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5G 혁신,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 [통신사 28㎓ 취소 후폭풍②]
‘4G 대비 20배’ 5G 전국 서비스 무산
‘일상 바꾼다’ 선전한 정부·기업에 ‘책임론’
B2B 사업 진출 노리는 기업 움직임도 관측
정부가 28㎓ 5G 주파수 할당 취소·기간 축소 처분 결정을 내리며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진짜 5G’ 전국망 구축이 사실상 물 건너갔단 평가가 나온다. 5G 도입 초기 ‘롱텀에볼루션(LTE·4G) 대비 20배 빠른 속도’를 이통3사는 물론 정부도 적극적으로 홍보했던 터라 이를 믿고 요금제를 갈아탄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소비자 권익이 침해되는 상황에서도 이번 주파수 할당 취소를 기회로 잡으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관측되고 있다.
8일 통신 정책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현재 이통3사를 대상으로 28㎓ 할당 이행점검 처분에 따른 청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지난 11월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5G 주파수 할당조건에 대한 이행점검 결과’에 따른 후속 절차다. 100점을 만점으로 기준을 두고 주파수 할당 당시 이통3사가 약속했던 투자 계획 등을 평가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제4의 이통사 등장?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28㎓ 대역 사용 기간이 6개월(10%) 단축됐고, 30점을 넘기지 못한 KT와 LG유플러스는 할당 취소 처분을 받았다. SK텔레콤 역시 2023년 5월 31일까지 당초 이통3사가 공동으로 구축할 기준치였던 1만5000개 기지국을 홀로 채우지 못하면 할당이 취소된다. 현재 진행 중인 청문 절차는 해당 처분에 대한 이통3사의 입장을 듣고 향후 투자 계획을 듣는 법적 절차다. 과기정통부는 해당 청문 절차를 모두 진행한 후 이달 중 최종 처분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KT·LG유플러스에 대한 28㎓ 주파수 할당 취소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취소 주파수 1개 대역에 대해서는 신규 사업자 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 11월 24일 관련 테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신규 사업자 진입 촉진 기본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제4의 이통사 등장을 점치고 있다. 네이버·CJ올리브네트웍스·LG CNS·한국전력공사 등 국내 기업부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등 다양한 기업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앞서 정부가 도입한 정책과도 연관이 있다. 4G 대비 속도가 20배 빠른 5G를 유일하게 달성할 수 있는 28㎓ 주파수 대역은 그간 다양한 부침을 겪었다. 28㎓와 같은 초고주파수 대역은 속도가 빠르지만 직진성이 강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회절성이 담보되는 3.5㎓와 같은 넓이를 서비스하려면 최대 6배 이상의 기지국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28㎓ 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이음5G가 대표적이다. 과기정통부는 28㎓와 4.7㎓ 주파수 대역을 이통사가 아니더라도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커버리지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초고속 서비스’의 장점을 활용하겠단 취지다.
해당 정책을 기반으로 28㎓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아 기업 간 거래(B2B) 사업이나 연구개발(R&D)에 활용 중인 기업으론 ▶네이버클라우드 ▶LG CNS ▶SK네트웍스서비스 ▶CJ올리브네트웍스 ▶KT MOS ▶뉴젠스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이 KT·LG유플러스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단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조건만 맞으면 스타링크와 같은 해외 서비스도 대상이 될 수 있단 입장이지만 현실성은 크지 않다. 해외 기업의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모기업의 지분을 49%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 등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최종적인 28㎓ 할당 취소 처분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신규 사업자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기업은 없다”면서도 “처분 결과에 맞춰 정책 방향을 정하고, 필요할 경우 최대한의 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멀어진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시대
5G가 도입된 지 3년이 훌쩍 지났지만 당시 약속했던 ‘일상을 바꿀 통신 서비스’는 실현되지 않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과기정통부가 조사한 ‘통신서비스 커버리지 점검 및 품질평가 결과’에 따르면 이통3사의 평균 5G 속도는 801.48Mbps(데이터 전송속도 단위·초당 백만 비트) 수준이다. 5G 전국 통신망으로 사용 중인 3.5㎓ 주파수 대역을 기준으로 속도가 측정됐다. 이는 4G 속도(150.3Mbps)에 비해 약 5배 빠른 수준이다.
이통3사는 5G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초고속 통신망을 활용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다양한 혁신 서비스가 일상을 바꾸리라고 자신했다. 고품질 콘텐츠를 초저지연 서비스로 제공해 게임·클라우드·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등의 새로운 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단 청사진을 그렸고, 이 같은 내용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실현을 전제로 한 서비스들은 28㎓ 대역 할당 취소·기간 축소 처분으로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신규 사업자 지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마땅한 대안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구 사업자인 이통3사도 28㎓ 전국망 구축을 포기했는데, 신규 사업자가 사업성이 떨어지는 분야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B2B 영역으로 한정해 신규 사업자가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28㎓를 일반 대중이 이용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책임론도 잇따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8㎓ 할당은 사실 도입 초기부터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정부가 강행한 측면이 있다”며 “사전 수요 조사 실패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정두용 기자 jdy22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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