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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마음대로’ PAF 방식, 생각하지 않는 조직 만든다 [신경수의 조직문화]

"리더의 일방적 결정, 직원 창의력·열정 모두 고사시켜"

‘사장 마음대로’의 PAF가 조직 전체에 퍼지면서 직원들의 창의력과 열정을 모두 고사시켜 버린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신경수 SGI지속성장연구소장] 요즘 ‘WAF’(Wife Acceptance Factor)라는 단어가 영미권에서 유행하고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아내가 받아들일 만한 요소’나 ‘아내 수락 요인’ 정도로 풀이될 수 있는 말이다. 좁은 의미로는 아내가 고가의 장비를 허락할 가능성 혹은 지수 등을 의미한다. 의미를 좀 더 확장해보자면 ‘아내 마음대로’ 정도로 해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집안일과 관련한 상당수의 의사결정을 아내가 하고 있다 보니 ‘WAF’라는 단어가 전세계적인 공통 현상은 아닐지 생각도 해보게 된다. ‘WAF’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소비자의 구매결정 프로세스에 있어서 아내들의 절대적 영향력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특별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도 일상적으로 있는 아주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요즘은 구매의 모든 프로세스에 있어서 아내들이 갖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생필품을 구매할 때는 물론 각종 전자제품, 자동차와 같은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는 상황에서도 최종 결정권은 아내가 쥐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파트를 비롯해 거주지역의 결정도 아내가 하는 곳이 많다. 심지어 남편의 몸을 담보로 한 보험을 가입할 때조차도 가입금액은 물론이거니와 보험회사 결정도 대부분 아내들 몫인 경우가 상당수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진학 교육설명회라든지 학원 설명회의 주요 타깃은 실수요자인 아이들이 아닌 엄마들이다. 가끔 우리 동네에 새로 문을 여는 학원들이 있는데 설명회에서 나누어주는 경품조차 전부 엄마들을 위한 것들이고, 어떤 경우에는 동네 엄마들을 소개해주는 학부형에게 따로 사례비까지 줄 정도다. 공부는 아이들이 하는 것인데도 엄마가 듣고 엄마가 학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의사결정 파워가 아이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이가 없는 젊은 남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단편적으로 얼마 전 영미권 국가로의 유학을 꿈꾸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설명회가 있었는데,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이 직장을 다니는 젊은 남성 직원들의 아내들이었다고 한다. 정보수집부터 최종 의사결정까지 아내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유학생 남편을 둔 아내에게 돌아가는 편의성이나 부가 프로그램 개발도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엄마와 아내들의 결정은 모두 옳은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복수의 교육 전문가로부터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된 교육프로그램과 엄마들의 일방적인 의견으로 결정된 교육과정의 결과물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자기주도 학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정한 리더, 일을 맡겼으면 결과까지 책임지게 해야"

관련해 언젠가 MBA유학을 전문적으로 알선해 주고 있는 유학업체 사장으로부터 “아내 주도의 유학설계는 진로수정을 한 번 이상은 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안일에서부터 고가제품의 구입, 자녀들 교육문제 등을 아내들이 결정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 결정이 항상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각을 달리해 그렇다면 회사는 어떨까? 상황을 개인에서 조직으로 가져와 생각해 보도록 하자. 조직의 의사 결정권자는 당연 최고경영자(CEO)에 해당하는 대표이사(代表理事)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이사 중에 사장(社長) 직함을 쓰는 경우가 많으니, 어떤 측면에서 보면 PAF(President Acceptance Factor)라는 용어도 새로 나올 법하다. 굳이 해석하면 ‘사장 승인 요소’가 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사장 마음대로’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담당 실무자에게 맡긴 일을 사장 마음대로 처리해 필자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서울에 위치한 중견기업인 A사(社)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의 계열사에서 인사를 담당하던 김 모 부장은 A사 인사팀장으로 이직했다. 필자와 인연이 있었던 김 팀장은 필자에게 ‘한 번 찾아와 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담당자가 자리를 옮기면서 찾아와 달라는 연락이 올 때는 ‘당신네 회사 프로그램을 제안해 달라!’는 암묵적 의사표현이기 때문에 내심 기대감을 갖고 회사를 방문하게 된다. 

생각하지 않고 따라만 가는 조직은 결국 ‘열탕 속의 개구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김 팀장은 이전 직장에서 필자 회사에서 운영하던 리더십 연수 프로그램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A사 사장으로부터 임원교육에 대한 주문을 받자마자 김 팀장은 필자를 떠올려 일을 맡기려고 했다. 김 팀자은 필자에게 임원교육을 맡기면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처음 진행하는 큰 프로젝트이니 특별히 신경 써서 잘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는 당부까지 했다. 필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제안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장소 때문에 곤란하지 않도록 연수원도 사전예약까지 하는 약간의 무리수를 둬가면서 최선을 다해 김 팀장을 도와줬다.

그런데 2~3일 내 사장의 승낙을 받아서 결정을 내려 주겠노라고 말하던 김 팀장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는데 내용은 이랬다. “정말 죄송하지만 이번 건은 취소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사장님께서 벌써 다른 업체로 결정을 내리셨네요.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말씀을 하셔서 결정권한이 저에게 있는 줄로 알고 추진을 한건데 그게 아니었어요,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소 허탈하긴 했지만 이런 일은 가끔 겪는 일이라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잊기로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평소 미안한 마음 가득하던 김 팀장으로부터 다시 활기찬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저희 사장님으로부터 조직의 미래전략 보고서를 한 번 만들어서 제출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현상파악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립니다. 담당자를 이곳으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말과 함께 이번에는 정말로 잘 부탁드린다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2~3번의 미팅을 갖고 결과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 후, 사장 보고용의 시행계획서를 꾸며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1주일쯤 지나 이번에는 김 팀장이 우리 회사로 직접 찾아왔다. “박사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도 저희 사장님이 아는 곳으로 결정이 됐습니다. 매사가 이런 식이네요. 일을 시켜놓고 열심히 준비해 가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결정을 해버리시네요”라고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거듭 미안한 감정을 표출했다. 

내일 당장 회사를 떠날 것처럼 목청을 높이던 김 팀장은 그 후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회사에 남아 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과 같은 패기와 적극성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사장의 스타일을 파악한 후로는 ‘해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사장 마음대로 결정할 건데…’라는 냉소적 가치관이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로도 A사와는 이런저런 사소한 안건이 몇 번 있었다. 몇 번 출입하면서 내가 느낀 A사의 조직문화는 한 마디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사장 마음대로’의 PAF가 조직 전체에 퍼지면서 직원들의 창의력과 열정을 모두 고사시켜 버린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따라만 가는 조직은 결국 ‘열탕 속의 개구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일을 맡겼으면 결과까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직원이 미덥지 못하다고 리더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것은 결국 생각하지 않는 조직만 만들어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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