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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매수 타이밍을 노려야 할 때 [이종우 증시 맥짚기]

국내외 악재로 코스피 고점에서 35% 하락
최근 금리상승은 기준금리 인상 선반영된 것

 
 
[연합뉴스]
1997년에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만큼 주식시장도 영향을 받아 코스피가 300까지 떨어졌다. 외환위기는 주가 외에 다른 곳에도 영향을 줬다. 시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었는데, 환율이 시장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고 해외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정부가 직접 해외 경제 상황을 체크하는 기관을 만들고, 기업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외국 경제지 구독 붐이 분 것도 이때 있었던 일들이다.
 
1998년 8월에 러시아가 갑자기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했다. 외환위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리 시장 입장에서는 엄청난 악재가 터진 것이다. 아시아에 이어 유럽 신흥국까지 위기 상황에 내몰렸으니 위기가 세계적으로 번질 게 뻔하고, 그러면 그 영향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 300까지 떨어진 코스피가 조만간 200 밑으로 내려갈 거란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러시아 모라토리엄은 또 다른 부실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부도다. 노벨상을 받은 천재들이 만든 회사로 유명했는데, 러시아 국채에 잘못 투자하는 바람에 망하고 말았다. 롱텀캐피탈이 망하자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한 연준이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소집해 예정에 없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잘못한 나라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일체의 지원을 거부했던 미국이 한 기업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외환 시장이 요동을 쳤다. 엔·달러 환율이 147엔까지 상승했고, 그해 말에 180엔까지 올라갈 거란 전망이 나왔다. 
 
코스피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다음 날 291로 떨어졌다 다시 300을 회복했다. 엄청난 악재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하락하지 않은 건데, 주가가 너무 낮아 주식을 팔려는 사람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결과였다. 이렇게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파느니 끝까지 가보겠다는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한 달이 지난 9월 말부터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떨어지지 않자 투자자들이 주가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게 주가를 밀어 올리는 힘이 된 것이다. 주가의 방향이 바뀌자 상승에 탄력이 붙어 1999년 중반에 코스피가 1000을 넘었다. 불과 8개월 사이에 350% 가까이 상승한 건데, 우리 주식시장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크게 오른 기록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2000년말 코스피와 나스닥 방향 엇갈려  

 
2000년은 미국시장, 특히 나스닥이 우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최고를 기록하던 때였다. 전날 밤 나스닥이 어떻게 움직였느냐에 따라 우리 시장의 움직임이 결정될 정도였다. 우리시장이 나스닥에 민감하게 반응한 건 당시가 IT버블기간이었기 때문이다. IT혁명이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그게 집약적으로 모인 곳이 나스닥이다 보니 사람들이 나스닥 주가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가 우리 투자자가 해외시장에 처음 관심을 가질 때였다는 점도 미국 시장의 영향력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우리 투자자 중에서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우리 내부 요인 만에 의해 움직였기 때문인데, 해외시장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주식시장이 하루에 22%나 떨어지는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날에도 우리시장은 홀로 상승을 기록했을 정도다. 1997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투자자들이 해외경제와 시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나스닥이 우리 시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았다.
 
2000년 10월에 IT버블 붕괴로 하락하던 코스피가 바닥에 도달했다. 고점에서 50% 가까이 하락한 후다. 비슷한 시기에 나스닥도 5050에서 2300으로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나스닥이 우리 시장을 좌우하는 그림이 적용됐다고 볼 수 있는데, 변화는 이후에 일어났다. 나스닥이 1000포인트 정도 추가 하락하는 동안 코스피는 500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1년간 나스닥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코스피는 옆걸음질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주가가 크게 하락한 영향으로 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변수조차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낮은 주가는 악재를 이겨내는 힘

 
물가가 안정되어야만 주가가 오를 거란 얘기를 자주 듣는다. 계속된 금리 상승이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금리 상승이 고물가 때문이므로 물가가 잡혀야만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경제 변수는 주가 변화를 사후에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할 뿐 방향 전환을 감지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물가가 안정됐을 때에는 이미 주가가 크게 올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변수 변화보다 앞의 경우처럼 주가를 통해 주가를 판단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다. 시장에 악재가 쏟아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주식시장이 바닥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높은 물가, 환율 불안, 경기 침체, 금리 인상까지 온갖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만 보면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 영향으로 주가가 고점에서 35% 가까이 떨어졌다. 최근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밀리지 않고 있다. 코스피는 2100대 중반에서 하락이 저지되고 있는데, 투자자들이 이 정도면 주가가 내려올 만큼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가격 변수의 방향이 바뀌면 그 위력이 세진다. 1500원을 뚫을 것 같던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6개 주요통화 대비 달러의 위상을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115를 고점으로 정체 상태에 빠졌기 때문인데, 이런 교착상태가 한두 달 더 이어지면 이후에는 달러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금리도 비슷하다. 국채3년물 금리가 4.5%를 넘었다. 미국의 시장금리도 상승해 10년물 국채수익률이 4.2%를 넘었다. 최근 국내외 금리 상승은 기준금리 인상이 선반영된 것이다. 연말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4.5%까지 끌어올릴 것 같아 그 전에 시장금리가 기준금리에 맞게 움직이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시장에서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낮은 가격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다. 온갖 악재가 터져 나와도 주가가 낮으면 그 영향이 희석돼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물론 한계도 있다. 지금 주가가 악재가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낮은지는 사후에 검증이 가능할 뿐 당장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눌러도 눌리지 않으면 주가가 어느 정도 바닥권에 도달했다고 짐작할 수는 있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이종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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