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협회장 취임 100일 윤건수 대표 “창조적인 생각해야 성공하는 시대” ·[이코노 인터뷰]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협회장 도전 이유…”받은 것 베풀 기회라고 생각”
BM대로 성공하는 스타트업 드물어…새로운 길 가야 성공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1조 클럽에 가입했는데, 가입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있나?”
“음... 특별하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여유는 생긴 것 같다.(웃음) 스타트업이 창업해서 성장하고 엑시트까지 하는 시간은 최소 7~10년 정도 걸리는데, 흔히 말하는 운용자산 규모가 작으면 투자사도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운용하는 펀드가 1조원을 넘어가니까 조급하거나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다.”
지난해 하반기 스타트업 생태계는 모두 ‘어렵다’, ‘투자 유치가 힘들다’, ‘펀드레이징이 안 된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돈줄이 마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이하 DSC)는 지난해 8월 2480억원 규모의 ‘DSC홈런펀드제1호’를 결성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유한책임투자자(LP)로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산재보험기금·한화임팩트·농협중앙회·수협중앙회·IBK기업은행·NH농협은행 등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DSC홈런펀드제1호를 결성하면서 DSC의 운용자산 규모가 1조377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1조 클럽 벤처캐피탈(VC)은 한국투자파트너스·KB인베스트먼트·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소프트뱅크벤처스 등 8개 VC만 가입했다. 1조 클럽이라는 것은 업계에서 꾸준하게 성과를 내야만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다.
2012년 1월 윤 대표를 포함해 5명(심사역은 윤 대표를 포함해 3명)으로 시작했던 조그마한 투자사는 설립 4년 만에 상장에 성공했고, 10년 만에 1조 클럽 가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윤 대표는 “사회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은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생각으로 일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웃었다.
정부 부처와 민간 통합하는 통계자료 만들 것
윤 대표가 제15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으로 나서게 된 것도 스타트업 지원과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지난 2월 17일 협회장으로 선임된 후 100일이 훌쩍 넘었다. 협회장 100일이 궁금했다. 그는 “인정받는 심사역으로 살다가 독립해서 DSC를 설립한 것도 주위의 권유를 많이 받아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협회장에 나선 것도 주위의 권유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많은 생각을 한 후에 실행에 옮겼는데, 협회장이 되니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어서 만족한다”며 웃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 DSC 대표로 일할 때 만나는 사람과 협회장 자격으로 만나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게 가장 큰 변화다. DSC 대표일 때는 창업가와 LP 등이 대부분이지만, 협회장으로서 만나야 할 사람은 금융위원장, 부처 장관 등으로 폭이 넓어졌다. 정부 부처 사람들을 만나니 회의 안건도 과거와 천양지차다. 다만 “협회장의 역할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협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협회장은 뭘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업계 이야기를 부처와 각 기관에 전달하고 일이 진행되도록 협의하고 건의하는 메신저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년 임기 내에 해결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다. ▲회수시장 활성화 ▲민간 모태펀드 조성 ▲벤처투자 통계 데이터 구축이다. 특히 통계 데이터와 민간 모펀드를 조성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현재 언론이나 창업 생태계에서 인용하는 스타트업 투자 관련 데이터는 정부의 모태펀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윤 대표는 “때만 되면 분기별 혹은 연도별 벤처투자 실적 관련 기사가 나오는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표하는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다”면서 “이 통계 자료는 모태펀드가 집계한 자료를 다루는 건데, 민간 자본의 통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데이터를 통해 투자 생태계의 흐름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정책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투자 관련 부처 및 민간의 데이터를 모두 통합해서 어느 정도 정확한 통계 자료를 만드는 게 시급한 일이다”면서 “데이터가 정확해야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 모태펀드 조성도 그가 강하게 추진하고 싶은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문화체육관광부·국토교통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정부 부처가 출자하는 모태펀드 규모는 2022년 5200억원에서 39%가 감소한 3135억원에 불과하다. 2021년에 집행된 1조700억원과 비교하면 3분의 1로 급감한 것이다. 윤 대표가 민간 모태펀드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스타트업 투자 이익률은 7~8% 정도 되는 데 어떤 금리보다 높고 안정적인 투자처라고 할 수 있다”면서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는 민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수조원 규모의 모태펀드를 조성하면 투자 생태계가 어느 정도 안정화될 것이다. 다만 학교나 금융기관 등에서 모태펀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금 혜택 등의 다양한 당근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만난 창업가들 잊지 못해 심사역으로 전직
DSC 대표와 협회장을 겸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20여 년 동안 투자 업계에 있으면서 협회장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특히 올해는 협회장 선거에 처음으로 두 명의 후보가 나오면서 좋지 않은 이야기도 나왔다. DSC 대표로도 인정받고 성과를 내고 있는데, 왜 갑자기 협회장을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DSC를 설립한 것도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는데, 협회장을 한 것도 그런 느낌이다”며 웃었다. 윤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이상하게 협회장을 하라는 주위의 권유가 많았다”면서 “권유 받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20여 년 동안 이 분야에 뛰어들어 좋은 성과를 얻고 인정도 받았는데 이젠 받은 것을 베풀어야 하는 시기인가라는 생각으로 협회장에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자공학 석사까지 마친 엔지니어지만 인생이 변한 것은 LG전자에서 실시한 내부 직원 유학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바로 스타트업과 창업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던 것. 윤 대표는 “당시 미국에서 열린 ‘창업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현지에서 만났던 수많은 창업가들의 열정이 너무 인상 깊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잊지 못해서 심사역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몸에 맞지 않았던 엔지니어의 삶 대신 투자 심사역이라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 벌써 20여 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그가 투자했던 다양한 포트폴리오 중에서는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많다. 특히 한국을 대표했던 유니콘이었던 옐로모바일 투자는 여러모로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포트폴리오로 꼽힌다. 요즘 그가 자랑하는 스타트업은 몰로코, 뉴로메카, 인피닉, 그린리소스 등이다. 몇 년 안에 유니콘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직업으로 꼽히는 투자심사역. 어떤 이들이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조언이다.
“20여 년 동안 이 일을 해보니까, 내가 작성한 투자심사보고서에 나온 BM으로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정말 드물다. 오히려 새로운 길을 가는 스타트업이 더 크게 성장한다. 심사역도 남들이 보지 못하거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가 이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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