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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쏘아올린 新금산분리 논쟁…사모펀드에 던진 화두는

[新 금산분리 논쟁]①
PEF 경영권 적극 개입, 과열 양상…적대적 M&A 우려도
금융당국 “자본시장 건전성 강화 방안 종합적·장기적 차원 접근”

지난 1월 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사모펀드(PEF)의 경영권 개입이 본격화하면서 금융당국이 ‘금산분리’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를 꺼내 들었다. 특히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간의 경영권 분쟁이 촉발한 논쟁이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존의 금산분리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반대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국내 PEF가 산업자본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9월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 및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와 주주 간 계약을 맺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 회장 측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발표하며 방어 전략을 펼쳤다.이번 사태의 핵심은 PEF가 단순 재무적 투자자(FI)를 넘어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과거 국내 PEF들은 기업 가치 제고 후 엑시트(exit)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통해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모습 드러내는 PEF, 경영권 개입 본격화

지난 2023년 행동주의 투자자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PEF 운용사 KCGI(한국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는 오스템임플란트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담은 주주서한을 전달했다. 결국 KCGI의 경영권 확보에 맞선 MBK파트너스와 유니슨캐피탈(UCK) 컨소시엄이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 인수에 성공했다. 당시 UCK 컨소시엄 측은 창업자인 최규옥 회장과 횡령사고 등에 휘말린 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과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PEF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재계에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상장사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에 직접 개입하거나, 전략적 투자자(SI)와 연합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영진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반면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저해하고, 단기 차익 실현을 위한 개입이 늘어날 경우 오히려 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PEF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금융당국도 규제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PEF 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과거에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문제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부작용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특정 산업군은 투자 기간을 20~30년으로 길게 봐야 하는데, 5년 또는 10년 이내에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형태의 구조를 가진 금융자본이 산업을 지배하게 됐을 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주가치 훼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화두로 삼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금융당국, ‘新금산분리’ 논의 착수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간의 경영권 분쟁 등 PEF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과열 양상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신(新)금산분리’ 규제안을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 금산분리 원칙을 금융자본에도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상호 소유를 금지하는 금산분리는 지난 1995년 은행법에 은산분리(은행자본과 산업자본 분리)가 규정되면서 도입됐다.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동일인)의 은행 의결권 지분보유 상한을 4%(의결권 없이는 10%)로 제한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은 큰 틀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지속해 밝힌 바 있다. 현행 금산분리 규제는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소유하는 것을 제한한다. 하지만 PEF의 경우 별다른 규제 없이 금융회사는 물론 대부분이 산업군에 속한 기업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원장의 발언은 PEF에 대해 금융당국이 새로운 규제 방향을 모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PEF의 상장사 공개매수 건이 늘어나자 올해부터 일반주주 보호 문제를 거론하며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금융당국의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국내 PEF의 투자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PEF의 기업 지배력 확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며, 일부 국가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PEF업계는 산업자본 진출에 대한 규제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금감원은 자본시장의 건전성 강화 방안은 종합적·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업계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이 PEF 산업 자체의 부정이라기보다 PEF의 ‘적대적 M&A’ 시도 등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하게 살펴보자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사모펀드업계 관계자는 “PEF, 그중에서도 주류인 바이아웃 펀드(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게 주된 목적”이라며 “신금산분리가 ‘금융자본(사모펀드)이 산업자본(기업)을 지배(인수)하지 말라’는 취지라면, PEF의 존재 목적 자체가 부정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국내 PEF 시장이 20년 사이에 크게 성장한 점을 고려할 때 ‘PEF의 긍정적‧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생각해 보자’는 원론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으로 해석된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투명성 강화, 경영권 개입 기준 마련 등 시장 친화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PEF의 경영 개입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 가치 제고와 단기 차익 실현 간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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