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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중국 풍선, 촘촘한 하늘의 감시망 드러내다[한세희 테크&라이프]

미국 상공에 등장한 中 거대 풍선…군사 지역화되는 하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프사이드 비치 해안 영공에서 4일(현지시간) 미국 전투기가 비행체를 격추한 모습.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오후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 북부사령부 소속 전투기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영공에서 중국이 보내고 소유한 고고도 정찰 풍선을 성공적으로 격추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1월 말, 거대한 풍선이 미국 상공에 나타났다. 이상한 풍선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목격담이 잇달았다. 미국은 이것이 중국이 보낸 ‘정찰 풍선’이라고 밝혔다. 이 풍선은 성층권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18㎞ 상공을 비행하며 미국 몬태나주 맘스트롬 공군 기지 근처까지 흘러왔다. 이 기지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450기가 배치되어 있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이곳에서 미사일이 발사된다.

미국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예정되어 있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 4일(현지시간)에는 F-22 전투기가 출격해 풍선을 격추했다. 민간인 거주 지역 피해를 우려해 풍선이 바다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다.

중국은 풍선이 자신들의 것임은 인정했으나, 통제를 잃고 항로를 이탈해 미국 영공으로 흘러 들어간 기상 연구 장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간 비행체’를 격추한 미국에 불만을 드러냈다. 모처럼의 양국 고위급 대화 기회가 풍선 논란에 휘말려 사라졌다.

초정밀 인공위성 시대에 웬 풍선?

미국은 이 풍선이 ‘기상 관측 장비’라는 중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 내 군사 요충지를 따라 움직였고, 경로로 보아 외부 조종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다. 크기도 통상적인 기상 관측용 풍선보다 훨씬 큰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가 약 60m, 폭이 약 36m 정도로 추정된다. 스쿨버스 3대 정도 크기라는 보도도 있었다.

인공위성이 도로를 달리는 적국 지도자의 자동차 번호판을 들여다보는 세상에서 굳이 풍선을 띄워 정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국방부는 풍선 격추 전 “이 풍선이 (맘스트롬 기지에 대해) 인공위성을 통해 수집한 기존 정보 외에 새로운 가치를 중국에 주지는 못했을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정찰 풍선을 고도 10~50㎞ 사이 성층권에 올리면 인공위성에 비해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풍선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위치를 조정하면 며칠, 길면 몇 주 동안 같은 위치에 머물며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위성은 지구를 계속 돌아야 해 같은 장소를 상시로 감시할 수 없다. 풍선은 경로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도 있어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인공위성에 비해 다양한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중국이 보낸 풍선이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 상공에 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또 지상에서 가까운 곳에서 정찰하기 때문에 100㎞ 궤도에 떠 있는 인공위성이 감지할 수 없는 신호를 잡아내거나 통신을 가로챌 수도 있다. 그래서 정찰 풍선에 대응하는 것은 상대 국가에 더 번거로울 수 있다. 인공위성은 언제 우리 쪽 시설 위를 지나가는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 맞춰 신호가 발신되는 활동을 잠시 멈추면 되지만, 머리 위에 풍선이 여러 날 떠 있다면 장기간 활동에 제약받을 수 있다.

인공위성의 감시 능력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지상에 가까운 대류권이나 성층권 등 다른 영역에서도 첩보를 수집한다면 훨씬 촘촘하고 다양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풍선을 감시나 정찰 등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사실 미국 역시 풍선의 군사적 활용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00년대 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찰 장비를 탑재한 대형 풍선을 운용했고, 미국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탐지하기 위해 대형 풍선을 활용하는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올해 정찰 풍선을 이용한 감시 시스템 구축에 271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성층권 대형 풍선을 이용한 정찰 활동이 이제 연구개발 단계에서 실제 적용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구글이 성층권에 풍선을 띄워 무선 인터넷을 공급하는 ‘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민간에서 풍선 활용 기술을 향상시킨 것도 한 계기가 되었다.

의도된 도발? 실수?

중국이 정찰 풍선을 미국에 보낸 의도는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정보를 알아내려 한 것인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바다에 떨어진 잔해를 수거해 분석해 봐야 윤곽이 드러날 듯하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일종의 시위를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미국이 이 같은 외부의 정찰 활동을 탐지할 능력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등을 보려 했다는 의견도 있다. 풍선을 탐지할 때 나오는 레이더나 전자 신호를 분석해 나중에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긴장을 고조하려는 군 내 일부 세력이 미 국무장관 방문에 맞춰 도발했다고 보고, 여기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의 권력에 틈이 생기고 있음을 읽어내는 분석도 나온다.

아니면 진짜로 정찰 풍선에 문제가 생겨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거나, 민간인들의 눈에 띌 정도로 고도가 내려갔을 가능성도 있다. 원하는 시점에 비행을 멈추고 풍선을 착륙시키는 장치가 고장을 일으켰을 수 있다. 북반구 성층권에서 바람의 움직임이 균일해 풍선 운행을 조작하기 어려운 겨울은 정찰 풍선을 띄우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더한다.

미국은 조용히 지켜보려 했다가 사람들의 목격담이 잇달아 나오자 여론을 의식해 강경 대응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이 참에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마 정찰 위성 탐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내지 않으면서 풍선을 처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미국 해군 폭발물처리반 소속 장병들이 5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앞바다에서 중국 풍선 잔해를 수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머리 위 하늘에 층층이 쌓이는 감시의 눈

이번 일이 의도된 것인지 해프닝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리 머리 위 하늘이 층층이 군사 지역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확실하다. 고도 100㎞ 지구 저궤도에 수많은 군사 감시용 인공위성들이 떠 있고, 낮은 하늘에는 드론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지난 연말 서울까지 날아온 북한 드론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쓰이는 공격용 드론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하늘과 우주 사이 성층권도 이제 이 영역을 겨냥한 풍선과 드론으로 혼잡해질 전망이다.

물론 성층권 풍선과 드론은 자연 재난을 감시하고, 초고속인터넷이나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주요 국가는 성층권 관측을 위한 무인 비행체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성층권에서 30일 이상 운행하는 산불 감시용 성층권 드론을 개발 중이다.

인류의 네트워크가 지상을 벗어나 더 높이 뻗어나가면서, 우리를 지켜보는 눈들 역시 촘촘해지고 있다. 거대한 중국 풍선이 새삼 일깨워주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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