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역할 점점 커지는 시민 과학자들

역할 점점 커지는 시민 과학자들

시민 과학자들이 촬영한 사진은 고래상어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사진은 갈라파고스국립공원이 촬영한 고래상어의 모습.



세상을 뒤바꿔놓을 다음 과학적 발견은 실험실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안락의자에 앉은 아마추어들로부터 나올지도 모른다. 오늘날 수많은 시민 과학자들은 이미 크라우드소싱 사이트의 요청으로 단순 반복 작업과 정신노동, 심지어 응용과학연구 자금 조달에까지 나서고 있다. 과학자들 역시 신용이 떨어지고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비전문가들의 견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내는 대신 그들이 수집한 자료를 활용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결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데이터 조사는 과학 분야에서 비숙련가들이 앞서 나가기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시민과학연합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주니버스를 보면 시민 과학자들은 행성 형성디스크가 나타날 만한 별을 찾기 위해 은하수 이미지를 이잡듯이 뒤지고, 북극 기후 관측을 복원하기 위해 전쟁 전 선박의 항해일지를 샅샅히 훑으며, 플랑크톤의 규모와 이동 방향을 알아내려고 망망대해를 탐색한다. 100만 명도 넘는 시민 과학자들이 급료도 받지 않고 미숙한 열정 하나만으로 모든 일을 해낸다.

주니버스의 경우엔 사진이 제공된다. 다른 크라우드소싱 사이트의 경우 사진까지 아마추어들의 노력에 의존한다. 때로는 그런 사진이 전문가들이 찍은 사진만큼이나 믿을 만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시민 과학자들은 최초로 환경보호 문헌을 통해 신뢰도 검증 시험을 통과했다. 시민 과학자들이 제출한 고래상어 사진은 해양생물학자들이 제출한 사진과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이 비전문가들은 진짜 고래상어 연구자들과 똑같은 품질의 사진을 제공했다”고 연구를 주도한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해양생물학자 팀 데이비스는 말했다. 시민 과학자들이 내놓는 결과는 오차범위가 전문가들보다 더 크다고 할지라도 “의심의 여지 없이” 가치가 있다고 데이비스는 평했다. “크라우드소싱은 무료지만 장기 현장 연구는 그렇지 않다.”

장기 현장 연구의 비용과 업무량을 덜어주는 초보자들은 천문학자, 지질학자, 기후과학자들에겐 신이 보낸 축복과도 같다. 모두가 인공위성이 대량으로 찍어 보내는 자료들로 골치를 앓는 분야다. 대규모 DNA 염기서열 분석 결과가 너무 방대해 종종 어려움을 겪는 유전학자들에게도 큰 기회다. 그들은 모든 자료를 단숨에 처리하고 싶어 안달을 내지만 그들만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하다.

케빈 캠벨 매니토바대 환경진화생리학과 교수는 멸종 동물 DNA 분석 전문가다. 캠벨은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쇄도하는 고대생물의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데 시민 과학자들의 도움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요즘엔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자료를 수집한다. 고대생물의 DNA엔 손상이 많기 때문에 수많은 DNA 염기서열을 사람 손으로 직접 분석해야 한다.” 캠벨은 말했다. “우리에겐 그 많은 자료를 다 분석할 시간이 없다. 크라우드소싱을 통하면 그런 작업을 게임으로 만들어가며 도와줄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실제로 크라우드소싱 사이트들은 아주 진지한 연구를 “이 퍼즐을 풀어보시오” 프로젝트로 바꿔놓는다. 다른 온라인 이용자보다 자신이 뛰어남을 입증하고 싶은 시민 과학자들에겐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크라우드소싱 웹사이트 카글에서는 이용자들이 업계나 대학에서 올려 놓은 진짜 퍼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 누가 이 게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지를 보여주는 점수판도 있다.

게임의 결과는 진지하다. 예를 들어 카글 이용자들은 최근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보균자들의 건강을 예측하는 알고리즘 개발에 매달렸다. 바이러스 양이나 CD4 항원으로 HIV 염기서열 속의 표식들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우승자는 과학자와 거리가 멀었다. 문학을 전공하다가 대학을 중퇴한 볼티모어 거주 크리스 라이먼디가 78% 정확도로 HIV 감염 정도의 변화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면서 다른 106팀을 물리쳤다. 라이먼디는 현재 자신의 작업에 대한 논문 출판을 앞두고 있다.

“우리 웹사이트는 과학적 절차를 민주화한다”고 카글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 앤써니 골드블룸은 말했다. “자료 연구자들, 대학에서 일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를 이롭게 하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을 풀 기회를 제공한다.” 골드블룸은 카글 공동체를 구성하는 통계학자 15만 명 중 3분의 2 가량은 학자가 아니라고 추산했다.

휴렛재단의 후원으로 카글에서 진행된 한 대회에서는 참가자들이 미국 8개 기업에서 발매된 에세이 평가 소프트웨어에 점수를 매겼다. 그 소프트웨어들이 뛰어난 글솜씨를 정확하게 평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회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카네기멜런대 대학원생 엘리야 메이필드가 직접 만든 에세이 평가 프로그램 라이트사이드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메이필드는 이 프로그램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제품에 흥미를 보이는 학교들을 찾아냈다. 카글은 자사 홈페이지의 점수판 상위 이용자들이 회사를 차려 나가는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페트리디쉬는 전문 연구자들이 대중으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도록 돕는다.
시민 과학자들의 두뇌는 미 연방정부에도 도움이 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인기 있는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를 여러 개 운영한다. 그 중 하나는 3월부터 개시된 소행성 탐지계획이다. 1월에 개시된 또 다른 프로젝트는 시민 과학자들에게 허블우주망원경 이미지에서 성단을 찾아보라고 요청한다. 미 국가과학재단(NSF)은 2014~2018 전략계획에 크라우스소싱 부문을 집어넣고 퍼즐 풀이 웹사이트 폴딧 같은 크라우스소싱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해주기로 했다.

폴딧은 방문자들에게 “과학 퍼즐 풀이”를 부과하는 웹사이트다. 예를 들면 아미노산 연쇄구조는 복잡하고 3차원적이며 종종 구형으로 배치된 단백질로 접혀 있다. 이 접힌 단백질의 구조를 알면 그 단백질을 대상으로 한 치료법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 단백질이 접혔을 때 어떻게 생겼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면 암세포나 HIV를 사라질 때까지 가둬놓을 수 있는 종합단백질 개발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설령 작은 단백질이라 하더라도 접히는 방식은 사실상 무한하다. 폴딧 웹사이트에 따르면 “수많은 단백질 구조 중 어느 것이 최적인지 알아내기는 오늘날 생물학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그럼에도 시민 과학자들은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은 10일만에 HIV와 유사한 원숭이 바이러스의 구조를 확정했다. 연구자들과 컴퓨터가 수 년 동안 해결에 좌절을 겪었던 문제다. 인공지능은 복잡한 3D 배열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가 아직 얼굴인식 능력이 사람보다 떨어지는 이유다.

대중들은 과학자들을 움직여 자신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를 연구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리 웹사이트 페트리디쉬에선 대중들이 가장 흥미롭다고 여기는 연구주제에 연구비 보조를 서약한다. 여러 주제에 동시에 서약하는 방문객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인기 프로젝트들은 기한 전에 목표 자금을 채운다. 킥스타터와 마찬가지로 목표 자금을 채우지 못하는 연구주제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하며, 서약자들은 현장에서 나오는 자질구레한 소품이나 강연, 과학자와의 저녁식사부터 심지어 학술지 서두에 이름이 실리는 대가를 받는다.

페트리디쉬는 마치 여행 안내책자처럼 화려하며 현장조사의 대상인 동물들 사진으로 이용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학자들의 연구주제 소개는 블로그처럼 꾸며져 있다. 월마트와 메이시에서 전자상거래에 종사했던 공동설립자 일리아 파파스의 작품임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캠벨은 이용자의 투표를 받는 웹사이트를 두고 “인기대회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귀엽거나 상징적인 종에 대한 연구 내지는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된 연구를 선택한다. 예를 들면 암 환자들은 자신이 그 질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암 연구 프로젝트를 택한다.” 캠벨은 대중들의 뜻이 선한 만큼 전체적인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연구주제가 대중들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들의 선택은 대체로 연구 자체가 가진 과학적 이점을 판단할 관련 지식 없이 이뤄진다”고 캠벨은 말했다. “연구가 내포하는 위험이나 단점을 미처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대중들은 제안된 연구주제가 단지 기존 연구를 베껴 낸 것인지, 그 연구가 실행 가능하긴 한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NSF 컴퓨터정보과학프로그램의 케빈 크로스턴 프로그램 이사는 캠벨의 의견에 동의했다. “대중들의 투표는 중요한 기초 연구를 선정하는 데 적합한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대중 평가 대신 동료 평가로 연구 선정 방식을 바꾸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방안이라고 본다.”

크로스턴은 시민 과학자들이 향후 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리라는 견해에 부정적이다. “크라우드소싱이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리라고 보지 않는다. 대다수 연구주제에서 연구의 원동력이 과학자 자신이 아니라 대중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크로스턴은 말했다.

그러나 주니버스 같은 웹사이트가 연구자들에게 자신만의 타당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압박하려는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시민들이 과학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흥미로운 효과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버드대 버크먼인터넷사회센터의 철학자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말했다. 와인버거는 연결된 지식망에 대한 저서 ‘알기엔 너무 큰 것(Too Big to Know)’의 저자다. “시민들은 우선 거주 지역의 상황을 보고하는 센서나 아주 단순한 컴퓨터 역할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점차 복잡하고 교묘해진다.

예를 들어 와인버거는 주니버스가 시민 과학자들에게 갤럭시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은하 사진들을 원형이나 나선형으로 분류하도록 요청했을 때를 돌이켰다. 당시 시민 과학자들은 기이한 은하 형태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주니버스가 이용자들의 상호 대화를 가능하도록 만든 덕분에 그런 이상 형태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풋내기들의 작업이라 생각했던 것이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됐다.” 와인버거는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단지 센서나 단순한 컴퓨터 역할에 머무르진 않을 것이다. 기회만 된다면 서로 접촉할 것이고, 시민들의 연결망이 과학을 처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끌어올릴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가입만해도 돈 번다?…G마켓, 연회비 4900원에 3배 캐시백

2中, 유인우주선 ‘선저우 18호' 발사 성공

3“유치한 분쟁 그만” 외친 민희진, 하이브 주가 하락도 멈출까?

4아일릿은 뉴진스를 표절했을까

5홍콩 ELS 타격에…KB금융 순익 전년比 30% ‘털썩’(종합)

6하나증권, 중소벤처기업들 해외진출 적극 지원한다

7‘범죄도시4’ 이틀 만에 133만 돌파했지만... 관련 주는 '하락' 출발

8맥도날드, 2일부터 가격 인상...메뉴별 최대 400원↑

9김지원·구교환, 롯데칠성 ‘처음처럼’ 새 얼굴 됐다

실시간 뉴스

1가입만해도 돈 번다?…G마켓, 연회비 4900원에 3배 캐시백

2中, 유인우주선 ‘선저우 18호' 발사 성공

3“유치한 분쟁 그만” 외친 민희진, 하이브 주가 하락도 멈출까?

4아일릿은 뉴진스를 표절했을까

5홍콩 ELS 타격에…KB금융 순익 전년比 30% ‘털썩’(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