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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PRINT MEDIA - 닉슨은 견뎌냈지만 인터넷은 못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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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전설 워싱턴 포스트 경영난에 매각…편집국의 베테랑 기자들 사이에선 허탈함과 아마존 창업자인 신임 사주에 대한 기대가 교차



지옥이 얼어붙고, 돼지에게 날개가 생기고, 하늘에서 양이 떨어지고, 하와이가 눈으로 뒤덮인다 해도 이보다 놀랍지는 않을 성싶다. 8월 5일 전설적인 그레이엄 가문이 억만장자 온라인 소매유통 기업가에게 워싱턴 포스트 신문(이하 포스트)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제프리 베조스는 그 136년 전통의 신문과 여러 관련 미디어 자산을 현금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그의 순자산은 252억 달러로 추산된다. 베조스가 회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인수했기 때문에 포스트는 다시 비공개 기업이 된다.

1971년 그레이엄 가문이 기업공개를 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더 충격적인 측면 중 하나는 신문을 오랫동안 소유했던 모기업이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라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이다(하지만 본사 사옥과 다른 여러 부동산 지분은 유지한다).

밥 우드워드 포스트 부편집인은 “대단히 슬프다”고 말했다. 파트너 칼 번스타인과 함께 벤 브래들리 편집인의 지휘 아래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대한 조사를 이끌어 퓰리처상을 받은 전설적인 기자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조스라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 그는 혁신가이면서 자금력과 끈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대된다. 어떻게 보면 이번 매각이야말로 포스트가 최소한 약간이라도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살아 남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드워드의 시원섭섭한 반응은 포스트 베테랑 기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사주인 그레이엄 가문과 작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베조스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켜줄 길을 찾아내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성인이 된 후 평생 그레이엄 가문을 위해 일했다. 포스트가 기업이기는 하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빌 클린턴, 미식축구 명감독 빈스 롬바르디, 버락 오바마의 전기로 퓰리처상을 받은 데이비드 마라니스 부편집인이 말했다. “이젠 그런 감수성이 사라질 성싶다. 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새 경영자가 뉴미디어를 훨씬 더 현명하게 활용하기 때문에 신문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그럴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상실감이 더 크다.”

벤 브래들리의 부인 샐리 퀸은 고참 특집 기자이자 종교 칼럼니스트다. 포스트 매각 결정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소수 내부자 중 한 명이다. 포스트는 주로 교육제품과 서비스에 주력하는 상장기업의 수익 중 아주 작은 부분을 담당한다.

”이사진에서 동요가 있었다는 사실은 안다”고 그녀가 말했다. “제프베조스가 아마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퀸은 “나는 군인의 자녀다. 평생 한 곳에서 1년 반 이상 산 적이 없다”고 답했다. “변화가 생겨도 세상은 돌아간다.”

레너드 다우니 전 편집인은 “당연히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혔다”며 가벼운 농담을 덧붙였다. “이런 인터뷰가 도움이 된다. 적어도 뭔가는 하는 셈이니까. 말하자면 심리치료다.” 그러면서도 다우니는 강조했다. “나는 이번 매각을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의 입장에서는 큰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신문에 대단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매각이 신문과 그 미래를 위해 최선이라고 믿는 듯하다. 나도 그의 판단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게 80년에 걸친 그레이엄 가문의 소유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동안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매카시즘(반 공산주의 열풍)의 시대, 국방부 비밀 보고서(미국의 베트남 전 개입 극비 문서),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있었다. 그 스캔들로 저널리즘의 혁신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물러나고, 포스트가 국가적인 기관으로 입지를 굳혔다.

5일 오후의 뉴스는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 이사회가 매각을 승인한 지 몇 시간 만에 알려졌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언론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언론계가 인터넷을 비롯한 첨단 혁신기술로부터 돈을 짜내는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끙끙 대던 참이었다.

또 한편으로 이틀 전 뉴욕 타임스가 보스턴 글로브와 워체스터 텔리그래프&가젯을 7000만 달러에 레드삭스 구단주 존 헨리에게 매각했다는 뉴스의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참이었다. 타임스사가 수십년 전 지불한 인수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헐값이었다.

아서 슐츠버거 주니어 뉴욕 타임스사 회장겸 발행인은 탄탄하고 경쟁력을 갖춘 포스트의 존재가 자기 가문 소유 신문의 장기적인 건강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최근 말했다. 그는 포스트 매각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알려졌다. 포스트사는 투자은행 앨런사와 함께 비밀리에 적합한 인수자 물색에 착수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포스트 매각 협상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그 거래는 “진지하게 진행됐다.” 지난 7월 아이다호주선밸리에서 있은 앨런사의 연례 미디어·기술 회의에서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의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 겸 CEO가 베조스와 마주 앉았다.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 한결같이 처음에는 (신문을 매각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충격을 받았다”고 그레이엄이 포스트의 폴 파리 기자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제프 베조스에게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 10년 동안 베조스와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그레이엄은 이렇게 덧붙였다. “포스트가 기존 소유구조 아래서 살아남아 가까운 장래에 흑자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살아남기만 원하지 않았다. 이번 매각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성공 확률을 훨씬 더 높여준다.”

저명한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 짐 프리들리크도 그와 같은 논평에 동의했다. “베조스는 디지털 상거래 노하우와 상당한 자금력을 갖고 있다.” 엠피리컬 미디어 사장인 프리들리크가 말했다. “그는 아마존 시절 장기간의 손실을 감수하며 지배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전력이 있다. 장기투자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바로 이것이 전환기에 있는 일류 신문이 훗날 번창하는 디지털 브랜드로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베조스는 최근 비즈니스 인사이더 웹 사이트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독자들 사이에서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매체의 질 높은 디지털 콘텐트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진다. 베조스는 그런 추세를 활용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그는 또한 다른 디지털 및 전통미디어 자산을 자신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할지도 모른다. “그는 자본과 원대한 비전을 모두 갖고 있다.”

프리드리크는 한 가지 잠재적인 단점을 지적했다. “여기에는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돈으로 언론매체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뉴리퍼블릭’잡지의 크리스 휴스, 보스턴 글로브의 존 헨리, 포스트의 제프 베조스 등이 그들이다.”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 모트 저커먼도 지난 20년 동안 뉴욕 데일리 뉴스의 소유주로서 언론계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도 베조스가 포스트를 디지털 시대의 선도적인 신문으로 만들어주기를 희망했다. “그가 신문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포부 없이 뛰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저커먼이 말했다(하지만 베조스는 어떤 동기에서 신문업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히 재능 있는 사람이다.”

마티 배런 편집인은 보스턴 글로브에서 7개월 전 포스트로 영입됐다. 그는 7월 말부터 임박한 매각 소식을 알았지만 비밀을 지켰다. 그도 어쨌든 곧 자신의 상사가 될 베조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새 사주로서 더 적임자가 없다.” 매각 발표 자리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베조스를 곧 실제로 만나보기를 바란다며 그가 덧붙였다. “그는 기술이 어떻게 변하는지, 소비자 취향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이해한다. 그는 정말 빈틈없는 사업가다. 포스트가 전혀 다른 미디어 환경을 헤쳐나갈 때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68세의 도널드 그레이엄은 전설적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의 아들이자 월스트리트 금융가 유진 마이어의 외손자다. 마이어는 1933년 파산 직전 경매에 나온 포스트를 82만5000달러에 인수했었다. 그레이엄은 회사 강당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직원들 앞에서 매각을 발표하면서 목이 메었다.

그레이엄은 매각과 관련해 미리 준비한 성명의 낭독을 끝낼 즈음 일순 냉정을 잃고 말았다. 즉흥 연설로 유명한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워싱턴 DC 경찰이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편집국 말단기자에서 출발해 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직원 다수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워싱턴 도심에 있는 포스트사 본사를 가득 메운 직원들도 그의 슬픔에 눈물로 답했다.

“강당 안에 감정이 물결쳤다”고 한 목격자가 전했다. 그레이엄의 짧은 연설에 이어 베조스가 미래의 직원들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를 그레이엄의 조카딸인 케서린 웨이머스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이 낭독했다. 편지에서 베조스는 신문의 ‘가치관’을 유지하고, 자신은 시애틀의 본업에 충실하며, 포스트의 일상적인 운영을 “신문업에 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탁월한 경영진”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웨이머스, 배런, 프레드 하이어트 사설면 편집인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하나의 감동적인 사건은 웨이머스와 그레이엄이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한 뒤에 일어났다”고 그 목격자가 전했다. “그레이엄이 ‘이제 업무에 복귀할 시간입니다. 신문을 제작해야죠’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오랫동안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그레이엄으로선 대단히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포스트 기자 출신인 칩 브라운은 1999년 다양한 전통 신문들이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대비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그레이엄을 인터뷰했다. 그는 그레이엄 회장이 온라인 저널리즘의 도래와 관련해 많은 지식과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정말로 일찍이 이 문제를 훤히 꿰고 있었다”고 브라운이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타자가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 강속구를 피하지 못한 격이다. 돈 그레이엄만큼 포스트에 애정이 많았던 사람은 없다. 신문을 떠나 보내면서 분명 가슴이 찢어질 듯할 성싶다.”

브라운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레이엄 일가는 신문 소유자 가문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의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절정에서 기업공개를 했을 때 소유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닉슨 정부가 그들을 압박했다. 그들은 닉슨 정부의 탄압을 견뎌냈지만 인터넷을 이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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