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걷고, 설헌 걷고, 설운이 걷던 그 길…평창·강릉에서 그들을 마주한다 [E-트래블]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에 80여 개국 1900여 명이 참여
평창 송어축제 오대천 일원에서 1월 28일까지 이어져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헐벗은 산하에 매서운 북풍한설까지 몰아친다. 겨울이다. 그나마 함박눈이 태백준령을 감싸며 솜이불을 덮었다. 상고대는 추위를 견디는 그들에게 내린 훈장이로세. 상고대와 입 맞춘 자외선은 꼬리를 길게 뽑으며, 등산객의 시선을 유혹해 김 서린 호흡 사이에 감탄사를 채워 넣는다.
설원을 걸으면 젊은 건각을 마주하고, 설헌의 걸음에선 역사를 마주한다. 설운 길 걸은 이, 떠난 자리엔 더 이상 눈물은 없다. 평창의 산에서, 강릉의 바다에서 내가 만난 그들은 누구일까?
설원에 퍼질 젊음의 함성, 발길 잡는다
설원을 걷고 달린다. 평창·강릉에 잰걸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오는 19일부터 2월1일까지 2024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의 성화가 타오른다. 우리나라 겨울 스포츠의 메카이자 여행자의 노스텔지어인 이곳에 80여 개국 1900여 명의 청소년이 우정어린 올림픽 경기에 나선다.
평창의 곳곳에 올림픽 시설에 또다시 스포츠맨들이 모였다. 열기, 때아닌 후끈거림은 이들의 분투에 기인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강원도의 힘이 폭발한다.
인근 딥다이브 등 체험 공간도 가족 여행객에겐 관심거리다. 백설 설원 오색찬란한 색이 용솟음친다. 2024년 겨울동화는 다양한 스토리를 남길 듯하다.
평창엔 겨울 스포츠만 있지 않다. 오는 28일까지 축제로 신이 난다. 평창 송어축제가 그것이다.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일원에서 펼쳐진다.
온 세상이 눈에 파묻힌 곳에서 송어의 활기차고 경쾌한 유형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슈베르트가 떠오른다. 그의 ‘겨울 나그네’도 ‘송어’도 여행객에게서 변주되어 애기살처럼 흩날려 가슴에 꽂힌다. 아하, 알고 보니 큐피드였다.
송어 체험은 온라인 예약이 필수이고 특별 이벤트인 ‘황금 송어를 잡아라’로 올 운세를 점쳐 볼 수 있다. 100m 쾌속 눈썰매와 스노래프팅 등 놀이 체험엔 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동심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옹어 요리 먹거리 체험은 삐질 수 없다. 평창군에 고향사랑기부제로 10만 원을 기부하면 연말정산에서 10만원의 세액공제와 얼음낚시 종합권을 받을 수 있다.
자연이 만든 테마파크인 이곳은 동서울터미널과 서초남부터미널에서 진부행 버스를 이용하면 2시간 안팎에 닿을 수 있다. 배차 간격은 1~2시간이다.
서울역에서 강릉행 KTX를 타면 진부(오대산)역까지,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행사장은 2.1㎞ 거리에 있다. 용평스키장과 휘닉스파크에서는 자가용으로 20~30분 거리다.
인근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는 진부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 산사의 고요함과 겨울 산책의 한적함에 걷는 것 자체가 명상이 될 수 있다.
허난설헌의 걸어온 길, 강릉서 마주하다
실제 허난설헌의 생가터(문화재 자료 59호)엔 그의 발자국이 흐릿하다. 그가 뛰놀던 집이 아니라 눈물 자국만 또렷하다.
생가터 관리인은 “450년 전 허난설헌은 집안의 당대 몰락을 몸소 경험했고, 터만 남은 이곳은 200년 후 누군가에 의해 복원돼 현재에 이른다”고 말했다.
‘하늘의 이치를 벗어나기는 어려워라/동쪽 집세도가 불길처럼 드세던 날…하루아침에 집안이 기울어…흥하고 망하는 거야 바뀌고 또 바뀌어/하늘의 이치를 벗어나기는 어려워라.’
당시 허난설헌이 남긴 글이다. 결국 저 집 모양새는 허난설헌의 기억엔 없고 우리의 뼈아픈 각성에 만족을 채울 뿐이다. 결국 허상이지만. 사임당에 가려 아쉬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은, 현대인의 뒤늦은 공치사로 생가터란 현주 건물이 됐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안은 없다. 지나가는 과객이 역사를 농단할 수 없지만, 목 날아간 동생 허균과 더불어 애절한 남매의 사연을 남겼고, 그 이유로 그곳을 걷는 걸음이 자꾸 발목을 잡혀 뒤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나만의 감상은 아닐 터다. 순두부 맛이 까끌까끌함은 맛집의 손맛 탓이 아니다. 에라이, 동화가든 짬뽕순두부가 칼칼하므로 입가심이나 해야겠다.
여행객의 발걸음에 안타까운 사연만 남길 순 없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은 경포를 걷는 생태·문화 탐방길 중간에 있다. 경포생태습지원과 이곳 기념공원, 경포 아쿠아리움을 잊는 산책로다. 허난설헌에 대한 갑갑한 추념은 잊고 다시 활기를 찾아보자.
철조망 설운 걸음, 부채길로 깎은 파도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초병이 바닷바람 맞으며 경계에 노심초사하던 길이다. 국방부 시계를 거꾸로도 매달아 보면 초침을 이리저리 자극했을 수도 있다. 엄마 생각에 설운 이도 없을 리 없다. 그 길이 환골탈태했다.
200만~250만 년 전의 지각변동으로 생긴 이곳은 이제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관광지가 됐다. 그 이름은 정동진의 부채끝 지명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오랜 세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만큼 천혜의 비경을 선사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관광지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지반의 융기 작용에 따라 해수면이 80㎞ 정도 후퇴하면서 바다 밀에 퇴적되어 있던 해저지형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육지화됐다(천연기념물 제437호).
부채바위는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옛날 심곡마을 사람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여서낭(국사여성황) 세분이 그려진 그림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서낭당을 짓고 거기에 모시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림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서낭신이 몹시 영험이 있다고 믿어 왔고, 마을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꼭 가서 고한다고 한다.
강감찬에 얽힌 전설도 있다. 옛날 육발호랑이가 밤재길을 넘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스님으로 변해 내기 바둑을 두자고 하고, 이기면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도 강감찬 장군은 무서웠나 보다. 육발호랑이는 강감찬의 강릉 부임에 놀란 백두산으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결국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었으니, 강감찬은 당연히 현군이 됐다는 얘기다. 전설은 동해를 바라보는 투구바위에 당시 용맹을 떨친 강감찬 장군을 오버랩시킨다.(강원 어촌지역 전설 민속지, 강원도 1995년 발행)
눈 속에 감춰진 현실과 역사, 전설은 설원을 걷는 여행객의 발걸음에 쓸려 스토리텔링으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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