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정상회담 후 소강상태인 줄…‘脫네이버’ 서두르는 라인야후
이데자와 라인야후 CEO “위탁 관계 연내 종료”…사실상 脫네이버 선언
“시스템 분리 계획 앞당겨 진행…자본관계 재검토 모회사에 요청 중”
네이버가 만든 ‘라인페이’ 소뱅에 넘기고, 이사회 전원 일본인으로 재편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네이버와 위탁 관계를 종료하겠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1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네이버와의 지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이후 나온 변화다.
이데자와 CEO는 “서비스 영역은 물론 거의 모든 사업에서 네이버와 위탁 관계를 종료하겠다”며 “2026년도 중으로 시스템 분리 예정했으나, 한층 앞당길 수 있도록 계획을 책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네이버 클라우드 종업원용 시스템과 인증 기반 분리를 2024년도 중으로 완료하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포털 사이트 야후재팬 웹사이트 검색개발 인증에서 위탁 협력을 종료하겠단 의미다. 사실상 ‘탈(脫)네이버’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데자와 CEO는 다만 이날 주총에선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주주 사전 질문에 대한 서면답변을 통해 “자본관계 재검토에 대해 결정할 입장은 아니지만, 모회사 등에 검토를 요청하고 있다”며 “현시점에서 정해진 사실은 없지만 자본관계 재검토를 포함해 공표해야 할 사실이 발생할 때 신속하게 공표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지난 5월 2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의 입장 정리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이른바 ‘라인야후 사태’는 소강 국면에 접어드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날 라인야후가 ‘네이버 결별’을 서두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일본의 라인 강탈’ 우려 여론이 국내서 다시금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한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국내 기업인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한일 외교 관계와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양국 간에 불필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에 대해 “이번 행정지도는 이미 발생한 중대한 보안 유출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나 보안 거버넌스를 재검토해 보라는 요구사항”이라며 “한일 정부 간에 초기 단계부터 이 문제를 잘 소통하면서 협력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긴밀히 소통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라인은 네이버 일본 법인이던 NHN재팬이 2011년 출시한 메신저다. 라인 애플리케이션(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현재 ▲일본 9600만명 ▲태국 5500만명 ▲대만 2200만명 ▲인도네시아 600만명 등을 기록하고 있다. 월마다 108개국에서 약 2억명이 접속하는 앱으로, 한국 기업이 만든 가장 성공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불린다.
‘네이버 색채’ 지우는 라인야후
라인야후가 네이버와 시스템을 분리하는 건 앞서 일본 총무성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보안 정책을 마련하라’는 요구에 포함된 내용이다. 회사는 구체적인 네이버 위탁 업무 종료 계획과 보안 강화 방안 등을 오는 7월 중으로 공표할 방침이다. 라인야후가 네이버와의 시스템 분리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사실상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회사는 또 “한국 서버에 있던 일본인 이용자 데이터의 이전을 진행 중”이라고도 밝혔다.
라인야후는 앞서 간편결제 서비스 ‘라인페이’의 일본 내 서비스를 종료하고,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페이페이’(PayPay)에 통합을 추진하는 등 ‘네이버 선 긋기’에 돌입한 모습을 보였다. 라인페이는 라인이 QR코드로 온·오프라인 간편 결제·송금 기능 제공을 목적으로 2014년 만든 서비스다. 사실상 네이버가 시작한 서비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라인페이의 5월 기준 일본 내 사용자 수는 4400만명 수준이다. 이를 소프트뱅크에 넘기는 구조라 라인야후의 ‘네이버 지우기’가 본격화됐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이날 주총에선 여기에 더해 시스템 분리 작업의 가속을 선언하면서 ‘네이버 결별’ 입장을 재차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라인 아버지’ 이사회 퇴출
네이버는 2019년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소프트뱅크와 협의해 라인과 야후재팬의 합병을 결정했고 2021년 A홀딩스를 세웠다.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과 검색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라인야후의 최대 주주는 지분 64.4%를 보유한 A홀딩스다. A홀딩스의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가 보유한 A홀딩스 지분 중 단 한 주라도 소프트뱅크 측에 넘어간다면 경영권을 상실하는 구조다.
문제는 지난 2023년 11월 라인에서 약 51만9000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네이버 협력사 PC에 심겨 있던 악성코드가 클라우드 서버를 타고 라인 시스템에 접근해 발생한 사고다. 일본 총무성은 이에 지난 3월 라인야후에 첫 행정지도를 내리고 ‘네이버의 관리 미흡’을 지적했다. 라인야후는 이에 따라 지난 4월 1월 재발 방지 및 개선 보고서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엔 라인야후가 네이버·네이버클라우드 간의 완전한 시스템 분리를 2026년 1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라는 계획이 담겼다. 네이버 위탁 업무도 라인야후는 2025년 3월, 라인야후 일본 자회사는 2026년 3월까지 종료하겠다고 했다. 라인야후는 이날 주총에서 이를 연내로 앞당긴단 입장을 공식화했다. 네이버와의 결별을 서두르겠단 의지다.
일본 총무성이 개선 보고서를 받아본 뒤에도 재차 행정지도를 내리면서 ‘라인야후 사태’는 외교적 분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보안 강화를 넘어선 ‘네이버와 라인야후의 지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내용이 행정지도에 담겼기 때문이다. 일본 총무성이 같은 사안에 두 차례 행정지도를, 그것도 한 달 사이 내린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일본 정부가 네이버가 지닌 라인야후에 대한 경영권을 완전히 넘기라고 압박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일본 총무성 개입 후 라인야후에 대한 네이버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날 라인야후 주총에선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이사회에서 제외하는 안건이 최종 통과됐다. 신 CPO가 라인야후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이사회는 전원 일본인으로 꾸려지게 됐다. CPO 직위는 유지됐으나, 핵심 경영 의사결정에선 배제된 구조다. 신 CPO는 NHN재팬 시절부터 메신저 앱 개발과 사업을 주도하며 ‘라인의 아버지’로 불린 인물이다.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에 행정지도 조치 보고서를 오는 7월 1일까지 제출토록 요구한 바 있다. 네이버가 일본 정부 압박에 대한 대응 전략을 일단 ‘라인야후 지분 유지’로 설정하면서 보고서에 매각 내용은 담기지 않으리란 해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네이버와 지분 협상을 추진 중인 소프트뱅크도 오는 20일 주총을 개최한다.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지분 매각과 관련한 입장 발표 여부를 두고 업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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