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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가격 올려도 불티나게 팔린다

[Business] 가격 올려도 불티나게 팔린다

명품업체인 루이뷔통의 한 매장.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시장이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을 내려도 잘 팔리고 올려도 잘 팔리는 물건이 있을까.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이런 예외적 품목이 하나 있다. 바로 명품이다. 7월 15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한·EU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구두·가죽 제품 등의 관세 철폐를 이유로 가격 인하를 발표하자 현대·신세계 등 에르메스가 입점한 백화점은 주말 매출이 껑충 뛰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7월 15~16일 에르메스 매출은 6월의 같은 기간보다 52.6%나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무려 갑절이나 더 팔렸다. 할인율은 평균 5.6%에 불과해 1000만원짜리 가방 가격이 50만원 정도 떨어졌을 뿐이지만 매출 증대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지난 5월 샤넬이 주요 제품 값을 20~25% 올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4월 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40% 이상 늘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두려는 고객이 늘면서 ‘클래식 캐비어’ ‘2.55 빈티지’ 같은 인기 제품은 서울 매장에서 동이 나버려 서울 소비자가 지방 백화점에 ‘원정 쇼핑’을 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러는 가운데 샤넬 제품을 싸게 사 나중에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뜻에서 이른바 ‘샤테크’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언론에서는 FTA 발효를 앞두고 가격을 올리는 명품 브랜드의 행태를 연일 비판하기 바빴지만 소비자의 선택은 반대로 갔다. 샤넬의 가격 인상 이후 루이뷔통과 프라다 등 주요 브랜드도 줄줄이 가격을 올렸지만 매출은 줄지 않았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2005년 8670억원대이던 5대 백화점의 명품 관련 매출이 지난해 2조원을 웃돌았다. 연평균 성장률은 22.4%에 이르렀다. 롯데백화점의 지난 5년간 명품 매출 신장률을 보면 2007년 22.2%, 2008년 38.2%, 2009년 24.2%, 2010년 15.0%, 2011년(상반기) 32.7%로 다른 부문과 비교해 압도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기 불황으로 대형마트나 대부분의 생필품 소비가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지난해에도 두 자릿수 신장을 한 것이다. 명품 가운데서도 인기 브랜드 쏠림 현상이 심해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프라다가 102%, 샤넬이 67%, 루이뷔통이 36%나 늘었다.

명품 소비 급증은 이제 한국 명품시장이 ‘과시’나 ‘차별화’를 지나 ‘동조’ 또는 ‘일상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돈이 많은 걸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사는 단계를 넘어 남이 가지면 나도 가져야 한다는 동조문화가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샤넬백이 혼수품 필수 목록으로 자리 잡고 있는 트렌드는 이런 동조화 현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유럽이나 일본의 명품시장에는 최근 찬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수백만원짜리 작은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사람이 경쟁적으로 늘고 있다. 해외 명품업체가 한국을 ‘손쉬운 시장’으로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명백한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했는데도 줄줄이 가격을 올린다. 매장 운영방식도 외국과 달리 백화점 단독 입점을 고수하고 수수료 역시 국내 패션 브랜드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을 요구한다. 주요 명품 브랜드의 백화점 수수료는 10% 안팎이며 일부 지방매장에서는 수수료 제로까지 요구한다. 그럼에도 백화점은 매출 기여도가 높은 명품 브랜드를 모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명품 브랜드를 모시는 건 비단 백화점만이 아니다. 명품 매장에서 고객이 제품을 자유롭게 만지거나 착용할 수 없게 하고 흰 장갑을 낀 종업원에게 요청해 제품을 볼 수 있도록 운영하는 건 유럽이나 미국과 다른 한국 명품 매장만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이런 방식이 고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명품을 둘러싼 후광을 만들어 더 특별하게 느끼도록 해 구매욕을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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