매고 싶지 않더라”고 말했다.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사이 가격은 계속해서 올랐다. 올해 들어서만 벌 써 두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번 인상으로 ‘클미백’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클래식백 미디엄 가격은 1180만원까지 치솟았다. 2018년 600만원대에서 5년여 만에 2배 가까이 가격이 뛴 셈이다. 매해 4~5차례씩 가격을 꾸준히 올린 결과다.  
 
 

에르메스 쫒다 부작용?…‘티내지 않는 과시’ 트렌드 

샤넬의 이러한 정책을 두고 VIP 사이에서도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백화점 두 곳의 VIP 고객인 이모씨는 “가격대만 올린다고 브랜드 급이 오르는 게 아니라 VIP 고객들을 얼마나 시스템적으로 잘 관리하는 지 그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를 어떻게 하느냐에 브랜드 가치가 오른다”면서 “상위 브랜드 대비 예약도 못하고 VIP 실적으로도 살 수 없는 브랜드, 리셀업자들이 판치는 브랜드에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샤넬 VIP라는 한 고객도 “한 달 구매할 수 있는 가방이 1개, 지갑이 3개, 신발 3개로 정해져 있어 추가 구매는 담당 셀러 이름으로 구매하기도 한다”면서 “오픈런 고객 대부분이 리셀러들이라고 하던데 리셀러들 때문에 VIP까지 구매한도로 제한받는다고 하니 씁쓸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리셀시장에서 거래되는 샤넬백. [중앙포토]
 
업계에선 샤넬이 내부 변화 없이 최상위 브랜드인 에르메스‘급’ 지위를 얻으려다 보니 빚어진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비정상적 쇼핑 문화를 손대지 않고 가격 인상을 통해 가격만 최상급에 맞추는 방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샤넬이 급증하는 수요를 이용해 더 높은 등급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WSJ는 또 “ 가격 인상에 소비자가 저항하지 않아 이런 흐름이 럭셔리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샤넬의 리 포지셔닝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찐 부자라 불리는 VVIP들 사이에선 ‘티 내지 않는 과시’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대중적인 느낌이나 로고 같은 걸로 티 내지 않고 원단이나 전문 브랜드 등 자기만족과 희소성에 부자들이 돈을 쓴다는 설명이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진짜 부자들 사이 트렌드는 “나 명품이야”라고 티 내는 브랜드가 아닌 찐 브랜드를 찾는 것”이라면서 “샤넬의 경우 보여주기 식 대표 브랜드로 하이엔드 명품이라기 보단 이들에게 사치재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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