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스마트 ‘라떼’의 독설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 이유는…
[세이노 열풍 진단]② 허태윤 한신대 IT영상콘텐츠학과 교수 기고
정제되지 않은 독설에 묻어난 통찰…관념적 제안 벗어난 실전 이야기
독자 눈길 사로잡은 3가지 요인…진정성·날것의 설득력·실용 노하우
[허태윤 칼럼니스트] 영어에 ‘스트릿 스마트’(Street Smart)라는 말이 있다. 책을 통해 터득하는 지혜로움을 뜻하는 ‘북 스마트’(Book Smart)에 상대 되는 개념이다. 현장에서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쌓은 지혜로움을 뜻한다.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은 그런 책이다. 세이노라는 필명을 가진 60대 후반, 익명의 저자가 썼다. 저자는 자신을 1000억원대 자산가라 소개하고, 정제되지 않은 독설(심지어 욕설도 나온다)로 때로는 가슴을 후비는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물론 저자는 많은 독서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철저히 자기 경험과 대비시켜 그것을 검증하고 사례화해 독자들에게 ‘스트릿 스마트’의 지혜를 설득한다.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노라고 말하라’(Say No)는 뜻에서 지은 필명처럼 통설의 문화를 뒤집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류의 많은 책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주로 달콤한 위로를 전하는 시대다. 반면 ‘세이노의 가르침’은 오랜만에 통렬한 독설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책이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창업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30~40대들에게도 번역서가 주는 알 듯 모를 듯한 답답함과 데이터의 논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한 이론서들의 관념적 제안을 날려버리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전의 이야기를 전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세이노의 가르침’은 세대를 불문하고 큰 인기를 끌면서, 책이 팔리지 않는 이 시대 출판계에서 오랜만에 장기 베스트셀러의 조짐을 만들고 있다. 지난 3월 출간된 지 8개월 만에 33쇄 73만부가 판매되더니, 아직도 경제경영 분야의 상위에 랭크되며 100만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이노 열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불황기에 잘 팔리는 자기계발서의 특성을 제쳐 두고라 우선 이 책은 저자의 진정성이 책이 말하는 설득력을 배가시키는 면이 있다.
첫 번째 진정성의 요소는 그의 인생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다. 간결 하지만, 결벽에 가까운 자신에 대한 소개를 책의 앞머리에 소개하고 있다. 그는 1955년생이니까, 이제 나이 70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라떼’(‘나 때는 말이야’란 말에 묻어난 태도를 빗대는 말)다. 아버지가 의사였지만 일찍 돌아가시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전형적인 ‘흙수저’다. 고교를 4년 만에 마치고 입대하고, 독학으로 토플 공부를 해 용산 미군 부대 내의 미국 메릴랜드 대학 분교를 고학으로 다녔다.
학창 시절부터 학비를 벌고자 보따리 장사·과외·입시학원·번역 등의 일을 했다. 이후 10년 이상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며, 의류업·정보처리·음향기기·유통업·무역업 등으로 자산을 모았다. 그 자산을 외환투자·부동산경매·주식투자 등으로 증대시켰다. 학연·지연·혈연·정치적 배경 없이 홀로, 현재의 자산을 이룩했다고 한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접대 술자리, 기업정치가들, 부자인 척하는 자들의 블러핑이다. 매년 10억원 이상의 소득세를 2000년까지 5년 이상 개인이 납부했고, 2001년부터는 가족 단위로 납부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한마디로 정직하게 노력하고 의롭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며 바르게 살아온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1000억대 자산가가 과장된 점이 아니라는 것을 조선일보와 책의 출판사인 데이원 조사부가 공동으로 검증했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요소는 책을 출간하되 상업적 요소를 최소화한 것이다. 원래 이 책은 ‘세이노’라는 필명으로 2000년대 초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글로 시작됐다. 이후 ‘세이노’의 매력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가 생겨났고, 이 카페에 필자가 글을 올려주면서 많은 팬덤이 형성됐다. 이렇게 모인 글들을 카페의 회원들이 모아 제본 형태의 비공식적인 책으로 떠돌았고, 이는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책이었다.
당연히 이 책의 잠재적 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많은 출판사가 공식적인 출판을 위해 ‘세이노’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그들의 상업적 의도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저자에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한 출판사가 그를 설득하게 된다. 조건은 비공식 제본판의 가격(6600원) 정도로 출판한다는 것과 본인도 인세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인터넷에 이미 돌고 있던 PDF 버전은 계속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700쪽이 넘는 이 책은 같은 분량이 2만원대에 팔리는 시장에서 기록적인 가격인 7200원(인터넷 할인을 적용하면 6480원이다)에 팔리게 됐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경쟁에서 떳떳하게 살아남기’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전수해 주고자 하는 출판에 대한 순수한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자들은 책을 더 팔기 위해 하는 출판사와 저자들의 마케팅이 없는 순수한 의도를 보며 더욱 큰 신뢰를 보였다.
두 번째 이 책의 미덕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설득력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되, 술자리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따끔한 충고처럼 살아서 가슴에 닿는다. 그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수많은 사례는 이론적이지도 않고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날 것’이다. 심지어 ‘개새끼들에게는 욕을 하라’는 대목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통쾌하게 다스리는 법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누구도 책에서 얘기하기 꺼리는 방식의 해결책이다. 우리는 때로 길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타인으로부터 생기는 분노는 때로 인문학적인 해결책보다 길거리 방식이 보통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 식이다.
세 번째는 깨알 같은 실용적인 노하우들이 많다는 점이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법’, ‘좋은 변호사를 만나는 법’, ‘공무원을 만나는 법’, ‘공인중개사에 대하여’, ‘사기꾼 판별법’과 같은 삶에서 필요하지만 암묵지로 존재해 온,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지혜를 얻는 것은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 책에 대해 모든 사람이 환호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비판적인 눈으로 보면 겸손함이 없는 책이다. ‘가르침’이란 책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지만 가르치려 한다. 그리고 친절하지도 않다. 자기 생각을 부정하거나 반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이 닭대가리야’라며 위악을 떤다. ‘더운 숨을 몰아쉬며 수없이 넘어지고 피를 흘리면서 삶을 살아온’ 자신이기에 나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 없을 거라는 교만함도 군데군데 보인다. 또 꼭 부자가 되는 것만 지고(至高)의 선(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겐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경제적인 자유를 가장 크게 열망하는 시기인 이들에게 친절하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길거리에서 얻는 지혜를 나눠준다. 30~40대에게 주로 팔리고 있는 이유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세상을 탓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그 운동장에 자기를 파묻는 것’이라는 독설도 퍼붓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리고 다른 나라에도 있다. 그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세상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분노라고 말한다. 그 분노의 에너지로 자신을 바꾸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고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는 ‘세이노’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라떼’이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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