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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객실시스템 화재 줄 잇는데…야놀자 “우리 책임 아니다”

5월 대전 서구, 7월 경기 군포 모텔서 화재
‘객실관리시스템(PMS)’ 기기 누전이 원인
야놀자 “제품 하자 없고, 우리 것도 아냐”

 
 
지난 5월 대전 서구의 한 호텔에서 난 화재 현장. 출입구 천장에 설치된 객실관리시스템(PMS) 전원제어장치에서 불이 났다. [사진 제보자]
 
야놀자의 객실관리시스템(PMS) 기기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대전 서구 호텔에 이어 이달엔 경기 군포시의 모텔에서 누전으로 불이 났다. 피해액은 2000만원 안팎이지만, 영업 손실까지 치면 액수가 더 늘어난다.  
 
그런데 야놀자의 입장이 상식 밖이다. 자사 제품에서 불이 났는데도 피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재발방지 대책도 원론적이다. 야놀자 측은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주기적인 청소 등) 사용법 안내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화재 원인이 모텔 업주들에게 있다는 이야기다.  
 
일반인에게도 PMS는 낯설지 않다. 카드키를 단말기에 꽂으면 객실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이 시스템의 일부다. PMS가 객실 전원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이용객이 모바일 앱으로 빈방을 체크하고 예약할 수 있는 것도 이 시스템 덕분이다. 호텔 예약부터 체크아웃까지 앱 하나로 해결한다는 야놀자의 ‘슈퍼 앱’ 전략도 PMS 설비 없이는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화재는 모두 PMS의 전원제어장치(이하 컨트롤박스)에서 일어났다. 컨트롤박스는 각 객실 출입구 천장에 자리 잡고 객실 내 전원을 제어한다. 그런데 전선과 컨트롤박스 모두 천장 안에 있다 보니 큰 불로 번지기 쉽다. 연기가 객실·복도로 새 나올 때까지 알기 어렵다. 다행히 두 업소 모두 객실을 쓰던 이용객이 타는 냄새를 맡고 119에 신고해 초기 진화했다.  
 
그런데도 피해가 만만찮다. 객실에 밴 연기를 없애려면 외장재를 갈아야 해서다. 대전 서구 모텔 업주 A씨는 “리모델링 업자들이 최소한 2000만원은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해당 층 영업중단으로 인한 손해는 별도다. 1700만원어치 견적서를 받았다는 경기 군포시의 모텔 업주 B씨는 “영업을 마냥 쉴 수 없어 일단 보험사에 비용 청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업주 “AS 때 전선 뗐다 붙였다 반복”

불에 탄 누전차단기. 7월 경기 군포시의 한 호텔에서 누전으로 화재가 났다. [사진 제보자]
 
야놀자는 피해 배상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제품 하자 탓이 아니라는 게 첫 번째다. 야놀자 측은 “화재 발생원인은 이물질에 의한 절연 파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전 현장 감정을 맡은 국립소방연구원(이하 연구원)에서도 발화 원인을 ‘습기 등 이물질에 의한 절연 파괴’라고 분석했다. 이 문구만 보면 습한 환경이 누전을 일으킨 것처럼 보인다. 야놀자 생각도 그렇다. 야놀자 측은 재발 방지책으로 “추가적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법 안내(주기적인 청소를 통한 화재 방지, 청소 및 점검에 대한 요청 접수 등)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업주들의 관리 부실이 화재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전선이나 어댑터 피복이 멀쩡하다면, 습기가 곧장 누전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들여다보면, 왜 습기가 누전을 일으켰는지 나온다. ▶기판에서 이탈된 것으로 보이는 전선의 단락흔(끊어진 흔적) ▶기판 내 트랜지스터 접촉부의 파열흔이 근본 원인이란 것이다. 또 외부 환경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는 플라스틱 케이스도 제자리에 없었다.  
 
업주 A씨는 이렇게 전선 피복이 노출된 이유로 사고 발생 2개월 전 업소를 방문한 AS센터 직원을 꼽는다. 나중에 불이 난 8층 전 객실의 부품을 이리저리 뗐다 붙였다 하며 수리했다는 것이 업주 주장이다. A씨는 “직원이 ‘어댑터에 열이 나면서 녹이 많이 슬었다’며 다른 객실 부품을 갖다 썼다”고 말했다. 또 8층 전 객실을 둘러보고도 보호 케이스를 설치하지 않았다.  
 
A씨는 또 “건물 안팎 온도 차가 심한 겨울도 아니고, 가장 꼭대기 층이라 수도관도 없는 천장에서 단순 습기로 불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야놀자 “상표권만 인수한 회사 제품, 우리는 법적 책임 없어”

회로기판을 보호하는 플라스틱 케이스. 화재가 난 객실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진 제보자]
 
이런 관리 미숙에도 책임이 없을까. 야놀자 측은 이에 대해 “화재현장에 설치된 제품은 ㈜씨리얼이 약 10년 전에 제조·판매·설치한 것”이라고 답했다. ㈜씨리얼은 야놀자가 2018년 12월 인수한 업체다. 다시 말해 야놀자가 인수하기 전 만든 제품이니 야놀자와 상관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에 업주들은 “업체를 인수했으면 책임도 이어받는 것 아닌가”라고 반발해왔다.
 
그런데 야놀자는 ㈜씨리얼을 인수한 적조차 없다고 말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 야놀자는 인수 당시 “이번 인수를 통해 숙박업 경영자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고객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야놀자는 “2018년 12월 당시 씨리얼로부터 관련 상표를 양수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씨리얼의 상표권만 가져왔으니 제품 책임도 없단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야놀자에 씨리얼을 넘겼던 옐로모바일의 2019년 9월 계열사 목록을 보면 ㈜옐로씨리얼(지분율 100%)이란 회사가 여전히 남아있다.  
 
씨리얼에서 2018년까지 일했던 C씨 말은 이렇다. 옐로모바일과 갈등을 빚던 씨리얼 당시 대표가 씨리얼의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인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C씨는 “그래서 양사가 상표권 양수라는 방법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표권 양수’는 편법에 가까워 보인다. 당시 씨리얼에서 일하던 AS담당 인원 7명이 야놀자로 소속을 옮겼고, 야놀자는 씨리얼 제품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를 해왔다. 사실상 사업권 전체를 넘겨받았던 셈이다. 피해업주 A씨는 “지난 3월 수리 당시 ‘주식회사 야놀자’ 상호로 영수증을 끊었다”며 “상품 코드도 ‘씨리얼방문AS’”라고 말했다.  
 
이렇게 애매한 법적 지위 탓일까. 씨리얼 제품은 아예 제조물배상책임보험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야놀자 관계자는 A씨에게 “제조물 보험을 든 것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보험은 제조사가 법률상 손해배상금을 지불한 뒤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하는 상품을 뜻한다. 가입이 의무는 아니지만, 기업간(B2B) 거래에선 이 보험 가입 여부가 계약 성사를 결정짓기도 한다.  
 

“서둘렀던 편법 인수합병에 탈난 것”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지난 6월 '테크 올인' 비전을 선언했다. [사진 야놀자]
 
야놀자 측은 전체 AS 건수 중에서도 화재 건은 1%가 안 된다고 답했다. C씨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씨리얼 제품이 들어간 업소는 누적 4000여 개다. 이만한 업소 숫자에 비하면 사고 건수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중소형 호텔 업주 커뮤니티 ‘모텔은 아무나 하나’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이 관계자는 “그간 PMS 기기에서 쇼트(누전으로 인한 전기차단) 일어나는 일이 꽤 흔했다”고 말했다. 피해업주 B씨는 “한 달에 1~2번 꼴로 쇼트가 일어났다”며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 그간은 부품만 바꾸고 넘어갔는데, 이제 화재까지 일어난 것”이라고 불안감을 전했다.  
 
야놀자 측은 두 업소에 부품 교체비용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물론 “도의적, 상생 차원에서 지급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다른 부품으로 교체해도 기존과 같은 제품이면 같은 현상이 또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로 보상 지원을 거부했다. A씨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층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숙박업계 관계자는 “그간 서둘러 인수합병을 해온 것이 이번에 탈이 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표권 양수’라는 우회로까지 써가며 밀어붙인 후유증이란 이야기다. 애매한 법적 지위와 보험마저 없는 위기관리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반열에 오른 야놀자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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