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에게는 작업이 거시적 현실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면, 허요의 작업은 길가의 돌로 탑을 쌓아 올리듯 고르지 않은 삶의 순간들을 한 겹씩 포개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홍익대학교와 런던 슬레이드 스쿨 오브 파인아트에서 조소를 공부한 작가는 밀랍과 아크릴, 석고 등 재료 고유의 물성에 관한 관심으로 여러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한 작품을 선보여왔습니다.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는 대체로 무르고 약해서 형태가 쉽게 변형되는 불완전한 성질을 가졌습니다. 아크릴 물감과 석고를 사용한 시리즈 작품인 ‘하양과 불순물 #15’도 시야를 압도할 만큼 크거나 견고해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린넨에 두껍게 올린 흰 아크릴 물감 위에 알록달록한 석고 조각으로 만든 무늬에는 가볍지도 무르지도 않은 삶의 소회가 담겨 있습니다.  

‘하양과 불순물’ 시리즈는 살면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모순적인 순간이나 관계가 삶을 파괴하지 않고 나름의 형태로 삶을 안정되게 했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돼 있습니다. 화면의 석고 조각 무늬는 규칙적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조각의 형태, 맞붙은 모양, 바탕이 된 아크릴 물감 두께 모두 균일하지 않습니다. 허요의 작품 속 삶의 형태는 주변을 밀어내지 않는 부드러움, 치밀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부수지 않고 기대어 버티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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