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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업계 초격차 기술 확보…방법은 뉴로모픽 컴퓨팅? [한세희 테크&라이프]

반도체 패러다임 변화 대응 방법 ‘공정의 고도화 추구’
뉴로모픽 컴퓨팅 관심 커져…뇌와 비슷한 컴퓨팅 방식 구현 때문

한화진 환경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6월 29일 오전 충북 음성군 소재 반도체 생산업체 (주)DB하이텍 상우공장을 방문해 생산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반도체 산업은 들썩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타격을 받으면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설계는 미국, 부품소재는 일본과 유럽, 생산은 대만, 메모리는 한국, 반도체를 이용한 완제품 제조는 중국이라는 기존의 글로벌 분업 구조에 대한 의존을 끊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확장에 나섰고, 중국은 독자적인 반도체 원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인공지능(AI)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추론에 특화된 AI 반도체 수요가 커지는 등 반도체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할 컴퓨팅 기술의 기반으로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윤석열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 관심이 크다. 메모리 분야의 우위만 믿기엔 첨단 기술 산업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변화하는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해 앞으로 5년 간 1조 원 이상 투자한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가까운 미래의 반도체 시장은 기존 반도체 나노 공정의 고도화를 극단까지 추구하는 한편, AI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해 기술 패권을 다투는 국가들 사이에서 입지를 굳히는 것이 과제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보다 효율적이고 에너지 소비가 적은 새로운 차원의 반도체와 컴퓨팅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가 한창이다. 인간의 뇌를 보다 직접적으로 모방한 뉴로모픽 컴퓨팅이다. 컴퓨팅의 다음 시대를 미리 준비하는 움직임이다.
 

컴퓨팅의 한계 다가왔나?

현재의 컴퓨터는 구조적으로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연산과 메모리를 분리한 ‘폰 노이만’ 구조의 한계 때문이다.
 
헝가리 출신 과학자 폰 노이만은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메모리 영역에 저장해 두고, 연산 장치 즉 CPU가 연산을 수행하며 필요할 때마다 메모리에서 불러오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두 영역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필요한 데이터는 ‘버스’라는 통로를 따라 CPU로 이동한다.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ENIAC)’은 새로운 계산을 할 때마다 진공관 스위치를 회로적으로 재조정해야 했다. 반면 폰 노이만이 제안한 방식을 쓰면 일일이 하드웨어를 조정할 필요 없이 저장해 둔 프로그램을 불러와 간편하게 연산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비약적 발전은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명령어와 데이터가 버스라는 하나의 길을 타고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두 영역을 오가는 과정에 병목이 생긴다. 속도는 떨어지고, 발열과 전력 소모는 커진다. ‘무어의 법칙’에서 보듯, 지금까지는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더 빨랐다. 하지만 회로 선폭이 수 나노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기술 발전은 더뎌지고, 전자의 움직임에 따른 발열과 간섭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이 등장하면서 전력 소모는 더 커지고 있다. 오픈AI가 개발한 자연어처리 모델 GPT-3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로 학습했다. 학습 데이터가 커지면 전기도 많이 잡아먹는다. GPT-3를 한번 학습시키는데 드는 전력은 시간당 약 1.3기가와트로, 우리나라 전체에서 1분간 쓰이는 전력량과 비슷하다.
 
인공지능의 활용 분야가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지만, 인공지능을 마음껏 쓰려다가는 탄소중립에 지장을 받을 판이다.
 

뇌를 더 비슷하게 모방하라

폰 노이만 구조를 벗어나 생명체의 뇌와 보다 비슷한 컴퓨팅 방식을 구현하려는 뉴로모픽 컴퓨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뇌는 병렬적으로 연결된 수많은 신경세포, 즉 뉴런과 이들을 잇는 시냅스에 기반해 정보를 처리한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를 가지고 세상 그 무엇보다 고도로 발전된 사고를 하지만, 고작 전구 하나 밝힐 정도의 에너지만 쓴다.
 
이는 뉴런이 의미 있는 신호만 받아들이고 다른 신호는 무시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자극이 들어오면 평탄한 그래프를 그리던 신호는 뽀죡하게 튀어오른다. 중요한 신호는 마치 스파이크처럼 솟아오르며 시냅스를 통해 인근 뉴런에 전달되고, 자극이 이어져 스파이크 신호 사이 간격이 짧아지면 시냅스 연결이 강화되면서 보다 유의미한 정보로 저장된다.
 
폰 노이만 구조에서는 신호가 끊임없이 좁은 길을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뇌에서는 병렬 연결된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 사이를 의미 있는 신호가 우선적으로 지나다닌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덜 전달된다. 또 0과 1의 두 상태를 기준으로 연산을 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연속적 형태의 아날로그 감각 신호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이같은 스파이크 기반 신경망의 구현이 뉴로모픽 컴퓨팅의 핵심이다. 뉴런과 시냅스를 모방해 스파이크 방식으로 신호를 처리하는 뉴로모픽 소자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인텔이 뉴로모픽 칩 ‘로이히’를 내놓았으며, IBM과 스탠포드대학 등 국내외 기업과 주요 대학들도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의미 있는 자극을 전달하는 과정을 재현할 수 있는 소자로는 멤리스터가 주목받는다. 멤리스터는 ‘기억(memory)’과 전자부품의 일종인 ‘저항(resitor)’의 합성어다. 전류 흐름과 시간 변화에 따라 저항의 강도가 바뀌고, 전원 공급이 끊기기 직전의 전류 방향과 양을 기억하는 특성이 뉴런과 시냅스의 행태에 가깝다.
 
뉴로모픽 소자는 받아들이는 신호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각과 촉각 등 센서를 통해 받아들인 감각을 바로 인지하고 판단해 활용하는 장치도 만들 수 있다. 현재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인식 등은 실생활에 활용되기 시작했지만, 전력 소모가 커 일상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반면 뉴로모픽 컴퓨팅이 발전하면 전력 소모가 적고 처리 속도가 빨라 모바일 기기나 간단한 장치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센싱과 정보 처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인-센서 컴퓨팅’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다만 아직 한계는 인정해야 한다. 뇌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뉴로모픽 컴퓨팅 역시 한계가 있다.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를 대신할 인공지능의 수요가 커지는 만큼, 궁극의 생각 및 감각 기계에 대한 관심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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