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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일본의 경제보복과 환율] 원화 약세 가능성 열어놔야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일본의 경제보복과 환율] 원화 약세 가능성 열어놔야

각국 중앙은행 금리 인하에도 일본의 경제보복 악영향 더욱 클 듯
가뜩이나 흐려진 하늘에, 경색된 한·일 관계는 경제와 금융시장에도 먹구름을 몰고 왔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한국의 판결에 강력 반발했던 일본이 경제적으로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 관련 소재 등 일부 품목에 대해, 7월 4일을 기해 수출 포괄 허가제도 대상(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신뢰할 수 없는 국가에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 명분이다.

정치적인 문제를 경제로 보복한 것은 충분히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잘잘못을 떠나 일본의 태도를 보면 추가 보복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는 한국에 유탄(流彈)이 날아온다면 일본은 아예 한국을 정조준했다. 일본은 7월 24일까지 공청회를 거쳐, 한국을 아예 수출 포괄 허가제도 대상에서 제외할지 여부를 8월 중 결정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을 7월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조치로 의미를 축소했다. 다만 다른 편에서는 참의원 선거 이후에도 일본이 쉽게 되돌릴 상황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양국 지도자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일본의 보복 조치는 강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의 중재 기대하기 어려워
국제 정치의 현실은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다. 국가 간 갈등을 중재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 있는 상위 차원의 존재는 없다. 제3자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도덕적으로 재단(裁斷)하는 데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양국이 외교적으로 해결할 문제이고, 당연히 힘의 논리가 우선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약자라는 사실이다.

부당해 보이는 일본의 처사에 미국이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미국에게 그럴 능력은 있지만, 적어도 그럴 의지는 없어 보인다. 이미 2015년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적극적 중재로 이뤄냈던 한·일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더구나 아베 총리의 적극적 구애가 이뤄낸 미·일 지도자 간 밀월관계를 볼 때, 미국이 과연 중립적인 관점으로 사태를 바라볼 지도 의문이다.

최근의 사태는 역사 속에서 가쓰라-태프트 밀약(The Katsura-Taft Agreement)도 소환해 냈다. 제국주의가 활개를 치던 1905년 당시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으로, 일본이 국제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를 인정받은 상징적 사건 중 하나이다.

금융시장은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어떻게 볼까. 금융시장이 도덕적 판단을 할 리 만무하다. 경제적인 득실만이 중요하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공식화된 7월 1일 세계 주식시장만 돌이켜봐도 금융시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계 증시는 직전 주말 미중 정상이 대화를 재개한 주요20개국(G20) 회의 결과에 환호하며 일제히 상승했으나 코스피만 다른 길을 갔다. 특히 반도체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삼성전자 주가는 당일 0.85% 하락(전일 종가 대비)했다.

원·달러 환율도 다른 통화쌍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7월 10일 하원에 출석해 7월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사실상 ‘예고’한 이후 달러화는 다른 통화들에 비해 뚜렷하게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은 이내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엔·원 환율도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다시 상승 흐름을 타진하고 있다.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 인하 행보에 동참하는 것이 금융시장의 심리에는 긍정적이다. 단 환율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이 차별화되기보다 동조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보다 일본 변수가 중요해졌다. 한국과 일본과의 갈등이 조기에 해소될 문제가 아니고, 일본의 추가 보복 가능성을 의식할 때 원화 약세에 따른 환율 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두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다.

한국 경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의 조류를 타고 비상(飛上)했다. 세계 교역은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는 두 배의 속도로 증가했고, 한국은 수입과 수출을 합친 무역액 1조 달러를 달성하며 세계 교역무대에서 주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져, 세계는 무역장벽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극적으로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자유무역 조치보다 보호무역 조치를 우선하며 세계화 흐름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각국의 내부에서 싹튼 정치적 요구에 부응한 시대적 산물이다.

한국 경제가 대외적으로 악재에 겹겹이 둘러싸인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세계화가 후퇴하며 교역이 축소돼 수출이 감소하고 있고, 주요 산업은 기술의 변화 속도에 다소 뒤처지는 인상이다. 갈등이 표면화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경제보복이 가중된 것이다. 강제징용 판결 관련 피고인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미루자, 국내 피해자들이 자산매각 명령을 통한 강제집행 절차를 추진하면서 일본의 반발과 보복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가 추경을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의 하방 압력을 완화하겠지만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와 일본 소재산업에의 의존도는 단기간에 대체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 경제는 반도체 산업에의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 다른 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한 탓도 있지만,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로 소비되는 시대적 산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반도체 생산 네트워크를 타고 한국 경제에는 물론,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도 악재가 될 것이다.
 세계 경제 둔화에 정치적 악재도 수두룩
경제 확장기에는 드러나지 않던 잠재적 취약점들이 경제가 하강하기 시작하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반기에도 악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계 경제 둔화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은 일제히 악화되고 있다. 미국은 미뤄두었던 자동차·부품에 대한 수입 관세 부과 여부를 11월까지는 결정할 예정이다. 그간 가능성이 작게 평가됐던 ‘합의 없는 유럽연합(EU) 이탈’을 향해 가고 있는 영국은 10월 말에 결정의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또 마음이 이미 내년 11월 대선을 향해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금융시장에 호재가 될 수 있는 뉴스는 가급적 내년으로 미루고 싶을 것이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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