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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건물주가 리모델링 핑계로 가게를 빼라고 한다면? [임상영 부동산 법률토크]

사업자등록 마친 임차인에게 대항력 있어
보증금액 따라 임대차 보호 여부 갈려

문닫은 명동 뒷골목 상가들. [신인섭 기자]


[임상영 변호사] 전남 여수시 중앙로 소재 한 건물에는 편의점을 비롯해 병원·약국 등이 상가를 임차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임차인들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각 상가를 이용하기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건물 소유자가 변경되면서 새 건물주가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겠다며 임차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임차인들은 영업을 시작한지 이제 2년 정도 지났을 뿐이고, 상가 내부에 설치한 시설이나 인테리어 등에 들인 비용 역시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며 반발했는데요.이에 새 건물주는 편의점 문 앞에 고객들의 진입을 막는 화단을 설치하고, 건물 외벽과 담장 가득 빨간 글씨로 ‘내부 철거 리모델링 예정’이라고 크게 적었습니다. 마치 건물에서 영업하던 매장들이 영업을 종료하고 철수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임차인들을 내보내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임차인들이 이 건물주를 업무방해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하면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현행법 상 임대차 계약기간이 아직 분명히 남아있고 임차인들이 상가를 인도받은 후 사업자등록을 마침으로써 대항력을 갖췄다면, 임대인이 바뀌더라도 그 임대차계약으로 새 임대인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새 건물주는 임대차계약을 당장 해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임차인들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하려는 의도에서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1항은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정함으로써 임차인의 안정적인 영업기회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동조 제2항).

사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1항 7호 가목에서는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임차인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 역시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앞서 본 사안에서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당시 임대인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 건물을 전면 리모델링할 것이다”라고 미리 얘기했다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하고 최초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임차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임차인들은 그 계획을 참고해 애초에 임대차계약 여부를 결정하거나 계약기간 만료 이후의 계획을 미리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사안에서는 바뀐 임대인이 아무 예고 없이 리모델링 계획을 통보했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리모델링 계획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임대인으로서는 임차인과 논의하여 위로금 명목의 적정한 돈을 지급하고 합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상가 임대차계약 갱신요구권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살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임대차 보증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기본적으로 상가건물임대차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증금액을 초과하는 임대차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동법 제2조 제1항). 동법 제3조 제3항이 계약갱신요구권에 관한 규정을 예외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한 보증금액을 초과하는 임대차에도 적용되도록 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거나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1년으로 본다”는 내용의 동법 제9조 제1항은 이 같은 임대차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임대차계약이 갱신된 다음,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정하는 연장계약서에 ‘임대차기간은 별도의 정함 없음’이라고 작성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 임대차계약의 경우에는 앞서 본 동법 제9조 제1항의 내용에 따라 임대차계약의 기간을 1년으로 보기 때문에 임차인은 그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다시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증금액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금액을 초과하여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라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특별법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민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민법 635조에선 “임대차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고, 임대인이 해지를 통고한 경우에는 6개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역시 “기간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는 그 기간을 1년으로 간주하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한 보증금액을 초과하는 임대차는 위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원래의 상태 그대로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이 되어 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민법 제635조 제1항, 제2항 제1호에 따라 이러한 임대차는 임대인이 언제든지 해지를 통고할 수 있고 -중략-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21다233730 판결).

즉 대통령령에서 정한 보증금액을 초과하는 상가건물 임대차의 경우 임대차기간이 정해져 있다면 그 기간만료일을 기준으로 계약갱신요구권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지만, 임대차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면 계약갱신요구권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이죠. 간단해 보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니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로서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인지, 임대차기간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 필자는 법무법인 테오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건설 재경본부에서 건설·부동산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으며 부산고등법원(창원) 재판연구원,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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